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00화 (200/294)

< 결자해지 (3) >

“다우닝가에 메시지 하나를 전달해 줄 수 있는가?”

내 집을 막 떠나려던 로스차일드 남작이 방금 내뱉은 나의 말에 급히 안경을 고쳐 썼다.

“메시지요?”

“그래.”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지만, 손은 거짓말을 못 하고 있다.

부산하게 움직이며 제 옷매무새를 고쳐 잡는 것만 봐도, 대충 남작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내 귀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놈 보소.’

남작의 오랜 습관 중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기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영국 정부를 좀 움직여 달라는 뜻입니까?”

남작은 빠르게 내 쪽으로 다가온 후, 소파에 앉았다.

이후 로스차일드는 손깍지를 끼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런 부탁을 하시는 것입니까? 뭐, 중대한 일이라고 생겼습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다 죽어 가던 표정을 짓던 놈이······.

얼굴에 화색까지 돌며 눈을 번뜩인다.

하여튼.

모건이나 남작이나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단 말이야.

나는 살짝 뜸을 들였다.

남작을 애태우기 위해서다.

“글쎄. 전달할 말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천차만별이라.”

“······.”

“귀하다면 귀하고, 별거 아니면 별거 아닌 소식일세.”

“그러지 마시고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알려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다우닝가에 해당 정보를 좀 더 빠르게 전할 수 있답니다.”

나는 생기를 회복한 로스차일드를 향해 한 단어를 언급했다.

“중국(China)에 일이 생겼네.”

“중국이라면······ 청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래.”

나는 손가락을 튕겨 가며 남작을 바라보았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청의 내부 사정이 급속도로 안 좋아지고 있다더군.”

“영국 정부가 움직여야 할 정도 심각합니까?”

“아직은 내륙에 있는 사천과 호북 지방에 한정된 일이지만······.”

나는 급히 중국 지도를 꺼내 들었다.

수많은 양쯔강 지류들이 하나로 뭉치는 곳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군이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우칭(우한)을 장악한다면 말이 달라지겠지.”

이 시대 중국은 인도와 더불어 영국에게 황금을 낳아 주는 거위였다.

그런 거위의 배가 곧 갈라질 수도 있었기에, 나는 영국에게 조언도 해 주며 그 가운데에서 콩고물을 얻어먹을 예정이었다.

“우칭이 점령당하면 그다음은 어디겠나? 나는 난징(남경)이라고 보네.”

남경은 청나라의 부수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 도시를 지키는 경비 또한 삼엄하다.

‘서양인들이라면 다들 쉬이 함락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겠지만.’

이곳은 오십여 년 전에도 이미 태평천국 군에 의해 점령당한 적이 있는 도시였다.

나는 과거의 일을 거론하며 반군의 남중국 장악이 생각보다 빠를 것으로 추측했다.

“난징이 점령당한다면 그다음은 어디일까? 항저우?”

“······.”

“아니지. 그보다 가까운 곳이 있기에, 그들은 항저우로 향하지 않을 것일세.”

남작이 미간을 모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상하이겠군요.”

“그래.”

원 역사에서도 공부했던 기억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영국은 신해혁명에 개입했다.’

쑨원의 발자취를 공부하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역사지만, 나는 영국이 이번 사건에 낄 것을 확신했다.

‘누구보다 상해를 아끼는 이들이 바로 영국이니까. 원 역사를 모르더라도 쉬이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중국은 점점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 가고 있었다.

어디나 그렇지만 주인이 바뀐 점령지는 대부분 손을 타기 마련이다.

혁명군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약탈자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남중국 해안 도시들은 부유하다. 그중에서도 상해는 제일이지.’

영국은 최대한 자신들이 아끼는 남중국을 지키고 싶어 할 것이다.

청이든.

혁명군이든.

황금알만 낳을 수 있다면, 영국에게 있어선 어느 거위라도 OK이겠지.

“이런 정보는 하루라도 빨리 입수하는 것이 중요하네. 1분 1초라도 빨리 사태를 분석해야 다음 조치를 구상할 테니까. 그렇지 않은가?”

가만히 이를 듣고 있던 로스차일드 남작이 눈알을 마구 굴린다.

이 짧은 시간 내에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이를 영국 총리에게 알리고 싶네. 그들이 내게 호의를 베푼 적이 있으니까.”

지난날.

영국이 일본과 나 사이에 껴들어 중재했던 일을 거론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수상하기에, 오래된 과거 일을 꺼내 본 거다.

“뭐, 자네가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나는 다우닝가에 접근할 것이네. 이미 백악관에는 말해 두었으니 어떻게든 영국 총리에게 이 소식이 전달되긴 하겠지. 그렇지 않은가?”

남작의 머리 굴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기에, 나는 재빨리 다음 말을 꺼냈다.

로스차일드 없이도 이 소식을 총리에게 전할 역량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거다.

“비단 백악관 말고도 다른 루트로 이를 전할 방법은 많으니까.”

