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186화 (186/294)

< 안티 트러스트 (3) >

“축하드립니다. 대표님.”

모건의 계열사 임원들이 모건 본사 대회의장 안에 모여 있는 가운데.

그들은 중앙에 앉아 있는 모건에게 열심히 아부를 떨어 대며, 달콤한 말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모두 대표님의 예상대로입니다.”

“저희 계열사는 다행히도 선고를 1년 유예받았습니다.”

“그에 반해 대표님 경쟁자들은 이번 판결로 하나씩 고꾸라질 것입니다.”

“맞습니다. 외부와 연락도 끊은 채, 두문불출하고 있는 록펠러를 보십시오.”

서양이나 동양이나, 간신배들의 아첨질은 다 똑같다.

그들은 모건을 한껏 띄우며 항간에 도는 소문을 모건에게 좋게 포장했다.

이 중에는 모건이 미래를 안다는 기괴한 이야기도 하나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를 전해 들은 모건이 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반응했다.

“하하,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기 좋으라고 마구 내뱉고 있군.”

모건은 살짝 화를 냈다.

하지만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밝았다.

누구나 그렇듯, 달콤한 아부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드니까.

“그저 운이 좋았네. 이번에는 정말이지 아슬아슬했네.”

하지만 모건은 가신들의 아부에 너무 취하진 않았다.

무능한 지도자와 유능한 지도자의 다른 점은 한 끗 차이.

자기 중심을 잡을 수 있냐인데, 모건은 자기객관화를 아주 잘하는 위인이었다.

“저번에 한 번 당한 반독점법 소송이 약이 된 모양일세. 동정 여론이 의회와 워싱턴 내에 있었으니까. 더욱이 테디 그 자식이 막판에 변심했기에, 겨우 이번 고난을 피할 수 있었네.”

모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이 애지중지하던 독점 경영 계열사들을 거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IMM과 US 스틸 역시 일주일 전에 강제 분할 명령을 받았을 것일세. 록펠러 그놈의 회사처럼 말이야.”

모건의 대답에, 임원진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모건의 주장대로 자칫 잘못했으면 화를 당한 것은 그들이었기에, 더는 이를 거론하지 않은 거다.

“주니어.”

모건이 갑작스레 자신의 외아들을 불렀다.

“앞으로 나오거라.”

그는 임원진들 앞에서 아들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우리 아들놈의 로비가 아니었으면 나 또한 크게 곤욕을 치를 뻔했네. 막판에 테디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모두 주니어의 비책 덕분이었네. 자자, 다들 주니어를 향해 손뼉을 치게!”

“와.”

모건은 제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했다.

이에 모건 주니어가 겸양을 떨었다.

“아버지.”

“말하거라.”

“이 모든 것은 저를 믿고 제게 전권을 내어주신 아버지 덕분입니다.”

“······.”

“더불어 멍청하고 욕심 많은 테디가 막판에 과욕을 부린 것 또한 한몫했고요.”

모건은 모건 주니어의 말을 계속 경청하다가 이내 동의했다.

“맞다. 본래 맹수는 사냥감을 한 번에 물어 죽이는 법. 기회를 주게 되면 결국에는 제 다리를 잘라서라도 금수들은 도망을 친다.”

모건은 평소 그가 혐오했던 루스벨트의 얼굴이 떠올라서 그런지, 온갖 인상을 다 써 가며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사냥을 좋아하는 테디 역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테지만······ 욕심이 났을 것이다. 후임을 자기 사람으로 앉히고 싶을 테니까. 아니 그러냐?”

“맞습니다.”

옆에 있던 임원진들이 동의하자.

모건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감히 천하의 모건에게 시간을 주다니······ 미련한 곰탱이 같으니. 자 다들 일어나게. 슬슬 밥값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1년 남았네.”

“예. 대표님.”

“명심하겠습니다.”

