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 페이스 (1) >
“응애- 응애-”
건물 안에 아직 발도 들이지 않았는데,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아주 우렁차네.’
마치 나중에 큰일이라도 할 것처럼.
막 태어난 새 생명은 자신의 존재를 사방팔방 과시했다.
나는 아이 울음소리를 따라서 급히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왕자님.”
담당의가 사람을 주렁주렁 달고 나를 찾아왔다.
옆에는 익히 아는 얼굴들이 그를 따르고 있다.
“자네들.”
“어서 오십시오.”
장인 집을 몇 번 드나들며 록펠러 가문 소속의 고용인들과 면을 텄다.
그랬기에 그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 가장 궁금해하시는 것부터 알려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쌍둥이였습니다.”
머리가 샛노란, 전형적인 서양인 의사가 백인들 특유의 영업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곁에 착 달라붙어서 파랑새처럼 재잘거렸다.
“하지만 저번과 다른 점도 보입니다. 이번에는 둘 다 남자아이니까요.”
“그래?”
“예. 아! 게다가 시간이 더 지나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아드님들께서는 아마 일란성 쌍둥이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말은 즉,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 똑같이 생긴 쌍둥이가 태어났다는 뜻이겠다.
성별이 같아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네.
“두 왕자님 다 아주 건강하십니다.”
태어난 아이들이 나를 쏙 빼닮았다고 한다.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계속하여 에델이 기거하고 있는 2층으로 뚜벅뚜벅 이동했다.
‘응?’
여성 고용인들이 무언가를 계속하여 그녀의 방으로 나른다.
막 출산이 끝났기에 그러는 것이겠지만, 무언가 살짝 불안한 생각이 잠깐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에델은? 에델은 건강한가?”
부성애가 충만한 남자들은 아이의 건강을 가장 최우선시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산모 걱정부터 했다.
아이가 이미 셋이나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고.
아직 아이의 얼굴을 모르니, 후천적으로 생기는 부성애가 아직 덜 발현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가 에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중매로 만나서 재혼했지만.
에델처럼 대화가 잘 통하는 여인은 빙의 후 몇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생각하며 나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산후욕이나 훗배앓이 같은 출산 후유증은 아직 다행스럽게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 이야기를 하던 담당의가 급히 주제를 바꿨다.
당연하게도 죄다 에델의 건강 상태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막 태어나신 왕자님들이 왕자비님을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진통에서 출산까지 겨우 세 시간밖에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군.”
“예. 덕분에 의왕비 마마 또한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안색 또한 아주 밝으시니 너무 심려치 마시지요.”
응?
어느 정도 마무리된 모양이다.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늙은 지밀상궁 출신 여인이 내게로 다가오며 고개를 숙였다.
“들어가시지요. 의왕 전하.”
그녀가 권하자 나는 비로소 에델을 만날 수 있었다.
아!
그녀를 만나기 전에 손을 꼭 씻는 것은 잊지 않았다.
신생아나 막 출산을 한 산모만큼 면역력이 약한 이들은 없기에, 따로 위생에 신경을 쓴 것.
“왕자님.”
처녀 시절.
그녀가 쓰던 방에 들어서자, 에델이 몸을 일으켰다.
“아들이에요. 그것도 둘이나 낳았답니다.”
그녀의 언행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느껴졌다.
여러 감정 중 가장 와닿는 감정은 당연, 자부심이었다.
왕실의 여성으로서 차기 후계자가 될 수 있는 남아를 둘이나 더 낳았다는 사실에, 에델은 대단히 기뻐하는 것 같았다.
“수고하였소. 어디 아픈 곳은 없소?”
침대에 걸터앉으며 에델의 손을 꼭 잡았다.
임신하고 해산을 할 때, 서운한 감정이 들게 만들면 평생 두고두고 욕을 먹는다는 것을 빙의 전에 깨우쳤기에.
최대한 그녀의 안위를 신경 쓴다는 표정을 한껏 지어내 보였다.
“아프죠.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어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
“하지만 내 새끼들이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저는 조금 아파도 즐겁답니다.”
이것이 모성애일까?
나는 에델을 보며 살짝 경외심을 느꼈다.
“아! 왕자님의 아이기도 하지요. 유모. 뭐 해?”
에델이 서둘러 그녀의 고용인들에게 무언가를 손짓했다.
유모로 보이는 여성들이 아이를 하나씩 안고 내게로 다가왔다.
“왕자님께서 각별하게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저와 우리 아이들 모두, 무사할 수 있었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에델은 이 모든 영광을 내게로 돌렸다.
그러면서 내게 한 가지를 물었다.
“이제 왕자님의 차례랍니다. 가장 중요한, 우리 아이들 이름을 지어 주세요.”
본래라면 웃어른들이 이를 행해야 하지만, 모두 머나먼 조선에 있기에.
나는 그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의 이름을 작명했다.