영국만이 이해 당사자는 아니다.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일본, 러시아 등은 중국 내에서 자신들의 조계지를 소유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서 다우닝가에 접근할 수도 있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댔다.

“왕자님께서 이리 부탁하시는데 제가 어찌 어렵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곳을 나서는 즉시 런던에 해당 정보를 알리겠습니다. 아, 왕자님!”

“말하게.”

“아, 아닙니다.”

남작은 이후 무언가를 내게 질문하려고 했다.

아마도 이 정보를 왜 자신을 통해 전달하려는지 묻고자 함이겠지.

“말해 보게.”

“······.”

“쯧쯧. 실없기는.”

남작을 통해 이 소식을 전달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영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하기에, 남작을 통하는 방법이 제일 빠르고 잘 먹힌다는 것이 첫째.

‘더하여······.’

이번 사건으로 남작은 미국 내에서 자신의 사업을 철수했다.

이는 나와 경쟁하는 산업이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꼬인 실타래를 조금 풀어 보자.’

하지만 유럽에서는 아직도 영향력이 있는 인사였다.

그는 유럽에서 모건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거대세력이기도 했기에.

그의 숨통을 살짝 터 주며 나의 또 다른 상대인 모건을 압박하려는 것이다.

특히나 해운 쪽에서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기에.

별로 탐탁지는 않지만,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왕자님.”

“이제 말하려는가?”

“어찌 보면 방금 제안은 왕자님께서 제게 호의를 베푸신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그렇다.

20세기 초반은 21세기처럼 국제 정세를 쉬이 알아낼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방금 내가 건넨 중국 정보는 어떻게 가공하냐에 따라 그 값이 천차만별이다.

‘남작의 가문은 이러한 단순 정보들을 아주 효율적으로 가공하는 데 특화되어 있지.’

남작은 이 값어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인사다.

그렇기에, 작금의 내가 내민 화해의 손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또한 그 호의에 답을 하겠습니다.”

남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다음을 외쳤다.

“모건을 조심하십시오.”

“모건?”

“예.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셔야 할 것입니다.”

정보에는 정보인가?

남작은 빠르게 그 이유를 뒤에 덧붙이기 시작했다.

“최근 모건은 다양한 기업가들과 접촉하며 투자를 하고 다닌답니다.”

“뭐, 우리가 늘 하는 짓이 그 짓이 아니던가?”

삼 개월 전에 에어컨을 발명한 캐리어와 접촉하며 그에게 투자를 제안했다.

모건 역시 비슷한 짓을 하고 다니겠지.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동안 만나고 다닌 인사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아서요.”

“그래?”

“예. 예를 들어 볼까요? 글렌 커티스, 윌리엄 듀랜트, 토머스 에디슨. 요즘, 이 셋과 자주 만난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돌고 있는데 말입니다.”

나는 이에 눈을 가늘게 떴다.

살짝 거슬렸기 때문이다.

“왕자님께서도 느끼셨나 봅니다. 맞습니다. 이자들은 묘하게 왕자님의 앞선 행보와 많이 겹칩니다.”

글렌 커티스는 미국 비행기 업계의 후발주자다.

리&라이트의 특허를 교묘하며 베껴가며 시장에 진입하고 있는 놈.

윌리엄 듀랜트는 GM의 창업자로 여러 번 창업했다가 망했지만, 다시금 부활하여 포드에 이어 미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에디슨은 우리가 아는 그 에디슨으로.

예전에 디젤이 공개했던 엔진 특허를 참고하여 역으로 디젤에게 특허 소송을 건, 양심에 털이 난 나쁜 놈이기도 했다.

“모건은 이들을 앞세워 비행기와 자동차 산업에 발을 담글 예정이라 합니다. 아! 정정하겠습니다.”

로스차일드가 히죽거리며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니고 이미 발은 담근 상황이겠군요. 아무튼, 방금 언급한 이 셋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뭐긴 뭐야.

부동산, 은행주 말고.

내가 집중하고 있는 핵심 산업의 경쟁자들이지 않은가?

리&라이트와 힐&닷지 사의 라이벌 기업들을 이끄는 수장들이잖아.

“왕자님.”

“듣고 있네.”

“앞서 언급한 세 명의 기업인들은 모건과 굉장히 비슷한 성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주의하라는 것에 이어 다음 세 명의 성향까지 알려 준다.

중국의 돌아가는 상황 하나 알려 줬다고 아주 정보를 마구 퍼주네.

“더럽고 끈질기죠.”

“······.”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자만이 승리자라고 생각하고요.”

그래.

앞선 세 명의 공통점은 라이벌 사의 특허를 좆으로 보지만, 제 회사가 등록한 특허는 아주 귀한 신줏단지로 본다는 거다.

더욱이 라이벌 사를 죽일 수만 있다면 여론몰이나 인수·합병도 서슴지 않는다.

‘이미 내 소유의 회사들과 부딪치고 있지.’

남작이 언급한 세 명의 후발주자들은 여론몰이까지 하며 우리 회사의 특허에 딴지를 걸고 있었다.

