< 안티 트러스트 (1) >
조지아주에서 7인회 비밀 모임이 열린 후, 5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독점 타도! 정의 구현!”
“독점 타도! 정의 구현!”
“대법원은 미국을 바른길로 인도해야 한다!”
“인도해야 한다!”
1911년 4월 6일.
올해 부활절이 딱 열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
이강이 예측한 대로 반독점법 판결 결과가 대법원에서 발표될 것이라고 대중에게 공표되었다.
“미국의 건강한 경제를 위하여, 독점 트러스트들은 규제해야 한다!”
“스탠다드 오일, 아메리칸 타바코를 해체하라!”
“해체하라!”
각종 시민단체가 대법원 앞에 집결한 가운데, 법원을 지키는 경비들은 잔뜩 긴장했다.
사상 초유의 인파가 지금 이곳에 몰렸으니까.
“정숙들 해 주십시오. 이곳은 신성한 법정 앞입니다.”
“······.”
“······.”
“더욱이 미국에 하나밖에 없는 대법원입니다. 모두 예의를 갖춰 주시지요.”
“맞습니다. 만약 이 이상으로 소란을 피우면 그 즉시 체포하겠습니다.”
강력한 공권력이 경고성 멘트를 연신 날려서일까?
경찰들이 우려했던 폭력 시위는 다행히도 벌어지지 않았다.
“소송 관계자분들과 사전에 신청한 방청객들은 신원 확인을 위해 이쪽에 줄 서주십시오. 이쪽입니다. 다들 이쪽으로.”
세기의 판결인 만큼 방청권은 진즉 신청이 완료된 상태.
판결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사람들은 하나둘 착석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존 록펠러 주니어도 있었다.
“모두 기립하십시오. 대법관님들께서 입장하십니다.”
다만, 스탠다드 오일의 대표인 록펠러의 얼굴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판결 후 여론의 집중포화가 예상되기에, 비교적 젊은 록펠러의 아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울 예정이었으니까.
“소송번호 396번.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와 스탠더드 오일 사의 반독점법 소송 사건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록펠러 주니어는 잠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무려 일 년 동안이나 그의 아버지와 함께 반독점법 소송 관련 로비를 지휘했다.
고생했던 지난날의 기억이 그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간 거다.
‘제발, 신이시여······.’
존 록펠러 주니어는 두 손을 모으며 그가 믿는 신께 기도했다.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애원한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제는 정말이지 자신의 손을 떠나 버렸다.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기에, 그 대단한 록펠러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신을 찾았던 거다.
“본 법원은 선고에 앞서, 이 사건의 진행 경과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재판관들은 이 사건을 공정하고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제일 왼쪽에 있던 재판관에 이어, 가운데 앉은 거구의 뚱뚱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 판결을 지휘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이외다. 모두 정숙하고 판결문 낭독을 시작하겠소이다.”
태프트는 뉴욕 자본가 세력들과 척을 졌던 루스벨트 내각의 출신이다.
원 역사에서는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강의 개입으로 인해 루스벨트가 3연임에 도전하며 태프트는 공중으로 붕 떠 버렸다.
다행히도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은 없었다.
루스벨트가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하여 태프트를 잘 회유했으니까.
평소 그가 원했던 대법원장 자리를 그에게 선사하며 공화당 내에 잡음이 생기지 않게 교통정리를 한 건데.
그래서일까?
태프트는 현재 대법원장 자리에 만족한 모양인지 안색이 아주 밝았다.
“스탠다드 사의 독점 경영 방식은 자본주의 시장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미국의 기업가 정신을 극도로 훼손하는 행위로······.”
루스벨트 정부에 굉장히 호의적인 태프트가 일장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그의 입에서 아주 거친 단어가 나왔다.
‘저런.’
록펠러 주니어는 잔뜩 긴장하는 표정을 지으며, 태프트가 하는 말들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약 50여 분간의 긴 설교가 이어졌다.
“······ 이는 20여 년 전, 입법된 셔먼법을 강력하게 위반하는 시장교란 행위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의를 바라는 시민단체 일원들.
판결을 일 초라도 더 빠르게 받아 적으려는 기자들.
워싱턴에서 온 법무부 직원.
그리고 스탠다드 오일의 호화 변호사 군단들까지.
모두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간절하게 태프트를 쳐다보며 숨을 죽였다.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찰나의 순간.
