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국준비위원회 (1) >
기업 하나를 성공적으로 설립하기 위해선, 여러 사전 작업이 필요하다.
외부 환경도 분석하고.
함께 일할 초창기 창립 맴버도 모집해야 하며.
내가 가진 아이템이 얼마나 시장에서 얼마나 경쟁력 있는지.
더불어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은 지금 내 수중에 얼마나 존재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물며 기업도 이런데.
나라를 세우려면?
수많은 전문가가 달라붙어야 밑그림이 그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헌법도 만들어야 하고.’
중구난방 흩어져 있던 군대 체계도 하나로 통일해야 하고, 또.
‘이런······.’
뭐,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
이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더욱이 일련의 행위들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지.’
돈!
돈!
돈!
군대를 새롭게 운용하는 것도.
새 정부를 조직하는 것도.
남만주의 국민이 활용할 인프라를 만드는 것도.
거주하는 주민들을 교육하고 진료하는 것도.
모두 돈이 들어간다.
여기 사용되는 자금 중 95% 이상이 내 호주머니에서 나오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쓸데없는 낭비를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부자란 족속들은 본디 허튼 돈 쓰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까.
나 또한 그랬기에 열심히 보고서를 뚫어지게 보며, 어느 구멍을 막아야 낭비를 줄일 수 있나 고민했다.
“전하.”
한참 고민하던 찰나.
“그래. 이쪽에 앉게.”
반가운 인물이 뉴욕에 방문했다.
내 할아버지의 친우였던 김종림이 우리 집에 들른 것이다.
“쌀 1,000t과 밀 500t을 실은 배가 저번 주에 샌프란시스코항을 떠났다?”
우리 둘은 뉴욕항에 인접한 어느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저 멀리.
유럽으로 화물을 싣는 선박이 보였기에, 나는 지난주에 막 연해주로 떠난 김종림의 배를 언급했는데.
그는 잠시 수를 계산하며, 내게 도착하는 일정을 알려 주었다.
“예. 그렇사옵니다. 떠난 지 열흘 정도 되었으니, 한 내일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는 현재 나의 권유로 벼농사 대신 농기계 관련 사업을 하며 미 서부에서 사세를 키우는 중이었다.
최근에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는 전쟁 특수로 곡물 수출이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5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뜨기 같았는데.’
이제는 어엿한 사업가가 다 되었네.
하긴.
내가 빙의 전에 인연도 있고.
그의 역량이 뛰어나기도 해서, 그를 물심양면 지원했으니.
실패할 수가 없는 조건이긴 하네.
‘그래도 생각보다 사세를 많이 확장했어.’
기분이 좋다.
한인의 성장은 곧 나의 성장.
더욱이 미 서부에서 생산되는 곡물들을 원가에 가까운 운임만 주고 연해주나 간도 인근으로 실어날 수도 있게 되었기에.
나는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어대며 김종림에게 물었다.
“1,000t 정도면 보통 어느 정도 되지? 단위는 이해하겠는데, 그 단위가 너무 커서 머릿속에 이것들이 잘 그려지지 않는군.”
문과 출신이라 암산에 약하다.
내가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하라고 요구하자, 김종림이 이번에 수송한 곡물 양을 알기 쉬운 표현으로 바꿔 설명했다.
“보통은 한 사람이 일 년에 150kg 정도의 쌀을 소비하지만, 아껴 먹으면 120kg 정도도 충분합니다.”
이번에 보낸 양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김종림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빙의 전에도, 빙의 후에도 미국에서 쭉 살았기 때문이다.
‘kg?’
나는 기본적으로 미터법보단 야드 파운드 단위가 더 편했다.
그렇기에 kg 같은 단위로 이야기를 하면, 얼마인지 감이 잘 안 와서 고개를 갸웃할 때가 많았다.
‘처음에는 대충 감이라도 잡혔는데······. 그 뒤 상세 설명은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영 모르겠군.’
야드 파운드법에도 ‘t’이라는 단위가 있다.
미터법의 톤과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거의 비슷한 양이기에, 이것만큼은 혼동하지 않고 바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다음은 영, 감이 안 왔다.
아 진짜, 120kg이면 도대체 얼마야?
“파운드로 환산하면 약 265파운드 정도 되는 양입니다. 조선의 전통적인 무게 단위로 환산하면 1석 정도 되고요.”
“아하.”
265파운드!
그래.
쉽게 파운드로 풀어 설명할 것이지, 왜 kg를 사용하며 설명하는가.
“약 만여 명 정도가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김종림은 전쟁 특수로 유럽에 많은 곡물을 수출하고 있기에.
