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1) >
언론이 주목하는 인물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언론은 이강과 한 번이라도 더 인터뷰하려고, 그의 집 앞에서 노숙까지 하며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1907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는 다들 모건의 입만 쳐다보며, 그가 내놓았던 대책을 그대로 받아쓰기에 바빴고.
『록펠러 대표. 오늘 저녁 기자들과의 만담을 통해 향후 계획 설명할 예정.』
올해 가장 핫한 이슈는 당연하게도 반독점법 소송이었다.
당연하게도 록펠러를 향한 언론의 관심은 높아져 갔다.
“갤록 검사님.”
록펠러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아니다.
반대에 있던, 프랑크 갤록 특별검사에게도 세간의 이목이 쏠렸는데.
프랑크 갤록은 살짝 과한 관심을 처음에는 잘 즐겼다.
하지만 계속되는 언론의 집착은 강인한 심성을 지닌 사람까지도 지치게 만든다.
한 삼 개월 정도 기자들에게 달달 볶이자, 갤록은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기 시작했다.
업무상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약속을 모조리 취소했는데, 그런 갤록마저도 오늘만큼은 활짝 웃으며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왓슨 은행장님?”
“아이고! 반갑습니다.”
케미컬은행의 은행장인 왓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로스차일드의 오랜 수하로 그는 뉴욕에서 수십 년 근무하며 미국 재계와 정계 쪽에 거미줄 같은 인맥을 구축했다.
깐깐한 로스차일드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그 능력이 출중했는데, 그는 특유의 영업력과 친화력으로 새 사람을 쉽게 사귀었다.
“생각보다 동안이십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저는 검사님의 얼굴을 요새 신문에서 많이 봬서 그런지, 처음 만나는데도 십년지기 친구를 만나는 느낌입니다.”
“좋은 뜻으로 하시는 말씀이겠지요?”
“예. 보통의 검사들은 차갑고 정 없는 이미지지 않습니까? 반면 제 앞에 계신 갤록 검사님은 인상이 너무나도 좋으십니다. 말 몇 번 섞지 않았는데도 이리 심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면 제 주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서로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줄줄 늘어놓는다.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함이다.
이는 어느 한쪽이 위인 ‘갑을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필요로 하고 있기에, 한동안 입바른 소리가 계속되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예?”
“요새 검사님께서 사람 많은 곳을 피하신다고 하셔서······ 이쪽으로 약속장소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곳은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굉장히 프라이빗한 술집이었다.
그랬기에 지금 이 자리에는 왓슨과 갤록, 그리고 이곳에서 일하는 점원 약간뿐이었다.
“최고입니다. 워싱턴에 근무하며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와야겠군요.”
“보안 하나만큼은 최고이니, 자주 이용해 주십시오. 아! 이곳에 들르기 전에 지배인에게 제 이름을 대십시오. 그러면 예약을 쉽게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프랑크 갤록은 만남 장소가 굉장히 흡족한지 연신 미소 지었다.
주변을 쓱 돌아보며 종업원이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자, 갤록이 왓슨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남작님을 직접 뵙고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아쉽습니다.”
“남작님께서 연세가 좀 있으셔서, 영국과 미국을 오가시기가 좀 힘드십니다. 너그러우신 갤록 검사님께서 남작님의 개인적인 사정을 좀 이해해 주십시오.”
로스차일드 남작은 알게 모르게 미 법무부가 주도하고 있던 반독점법 소송을 지원했다.
생각해 봐라.
지난 2년간 미 언론에 꾸준히 모건과 록펠러를 향한 비난 기사를 냈던 이들이 바로 로스차일드다.
더욱이 그들은 반 록펠러 진영의 잔 다르크와도 같았던 타벨 여사의 스탠더드 오일 비판 서적 발간 또한 지원했다.
그녀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모두 로스차일드가 출간 초반에 해당 서적을 집중적으로 매집해서였는데.
미 법무부 인사들은 이런 사실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후, 루스벨트 파벌은 로스차일드 가문을 자신들의 후원자로 맞이하기로 마음을 바꿨다.
뉴욕의 대다수 자본가와 척을 진 상황에서 로스차일드 남작만 한 후견인은 이 나라에 존재치 않아서였다.
“아! 최근에 남작님께서 제시 리버모어를 영입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말입니다.”
“맞습니다.”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요.”
적의 적은 친구다.
이 둘은 록펠러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친분을 생성 중이었다.
그들은 파멸하고 있는 록펠러의 상황을 비웃다가 서로의 공통점을 하나 더 찾아냈다.
“재미있군요.”
“뭐가 말입니까?”