태프트와 록펠러 주니어의 눈이 마주쳤다.
피식-
태프트가 아주 옅게 록펠러 주니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에 록펠러 주니어는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길한 느낌이 그의 온몸을 흘러 타고 내려갔기 때문이다.
“스탠다드 오일 사의 강제 해산 명령을 이 자리에서 선고한다.”
“오! 대박.”
“벌금형이 아니고 강제 해산이네!”
“세기의 특종인걸?”
지난 20여 년 동안 문어발 확장으로 몸집을 키웠던 스탠다드 오일의 종말이 확정된 순간이었다.
“앞으로 6개월 이내에 스탠다드 오일 사는 스스로 독점 경영 구조를 타파하는 자구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그 시한을 어기면······.”
이에 록펠러 주니어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마음속으로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스탠다드 오일이 강제 분할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 * *
터덜터덜.
그에게로 달려드는 기자들을 뿌리치고, 록펠러는 워싱턴 인근에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아버지.”
“그래.”
그곳에는 록펠러가 앉아 있었다.
스탠다드 오일 법무팀과 함께.
“······.”
“······.”
이미 전화로 결과를 보고받았기에, 록펠러는 침묵했다.
이에, 한동안 두 부자는 서로 말없이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벌금을 5천만 달러 정도 맞는 선에서 끝날 것으로 예상했는데 말이다.
현실에서 부딪힌 루스벨트와 대중들의 분노는 그보다도 훨씬 더 강했다.
“이 록펠러가 이리도 열심히 동분서주하고 다녔는데도 막지 못한 일이다. 다른 누구라도 같은 결과를 받았을 거다.”
“······.”
낌새는 일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난다긴다하는 기업인들이 하나둘 그를 피하기 시작했으며.
워싱턴에 심어 둔 장학생들도 록펠러의 연락을 무시하기 일쑤였으니까.
“너도 그때 있지 않았더냐?”
“조지아주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그 일은 조지아주 모건 별장에서 벌어졌다.
마지막 날에는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하며 록펠러를 마치 사형 선고 당한 늙은 죄수 취급했기 때문이다.
“네 장인도 우리를 피할 정도였으니까.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었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 그의 오랜 친우이자 사돈이었던 알드리치도 알게 모르게 꺼리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록펠러는 감이 왔다.
이번 재판에서 그의 완패는 이미 기정사실이라고.
하지만 록펠러는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평생 실패 없이 탄탄대로를 걸었던 그다.
그런 그의 자식 같은 스탠다드 오일이 해체된단다.
정말이지, 인정하기 싫다.
하지만 이젠 진짜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되었기에, 록펠러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기자들이 대표님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는데 말입니다.”
록펠러가 한껏 짜증을 내며 성질을 부렸다.
“기다리라고 하게.”
“······.”
“우리에겐 6개월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던가? 며칠 기다린다고 당장 숨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록펠러는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 얼굴을 회상했다.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몰릴 때, 끝까지 손을 내밀어 준 한 인물.
그자가 떠오른 것이다.
“주니어.”
“예. 아버지.”
“이 왕자는 지금 어디 있다고 했지?”
록펠러 주니어가 잠시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이강의 현재 위치를 밝혔다.
“최근 오클랜드에서 샌프란시스코 본가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아직, 그곳에 있지 않을까요?”
“그래?”
록펠러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기차표를 예매해야겠군.”
“예?”
“당장, 이 왕자를 만나러 가자는 말이다. 뭐 하느냐? 어서 일어나지 않고.”
* * *
“결국,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내 손에는 전보가 들려 있었다.
1년만 참는다면 미대륙 횡단 전화선이 깔려서 좀 더 편리하게 미 동부 쪽 소식을 전달받을 수 있겠지만.
아직은 이것이 완전히 부설되지 않아서 전보로 통신을 주고받은 것이었다.
‘4개 중 2개가 해체되었다.’
원 역사대로 스탠다드 오일과 아메리칸 타바코는 강제해산 명령을 받았다.
모건의 IMM과 US 스틸은 좀 더 심사한다는 명분 아래 최종 판결이 유예되었고.
1년 정도 후에 선고하겠다는 뜻인데, 이는 아마도 루스벨트의 세력이 로비가 대법원에 영향을 줘서가 아닐까?
‘다음 대선 전에 써먹겠군.’
1년 뒤면, 딱 각 당의 후보가 선출된다.
