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랜 B (3) >
“왕자님이 가리킨 곳은······ 마, 만주인데 말입니다.”
휴즈가 살짝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방금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죠?”
“예. 그렇지요.”
“진심이십니까?”
살짝 부정적인 반응에, 나는 재빨리 다음 말을 건넸다.
휴즈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정확히는 여기 간도부터 시작해서 목단강 동쪽 지방에 새 나라를 건국해 볼까 합니다.”
만주는 범위가 너무 넓다.
자칫.
우물쭈물했다가는 휴즈가 경계심만 한껏 끌어올릴 수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그 범위를 빠르게 축소했다.
“새 나라라고 지칭했지만, 사실상 괴뢰국입니다. 건국 초기, 텍사스 공화국 같은······.”
대화 초반에도 언급했다.
초창기 미합중국이 사용했던 방식이라고.
“아, 그래서······.”
“예. 그래서 아까 그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입니다.”
19세기 초.
그러니까, 멕시코에 서부 지역을 양도받기 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태평양까지 확장되길 원했고.
그중 일부가 텍사스로 건너가서 텍사스 공화국을 세우며 멕시코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무려 10년 동안이나.
이 괴뢰국은 존속하며 멕시코와 국경 분쟁을 일으키며 소동을 피웠다.
미국이 중재자인 척 나섰다가 멕시코에 반강제로 서부 영역을 강탈하고서야, 이러한 갈등은 끝나게 된다.
이후, 텍사스 공화국은 미합중국에 합류하는 결정을 하며 짧지만 강렬했던 그들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휴즈는 이 역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많이 고민하셨겠군요. 그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예. 모두를 만족할 방안은 생각보다 찾기 어려우니까요.”
힐긋.
나는 휴즈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지셨군요.”
“······.”
“너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절 바라보지 마십시오. 만주는, 어디까지나 후보지일 뿐입니다.”
나는 팔짱을 끼며 다시금 고개를 세계 전도 쪽으로 돌렸다.
“미국이나 영국이 반대한다면······ 본인은 다른 곳에 나라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괴뢰국을 세우려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대한제국을 독립시키기 위함이니까요.”
휴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긴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왕자님의 군대가 어디에 소속되냐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방법이 어찌 보면 최선이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체 후보지 또한 가리키기 시작했다.
“만주가 정 내키시지 않는다면, 여기 동남아시아에 한 섬을 사들이거나 남태평양에 피지 같은 곳을 빌려서 괴뢰국을 세우는 방법으로 우회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씀해 주신다면, 바로 마음을 바꿔 먹겠습니다.”
너무 저자세로 나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만주에 국가를 세우는 일에는 영국과 미국, 이 두 국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왜냐고?
그야 일본 때문이지.
이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지금까지야 미국의 경고가 있어서, 간도 땅에 얼씬도 안 했겠지만.
나라가 세워진다면 살짝 대하는 결이 달라질 거다.
‘미군이 주둔하든, 아니면 공개적으로 상호동맹을 맺든······ 몇 가지 선결 조치가 이루어져야 만주에 괴뢰국을 만들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초조한 마음으로 휴즈를 바라보았다.
평소답지 않은 저자세에, 휴즈는 바로 공격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신중히 무언가를 계산하며.
일단은 바로 앞에 던진 내 말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동남아시아에 섬을 사들이거나 빌린다면······ 판매자는 우리나 네덜란드, 영국 쪽이 되겠군요.”
“예.”
나는 살짝 난색을 보이며 미국 의회가 이를 승인해 주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리 말하긴 했지만, 미국은 진즉 후보군에서 제외했습니다. 필리핀 군도에 있는 섬을 사들이려면 연방의회에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그렇죠.”
휴즈의 시선이 인도네시아 쪽으로 향했다.
네덜란드 왕실은 나와 꽤 친했기에, 이쪽과 무슨 대화가 오갔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덜란드도 비슷합니다.”
“하긴, 네덜란드 역시 중립국이니 아쉬울 게 없겠지요.”
“예. 하지만 영국은 다릅니다.”
“많은 병사를 유럽으로 파병 보낸다면······ 더불어 차후 빌려 줬던 섬을 반환한다는 밀약까지 추가한다면, 영국은 승인해 줄 수도 있겠다는 뜻입니까?”
“예. 그렇겠지요?”
