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들과 만남 (2) >
세계 만국박람회라는 대형 행사가 끝나서일까?
활기차게 돌아다녔던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얼굴에, 다시금 어두운 그늘이 가득해져 갔다.
길가에 간혹 미소 지으며 대화하는 이들도 존재했지만.
십중팔구는 지난 만국박람회 기억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하던 무리였다.
나는 이런 기현상을 지켜보며 의아해했다.
“행사가 끝난 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이야기인가?”
“관람장에 전시되었던 전시품들의 수가 어마어마하지 않았습니까? 이것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그때를 회상한답니다.”
이 시대에는 놀 거리가 별로 없다.
매일같이.
세계 만국박람회에 출석 도장을 찍은 이유도 다 이 때문일 터.
‘자주 가던 오락실이나 피시방이 없어진 셈이니까. 다들 지루해하겠군.’
어!
문득.
돈이 되는 아이디어가 샘솟았기에, 나는 최현우를 바라보며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번 달에 케미컬투자은행의 샌프란시스코 제2 지점이 개설되지 않던가?”
“예예. 그렇지요.”
나는 손가락으로 소리를 내며 스냅 동작을 취했다.
“케미컬투자은행에 제안하게나. 당장 이벤트 하나를 열자고 말이야.”
“이벤트요? 어떤 이벤트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나는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최현우에게 하나 언급했다.
“2년 뒤에 뉴욕에서 세계 만국박람회가 다시 열린다네.”
“예예. 소인 또한 이를 기억합니다.”
최현우가 무언가 반쯤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어 댔다.
“아! 그때를 기약하며 마케팅을 열자는 뜻이로군요.”
“그래.”
바야흐로 작금의 시대는 미국의 시대이다.
세계대전 직전에도 미국의 경제는 급격히 성장해 가며 전 세계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연속으로 미국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리게 된 것인데.
원 역사에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1915년 박람회는 샌프란시스코 아닌 뉴욕에서 다시금 열린다는 것이다.
“체류와 이동 비용을 전부 부담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지. 그래야 다들 당첨되길 기대하며 추첨 행사에 온 신경을 쏟지 않겠나?”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활용한 마케팅은 21세기에도 계속해서 회자되었다.
세계 만국박람회는 그 정도로 파급력 있는 국제행사는 아니나, TV나 라디오 등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이만한 구경거리도 없는 상황.
잘만 활용하며 본전 이상은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우린 더 큰 인지도를 얻는 것이지.”
자동차나 에어컨 등.
값비싼 물건을 살 때, 이에 추첨권을 동봉해 마케팅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면 추첨 대상이 극소수의 상류층들로 좁혀진다.
‘시민들이 주 대상이었으면 해.’
그렇기에.
서부에 사는 어린아이들을 우선적인 마케팅 타깃으로 삼을 거다.
그들이 어린이 통장을 만들 때, 이런 추첨권을 나눠 줘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부모에게까지, 케미컬투자은행이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거다.
‘어릴 때부터 우리 은행들을 이용하게 하며, 고객들의 충성심을 높일 수 있지.’
우선주를 다수 가지고 있던 BOA에도 이를 제안한다면, 그 시너지는 더 커지지 않을까?
“좋은 아이디어이십니다.”
“아! 그리고! 교민들이 전시장을 자주 드나들고 그리워한다고 하였지?”
“예.”
한인들 대다수는 나를 도와준다고 행사장 부스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자원봉사자 겸 관람객이 되어서 아주 자연스럽게, 세계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직접 보고 배웠을 터.
‘하나의 거대한 교육장에서 합숙 교육을 받은 셈이지.’
그 기억들이, 뇌 속에 콕콕 박혔나 보다.
자신들이 왔던 대한제국은 얼마나 작은 나라였으며.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매일 같이 확인했으니.
적은 비용으로 교민들의 사상을 조금 더 열리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이 개발한 물품을 상시 전시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좋은 활동은 계속해야지.
닫힌 세상에서 나와, 크나큰 꿈을 가지게 만드는 것은 천만금을 주고도 못 할 일이다.
비단 교민들뿐만 아니라 서부의 어린이들이 나 때문에 목표가 바뀐다면.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전시관쯤은 몇십 개도 설립할 수 있었다.
“그래. 일단은 인기가 제일 많았던 비행기부터 시작하는 게 어떤가?”
나와 라이트형제는 동업하고 있다.
최초의 비행기인 ‘플라이어’는 아직 라이트 형제들의 본가에 보관되고 있는 상황.
“시내에 비행기 박물관을 만들도록 하세나.”
이것들을 샌프란시스코로 옮겨 와서 전시하거나, 혹은 모조품을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서 가져다 두면 좋지 않을까?
여기에 추가로.
진보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제품들을 나란히 전시하면······.