“넷째는 준으로 다섯째는 한으로 부를 생각이오.”
세쌍둥이였던 현, 선, 진에 이어 다른 아이들의 이름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준과 한이라니······ 이름 참 좋네요. 발음도 그리 어렵지도 않고.”
에델이 무언가를 잠깐 곱씹다가 내게 되물었다.
“그런데 준과 한은 무슨 뜻인가요? 현(賢)이라는 이름에는 어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전에 말씀해 주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넷째와 다섯째의 이름에는 무슨 뜻이 숨어 있나요?”
“준(俊)이라는 이름은 뛰어나다는 뜻이 있고, 한(澖)이라는 한자는 넓다는 뜻을 품고 있소.”
“하나같이 좋은 뜻이군요.”
에델은 만족한다는 듯, 한껏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 자신의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전에 약조했듯이 미들네임에는 제 아비의 성을 붙여 주세요.”
“그러지.”
에델은 만족했는지 고개를 내 넓은 가슴에 기대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는 그렇게.
잠시 에델과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 * *
“쑨원이 혁명군 측 협상 대표로 선정되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익문사는 전력을 다해 중국동맹회를 돕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우한 신혁명세력이 아닌 기존 중국동맹회를 영국과의 협상 파트너로 강력히 밀었는데.
결국 성공한 것 같다.
“미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크나큰 가점이 되었나 봅니다. 다우닝가에서 그리 통보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미국은 해방 직전에 이승만을 점찍어두고 있었다.
여러 이유가 존재하긴 했지만, 그의 뛰어난 영어 실력도 한몫했을 것이다.
쑨원 역시 마찬가지.
이 시대, 현지 중국인 중에 영어를 잘하는 이가 매우 드물었기에.
영국은 막 귀국한 쑨원에게 힘을 실어 주며 혼란스러운 남중국에서, 제 이권을 다시금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그보다 쑨원이 추가 지원을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아, 지난번에 약조했던 군수품 양도 건을 지칭하나 보군.”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원 역사에서 쑨원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흑화된다.
적어도 1920년대 전까지는 군벌 세력들의 얼굴마담에 불과했기에.
중원 대륙 내에서 실질적인 권력 행사를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내가 계속하여 그를 지원한다면 그는 중국 내 최고의 권력자가 될 거다.’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계산했다.
그가 중국 내에서 일인자가 된다면, 내게 무슨 이익을 가져다 줄지 잠시 상상해 본 거다.
‘은혜를 갚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안면박대하고 모른 체할 수도 있지.’
역시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은 잘게 찢어져 분열된 채로 남아 있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적어도 남북 분할, 아니면 삼분할 정도는 나누어져 있어야 딱 판도가 좋은데.
나는 청 왕조에 지원하기로 했던 물품 역시 떠올리며 최현우에게 명령했다.
“내주게나. 다만, 청 왕조에 건네기로 했던 무기 역시 비슷한 시기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하하도록 하게나.”
“예.”
마침 12월이기도 하니 딱 맞네.
지원하기로 한 무기를 최대한 미뤄서 전달하기로 약조했으나, 그게 언제인지는 단정하지는 않았기에.
보낸 상품이 최대한 비슷한 시기에 도착할 수 있도록 약간 손을 써 볼 생각이었다.
“전하.”
“듣고 있네.”
“신정부 세력의 새 수도는 남경(난징)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도 힘을 주고.
나 역시 무기와 지원금을 쑨원에게 건넬 예정이었기에.
신혁명세력의 발원지였던 우한보다는 중국동맹회의 주 근거지인 상해와 가까운 난징이 새 수도가 되는 것 같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보고를 받았다.
“예상된 수순이지. 다른 보고사항은 더 없나?”
“상해에 은거 중인 민영익이, 드디어 전하께 밀서를 보냈나이다.”
“그래?”
“예. 상황 폐하의 비자금을 반환하는 대가로 신변 보호를 요청하였습니다.”
요인 미행과 암살을 주로 하던 애국단과 접촉했을 때, 이미 민영익의 운명은 대강 정해졌다.
‘김구가 가만히 두었겠어?’
역시나 내 예상대로.
구 요원은 민영익의 신변을 완벽히 파악한 후.
마치 일본이 그를 암살하려는 것처럼, 몇 번 위협을 가했다고 한다.
남은 생이 이대로 종 칠 수도 있다고 느끼자, 민영익은 빠르게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목숨을 구걸한 모양이고.
“흠······.”
대한제국 백성들은 아직 민씨 일가에 반감이 크다.
민영익을 바로 데려와서 내 곁에서 둔다는 것은 살짝 리스크가 따른다.
“대한제국 신민들에게 올리는 사죄문은? 어찌 되어 가고 있는가?”
민씨 일가의 옛 수장으로서 나는 그에게 한 가지를 요구했는데.
그것은 바로 백성들에게 사죄하는 것이었다.