나는 꼴도 보기 싫은 한 국가를 언급하며 영국이 얼마나 급한지, 이를 설명했다.
“영국이 그간 뒷마당 경비 취급이나 하던 일본에 얼마나 애원하고 있습니까? 군함 한 척만이라도 유럽으로 파병해 달라고 징징대고 있는 이들이 바로 영국입니다.”
“······.”
“본인에게는 군대가 있습니다. 협상국 그리고 동맹국 군부가 절실히 원하는 병력이 다수 있지요.”
나는 비행기 조종사들을 대량 보유하고 있다.
그냥 조종사들도 아니고 경험이 다수 있는 유능한 비행학교 출신들만 해도 세 자리나 된다.
“거기에, 저격병도 다수 보유하고 있답니다.”
참호전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며, 저격수들이 전장에서 떠오르고 있다.
예부터 활쏘기, 그러니까 원거리 공격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한인들답게.
그들은 저격 솜씨 또한 신출귀몰했다.
“왕자님 병사들의 용맹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 주제를 이야기하며, 한동안 어두운 표정을 짓던 휴즈가 오랜만에 활짝 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퍼싱 장군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고 받는 중이지요. 한인 병사들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나 또한 보고받고 있어서, 멕시코의 현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광전사가 얼마나 날뛰고 있으며.
황기환은 그 옆에서 얼마나 고되게 그를 보좌하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매주 내게 오는 편지 때문에 이를 생생하게 간접경험하고 있지 않던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서양 건너에 자리한, 혐성 가득한 이웃을 지칭했다.
“영국은, 제 계획을 지지할 것입니다. 당장도 급하지만 전쟁 이후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겠죠.”
“하긴, 이번 전쟁에 참여한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 출신 병사들이 제법 많다고 들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내가 협상국 측에 붙어서 싸울 때.
대한제국의 독립을 전쟁 참전 대가로 대놓고 요구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자국의 식민지들을 결코 독립시키길 원하지 않지.’
하지만.
이렇게 괴뢰국을 하나 세운 후, 승전의 보상으로 일본이 장악한 독일의 아시아령 식민지들을 요구한다면?
이후,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이를 반강제적으로 교환한다면?
‘일본이 쉽게 당하지만은 않겠다만······.’
일본이 한반도에 얼마나 집착하는지는 나 또한 잘 알기에.
지금 내가 세우고 있는 계획은 확률상 성공할 가능성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독립을 마냥 손 놓고 포기할 수 없고.
더욱이 몇 가지 작업이 더해진다면, 해당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기에.
이리 말도 안 되는 일을 나는 착실히 계획했다.
“예전부터 언급했던 이야기지만······.”
깜짝 제안한 탓에.
휴즈의 머릿속은 온통 괴뢰국 이야기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에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기기 위해, 나는 최대한 나의 행동을 포장하며 휴즈에게 이리 말했다.
“본인은 미국이 제2의 조국 같이 느껴집니다.”
“전에도 그 말씀하셨지요. 왕자비께서 미국인이고, 그 사이에서 자식을 다섯이나 보셨으니······ 충분히 그리 말씀하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미국에 해가 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휴즈에게 선택권을 양보하는 척하면서 계속해서 그를 설득했다.
“말씀만 하십시오. 대통령님께서 꺼리신다면, 십 분 전에 꺼냈던 발언을 바로 철회하고 만주에 국가를 세운다는 계획은 파기하겠습니다.”
“······.”
마음에도 없는 말이지만.
나는 후자를 선택해도 수용할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말끝을 올리며 휴즈를 계속하여 설득했다.
“다만 그리된다면, 일본의 중원 침탈은 막을 수 없겠지요.”
“······.”
“지금도 시시각각 일본은 중국의 이권을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휴즈가 느끼고 있는.
더불어 이 시대 미국인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자극했다.
이전부터 이슬비에 옷 젖듯이 가스라이팅 해 왔던, 일본 부상론을 한껏 들이밀며.
조마조마하고 있는 휴즈에 마음에 기름통을 콸콸 부어 댄 후, 불을 질렀다.
“더욱이 그동안 만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제국마저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조용히 품 안에 있는 종이 쪼가리 하나를 휴즈에게 건넸다.
“왕자님. 이것은 뭡니까?”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휴즈에게 이를 한번 읽어 보라고 권유했다.
“대통령님께서도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레닌이라는 자 말입니다.”