루스벨트 딴에는 1년 뒤, 공화당 경선 전에 모건 독점 회사 강제 해산을 발표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모건이 준비한 루스벨트 내각의 각종 스캔들이 언론에 도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정권 마지막에는 반드시 레임덕이 찾아오니까.

더욱이 루스벨트는 십 년 동안 백악관에 있었기에, 그가 숨기고자 한 비리들 역시 많을 것이었다.

‘네놈 뜻대로 당할 수는 없지.’

루스벨트의 바람대로 모건 제국이 무너질 가능성은 적었다.

적어도 모건은 그리 예상했다.

* * *

“아버지! 그럼 저 또한 이를 대비하러,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래.”

주요 임원진들이 대회의장을 빠져나간 가운데.

JP모건과 그의 최측근인 헨리 데이비슨만이 자리에 남아 하던 말을 계속 이어 갔다.

“주니어 표정이, 말이 아니군.”

모건은 자리를 뜬 자신의 외동아들을 거론하며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댔다.

이에 헨리 데이비슨이 모건의 눈치를 살살 보며 모건 주니어가 왜 안색이 어두운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몰라도 다른 뉴욕 자본가들이 이번 일로 크게 타격을 받았으니까요.”

“······.”

“개중에는 도련님과 친한 이들도 몇몇 껴 있어서, 심기가 살짝 불편하신 듯합니다.”

“쯧쯧.”

JP모건은 혀를 차며 이강의 얼굴을 떠올렸다.

“본디 세상은 흑과 백인 것을. 다른 경영인들은 경쟁자일 뿐인데 그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다니.”

헨리 데이비슨은 화가 잔뜩 난 JP모건을 달래며, 모건 제국의 탄탄한 향후 미래 청사진을 그에게 제시했다.

“대표님.”

“말하게.”

“그래도 이번 일로 대표님을 괴롭히면 마지막 골칫덩어리가 제거되지 않았습니까?”

모건은 이에 찡그렸던 표정을 조금 풀었다.

“헨리. 자네 말이 맞네. 록펠러 그놈이 이번 일로 완전히 몰락해 버렸으니까.”

그간 모건은 석유 산업을 장악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록펠러는 카네기와 더불어 정말이지 철옹성 같은 사내였다.

미 석유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하여 모건이 뒤늦게 이 산업에 진입조차 할 수 없게끔 유도했던 인물이 바로 록펠러였다.

“뭐, 록펠러 역시 카네기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겠지. 이놈 주변 이야기를 들어 보면, 없었던 인간 혐오가 생길 정도니까.”

“맞습니다.”

헨리는 재빨리 모건의 답변에 추임새를 넣었다.

다시금 기분이 풀어진 모건은 자신이 갖지 못한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다음을 명령했다.

“그래. 스탠다드 오일은 차근차근 매입하고 있겠지?”

“예. 공매도 치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에 새로 설립한 신생 트러스트에서 스탠다드 오일 주식을 매집하고 있습니다.”

헨리 부대표의 답변에 모건은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다음 말을 내뱉었다.

“공매도로 번 돈은 그 즉시 현금화해 스탠다드 오일 매입에 투입하게.”

“바로 말입니까?”

“그래.”

헨리가 모건의 명령에 오늘 처음으로 반박했다.

“조금 더 싸질 때를 기약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로스차일드 남작을 보십시오. 지금도 열심히 스탠다드 오일을 상대로 공매도를 치고 있지 않습니까?”

모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사실이었으니까.

“자네 말이 맞네. 지금도 스탠다드 오일의 주가는 내려가고 있다네. 하지만······.”

“하지만?”

“어디가 바닥일지 모르지 않는가?”

“아······.”

머리를 굴리는 헨리를 바라보며 모건이 다음 주장을 빠르게 덧붙였다.

“더욱이 어느 정도 주식이 매집되면 나는 록펠러에게 한 가지를 제안할 생각이네.”

“분할할 스탠다드 오일 사 일부 경영권을 대표님께 넘기라고요? 카네기에게 제안했던 것처럼 말입니까?”