“저희 대통령님께서도 테디(곰돌이 인형- 애칭)라고 불리시는데 말입니다. 남작께서 영입한 제시 리버모어 역시 큰 곰(빅 베어)으로 불리지 않습니까?”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어쩌다 보니 우리 모두 둘 다 곰이 상징입니다.”
황소는 상승장(불 마켓).
곰은 하락장(베어 마켓)을 상징한다.
월가에서 곰은 굉장히 불길한 상징이지만, 이 둘은 서로의 공통점을 하나 더 찾아내서 그런지 밝게 웃으며 이를 거론했다.
“아! 왓슨 은행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왜 영입하신 것입니까? 그자, 이강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마침, 남작님께서 공매도 쪽에 관심을 보이셔서요.”
“공매도요?”
“예. 제시 리버모어는 1907년 금융위기 때 모건을 한때 구석에 몰 정도로 뛰어난 공매도 실력을 보여 줬습니다.”
“아! 최근 스탠더드 오일 주가가 연일 내려가고 있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자를 영입한 덕분이겠군요.”
“뭐, 그런 셈이죠.”
왓슨 은행장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갤록에게 속삭였다.
“앞으로 스탠다드 오일의 주가는 더 내려갈 것입니다.”
“이미 많이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더 떨어질 수 있답니까?”
“에이. 아직 연초 대비 10%밖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 절반 가까이는 떨어져야 폭락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갤록은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하긴. 듣고 보니 은행장님의 주장이 옳은 것 같습니다. 스탠다드 오일의 석유 시장 독점은 이제 완전히 끝났으니까요.”
“예. 그렇습니다.”
갤록은 자신 역시도 스탠다드 오일 공매도에 끼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직에 재직 중이기에, 갤록은 이해 상충 관계를 꼼꼼히 신경 써야 했다.
그렇기에 쉽사리 투자할 수가 없었는데, 이에 왓슨 은행장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으며 갤록을 바라보았다.
“아쉽군요. 천하의 록펠러라고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살아남지 못할 텐데요.”
“본인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직업이 직업인지라, 어쩔 수 없습니다.”
“차명으로 투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갤록은 ‘혹’ 하긴 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본디 뉴욕의 자본가 그룹 출신이다.
이런 사소한 대화로 약점이 잡힐 수도 있었기에, 갤록은 빠르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댔다.
“욕심부렸다간 제가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록펠러와 모건이 절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갤록은 어깨를 으쓱하는 왓슨 은행장을 보며 공통의 적인 록펠러를 다시금 대화 주제로 꺼냈다.
그는 록펠러의 현 행동을 힐난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 오늘이라지요? 록펠러의 기자회견 날짜가.”
“그렇네요.”
“제 딴에는 이에 관한 대책을 추가로 제시하기 위해서 기자회견 날짜까지 미루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다 부질없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허허. 동의합니다. 그나저나 어떤 내용을 발표할까요?”
“글쎄요.”
“무슨 내용을 발표해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갤록 검사님은 물론이고 법무장관님 그리고 루스벨트 대통령님께서 이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니까요.”
갤록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썩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설프게 기업 분리를 하는 시늉을 했다가는 크게 혼쭐이 날 것입니다. 철퇴로 그놈의 머리를 다시금 내리칠 생각이니까요.”
“하하하. 과연, 검사님다우신 말씀이십니다.”
왓슨과 갤록은 록펠러가 꼼수를 부릴 것으로 예상했다.
기업을 한 3-4개로 쪼개는 정도로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법무부는 이에 반발하여 항소할 것이라고 갤록이 전망했다.
이에 왓슨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추가 소송을 당한다면, 스탠다드 오일의 주가는 다시금 바닥을 칠 것이니까.
불확실성이야말로 최고의 악재이지 않던가?
“아! 최고의 투자가라고 불리던 이강 왕자도 이번에 크게 물렸다지요?”
“그렇다고 합니다. 이대로 주가가 30%만 더 떨어진다면 이강이 소유한 스탠다드 오일 주식 일부가 청산될 것입니다.”
“저런. 안타깝군요. 동양인치고는 나름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양인데 말입니다.”
“그러게요. 그의 투자 불패 신화가 이리도 끝나게 될 줄은 저 또한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강의 운도 뭐 여기까지겠지요. 탈출구가 안 보입니다.”
둘은 희희낙락거리면서 비싼 고급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검사님.”
“은행장님.”
갤록과 왓슨의 부하들이 급히 이 둘이 있는 술집으로 찾아왔다.
다들 무언가 긴장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록펠러가 기자회견을 열었나 보군요.”