“아! 그 위험한 빨갱이 말입니까?”
“예.”
나는 안에 있는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소개했다.
“그자와 빌헬름의 대화록이랍니다.”
“대화록이요?”
“예. 그자가 독일에서 러시아로 돌아가는 대가로, 이 조건을 제시했다고 하더군요.”
레닌과 카이저의 밀약 내용.
일개 민간인이.
쉽게 입수할 수 없는 정보이기에, 휴즈가 다시 한번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정보는 어디서 입수하셨습니까?”
“뉴욕에서 입수했습니다.”
“뉴욕요? 우리 미국에서요?”
“예. 최근, 증권가 찌라시에 돌더군요.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
“뭐, 찌라시는 찌라시일 뿐이라고 그 가치를 애써 깎아내릴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적중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 찌라시가 왜 믿을 만한지, 목소리를 낮추며 비밀이야기를 공유하듯 휴즈에게 말했다.
“공교롭게도, 이 정보를 접하고 같은 날 영국 대사를 만났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
“대충 느낌이 오시리라 생각합니다. 소문의 주체가 어느 세력인지를요.”
영국의 정보력은 현존하는 세계 어느 나라 중 최고다.
아직 해외정보기관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미국이었기에.
휴즈 역시 영국의 정보력을 인정하며 한편으로는 이것 또한 영국의 전략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설을 뉴욕에 흘려 대고 있다고 힐난하지만······ 지금 러시아가 어찌 돌아가고 있습니까?”
이에 나는 현 러시아 상황을 거론하며, 레닌이 요사스러운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레닌이 러시아에 복귀한 이후, 러시아제국은 더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고 마냥 깎아내리기엔 무리죠.”
흠흠.
헛기침을 한번 하며 주의를 환기했다.
이후 휴즈를 바라보며.
방금 이야기를 왜 꺼냈는지, 그 이유를 다시금 밝혔다.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러시아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칫 제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예. 차르는 연이은 악수로 퇴로가 막힌 상황입니다. 더욱이 그동안 하는 꼴을 보아선, 앞으로도 계속하여 제 골망에 자살골을 넣을 것이 뻔합니다.”
나는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러시아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했다.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들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더 크나큰 혼란이 찾아오겠지요.”
휴즈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법조인이라 외교 쪽에 살짝 무지하나, 최근 유럽의 정세를 그 역시도 공부했기에.
그는 러시아제국이 무너지게 된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머릿속으로 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숨죽이고 살았던, 각지의 타민족들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러시아제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겠지요.”
“예.”
나는 또다시 세계 전도를 바라보며 확신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로 인해 동유럽 정세가 크게 요동칠 것입니다. 더불어 아시아 역시도 세력이 재편되겠지요.”
대화록에 담겨 있는 조항 중 하나를 거론했다.
“레닌은 만주에서 손을 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내홍을 수습하고 전열을 정비하면, 만주는 물론이고 동유럽까지 다시 삼키겠지만.
이것은 굳이 거론할 이유가 없기에, 속으로 마지막 말을 삼키며 대화록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카이저가 영국과 일본을 이간질하려고 사할린 북쪽을 일본에 넘기겠다는 조항을 포함한 모양인 것 같은데.’
아무튼.
본의 아니게 이 조항이 내 가설에 꽤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기에.
나는 이 역시도 거론하며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이 소문을 일본도 분명 입수했을 것입니다. 연해주에 있는 한인 중 일부를 그들 편으로 포섭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연해주에 있는 한인을 포, 포섭했다고요? 정확히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일부 친일 성향을 보이는 세작들에게 접선한 후, 연해주에 괴뢰국을 세울 계획을 꾸미고 있습니다.”
휴즈는 어느 때보다도 집중했다.
“일본이, 괴뢰국을요?”
“예. 이후, 이들을 보호한다는 형식으로 군대를 파견하겠지요. 더 나아가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서진하며 남만주는 물론이고 북만주까지 그들이 꿀꺽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일본인이 투자한 자산을 마적들에게서 지킨다는 명분을 들먹이면서요.”
휴즈에게 펜 좀 건네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 계획대로만 된다면, 일본은 북경을 포위하게 될 것입니다.”
휴즈의 승낙이 떨어지자.
나는 일본이 얼마나 큰 영토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화북에도 그들만의 괴뢰국을 세운다면, 북중국은 일본만의 시장이 되겠군요.”
