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21화 (221/294)

< 지는 해와 뜨는 해 (2) >

미국 북동부에 위치한, 최고의 산업 도시 디트로이트.

“왕자님. 이쪽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포드는 나를 데리고 시 외곽에 있는 공장으로 이동했다.

그 후, 공장시설 전반을 투어 시켜 주며 곳곳을 설명해 줬다.

‘와.’

이번에 새롭게 지어져서 그런지 참으로 깔끔하네.

이곳에서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링카인 모델 T가 생산된단 말이지?

‘죽이네.’

한가운데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중심을 잡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이 양쪽으로 배치되어 제 할 일을 하고 있고.

위이이잉-

칙-칙-

윙-윙-윙-

디그-디그-디그-

마치 기계처럼 노동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자동차 부품들을 제자리에 조립하고 있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

뭔가 빠르다.

넋 놓고 이를 보고 있자, 포드는 만족한다는 듯 씩- 미소를 지으며 내게로 다가왔다.

“왕자님께서 제안하셨던 아이디어가 이리 완성되었습니다. 어떠십니까?”

“읔.”

이를 감상하다가,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미간이 오므렸다.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과정에서 한 번씩 크게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인상을 구겼던 거다.

포드는 이런 나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했다.

“솔직히 긴가민가했는데 말입니다. 도입해 보니, 그야말로 대박이더군요.”

그는 계속하여 이번 컨베이어 시스템 개선 결과를 내게 설명했다.

“원래는 차 한 대를 생산하려면 600분, 10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그래?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니 얼마로 줄던가?”

포드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이에 내가 포드 대신 그 답을 말해 보았다.

“200분?”

“아닙니다.”

“그럼?”

“두 시간입니다.”

“그러니까 600분 걸리던 생산시간이 120분으로 단축되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숫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더불어 얼마나 효율적인지 객관적으로 이를 알려 주기도 했고.

‘더 개선될 수 있을 거야.’

바뀐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터.

조금만 몸에 더 익는다면 절반은 아니더라도 30% 이상은 개선될 것이다.

‘600분 걸리던 걸, 100분에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히 이리 놓고 계산하여도, 생산성이 6배나 증가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자동차 산업은 부품이 많이 들어가는 복잡한 산업이었기에, 이런 드라마틱한 효과가 나타나긴 했지만.

다른 산업 역시 적어도 두 배 이상은 생산 효율이 높아질 거다.

‘단순히 생산 속도를 증가시키는 것만으로도, 경영자로서는 만족할 수 있는 사항이지. 그런데 여기에 생산단가까지 낮출 수 있게 되니 말 다 한 거지.’

회사 운영을 할 때 가장 많이 소모되는 항목은 당연하게도 사람 쓰는 돈.

인건비다.

그런데 컨베이어 시스템은 한 사람이 하루에 1개 만들던 것을 10개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그 말은 즉, 인건비 자체도 1/10로 줄어들어 생산단가가 개선된다는 거다.

“이 왕자님.”

“말하게.”

“특허 출원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에 고안한 컨베이어벨트는 소비자에게 파는 제품이 아니었다.

기업이 쓰는 생산 장비.

하지만 이것 역시 특허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시스템은 시스템 나름대로 특허를 출원할 수 있지.’

여기에 들어가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장비 역시도 마찬가지고.

나는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이내 그 비율을 정했다.

“포드와 L&H, 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하지.”

“그렇다면······.”

포드는 살짝 주저하다가 내게 추가로 질문을 해 댔다.

특허 출원인 공란에 둘 중 어느 사명을 제일 먼저 쓸 것이냐를 두고, 눈치 싸움을 시작한 거다.

“글쎄.”

별것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이름을 앞에 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여러 성이 겹쳐 있으면.

보통은 뒤에 있는 단어들을 떼고, 맨 앞에 있는 발명자나 해당 기업만 지칭하기 마련이니까.

돈은 안 되는 일이지만, 명예가 걸려 있다는 뜻이다.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저는······.”

그는 주저리주저리 무언가를 빙빙 돌려 가며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포드가 먼저 앞에 기재되었으면 합니다.”

“······.”

“물론, 왕자님의 공이 없다는 것은 아니나······.”

에둘러 길게 돌려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포드는 당연하게도 제 이름을 앞에 적길 원했다.

“그러도록 하게.”

나는 포드의 말을 끊어 가며 그의 제안을 단박에 승낙했다.

이에 포드의 눈이 커졌다.

“예? 저, 정말이십니까?”

“내가 허언하는 것 봤나?”

이번 역사에서는 초기 아이디어를 내가 제안하긴 했지만, 이를 결국 완성한 것은 원 역사와도 같은 포드였으니까.

양심상 그의 이름이 앞에 있는 것이 옳았다.