다른 여타 미국인들과는 다르게 미터법, 야드 파운드법을 넘나들며 쉽게 이를 변환할 수 있었다.
“올해는 평안도와 남만주 지역에 봄 가뭄이 크게 들어서 보릿고개가 극심하다던데.”
김종림은 나를 안심시키며 활짝 웃었다.
“다행히도 전하께서 제때 연해주에 곡물을 보내 주셨나이다. 그 덕분에 간도와 연해주 백성들은 물론이고 평안도와 함경도에 사는 한인들도 상당수가 보릿고개를 넘길 것입니다.”
1,000t의 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며 많다면 많다고 볼 수 있지만.
주린 배를 모두 채우기엔, 어림도 없는 양이다.
“여력이 되는 대로 곡물들을 블라디보스토크로 보낼까 하니 자네가 좀 더 신경을 좀 써 주게나.”
김종림이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물었다.
“얼마나 많은 양을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자네 역량이 닿는 대로, 될 수 있으면 가능한 한 많이.”
김종림이 말끝을 슬쩍 올리며, 얼마큼이나 보낼 생각이냐고 내게 묻는다.
이에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자포니카 쌀의 7할 이상을 이번 해에 연해주로 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그렇게나 많이 말입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언급하기도 싫은 종자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왜놈들이 작정하고 신생국과 싸우려고 한다면, 당장 해상봉쇄부터 시도하겠지.”
“그, 그렇겠지요.”
“그리되면, 더는 서부에서 나는 곡물들을 싼값에 실어 나를 수 없게 되네.”
“아!”
미국 국적 배를 침몰시킬 수는 없지만, 블라디보스토크항이나 잉커우항에 물자가 하역되는 작업을 방해할 수는 있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건국하기 전.
이번 보릿고개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곡물을 연해주와 간도로 보내어, 이것들을 군량미로 활용할 수 있게끔 비축시킬 생각이었다.
“전하께서는 항상 저희보다도 한 발자국 앞서서 생각하십니다.”
나는 김종림에게 별거 아니라는 손짓을 해 댔다.
“뭘 그리 올려 치는가? 나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라네.”
김종림에게 물었다.
그 역시도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냐고.
“아! 맞다. 자네 말이야.”
“예. 전하.”
“조만간 훈춘으로 떠날 것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나는 한쪽 눈썹을 들썩거리며 방금 내가 뱉은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 남만주에 새로이 생길 새 나라 건국 문제 때문에 외근을 나가게 생겼습니다. 이를 위한 건국준비위원회 회의가 내달 초에 훈춘에서 열리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쪽에서 활동하던 익문사 요원들과 독립군 사령관들.
미주에서 활동하던 협회 관계자들.
그리고 국내에서 내 돈을 가지고 교육 활동을 하던 신민회 간부들이 대거 참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김종림 또한 대한제국 독립 활동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기에, 초청을 받은 모양이었다.
“한 것은 없지만, 저 또한 초대를 받아서······. 그곳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살짝 부러운 표정을 지어대며 김종림을 바라보았다.
“나 또한 참석하고 싶지만 여건이 이래서······.”
알다시피 보는 눈도 있고.
위험하기도 하여서 아직은 미국을 떠날 수가 없다.
“······.”
“······.”
김종림 또한 합성협회 설립부터 나와 함께했던 맴버였다.
누구보다 내가 얼마나 대한제국의 독립을 열망하는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
“하긴, 그렇습니다. 실 지배는 우리 한인들이 하고 있지만, 치안 상황은 썩 좋지 못하니까요.”
“그렇지.”
“더욱이 오시는 도중에 해상에서 피랍이라도 된다면······.”
확률은 극히 낮지만.
아예 없다고는 말 못 한다.
더욱이 요새는 덜하다지만, 간도와 연해주는 물론이고 미주 한인사회에도 밀정이 득실거린다.
내 이동 루트가 일본제국에 발각될 수도 있다는 말.
‘예나 지금이나, 푼돈에 영혼을 파는 일은 아주아주 흔하지.’
살짝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아!”
갑자기 나의 뇌리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나는 김종림을 보며 한 가지를 당부했다.
“훈춘으로 가는 길에, 그것들을 좀 챙겨서 가게나.”
“그것들이라면······.”
김종림이 고개를 갸웃하자, 내가 그것들의 정체를 알렸다.
“종자들 말이야.”
“아!”
김종림은 농기계를 개발하고 판매하지만, 그 역시 서부에 대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10년 전부터 내가 해 왔던 종자 개량 사업을 언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추위에 강한 볍씨들과 밀알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래.”