“그래.”

US 스틸은 본래 모건의 것이 아니었다.

늘그막에, 잇단 경쟁으로 지친 카네기를 상대로 모건이 아주 좋은 조건을 제안하며 인수했던 물건.

헨리가 이를 거론하자, 모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하는데 로스차일드 남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겠지.”

헨리는 잠시 고민했다.

이후 그의 서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이더니, 문서 하나를 모건에게 들이밀었다.

“대표님.”

“응?”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내일 자 조간신문 기사입니다.”

헨리 데이비슨은 자신이 준비한 자료를 요약해 설명하며 모건의 반응을 지켜보았다.

“1면은 아니지만, 작지 않은 비중으로 해당 기사가 실릴 것입니다.”

“공매도로 유명한 제시 리버모어가······ 이강의 품에서 떠난다?”

“예. 새 둥지를 트는 곳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신탁 회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허허.”

모건이 살짝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에.

헨리가 빠르게 다음 말을 이어 갔다.

“남작이 아주 작정한 모양입니다.”

“······.”

“그렇지 않고서야 공매도 전문가인 리버모어를 왜 영입했겠습니까? 듣자 하니, 거액의 연봉과 파격적인 권한 역시 제안했다고 합니다.”

“그래? 이거, 남작이 남작답지 않게 무리를 좀 하는군.”

모건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평소 보였던 남작의 행동과는 사뭇 달라서였다.

“그야 불안해서 그러는 것이겠지요.”

“불안?”

“예. 남작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양아들이자 그의 조카인 월터 로스차일드입니다.”

“그렇지. 외아들은 예전에 돌림병으로 죽어서 본의 아니게 입양을 통해 대를 이어야 하니까.”

“예.”

헨리는 월터와 남작을 비교하며 남작이 왜 무리를 하는지 설명했다.

“월터는 기존 로스차일드 남작보다 못합니다. 나은 점은 인성 하나뿐인데 이게 돈이 됩니까?”

“아니지.”

모건도 고개를 끄덕였다.

월터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기에, 그에 관한 세간의 소문을 인정한 거다.

“남작도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무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록펠러 쪽은 더욱이 이강이라는 변수도 존재하기에, 이참에 격차를 벌릴 모양입니다.”

그제야 모건은 요새 남작이 왜 그리 조바심을 내는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어댔다.

“그렇다면 적당히 때를 지켜보게. 일단은 가지고 있는 주식은 신생 트러스트에 양도하도록 하고.”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 * *

“정말인가?”

“······.”

“정말로 자네, 아메리카 신탁에서 퇴사할 생각인가?”

록펠러와 함께 동부로 이동했다.

이후 아메리칸 신탁을 들리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대표였던 제시 리버모어가 깜짝 발표했다.

“예. 그렇습니다. 이 왕자님.”

지금은 정말이지 중요한 시기다.

하필 이때.

중요 결정을 책임지는 선장이 자리를 비운다고 한다.

나는 팔짱을 끼며 미간을 오므렸다.

매우 부정적인 제스처를 한껏 드러낸 거다.

“이미 마음은 정해진 것 같고······ 그래, 내 떠나는 이유나 한번 들어 보고 싶네.”

“왕자님께서 제 조언을 흘려 들으신 지 2년 정도 되지 않았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제시 리버모어는 제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다른 직장인들이 다들 그렇듯.

사직서를 낼 때, 평소 속 안에 담아뒀던 안 좋은 기억을 끄집어낸 것이다.

“스탠다드 오일 추가 투자 건에 관해 자네와 나 사이에 갈등이 그때부터 시작되었긴 했지.”

“예. 그렇습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스탠다드 오일을 상대로 공매도를 하길 원했다.

하지만 미래를 알고 있고, 더욱이 투자 대상이자 록펠러를 동맹 관계로 삼아두고 있는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리버모어의 의견을 거절하고.