‘더욱이······.’

컨베이어 시스템은 산업혁명만큼은 아니지만, 이 일대 변혁을 몰고 올 혁신적 생산방식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사람을 마치 기계의 한 부품처럼 취급하였다고, 나중에 학계와 노동계에 욕을 한 바가지 먹지.’

어디까지 이 논리는 표면상 이유고.

컨베이어 시스템 도입으로 노동자들의 근로 강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동자 한 명이 자동차를 조립한다면, 부품을 찾거나 가지고 있는 연장을 교체하며 적당히 농땡이를 피울 수 있지만.

분업화되어 있는 시스템에서는 예외 없이 맡은 일만을 해야 하니까.

‘우리 회사처럼 최저임금을 올려 주면 좋겠지만.’

어느 시대에 가든.

어느 나라에 살든.

악덕 업주는 있는 법.

노동강도는 더 세져도 임금은 오르지 않는 환장의 생산 현장이 곧 미국에 펼쳐질 거다.

이를 지시한 사장이 가장 많이 욕을 먹겠지만, 컨베이어 시스템을 고안한 발명자 또한 두고두고 한동안 입방아에 오르겠지.

원 역사를 잘 알았기에.

이미지 관리에 진심이었던 나로서는 살짝 꺼려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포드가 나 대신 욕받이를 해 준다고 자청하지 않던가?’

명성은 이미 충분하다.

1907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통하여 한차례 호감을 쌓았고.

이번 청문회를 통해 그 이미지를 더욱더 개선했다.

‘그런 상황에서 악명을 추가할 수는 없지.’

나는 그저 돈만 챙길 생각이다.

포드, 너는 명성과 악명.

이 모든 것을 다 가져가라.

원 역사 때처럼.

“대신 조건이 있네.”

물론 공짜는 없다.

이 모든 것을 포드가 주도했다고 하여도, 표면상으로 내가 초기 아이디어를 제의한 셈이었으니까.

무엇보다 나는 그에게 넉넉하게 거금을 투자하며 모델 T의 시장 장악력을 공고하게 만드는 데에 일부분 일조하고 있었다.

“무엇입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최근에 말이야. 자네가 시중에 유통된 자네 회사 주식들을 사 모으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인간은 본디 욕심이 그득한 동물이다.

살기 위해서 배를 빵빵하게 채우는 것은, 몇천 년 동안 생존을 위해 한 행동이 DNA 속에 박힌 결과다.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초기에는 투자자금이 절실하여, 여기저기 손을 벌렸으나.

조금 살 만해지고 사업이 궤도에 오르며 눈알이 돌아가게 된다.

‘지분을 늘리고자 할 테다.’

포드차, 나아가 자동차 산업은 대공황이 닥치기 전까지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는 산업이 될 거다.

소액을 투자했던 초기 투자자에게 거액의 배당금을 한번 건네고 나면 눈에서 피눈물이 나오겠지.

빌려 준 돈보다 적게는 열 배, 크게는 몇백 배는 더 많은 돈을 퍼줘야 할 테니까.

‘그래서 순진한 초기 투자가들을 꾀어 가며, 그들에게 건넸던 초기 포드 자동차 지분들을 회수하고 있지. 비싸게 사 준다며 으스대는 것은 덤이고.’

지금도 이런데.

모델 T가 베스트셀링카가 되고, 포드자동차에 돈이 넘쳐 난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지지 않을까?

그리된다면, 언젠간.

“내 주식도 회수하고 싶어질 때가 올 것으로 생각하네.”

“······.”

“내 예측이 틀렸는가?”

나의 물음에 포드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리라 예상조차 못 했기에, 이리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나에게는 맨 마지막쯤에 제의하려고 했었겠지.’

나는 다른 순진한 초기 투자자와는 달리, 노련하고 거대한 뉴욕의 금융가이니까.

적절한 순간에.

가족회사로 변환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포드는 내게 거금을 제안하며 주식을 팔라고 유혹했을 거다.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습니다.”

포드는 자신의 속내를 들켰기 때문인지,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댔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가 했던 주장이 사실이라고 시인했다.

“웃돈을 얹어서 초기 투자자들에 판매했던 주식들을 되사들이고 있긴 합니다. 왕자님과의 관계를 생각하여 언제 이를 제안할까 고민하고 있긴 했습니다.”

나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껴보았다.

“이번에는 내가 이를 양보할 테니, 자네 또한 이를 좀 미뤄 주게나.”

당장은 팔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답변.

이에 포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뒤에 파실 생각이십니까?”

“십 년.”

“십 년이요?”

“그래. 딱 십 년.”

나는 열 손가락을 다 펼치며 십이라는 숫자를 제스처로 표현했다.

