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대전 발발 (1) >
6월 28일.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여러 차례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하늘이 도와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면 참으로 좋았겠지만, 이번 사건은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암살 시도였다.
그렇기에 사라예보 시청광장은 희생자의 피로 붉게 물들어 갔다.
『혼돈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 사라예보에서 울리다. 유럽은 어떻게 될 것인가? 본지 심층분석.』
언론들은 앞다투어 관련 사건을 제1면에 다루었다.
왜냐고?
사건의 피해자가 꽤 거물 중 거물이어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공식 후계자였던 프란츠 대공이었으니까.
‘안타깝다······.’
프란츠는 나와 직접 대화도 나눴던, 면이 익은 인물이기도 했다.
“전하. 이 기사, 읽어 보셨습니까?”
“그래.”
“정말이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는지······.”
미국인들 역시 놀랐겠지만.
한인들.
특히 나의 고용인들은 이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왕조 국가 개념이 여타 미국인들보다 더 짙게 남아 있어서겠다.
“정말이지 말세입니다.”
“······.”
“일본 놈들도 그러더니, 지구 건너편에 세르비아 놈들마저도 이 지랄을 떠는군요.”
더욱이 나는 5년 전에 일본인들에게 한 번 피격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때문에 교민들은 더욱 남 일 같지 않다고 느낀 것 같다.
‘프란츠······.’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는 살아생전 딱 한 번 만나 보았다.
‘지난 독일에서의 플라이어 4 시연에서 대화를 나눴지.’
플라이어에서 투하된 폭탄이 아주 운 좋게도 타깃 선박의 연료 저장 탱크에 맞으며 럭키 샷이 터졌다.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시연행사에 동원된 배는 침몰했고, 이로 인해 우리 회사가 만든 폭격기를 각국에서 도입하려고 난리였다.
오스트리아도 그중 하나.
프란츠 황태자는 호탕하게도 그 자리에 직접 사인까지 해가며 폭격기를 독일의 차르 다음으로 많이 사갔다.
‘언제, 부부끼리 함께 만나자고 했었는데.’
타이태닉 사건 때.
나는 미국 시민들을 원 역사보다 좀 더 많이 구출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팔기도 했다.
프란츠의 홍삼 특별 수송 요구를 핑계로 카르파티아 호의 출발 시각을 원 역사보다 두 시간 더 일찍 앞당겨 달라고 요구했던 것.
여러모로 알게 모르게 인연이 있던 이가 바로 프란츠라는 말이다.
‘한 달 전의 편지가 마지막이었던가?’
그때, 나는 프란츠 대공에게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혼돈의 시대.
공산주의자, 공화주의자는 물론이고 무정부주의자들까지 판을 치는 시기.
편지 끝부분에 몸을 사리라는 표현은 같은 왕족들끼리 상투적인 인사말처럼 써 재꼈기에.
황태자는 내 경고를 가볍게 생각했고, 결국에는 원 역사 때처럼 일이 터져 버린 것 같다.
‘그래도······.’
나의 경고 때문인지.
아니면, 암살자의 사소한 실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황태자비였던 조피는 다행히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프란츠가 온 힘을 다하여 그녀를 피격으로부터 지키려 했다는 것이 목격자들에 의해 증언되는 상황.
나는 관련 기사를 정독하다가 최현우에게 한 가지를 명령했다.
“오스트리아 황실에 위로의 말을 전하게. 지난날 샌프란시스코 피격 사건을 언급하며 용의자의 강력 처벌을 주문하게나.”
예상했던 일이지만, 그것을 대놓고 티 낼 수는 없었다.
그리되면 다들 나를 왕자가 아닌 무당으로 볼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전혀 뜻밖의 소식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오스트리아 황제에게 위로의 전문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더불어 방금 작성한 이것을 각국 대사에게 전하게.”
“예.”
러시아의 차르.
독일의 카이저.
영국의 국왕에게도 형식적이나마 평화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하며, 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강조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진 않겠지만.
이 시점에 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은 결국 기록될 것이기에, 후손들에게 보여주기식이라도 내가 평화를 강조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수많은 사람이 죽게 될까?’
제1차 세계대전에서만 총 4천만이나 되는 청년이 목숨을 잃는다.
가히 세계대전이라고 부를 만한 희생자 수다.
천여 명이 사망했던 타이태닉 사건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가슴 속 한편이 답답해졌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했어도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것은 막을 수는 없을 거다.’
