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안룰렛 (1) >
한동안 국내에 머물렀던, 안창호가 미주로 돌아왔다.
“그래. 본국엔 잘 다녀왔는가?”
“예. 전하”
안창호는 이번 방한 일정에서 많은 인물을 만난 모양이다.
그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며.
대한제국에 쓸만한 새싹들이 얼마나 많이 자라고 있는지, 내게 살짝 흥분하는 말투로 이를 소개했다.
“모두 전하께서 본국으로 보내신 장학금 덕분입니다.”
“그래?”
“예. 많은 이들이, 다들 곤궁한 형편 때문에 배움을 이어나가지 못했습니다. 하온데, 합성협회에서 거액의 장학금 지원하지 않습니까?”
쓸만한 인재가 마구마구 생겨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나는 흐뭇한 표정을 지어대며, 향후 장학재단을 어찌 운영할지.
이를 안창호에게 알렸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기쁘군. 내, 기금을 기존보다 2배 더 확충하겠네. 본국 지원 비중도 더 늘리고.”
안창호는 자강을 강조하는 애국 계몽파부터 외교독립파, 무장투쟁론자까지.
온갖 세력에 두루두루 인맥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도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고 다녔을 것이다.
그에게 어떤 인재들이 쓸만한지, 그 목록을 작성해달라고 부탁한 후.
나는 최근 들어 대한제국에 세워진 방직공장, 제철소, 조선소 등 각종 산업시설 현황을 그에게 물었다.
“지지난해부터 가동되기 시작한 우리네 공장들 말이야.”
“예.”
“어찌 돌아가고 있던가?”
“전쟁 특수 덕분인지 몰라도 주문된 물량이 반년 치나 쌓여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새로 들인 기계들이 쉴 새 없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 하옵니다.”
기업인들이라면 흥분할만한 이야기들이 안창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서, 재고가 0이라니!
“하오나······.”
하지만 안창호는 표정이 좋지 못했다.
나는 안창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살짝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지켜보았다.
“근로환경이 여기 미국보단 좋지 못했습니다.”
“표정을 보아하니,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나 보군.”
“예. 그래서 소인이 이를 살짝 시정하고 돌아왔나이다.”
노동자를 싼값에 부려야, 자본가의 손에 떨어지는 이윤이 많아진다.
그랬기에.
일부 공장장들은 길거리에 배회하는 아동들을 꼬드겨서 이를 고용했다고 했다.
‘흠.’
안창호는 공장장에게 가서 이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더하여, 내가 미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선제적 조치들.
예를 들면 주5일제나 하루 최대 10시간 근무제도 같은 제도도 상황을 보며 단계적으로 도입하라고 명령했다 한다.
“월권행위를 하였다고 생각하시면, 저를 벌하여주십시오.”
“아닐세. 오히려 잘했네. 수익도 중요하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우리 백성들일세.”
아동노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개념이, 아직 대한제국에는 없다.
이는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
막 성장하는 시기에, 매일같이 12시간씩 무리한 일을 시키면 몸이 쉽게 상하니까.
나는 안창호가 옳은 일을 했다고 봤다.
“내 자네에게 전권을 맡긴 것은, 이런 것들을 시정하기 위해서였네.”
“그, 그렇습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미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근무 조건을 거론했다.
“그래. 힐 모터스가 컨베이어벨트와 함께 주5일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자 어찌 되었던가? 생산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네.”
나는 현재, 나라 꼴이 대한제국만큼이나 흉흉한 한 곳을 거론하며.
안창호의 적극적인 조치에 더욱더 힘을 실어줬다.
“무엇보다 우리와 국경을 접하는 나라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다네.”
나는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대놓고 그들을 부정했다.
“러시아제국이 몰락하고, 저들이 자칫 정권이라도 잡는다고 생각해보게나. 저놈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붉은 사상을 전 세계에 퍼트리려고 할 것일세.”
숙주를 찾기 위해서 저 멀리 바다도 넘어갈 기세지만.
가까이 국경을 마주한 나라가 전염시키기 쉽기에, 공산주의자들은 이웃 나라들부터 적화시키려고 노력할 거다.
“그런 와중에 왕족의 일원인 내가 본국의 신민들을 상대로 착취를 한다고 소문이 퍼진다면 어찌 되겠는가?”
“자칫, 그동안 전하께서 해오신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
공산주의 사상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면, 극악의 노동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기껏 독립시켜놨는데.