마치 빙의 초반, 내가 하와이에 들렀을 때 교민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던 것처럼 그에게도 이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애국단 단장인 안중근이 이를 반려했다고 합니다.”
“반려?”
“예. 살짝 미흡한 것 같아서 다시 쓰라고 권했다던데······ 이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
하려면 제대로 사과해야지.
어설프게 사과하는 것은 안 하니만 못한 행동이다.
나는 안중근의 판단력을 존중하기에 일단 그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사과문을 받게 되면, 이를 교민 신문과 본토 한인 신문에 기재토록 하게나. 아! 반환된 비자금들은 전량 교육기관 설립에 투입하고.”
“예.”
“후속 기사 또한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네. 여흥 민씨 일가 중 일본과 맞서 싸우고 있는 놈은 어떤 놈이며, 협력하고 있는 매국노는 누구인지 상세히 이를 알리란 말일세.”
여흥 민씨 일가는 여느 권문세족과 마찬가지로 매국노들을 많이 배출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무장 항일운동에 가담하여 투옥되거나 사살당하기도 했다.
여흥 민씨 일가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특정 매국노에게 이 모든 원망을 몰아주는 것이 나는 옳다고 여겼기에.
후속 기사로 현존하는 여흥 민씨 일가의 항일, 친일 행위 보도를 준비했다.
“아, 민영익은 한동안 필리핀으로 보내게. 미국이 관리하는 곳이니, 일본의 위협에서도 자유롭지 않던가?”
“그렇지요.”
“여론이 좀 좋아지면, 하와이나 시애틀 아니면 티후아나로 부르도록 하게나.”
“예.”
“다른 사항은? 더 없는가?”
아이가 태어났다.
고용인들이 에델을 돌봐 주겠지만, 아빠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법.
더욱이 이제 막 태어난 두 아이 말고도, 다른 세 아이가 쑥쑥 자라나고 있었기에 할 일이 많았다.
내가 재촉하자, 최현우가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한 가지를 보고했다.
“저, 지난번에 베들레헴 철강에 사람을 보내라고 하지 않으셨나이까?”
“그래. 찰스 슈와브 대표에게 협력을 요청했었지. 군함 건조 때 그쪽에서 생산한 제품들을 사용하고 싶으니까.”
“그게······.”
최현우의 입에서 나온 소식은 좀 의외였다.
“거절했다고? 자사 제품을 대량 사들인다는데도?”
“예.”
“일회성이 아니고 꾸준히 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는가?”
“예. 그런데도 거절했습니다.”
“어째서?”
최현우가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추측했다.
“전하께서 모건 대표와 친하셔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뭐라?”
“듣자 하니 슈와브라는 양반이 모건에게 심하게 대었다는 풍문이 있던데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모건과 조금이라도 연관된 인물이라면 자신의 곁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내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나는 모건과 절친이다.
더욱이 그의 아들인 모건 주니어가 자신의 막내아들을 내 딸과 결혼시키겠다고 뉴욕 사교계에서 떠벌리고 다녔기에.
나와 친하지 않은 이라면 우리 둘의 관계를 착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군.”
이 시대 어느 자본가들이나 그렇지만.
모건은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
카네기 철강을 인수한 후, US 스틸을 만들 때 슈와브는 모건을 따라서 이를 도왔다.
하지만 막상 모건이 US 스틸을 인수하자, 그는 헌신짝처럼 슈와브를 내쳤고.
이 과정에서 모건에게 쌓인 원한이 많았기에, 슈와브는 지금도 모건의 모자만 나오면 발작 버튼이 눌린 것처럼 방방 뛰는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그렇다면, 곧 오해가 풀릴 수도 있겠군.”
부활절이 다가오고 있다.
확실한 한방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를 보조할 다른 장치들도 하나씩 완성하고 있었기에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지시한 사항은 잘 이행하고 있겠지?”
“예.”
시간이 좀 남았기에, 본격적으로 공격하고 있진 않고.
중앙은행법이 무엇인지.
진짜로 필요한 법인지.
이를 주제로 논의할 수 있도록 이곳저곳에 사람을 붙여 가며 관심을 유도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 맞다.”
최현우가 나가기 전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다시금 돌아왔다.
“전하.”
“듣고 있네.”
“내일 아메리칸 신탁 신임 임원 면접이 행해집니다. 본래 참석하기로 하셨는데 말입니다. 어찌할까요? 두 왕자 아기씨가 생각보다 일찍 태어나셔서 좀 바쁘시지 않습니까? 이를 미루거나 다른 이에게 일임할까요?”
“아닐세. 리버모어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인데, 내 어찌 다른 이에게 이를 맡긴다는 말인가?”
이미 마음속으로 뽑을 놈들은 대충 정해 놨기에,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여 진행하라고 답변했다.
“일정은 그대로 행해질 것이네. 그러니 취소치 말게나.”
< 뉴 페이스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