워싱턴에 앉아 있는 곰탱이는 모건 만큼이나 똑똑하다.
루스벨트는 자신의 파벌이 다음 대권을 잇게 만들려고 모건 소유의 회사 판결들은 뒤로 미뤘겠지
“전하. 대단하십니다.”
“······.”
“모두 전하의 예상대로 판결이 났습니다.”
최현우가 엄지를 '척'하고 세우며 놀랐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어떻게 이리 정확하게 예상했냐는 물음에, 나는 답하지 않고 다음 미래를 또다시 예상해 보았다.
“록펠러 대표가 날 찾아오겠군.”
“아, 그렇겠군요. 그로서는 급한 불이 발등에 떨어진 셈이니까요.”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네만.”
나는 최현우를 불러 작게 속삭였다.
“예?”
이에 최현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금 내가 언급한 인물을 왜 집무실로 데려와야 하는지 살짝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최현우가 집무실을 떠난 지, 1분.
그와 함께 한 여성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에델과 함께 온 최현우는 말없이 내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1층으로 내려갔다.
집무실에는 이제 에델과 나, 둘뿐이다.
“부인에게 할 말이 있어서 불렀소.”
“할 말이요?”
나는 에델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부인께서 계획하고 있는 일. 당장 멈추시오.”
“······.”
“그건 내게 도움 되지 않는다오.”
* * *
에델은 당황하지 않았다.
굉장히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내게 물었다.
“계획하고 있는 일이라면······.”
“부인의 오라비를 꾀어 내부에서 반란을 꾀하고자 하는 계획 말이오.”
“······.”
“그거, 현명하지 못한 생각이오.”
에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이, 모든, 것은.”
에델은 천천히.
하지만 차분한 억양을 유지하며 내게 고했다.
“모두 왕자님을 위해 그리 행동한 것이에요.”
“안다오.”
“······.”
“하지만 때론 그런 독단적인 행동이 내게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오.”
나는 손깍지를 낀 후, 내 턱을 그곳에 기대었다.
“나는 록펠러 대표의 영향력이 필요하오. 지금 그대가 반란을 꾀한다면, 그대 친정의 세력은 반으로 쪼개질 것이오.”
“그렇겠죠. 하지만 확실한 우군을 얻게 될 것이에요.”
“글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데.”
“······.”
“확실한 우군이란 없소. 내 것이 아니라면, 우군은 우군일 뿐.”
나는 다음 말을 강조했다.
“더욱이 기존 우군의 세력이 반으로 쪼개진다면, 내 편이 반 토막이 나는 셈이 되지 않겠소? 그리된다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 될 것이오.”
에델은 계속하여 침묵했다.
나는 이에 그녀를 향해 경고했다.
“그러니 지금 하는 행동 당장 멈추시오. 듣자 하니 집 안에 있는 금부터 미술품까지, 죄다 끌어모아 현금화하였다는데 말이오. 이상한데 부디 쓰지 않길 바라오.”
“알겠어요.”
에델은 계산이 끝난 듯했다.
그녀는 작금의 사태를 빠르게 인정했다.
“다만, 모아 두었던 친정 식구들의 자금들은 모두 왕자님께 맡길게요.”
“내게?”
“예.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왕자님께서 최근 현금이 많이 부족하시다는 말이 있던데요. 우리 가문의 쌈짓돈을 활용한다면 숨통이 좀 트이지 않겠어요?”
하긴.
요긴하게 쓸 수는 있겠다.
빌려주는 것이지만.
지금 같은 때에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나야 땡큐지.
“고맙소. 그리 행동한다면 록펠러 대표 또한 괜한 오해를 풀 수 있겠군.”
나는 다시금 목소리에 힘을 주며 에델에게 경고했다.
“아!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소. 다시는 내 허락 없이 바깥일을 도모하지 마오.”
“······.”
“두 번은 내 경고하지 않겠소.”
“예. 안 그럴게요.”
“내 믿겠소.”
에델은 살짝 어지러운지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내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자, 잠시만요. 우웁.”
에델이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러고는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응? 에델. 괜찮소?”
내가 몇 마디 경고했다고, 헛구역질할 정도인가?
그 정도로 엄히 경고하지는 않았는데.
“우웁.”
에델이 살짝살짝 나를 보며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이에 나는 등을 열심히 쳐 줬는데, 불현듯 한 단어가 생각났다.
“에델, 혹시······.”
< 안티 트러스트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