“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차후 일본은 남중국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를 들어내고 중원 대륙을 그들의 손아귀에 쥐려고 할 것입니다.”
“······.”
“아시지 않습니까? 일본이 얼마나 욕심쟁이인지요.”
이 말을 끝으로 나는 한동안 침묵했다.
휴즈에게 잠시 시간이 필요해 보여서다.
“왕자님이 세운 괴뢰국은, 일본과 뭐가 다릅니까?”
5분 정도 침묵하다가 이 말을 꺼낸 휴즈.
내가 세울 괴뢰국은 일본과 뭐가 다르냐, 살짝 근본적인 질문을 내게 던졌다.
“다릅니다. 그것도 많이요.”
“어떻게요?”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휴즈에게 말했다.
“제가 세우고자 하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의 도움 없이는, 제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운······ 홀로 설 수도 없는 국가죠. 반면, 일본은 아닙니다.”
일본은 이미 진즉.
막대한 외채라는 목줄을 풀고 야생으로 돌아간 상태.
반면, 내가 세운 국가들은 기꺼이 미국과 영국의 애완견이 되어 줄 수도 있다는 말을 나는 서슴없이 해대며 한 가지를 약조했다.
“더욱이 제가 세울 괴뢰국은 외국에 모든 문호를 개방할 예정입니다.”
철도는 물론이고.
광산, 도로, 발전 인프라까지.
모든 것을 개방할 예정이다.
‘그리되면 국부 유출 논란이 있겠지만······.’
그런데도.
이 둘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이 같은 결정이 필수였다.
‘뭐, 난 자신 있다.’
왜 이리 자신만만하냐?
그야, 대공황이 곧 올 테니까.
본국 경제가 박살 나는데.
어느 미친 투자가가 저 먼 태평양 건너의 나라에 투자자산을 들고 있겠는가?
싼값에 죄다 팔릴 것이 뻔히 보였기에, 나는 아낌없이 모든 것을 열어 주겠다는 약조를 하며 휴즈를 설득했다.
“이는 우리 둘 다 만족할 만한 거래가 될 것입니다.”
미국과 영국은 만주에서 이권을 지키며 동시에 일본을 견제할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나는 고토를 회복하며, 동시에 아국에서 피난 온 이들을 정착시킬 수 있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운만 좋다면 이를 기반으로 대한제국을 독립시킬 수 있고.
“미국이 우리 한인들을 계속하여 환영한다면야, 좋겠다만······ 언제까지 그리되겠습니까?”
한인의 인구가 늘어날수록 이를 꺼리는 서부의 기존 토착민들 또한 늘어 간다.
중국인들처럼.
현지와 동화되는 것을 꺼리지는 않으나, 엄연히 이 시대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시대고.
한인이 많아질수록 서부 3개 주 시민들의 위기감을 높아져 갈 테니까.
“그에 관한 대비책 또한 세우시는 것이로군요.”
“예.”
“고민되는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휴즈를 바라보았다.
“너무 골치 아프시면, 후자를 선택하십시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왕자님께서도 제가 전자를 선택하길 원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휴즈는 나를 씩 바라보고는 웃으며 이리 말했다.
“후자를 선택하면, 왕자님 말씀대로 중국 전체를 일본에 통째로 내어 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리된다면 저는 중국 시장을 일본에 빼앗긴, 무능한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후대에 리 장군처럼 후손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북전쟁 때 남쪽의 사령관이었던 리 장군을 휴즈가 언급하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니, 그러시겠죠.”
“예.”
한숨을 푹 쉬었지만, 휴즈는 나를 바라보며 한껏 웃는 표정을 지어댔다.
확답은 없었지만.
남태평양 어딘가에 나라를 세우는 것보다 만주 쪽에 괴뢰국을 설립한다는 데 동의하는 모양.
“아! 이 왕자님.”
“예.”
휴즈가 돌아가려는 나를 불러 세웠다.
“예.”
“만약, 만주에 괴뢰국을 세운다면 말입니다.”
“말씀하십시오.”
“그쪽 토착 군벌과의 협조가 필수지 않겠습니까? 간도나 목단강 동안은 한인들이 다수 있다지만······.”
“아, 그쪽 또한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하긴······.”
휴즈는 물어보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봤다는 표정을 지어댔다.
“왕자님께서 사전 준비도 없이, 제게 이런 제안을 하실 리가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 플랜 B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