전국에 붉은 혁명 바람이 불면 큰일 나기에, 일단은 내 소유의 기업들부터 이를 개선하여.
적어도 공산주의자들이 나를 힐난하게는 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그들의 허무맹랑한 논리를 깨부수려면 일단은 나 스스로 결점이 될 만한 사항은 없애야 좀 더 효율적으로 그들과 싸울 수 있지 않겠는가?
‘내 그래서 안창호를 국내로 보낸 것이지. 그를 영국으로 보내지 않고.’
나는 잠시 안창호와 다도를 즐기며, 국내 상황을 보고받다가 이내 돌아오는 배편을 물으며 만주 쪽 상황을 질문했다.
“아! 들리는 말로는, 돌아오는 길에 잠시 잉커우와 봉천을 방문했다던데······ 그쪽 사정은 좀 어떠한가?”
안창호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혼란 그 자체이옵니다.”
“그래?”
“예.”
“위안스카이가 자신을 황제라 스스로 칭하며 중화제국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이에 각지에서 반군이 들고일어나는 중이고요.”
“그렇지.”
“북중국은 북양군벌의 세가 강하여, 이 움직임에서 예외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만주에서도 큰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나 또한 보고 받았다네. 장쭤린인가 뭔가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었다며.”
“예.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들을 종합해서 해석해보면, 위안스카이도 그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안창호는 내가 익문사를 운영하는지 아직 모르고 있다.
그랬기에.
나는 공식적으로 퍼진 소문만 거론하며, 그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캐내었다.
“잉커우와 봉천에는 우리 조선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지 않던가? 대중국 사업을 하려고 그쪽에 정착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 들었는데. 거, 이회영의 형제 중 한 명이 그쪽에 터를 일구고 있지 않던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물어봐서일까?
안창호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보았던 것들을 빠르게 내게 고하며 안심시켰다.
“전하. 다행히도 만주에 전하의 자산을 지키던, 만철 경비대가 동북 3성의 실 지배자인 위안커원을 지켜내며. 동시에 장쭤린인가 뭔가 하는 마적 놈의 반란을 토벌했다고 합니다.”
“그래?”
“예. 덕분에 봉천에서 한인들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답니다.”
“하긴. 그쪽의 실 지배자를 우리 손으로 지켜낸 셈이니까. 위안커원이 우리 조선인들에게 더더욱 의지하겠군.”
“예. 그렇습니다.”
아쉽게도 장쭤린의 27사단은 와해가 되었지만, 그는 죽이거나 사로잡지 못했다.
보고 받은 바로는 일본이 지배하고 있는 관동 쪽으로 넘어갔다 하던데.
안창호는 이런 상세 정보까지는 입수하지 못하여, 이 이야기는 내게 보고하지 못했다.
“혹시 자네, 위안커원이라는 놈은 만나보았나?”
“예? 아, 예. 그렇사옵니다.”
“그자는 어떤 자인가?”
직접 만나보지 못한 상황.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게 알려면,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제일이다.
나는 안창호가 위안커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서구의 정치, 경제 체계를 상당히 좋게 평가하는, 몇 안 되는 개화파 지식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예. 위안스카이의 아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려 있는 인재였습니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더불어······.”
“더불어?”
“살짝 웃기긴 하지만, 전하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그래?”
“예. 같은 서자 출신 왕자에, 얼굴로 호남형이고. 풍류도 즐길 줄 알며, 서구에 관한 사상도 열려 있습니다. 더욱이 제 아비가 위안스카이지 않습니까? 그가 죽으면 상당수의 재산을 물려받게 될 것인데······ 이를 어찌 활용할지 고민하며, 만약 전하께서는 위안커원이라면 어찌 행동하실지 스스로 이를 생각하는 중이라 합니다.”
일단 내게 호감이 있다는 점은 상당히 좋네.
만주의 실세가 내게 악의를 가지고 있으면 곤란하다.
나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언제 한번 꼭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가?”
“태어나긴 한성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부터 봉천에서 쭉 자라서 그런지 봉천 쪽에 애향심이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
“예.”
“자신을 한족이라고 여기기보단, 한민족 혹은 봉천인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위안커원은 혼혈아다.
어릴 적부터 외국에서 살았기에 재중교포 1.5세라고도 부를 수 있겠고.
나 또한 재미교포 2세 출신이기에, 그가 어릴 적에 어떠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는지.
말 안 해도 대충 그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한민족이라는 칭한 건 안창호 앞이니까, 립서비스 차원에서 말한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후자는 다르다.’