어린아이들의 꿈도 후원하고, 동시에 우리 기업의 홍보도 될 거다.
‘샌프란시스코에 건립하면 파급력도 클 터.’
샌프란시스코는 서부의 중심지다.
서부 3개 주에 있는 시민들은 생전에 한 번쯤은 다들 이곳에 들른다.
‘대다수가 농사꾼들이지.’
골드러시 열풍이 지나가며 광부들보다는 농민들이 더 많아진 상황.
현재 리&라이트의 농업용 비행기가 소문을 타고 서부는 물론이고 중부까지 알려졌다.
실물을 직접 보고, 체험을 접수할 수 있는 데스크까지 설치한다면.
우리로서는 아주 훌륭한 홍보 시설이 하나 탄생하는 셈이었다.
‘교민들, 나아가 미국 시민들의 지식 욕구 또한 채워 줄 수도 있고.’
우리 기업을 홍보하며 나도 돈을 벌고.
이거, 일거양득인 사업이네.
“더불어, 미술관도 하나 샌프란시스코에 세우도록 하세나.”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에델이 머무는 안채를 쳐다보았다.
자연스레, 최현우 역시 고개가 돌려졌는데.
나는 다시금 내게로 시선을 돌리는 최 비서실장에게 한 가지도 당부했다.
“미술 쪽은 에델이 더 많이 아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에델에 물어보도록 하고.”
“보안 문제가 살짝 걸리는데, 이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나의 재정 담당관 우현식.
돈 문제만 나오면 눈빛이 반짝반짝해진다.
그는 이 시대 도둑놈들을 걱정하며, 미술관을 만들어도 될까 고민했다.
“군사학교 졸업자 중 일부가 민간으로 복귀를 희망한다지?”
“예.”
우현식의 주장대로.
이 시대에는 도둑놈들이 아주 극성을 부렸다.
툭하면 시장에 장물이 풀리는 것도 이 때문.
이에, 보안은 아주 철저하게 해야 한다.
잘못하면 애써 모은 작품들이 밤손님들의 표적이 될 테니까.
“이들 중 일부를 보안업체로 돌려 활용하는 방법도 함께 모색해 보게. 아! 윗선은 내 경호팀 중에서 상처를 입어 현업에서 활동 못 하는 사람들을 앉히도록 하고.”
공을 세웠으면 포상은 확실하게 해야지.
나를 위해 다쳤는데.
이 정도 자리쯤은 꽂아 줄 수 있다.
“아! 그보다 자네들, 이번 달 일정표를 내 어디에다 두었는지 기억하는가?”
“이쯤에 두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입니다.”
결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운데, 최현우가 종이 더미에서 내 일정표를 찾았다.
“앗! 여기다 두었군.”
“전하께서도 참······ 올해 들어 자주 까먹으십니다.”
“나도 늙어 가니까. 뭐 그럴 수밖에 없지.”
얼굴은 굉장히 앳되어 보이지만, 나는 이제 막 30대 중반으로 치닫고 있었다.
슬슬 건망증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시기.
나는 최현우에게서 건네받은 내년 초 일정표를 확인했다.
익숙하고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이번 달에는 유독 한인 지도자들과의 미팅이 많군.”
“아무래도 지난 2년간 동부에 자주 머물며, 교민들과는 직접 소통하신 적이 별로 없으시니까요.”
“하긴, 미국에서의 사업도 중요하지만, 교민들과의 교류 또한 마찬가지지.”
쭉-
일정표를 확인하다가 반가운 이름이 보였다.
‘드디어 만나는군.’
만찬회가 끝나고 바로 연락을 해 보았는데, 그때 퍼싱 장군이 마침 필리핀에서 귀국하고 있어서.
약속 일정이 좀 미루어졌다.
‘퍼싱은 어떤 사람일까?’
부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던 레너드 우드 같은 이는 아니었으면 한다.
그의 정보를 떠올리며 나는 다음 만남을 준비했다.
* * *
1914년 1월 2일.
새해가 막 지난 다음 날.
나는 퍼싱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안녕하신가?”
“소문의 이 왕자님을 처음 뵙습니다. 퍼싱입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 프레지디오에 있는 제8 여단.
퍼싱이 속해 있는 군부대다.
나는 이곳에 이회영과 함께 왔는데.
퍼싱은 밝게 웃으며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직 피곤해 보이는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퍼싱은 필리핀에 있다가 막 이곳에 배치되었다.
태평양에서 한 달 이상 배를 타고 온 셈.
그렇기에 저리도 눈그늘이 가득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그대와 전에도 몇 번 만나고자 사람을 보냈었는데 말이야.”
“무언가 왕자님과 저 사이를 방해하고 있었는지 자꾸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퍼싱은 생각 외로 내게 정중했다.