이에 포드가 왜 십 년 뒤에나 팔 건지 내게 물었다.

“십 년이면 자네 회사가 본궤도에 오를 테니까. 제값 주고 팔기에, 가장 적절한 순간이지.”

“······.”

“이거 실망했나 보군.”

“예. 싸게는 안 파시겠다는 뜻으로 들리니까요.”

맞다.

앞으로 포드의 사세는 급격하게 성장할 거다.

미래가 창창한 주식인데 이리 헐값에 던질 수는 없지.

‘십오 년 정도가 가장 좋을 것 같긴 한데.’

올해가 1913년이다.

십 년이 지나면 1923년, 십오 년이 흐르면 1928년이 된다.

‘원 역사대로라면 대공황은 1929년에나 터질 거다.’

하지만 나로 인해 역사가 많이 바뀌었다.

대공황이 더 빨라질 수도 있다.

늦어지거나 아예 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안전하게 투자금을 꼭지에서 회수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십 년 뒤인 1923년이 제격이다.

“나는 왕자이기도 하지만, 투자자일세. 더불어 뉴욕의 자본가이기도 하고.”

“······.”

“예와 인을 아는 인간이지만, 손해 보는 장사 또한 안 한다네.”

“크. 그렇군요.”

포드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포드를 제외하면 협력사 사장인 닷지 형제와 함께 내가 가장 많이 포드사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방금 하신 말씀, 서면으로 작성해 주실 수 있습니까?”

구두계약은 본디 미덥지 못하나 보네.

녹음 앱은커녕, 소형 녹음기도 아직 시중에서 판매하고 있지 않던 시절이니까.

그럴 수 있겠네.

‘상대방이 [나 그런 적 없는데? 증인 있어?] 작전을 시연하면, 답이 없으니까.’

포드는 사내 변호사를 시켜서 빠르게 계약서 초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진짜로, 계약서를 쓸 모양이군.”

“예. 그렇습니다.”

계약서의 주된 내용은 별거 없었다.

십 년 안에.

서로가 원할 때 포드사 주식을 우선하여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는 것이었다.

‘계약 기간 안에 주식을 팔지 않으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허, 이놈 보소.’

진짜 진심인가 보다.

시중에 풀린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것에.

‘하긴, 그래서······.’

원 역사에서도 잘 지내던 닷지 형제들이랑 틀어졌지.

포드사의 협력업체 공동대표로서 닷지 형제들.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포드사의 주식 10%를 어떻게든 회수하려고 용을 쓰다가 포드와 닷지는 영원히 의절할 뻔하기도 했다.

“그러지. 단 여기 계약서에 몇 가지 조항을 나 또한 추가하고 싶군.”

“말씀하십시오.”

“적절한 배당을 약속해 주게. 이익이 나도 유보금만 쌓는 이들이 요새 부쩍 늘어서 말이야.”

“······.”

“내가 주식을 팔 때까지 배당을 중지하다가, 매각 이후에 폭탄 배당이라도 한다면······ 내 손해가 극심하지 않겠나?”

실제로 포드는 이런 야비한 방식으로 기존 초기 주주들을 압박하며 자신에게 주식을 되팔 것을 권했다.

꽤 부유했던 닷지 형제들이 소송을 걸면서 결국에는 이를 지급하게 되었으나, 법정까지 가는 지저분한 싸움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기에.

사전에 방비차 이를 계약서에 거론한 거다.

“만약에 내가 주식을 팔게 된다면, 그해 포드사의 유보금의 75%는 특별배당을 시행해야 할 것이네.”

“······.”

“뭐, 이 조건이 싫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죽을 때까지 이를 들고 있다가 내 쌍둥이들에게 이를 한번 물려줄까 하네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반드시 1920년대 중반에 포드 자동차의 주식을 팔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대공황이 오면 반드시 폭락하게 되어 있으니까.

경기 방어주인 식료품 산업은 그나마 고정적인 수요가 있기에 버티지만.

불황이 오면 소비재, 그것도 가격이 비싼 사치품들은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반 토막, 아니지······ 1/10토막 날 거다. 싸게 다시 살 수 있는데, 굳이 내가 이를 천년만년 들고 있을 필요는 없지.’

“으으······ 알겠습니다. 그리 합죠.”

살짝 배짱을 부리자.

포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계약서 초본을 완성했다.

이리 작성하고도 사인 전에 파토를 낼 수 있으나, 그의 성향상 이럴 일은 없을 듯했다.

“우리 측 변호사를 통해, 해당 내용을 검토해 보라고 하겠네.”

“네. 그러시지요.”

포드가 작성한 계약서를 받으며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투자금도 회수하고, 컨베이어 시스템 기술도 확보했기에 나는 만족하며 서부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지는 해와 뜨는 해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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