최근에 캘리포니아주를 넘어 인근 오리건이나 워싱턴주 등.
서부 해안가 북쪽에 있는 평야까지 벼농사를 확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앞에 언급했던 지역들은 새크라멘토 평원보다는 평균 기온이 낮았다.
국경 넘어 밴쿠버 인근은 이보다도 더 추웠기에, 위도가 높은 만주 지방을 대상으로 벼농사가 성공리에 이루어질 수 있는지 실험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아,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은 개량이 많이 필요하지만.
북해도에서 자생하는 쌀들을 들여다가 교잡시켜서 꽤 내한성이 강한 종자들을 솎아 낼 수 있었다.
김종림은 이를 만주로 가져가 보겠다고 선언했다.
“더불어 가는 김에 땅들을 보고 오게나.”
“종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땅은 왜 보고 오란 말씀이십니까?”
“자네 회사에서 개발 중인 농기계들이 그쪽 땅에서도 잘 사용될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는 뜻이네.”
“아, 예.”
압록강 변에 자리한 서간도나.
두만강 변에 자리한 동간도는 한반도와 비슷하게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저 너머.
삼강 평원이 자리한 목단강 동안 쪽은 한반도보다도 넓은 영토를 자랑하지만.
인구가 백 만은커녕 오십만도 채 안 되었다.
“살펴보고 온 후에 관련 정보를 보고서로 작성하겠습니다.”
현대 중국 정부는 관개시설을 보수하고 황무지들을 기계로 밀어 가며 대규모 농업 단지를 인위적으로 조정했다.
이번에 세워질 괴뢰국 역시도 시간이 지나고 치안이 안정화되면.
이를 행할 수도 있기에, 시간이 날 때 농업전문가인 김종림을 시켜다가 관련 환경을 한번 알아볼 생각이었다.
* * *
“다녀오셨어요?”
집으로 돌아오자, 에델이 밝은 얼굴로 나를 반긴다.
“이야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나 봐요. 아까 나갈 때만 해도 분명 9시 이전에는 돌아온다고 하셨는데.”
슬쩍 고개를 돌려서, 벽에 걸린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죄다 자신들의 침실로 들어가 잠을 자는 듯했다.
“오늘은 어땠어요?”
나는 에델에게 입고 있던 겉옷과 모자를 건네며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 샌프란시스코에서 농기계 업체를 운영하는 김종림과 이야기를 좀 나누었소.”
“어머 그래요?”
에델이 겉옷과 모자를 건네받은 후, 이를 옷걸이에 걸었다.
이어서 내 목을 꽉 조르고 있던 넥타이를 푸는 것을 도와주며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왜 그리 침울한 표정을 지으시는 거예요.”
에델은 현재 나와 마주 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녀는 내 와이셔츠 단추를 제일 위에부터 하나하나 풀기 시작하며 내게 물었다.
“간도로, 연해주로, 더하여 한성으로 아직도 갈 수 없어서 그러오.”
“······.”
“내 모국인데, 내 마음대로 방문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돼오?”
땀에 흠뻑 젖은 셔츠마저도 내게서 가져간 후, 그녀는 상의를 탈의한 나에게 물었다.
“곧 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부인은 그리 믿소?”
“예.”
에델은 내 앞머리를 넘겨 주며 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왕자님께서 원하시니까.”
“······.”
“왕자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릴 줄 알아요.”
“······그렇소?”
“예.”
에델이 피식 웃으며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더하여 너무 무리하지도 말고요.”
“어째서지?”
“교민들, 나아가 본국에 있는 백성들은 왕자님을 이 나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 왕자님께서 털썩 쓰러지시기라도 해 봐요.”
에델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표정을 내게 지어 보였다.
“상상하기도 싫어요. 저는 그런 건.”
“······.”
“왕자님께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어요. 저랑 우리 아기들이랑 함께.”
에델은 활짝 웃으며 안방에 붙어 있는 욕실 쪽으로 이동했다.
나는 에델을 따라가며 확언해 줬다.
“내, 그대와 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건강은 꾸준히 챙기도록 노력하겠소.”
“정말요?”
“그래. 내 약속하리라.”
이후 그녀는 욕실에 물을 받으며 내게 물었다.
“오늘은 어떻게 하실래요? 같이 씻을래요? 아님, 제가 먼저 씻을까요?”
덥석-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에델을 꼭 안았다.
그리고 항상 했던 말을 그녀에게 속삭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같이 씻도록 하지.”
< 건국준비위원회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