자신을 봉천인 혹은 동북인으로 칭했다는 것은 기존에 있던 한족과는 분명 선을 그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잘만 활용하면.’
기존 만주에 거주하고 있는 한족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요동평야와 송강평야에 사는 이들이 족히 3천만은 넘는 상황인데 말이다.
‘그건 일단 나중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오늘 만남이 즐겁고 유익했다고 안창호에게 말했다.
“잠시 쉬게나. 내 조만간 자네를 다시 부르겠네.”
“예. 그럼 이만 물러나 보겠습니다.”
* *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이 찾아왔다.
‘드디어 그날이네.’
전보를 통해 알음알음 러시아 상황을 듣고 있는데.
예정대로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니키(니콜라이)는 어떠한 선택을 할까?’
이번 역사에서는 나 때문에, 정신을 좀 차렸을까?
그래서 당장 그 앞에 닥친 고비를 넘게 될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시위가 시작된 지, 3일 차.
‘저런.’
니콜라이는 시위대에 총을 발포하라고 명령하는 악수를 이번에도 기어코 두었다.
‘원 역사대로 흘러가는군.’
여기서 사과하고 멈췄으면, 그나마 이를 돌이킬 수 있으나.
“전하.”
4일 차 되던 날.
최현우가 들고 온 전보를 보니, 최후의 희망도 날려버린 것 같았다.
“결국, 수도를 방위하던 군인들이 항명을 일으키는군.”
“예.”
때가 되었다.
아까까지는 심증만 있었지만, 지금 이 시각 부로 러시아의 부도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들 일어서게.”
시간이 없다.
가야 할 곳이 있으니까.
나는 재빠르게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케미컬투자은행으로 이동하기 위해 힐 모터스에서 나온 신차에 올라타며, 창문 밖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이 왕자님. 오랜만에 방문하시는군요.”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해, 이제는 케미컬투자은행의 은행장이 된 조지프 케네디.
그가 로비부터 날 반기며 굽신거린다.
“전에 말씀하셨던, 러시아 채권들 말입니다.”
“그래.”
“이 왕자님 개인 소유분과 회사 보유분은 진즉 처리했고, 우리 회사 VIP 고객에게도 전화를 돌려서 보유한 물량들은 전량 정리해두게 유도하였습니다.”
“잘했네.”
케네디가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며 자신의 집무실까지 나를 안내했다.
이후에는 비서에게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내오라 시킨 후, 나를 제일 상석에 앉혔다.
“저기, 옆 건물에 있는 아메리칸신탁 말입니다.”
“듣고 있네.”
“그쪽에도 물어보니, 자사의 고객 중 9할 이상이 러시아 쪽 자산을 줄였다고 하더라고요. 록펠러 이사장이 소유한 은행들 역시 이 행렬에 동참 중이라 합니다.”
그럼.
아메리칸신탁은 내 것이고, 록펠러에게는 미리 귀띔했는걸.
“아, 물론. 이 와중에도 러시아 쪽에 투자하는 이들이 있긴 합니다.”
“그래?”
“예. 1907년을 이후로, 야수의 심장을 가진 이들 원체 많이 늘었으니까요. 청개구리같이 시장과 반대로 움직여야 적성이 풀리는 이가 있으니까요.”
진짜로 야수의 심장이네.
“리버모어 또한 러시아 쪽에 투자했단 이야기가 있습니다.”
듣기 싫은 이름이 한 번 더 거론된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케네디가 황급히 이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왕자님이 러시아 채권 투매를 부추겼다는 소문을 듣고, 그리 행동한 듯합니다.”
“그렇구먼.”
참 그 양반은.
풍운아로세.
원 역사에서도 몇 번 파산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벌써 두 번째네.
나는 피식 속으로 웃으며 서류 가방에 있던 문서 뭉텅이를 케네디에게 건넸다.
“받게나.”
케네디가 묵직한 서류 봉투를 조심스레 쳐다본다.
그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이를 건네받으며 내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미국의 유명 정치인들의 전화번호 목록 부네.”
“······.”
케네디는 조용히 나만을 바라보며, 그래서 이걸 왜 내게 주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어댔다.
나는 그런 케네디를 향해 반문했다.
“영업의 시간이 도래했네.”
“영업요?”
“그래.”
나는 씩 웃으며 조지프 케네디를 바라보았다.
“러시아 쪽이 난리라 하더군.”
< 러시안룰렛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