나는 혹시나 그가 독단적으로 해당 행위를 할 수 없게끔, 시스템이라는 것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제 권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

“왕자님! 저는 제시 리버모어입니다. 공매도로 1907년 모건을 덜덜 떨게 했던 인재란 말입니다. 저를 이렇게 취급하시면 안 되지요.”

본디 사람은 자기객관화를 잘해야 한다.

제시 리버모어는 1907년부터 언론의 관심을 받아 가며 승승장구했다.

본래 자신의 능력보다 더 과하게 부풀려져서 대중에게 소개되었는데.

그게 그만 제시 리버모어에게 독이 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제 권한을 줄이는 것은 제 손과 발을 자르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롭게 활개 칠 수 있는 곳으로 이직하고 싶다?”

“예. 그렇습니다.”

원 역사에서도 제시는 스탠다드 오일을 상대로 공매도를 벌인다.

‘그러다가 망했지. 한 번.’

제시는 너무나도 크게 일을 벌인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성향은 돈을 딸 때 한 번에 듬뿍 거두어 들이는 경향이 있지만.

잃을 때도 한 번에 왕창 손해 본다.

나는 제시의 이런 성향을 좀 제어하며 내 금융 계열사 수장으로 사용할 생각이었으나.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 관리라고, 내 뜻대로 제시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알겠네. 뭐, 자네 뜻이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나는 제시의 사직서를 받아들이며 잘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옮기는 직장에선 부디 자네의 뜻을 온전히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군. 우리의 인연이 비록 여기서 끝난다지만, 내 자네를 위해 기도하겠네.”

“감사합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고개를 푹 숙이며 동양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내게 건넸다.

그가 막 아메리칸 신탁 대표실을 떠나려는 찰나.

“아, 자네.”

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 하나를 던졌다.

“떠나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네.”

“말씀하십시오. 이 왕자님.”

“한 일 년 전부터 말이야. 아메리카 신탁 내에 누군가가 내 계좌 내용을 흘리고 있다는 말이 있네. 자네는 이에 관해 아는 바가 없는가?”

“글쎄요.”

제시는 나의 질문에 모르는 체하는 표정을 지었다.

“감사팀이 이를 조사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말은 들었으나, 저는 이에 관해 들은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

“예.”

“방금 자네가 한 말, 하나도 거짓이 없으렷다.”

“당연하죠.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럼 이만 가보게.”

떠나는 제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갖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4년 전.

그는 정말이지 내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신인 투자가였는데 말이다.

“전하.”

최현우 비서실장이 내가 있는 아메리카 대표실로 들어왔다.

그 옆에는 이위종도 있었다.

이위종은 미국에서 익문사 업무를 총괄하는 이로 아메리카 신탁 내에서 내 정보를 흘리는 이들을 뒤에서 조사하기도 했다.

“저자를 그냥 놔두실 생각이십니까?”

최현우가 씩씩대며 제시 리버모어의 명패를 노려보았다.

아메리카 신탁의 대표라 적혀 있는 명패.

이위종은 이를 조심스럽게 들어다가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저놈이, 록펠러 대표가 말하던 쥐새끼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어찌하여 저런 놈을 그냥 나가게 둔답니까? 전하!”

나는 피식 웃으며 아까까지 앉아 있던 제시 리버모어의 자리를 쳐다보았다.

“쥐새끼도 때론, 쓸모가 있다네.”

“······.”

“내일이라도 당장, 남작 밑으로 들어가서 제 일을 하지 않겠는가? 우리 사정도 빤히 다 아니 더욱더 적극적으로 행동하겠지.”

한동안 재미있는 일만 계속하여 터지겠네.

남작도.

리버모어도.

모건도.

루스벨트도.

제 살기에 바쁠 테니까 말이야.

나는 재미난 미래를 상상하며 전화기를 들었다.

록펠러에게 전에 함께 상의했던 후속발표를 일주일만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 안티 트러스트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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