내가 왕자이기도 하고, 대통령 이름으로 공문 또한 왔기에 그랬으리라.
“뭐, 그래도 결국에는 이리 만나지 않았나?”
“그렇지요.”
군인답게.
퍼싱은 할 말을 군더더기 없이 딱딱하게 해 댔다.
“병기국에 무기 납품 계약서를 제출하기 전에, 시연부터 한번 해 보고 싶으시다고요?”
“그래.”
나는 고개를 돌려 눈 신호를 보냈다.
이에 이회영이 그의 수하들을 풀어 시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 식스브라더스에서 만든 경기관총일세.”
식스브라더스.
아마도 회사명이 이리 지어진 것은 이회영의 형제들이 여섯이나 존재했기에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오! 가볍군요.”
나는 피식 웃으며 신제품 홍보에 최선을 다했다.
“병사들이 홀로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경량화된 것이 특징일세. 아직, 유럽 열강들에는 공개도 하지 않은 제품들이지.”
이에 퍼싱의 표정을 급변했다.
“흠.”
무언가를 질문하려는 퍼싱.
이에 내가 그의 입을 막았다.
“말하지 말게나.”
“······.”
“내, 자네 표정을 보고 그만 속마음을 읽어 버렸으니까. 해명할 기회를 주게나.”
“일단 듣고 판단하겠습니다.”
나는 나무 상자에서 경기관총 하나를 꺼내 들며 퍼싱의 속마음을 추측하기 시작했다.
“안정성 문제 때문에 유럽 열강에 아직 납품하지 않은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겠지.”
“······.”
“다른 무기들, 예를 들면 리&라이트 사에서 판매하는 폭격기는 독일이고 오스트리아고 영국이고 팔아 재끼는데······ 왜 이건 그렇지 않나 의문을 표하면서 말이야.”
내 추측이 정확했는지 퍼싱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경기관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에 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높이며 하던 말을 이어 갔다.
“그간 이를 미룬 것은, 이를 미국에 가장 먼저 납품하고 싶어서일세. 이 경기관총이 실전에서 쓰이도록 개발을 도와준 이가 바로 퇴역한 미군 출신이니까.”
포장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지금 이 무기의 국적을 순수 미국산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민들 또한 애국심 하나는 대단하지만.
이 시대 미국인들 역시 자신들의 조국을 향한 충성심 하나는 다른 나라들 못지않으니까.
“그렇군요.”
특히나 군인일수록 자신의 나라를 더욱더 사랑하는 경향이 있다.
퍼싱 역시도 그랬기에 나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부가적인 사항까지 홍보해가며 이를 어필했다.
“이 왕자님.”
“듣고 있네.”
“다른 제품은 없습니까?”
“응?”
퍼싱이 주변을 쓱 하고 훑으며 내게 강조했다.
“이 왕자님께서 데리고 온 일행 수만 해도 백여 명이 넘습니다. 겨우 경기관총 보여 주시려고 이 많은 인원을 데리고 왔을 리는 없을 터.”
“······.”
“왕자님의 비싼 시간을 이리 낭비하지 마시고,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오오!
눈썰미가 좀 있네.
퍼싱은 진짜로 미국에 납품하고 싶은 것이 뭐냐 하는 표정을 지어 댔다.
이에 나는 사람을 급히 불렀다.
“가지고 온 건 트럭들. 전부 내오게.”
“예.”
위장막으로 싸여 있던 차량의 껍데기가 하나씩 벗겨진다.
“응?”
“이건······.”
본 모습을 보이자, 주변에 있던 미군 장정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미 육군에는 아직 기병대가 존재한다지?”
진짜로 말 타고 다니는 기병대가 아직 존재하는 시기다.
물론.
총기류가 발달하며 예전 중세시대만큼 기병대가 많이 활용되고 있지는 않으나.
아직 도망치는 적을 추적할 때가 적의 측면을 공격할 때는 활용되곤 했다.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재원일세. 소개하지. 전장을 바꿀 새로운 철마이네. 모델 X라고 하네.”
차체에 이번에 개발된 경기관총들을 올려 둔 조잡한 초기 건 트럭이지만.
처음 보는 이에게는 그것 하나만으로 신선한 충격일 터.
“FuXX!”
개발된 지는 일 년이 조금 더 지났지만, 퍼싱은 처음 이를 감상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비속어까지 써 대며 눈빛을 반짝였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초기 탱크 또한 개발하고 있는데.’
이걸 보면 퍼싱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벌써 설렌다.
“정말이지······ 그레이트 하군요.”
“그렇지?”
“예. 제 부하 녀석들이 좋아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 네 부하가 될 놈이 이 기갑부대에 미친 놈이 될 터니까.
나는 한참 건 트럭에 매료되어 빠져있던 퍼싱을 보며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 별들과 만남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