남작이 이를 언급하며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아마도 기존에 만들어 둔 특허 따위는 가뿐히 무시할 것입니다. 모건이 배후에서 그들을 지원할 예정이니까요.”

“······.”

“이번에 느끼시지 않으셨습니까? 법조계 쪽에서 모건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를요.”

알지.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이 삼십여 조각날 때, 모건의 회사들은 유예 판정을 받지 않았던가?

‘아마도······.’

앞선 십여 년 전, 그 판결 덕분이겠다.

모건은 이미 한 번 경험을 했으니까.

반독점법 소송에서 패소하며 그의 철도회사가 십여 조각 난 경험이 있지 않던가?

그 때문에 모건은 이후에 법조계를 쏘다니며 돈을 잔뜩 뿌리고 다녔다.

‘모건은 철도회사만 독점적으로 소유하지 않았으니까.’

철강회사는 물론.

해운회사나 조선사 등을 다수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었기에.

그는 이를 대비하여 사법부 쪽에 장학생을 심어뒀을 것이었다.

남작은 이를 강조하며 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아! 앞선 것과는 별개로 이것은 순수한 팁인데 말입니다.”

로스차일드는 마지막으로 내게 한 가지를 언질 줬다.

“모건이 필립 제이슨도 지원하고 있다 합니다.”

응?

필립 제이슨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제2의 한인 신문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었지.

잘 팔리지 않아서 경영난을 겪고 있다던데.

꿋꿋이 버텼던 이유가 바로 모건이랑 로스차일드 때문이었군.

‘언제 한번 정리하긴 해야 해.’

물론 내가 나설 일은 없을 거다.

체급이 맞지 않은 상대와 싸움을 벌이면, 상대방의 위상만 높여 주는 꼴이 되거든.

다른 한인을 활용하여 서재필을 견제하면 되기에, 나는 이를 머릿속에 기획하며 잠시 그자의 이름을 되새겼다.

“어떻게 그자의 이름을 아냐는 표정이시군요.”

“······.”

“저 또한 한때 그자를 뒤에서 열심히 지원했으니까요. 오늘부로 모든 지원을 거둘 예정이지만 말이죠.”

모건은 최대한 흔들 수 있는 것들은 다 흔들어 대는 중이었다.

나와 록펠러가 모건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카드들처럼, 그 역시 뒤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어찌 보면 우리 셋은······.’

하는 짓이 똑같은 것 같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하하 호호 웃으며 서로의 친분을 과시하지만.

뒤에서는 견제하며 어떻게든 경쟁자들을 죽이려고 노력하니까.

‘이런 게······.’

동족 혐오일까?

나는 다시 한번 남작에게서 이러한 감정을 느꼈다.

“가 보겠습니다.”

“그래. 살펴 가게.”

다행인 점은 남작이랑은 한동안 부딪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그와 경쟁하고 있는 산업이 유럽 쪽 석유 회사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로열 더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쟁하고 있었기에, 한동안은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 쪽은 초토화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이 또 어떻게 살아남을지 모르기에 나는 끝까지 경계는 늦추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 무엇을 얻었는지 상기하며, 나는 빠르게 전리품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 *

남작은 자신의 양아들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보았느냐?”

로스차일드는 고개를 돌려 이강의 뉴욕 집을 바라보았다.

그는 살짝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아들에게 충고했다.

“저것이 이 왕자의 본색이다.”

“······.”

“대중들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한 척하며 왕자 행세를 해 대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우리와 같은 영락없는 장사치지.”

월터는 무언가 복잡해 보였다.

이번 공매도 사건 때 보여줬던 남작의 실책 때문일 수도 있고.

다시금 알게 된 이강의 본모습 때문일 수도 있다.

“내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실해진 셈이지.”

남작은 살짝 분한 표정을 지으며, 월터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영국의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제 네 손에 달려 있다.”

“······.”

“당분간은 이 아비의 실수를 수습하느라 미국에서 예전만 한 영향력을 보이기 어렵겠지만, 우리는 로스차일드다.”

다시금 재기할 것이라는 미래를 꿈꾸며, 남작은 살짝 정신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앞으로도 너는 이 왕자와 모건 주니어, 이 둘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

“그러니 앞으로는 그놈들과 그만 시시덕거리거라.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그들은 꺾어야 할 경쟁자일 뿐이다.”

월터는 저격 사건 이후 이강에 호의를 품었다.

하지만 가문의 재산이 큰 손실을 보게 되자,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이강으로 인해 손해 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아버지가 그의 옆에서 끊임없이 이강 탓을 해 댔기에 살짝 세뇌된 거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로스차일드 남작은 비로소 활짝 미소 짓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몇 가지 얻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월터가 생각보다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양아들이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여 모건과 이강을 경계하기 시작했으니까.

“자, 런던에 전보를 넣은 후, 빠르게 돌아가도록 하자꾸나.”

“예.”

< 결자해지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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