자기연민과 비하에 빠지며 자신을 자책하는 것은 본디 내 성격과 맞지 않는다.
타이태닉 사건과 마찬가지로.
엄한 민간 피해가 최소화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나는 나 나름대로 일을 할 생각이다.
그랬기에 나는 계속하여 미국 언론에서 보도되는 유럽의 정세를 파악했다.
* * *
『암살 배후.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 독립 세력인 ‘검은손’으로 알려져.』
『오스트리아, 검은손 배후에 세르비아가 있다고 주장. 세르비아에 총 10개조 요구 사항을 전달하며 최후통첩.』
왕정국가에서 공식 후계자를 죽인다는 것은 한판 싸워 보겠다고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모든 외교는 본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랬기에 오스트리아는 무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세르비아에 주며, 암살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세르비아가 고개를 숙였다면, 4천만에 달하는 유럽 청년들이 희생되지 않았겠지만.’
분노한 오스트리아였기에, 그들의 요구는 살짝 그 정도가 선을 넘었다.
세르비아 정치인들이 생각할 때, 내정간섭이라고 느낄 정도.
한번 옆 나라에 얕보이기 시작하면, 이 시대에는 계속하여 뜯어 먹힌다.
오스트리아가 옆 나라 보스니아를 어떻게 합병했는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세르비아 역시 이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은 전쟁이로군.’
더불어 세르비아 뒤에는 러시아 제국이 있고, 러시아 뒤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밀약을 맺어 다시 뒷배를 봐주고 있다.
그랬기에 결국 세르비아는 이번 최후통첩을 뭉갤 것이 확실했다.
“합성협회 건물로 가세나.”
전 유럽이 혼돈에 빠지기 직전이다.
자연적으로 미국 역시도 유럽이 어떻게 되는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
미국도 그런데 나라고 별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남은 시간 동안 서부 쪽 교민 일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동부로 곧 이동할 생각이다.
“백악관에서는? 따로 연락이라도 온 건가?”
합성협회로 가는 도중에 나는 최현우에게 진행 상황을 물었다.
“없습니다.”
당선 이후, 휴즈가 가끔 나와 전화 통화하는 일이 종종 있긴 했지만.
보통은 서부 관련 이슈나 경제적인 일 때문에 통화한 것이지, 외교적 문제 때문에 내게 조언을 구하지는 않았다.
연락이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
“다행이군.”
그런데도 내가 다행이라고 외치는 것은 나의 공식적인 백악관 방문이 지금으로부터 두 달 뒤인 9월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유럽 문제로 한참 머리가 아파질 시기.
나와의 만남을 미룰 생각이었다면, 진즉 연락이 와서 스케쥴 조정이 이루어졌을 터.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날 동안 조용하다는 것은, 백악관에서 원 약속은 그대로 지키겠다는 암묵적인 의사를 밝힌 것이 아닐까?
“미국 중앙은행법을 대체할 연방준비제도 법 표결이 곧 하원에서 행해진다지?”
“예.”
세계대전만큼이나 중요한 연준 법이 곧 의회에서 심의된다.
1907년과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미국 또한 중앙은행이 하나 정도는 생겨야 하는 상황.
이 법의 통과를 위해서라도 나와 록펠러와의 만남을 미룰 수는 없기에.
휴즈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나의 백악관 방문을 연기하지 않은 것 같다.
“7인회는? 이것 역시 전과 그대로 10월에 열리는 것인가?”
“예. 그렇습니다.”
세계대전이 터진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연방준비제도 법도.
백악관 만찬도.
7인회 모임도 모두 이번 연도 상반기에 실시할 수 있었지만, 하반기로 몰아넣었다.
“전하.”
“듣고 있네.”
최현우가 조심스럽게 내게 건의했다.
“최근 본국에 수력 발전소는 물론이고 방직공장과 제철소 등을 투자하고 계십니다.”
“그렇지.”
“이를 철회해 주시면 안 됩니까?”
최현우를 쓱 바라보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해했다.
시선을 돌려 우현식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냐 물어본 거다.
“아국에 투자하는 것을 철회하여달라?”
“예.”
이번에는 우현식이 내게 건의했다.
“전하께서는 소인이 알지 못하는 큰 뜻을 가지고 이를 행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칫, 일본 놈들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이런 건의를 전하께 드립니다.”