“무슨 내용을 발표했을까요?”
둘은 함께 부하들의 보고를 받았다.
“뭐?”
“방금 뭐라고 했는가?”
그들의 귀에 들린 발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스탠다드 오일을 34개로 쪼갠다고 록펠러가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회사를 쪼개는 것도 모자라서······ 생산, 정제, 유통 등 분야별로 재차 나눈다고?”
“더하여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한다고?”
“예. 그렇습니다.”
“퇴진 후에 자선사업에 매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당장 이번에 그의 몫으로 떨어지는 배당금을 자선사업 재단에 기부한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내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록펠러는 기업을 쪼개는 데 그치지 않고, 경영권 일부를 따로 떼는 결정까지 했다.
“아들과 조카 둘에게 경영권을 분배할 예정이랍니다. 상세한 방안은 차후에 발표할 예정이라지만, 이미 로드맵을 기자들에게 뿌렸기에 내부적으로는 교통정리가 끝난 것 같습니다.”
부하들이 들고 있던 서류를 그들에게 넘겼다.
왓슨은 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들은 그렇다고 쳐도 조카 둘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니. 이상합니다.”
“그러게요. 제가 아는 록펠러의 조카(nephew)는 하나뿐인데 말입니다.”
“······이거, 조카사위인 이강에게 일부를 떼어 줄 생각인가 봅니다.”
“아······.”
왓슨이 살짝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떡 하니 벌렸다.
갤록은 그런 왓슨을 바라보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록펠러가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 소식 또한 발표했답니다. 왓슨 은행장님. 이거 괜찮습니까? 남작님과 은행장님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인 것 같은데요.”
뒤에서 이 자료를 전해 준 후배 검사가 첨언했다.
그는 평소에 주식에 관심이 많았기에 관련 내용을 아주 상세히 잘 알고 있었다.
“스탠다드 오일의 주식이 이 발표 이후 10%나 올랐습니다. 록펠러의 기자회견에 시장이 호응한 것이지요.”
“그래?”
갤록 특별검사가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왓슨을 바라보았다.
“괜찮습니까? 정말로······.”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봐야 할 거 같습니다.”
“아, 예.”
떠나려는 왓슨을 바라보며 갤록이 마지막 당부를 했다.
“남작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은 꼭 전해주십시오.”
“예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스탠다드 오일의 주가 동향입니다.”
내 손에 보고서가 쥐어져 있다.
스탠다드 오일의 주가가 하루 단위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를 다시금 그래프로 바꿔 그려가며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았다.
“반독점법 발표전으로 주가가 회귀하였군.”
“예. 하지만 공매도 세력이 아직 건재하여 추가 상승은 어려울 듯합니다.”
“뭐, 그거야. 당장은 그렇지.”
나는 피식 웃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 주에 2차 발표가 예정되어 있지 않던가? 변경된 기름값이 공시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일세.”
공매도를 치는 인간들은 기본적으로 단타를 잘 치는 인간들이다.
조그마한 정보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
‘그런 이들에게 기름값 인상 소식을 발표해봐라.’
그냥 오르는 정도가 아니다.
갤런당 ‘6’센트 하던 것을 적어도 ‘40’센트로 올릴 예정이다.
이후에 추가 인상이 또 한 번 있을 거고.
‘먼저 빠져나오는 자가 승리자다.’
조금만 머리 돌아가는 이들이라면 알게 될 거다.
쪼개진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쓸어 담게 될지를.
늦으면 늦을수록 공매도 세력이 입는 손해는 더 커질 테다.
“전하.”
“무슨 일인가?”
“모건 대표가 급히 전하를 알현하고자, 이곳에 들렸다고 합니다.”
“모건이?”
“예. 사전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는데 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돌려보낼까요?”
아니다.
딱 좋은 타이밍에 그가 우리 사무실에 방문했기에, 그의 얼굴을 한번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아닐세. 들어오라고 하게.”
모건은 특유의 비대한 뚱뚱보 몸을 이끌고 내 앞에 나타났다.
“왕자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무슨 급한 일이 생겼기에, 기별도 없이 이곳에 들른 것이지?”
환영하지 않는다는 표정을 대놓고 지어 보였다.
사전에 기별도 없이 찾아왔기에, 이 정도는 감수했을 거다.
예상대로 모건은 나의 반응을 애써 외면하며, 재빠르게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제안을 하나 하러 왔습니다.”
“제안?”
부탁이 아니고 제안이란 말이지.
아직 급하지는 않나 보네.
“일단 말해 보게. 듣고 나서 내 판단해 보도록 하겠네.”
< 너의 불행은 나의 행복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