우현식과 최현우가 번갈아 보면서 내게 관련 주장을 해 댔다.
“전하께서 세우신 공장이 곧 가동되옵니다.”
“이것들이 전하 뜻대로 국내에서 소비되거나 중원에 팔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자칫 일본 놈들의 군수품 제조에 사용될 여지가 있기에 그런 것인가?”
“예.”
내가 그들의 우려를 직접 들먹여 주자, 두 측근이 고개를 마구 끄덕여 댔다.
“전하께서 모함을 당하실 수도 있습니다. 일부 세력이 전하를 친일 세력으로 몰아붙일까 두렵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들의 우려에 동의했다.
“하지만 구더기가 무섭다고 장 담그는 것을 포기하면 안 될 것일세.”
“······.”
“······.”
“여태껏 서구 열강이 투자한 본국의 시설들은 일본인들이 함부로 건들지 못했네.”
최악의 순간.
인프라를 몰수당하는 순간은 일본이 서구 열강과 한바탕 결전을 각오할 때나 가능하다는 말.
‘빼앗기더라도······.’
해당 인프라는 그대로 대한제국에 남아있게 된다.
그 정도 손해쯤은 감수할 수 있고.
해방 후에 이를 고스란히 되찾으면 될 터.
해방 직후, 산업 인프라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보다는.
조금 손해 보더라도 미리미리 세워 두고 잠시 일본인들에게 빼앗기는 한이 있더라도 경제를 진흥시키는 것이 나았기에, 나는 이를 설명하며 내 측근들을 설득시켰다.
‘인프라만 남는 것이 아니야.’
사람도 남는다.
일본인이 경영하는 것이라면, 고급 기술자들을 자국민들만 고용하여 우리 국민이 익히지 못하게 유도할 수 있으나.
미국 자본의 탈을 쓴 내 공장들은 사정이 다르다.
해방 직전부터 교민들은 물론이고 현지 기술자를 양성시킬 수 있다는 뜻인데.
나는 이것을 설명하며 왜 내게 본국에 거금을 이 시점에 투자하려는지 설명했다.
“도착했군.”
협회 건물에 도착했다.
아직 내 측근들은 본국 투자 건 우려 때문에 얼굴이 밝지 못했지만.
나는 한껏 미소 지으며 차량에서 발을 내디뎠다.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군. 반갑네.”
* * *
“그래. 유 협회장이 그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고.”
내 뒤를 이어 합성협회 협회장 직을 수행 중인 유길준이 내게 서류 하나를 쓱 건넸다.
“예. 대한제국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할 수 있는 외교를 펼치고자 합니다. 여기, 그 명단을 작성해보았습니다.”
『합성협회 위원부 설립 건.』
최근 합성협회는 그들의 역할을 좀 더 확장하기 위해 해당 사칙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 교민협회 역할만 하던 것을 뛰어넘어 서서히 임시정부의 모습을 갖추어 가려고 몸을 꿈틀거린 것이다.
대한제국 정부는 보호국이 되어 외교권을 행사할 수 없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대사관 비스름한 것을 협회 차원에서 만들고자 한 것.
“뒤에 문서가 첨부되어 있군. 보아하니 요구서 같은데······ 이것들은 모두 나를 향한 것들인가?”
“송구하지만 그렇습니다.”
막 설치될 위원부를 위해, 인근에 우리 회사 소유의 지점들을 새로 신설하거나 이사시켜달라고 합성협회는 요구했다.
위원부가 설치되는 해당국의 고위층이 이 지역에 자주 방문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뭐, 이 정도쯤이야.
내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고, 한인들이 한 지역에 모여 있으면.
운영 면에서도 더 좋기에 나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나저나······ 초대 위원들을 이미 임명한 모양일세.”
“예. 일단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급한 대로 관련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재들로 꾸려 보았습니다.”
파리 위원 김규식.
베를린 위원 이상설.
헤이그 위원 이준.
상트페테르부르크 위원 이범진.
상해 위원 박용만.
등 적절한 역량을 가진 이들이 해당 위원부의 장이 되었다.
“좋네. 훌륭하네.”
다만······.
한 가지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현시대
세계 최강국 영국에서 근무할 위원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런던 위원은 누굴 생각하고 있나,”
“그게······.”
유길준이 눈알을 굴리며 내 곁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이승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예. 전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 세계대전 발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