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75화 (275/294)

< 건국준비위원회 (2) >

아직 4월이라서 그런가?

해가 지기만 하면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으으-.”

육지도 이런 상황인데.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어떨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엄청나게 춥다.

생각 없이 천 쪼가리만 걸리고 나갔다간, 찬 칼바람에 아주 호되게 혼쭐이 날 만한 날씨.

하지만 김종림은 거센 바닷바람에도 갑판으로 향했다.

담배를 태우기 위해서다.

“이놈의 원수. 내, 언제 한번 날 잡아서 끊고 만다. 기필코.”

21세기와는 다르게 지금은 실내 안에서 흡연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김종림은 자신의 옷에 담배 냄새가 배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그렇기에 김종림은 담배가 당길 때면 이리 갑판으로 나와서, 찬바람을 맞으며 입에서 연기를 내뿜곤 했다.

칙칙-

입에 문 새 담배를 태우기 위해 김종림이 라이터 휠을 한창 돌렸다.

“젠장.”

하지만 김종림의 입에서는 연기 대신 걸쭉한 욕이 튀어나왔다.

하필 이 타이밍에, 1년 전에 샀던 라이터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이놈이 미쳤나?”

김종림은 신경질 난 표정으로 애꿎은 라이터만 툭툭 쳐 댔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가 머무는 특실로 돌아가기 전.

불을 빌릴 만한 상대가 있나부터 확인한 거다.

“응?”

이 야심한 시각에 갑판에 나와 있는 또 다른 동양인 한 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 좀 빌리려고 접근했는데.

하필이면 갑판 위에서 서 있는 자는 김종림이 가장 껄끄러워하던 상대 중 하나였다.

“우, 우 선생님.”

“······김 사장?”

이강의 금고지기.

우현식은 좌현우, 우현식 중 후자를 맡은 자.

24시간 붙어 다니는 이강의 최측근 중 하나가 김종림에게 말을 걸었다.

‘젠장.’

평소 말을 걸어도 별 대꾸도 없고.

우현식이 원체 사람들과 교류도 잘 안 했기에, 김종림은 우현식이 어려웠다.

더욱이 잘못 보였다가 밉보이기라도 하면, 이강까지 그를 안 좋게 생각할 수 있기에.

김종림은 잔뜩 주눅이 든 채로 우현식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긴, 어, 어인 일이십니까?”

“속이 좀 그래서······ 이리 나오게 되었네.”

“아······.”

소문에.

의왕의 최측근 중 한 명이, 뱃멀미가 심하다던데.

그 주인공이 바로 우현식인가 보다.

김종림은 다음 주제를 뱃멀미로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단 뱃멀미에 좋은 음식부터 우현식에게 추천했다.

“뱃멀미에는 탄산수가 제격인데 말입니다.”

“······.”

“밍밍한 맛이 별로시면, 선실 매점으로 가십시오. 거기에서 콜라라는 음료수를 팝니다. 한 모금 마셔 보시면 아주 기가 막힙니다.”

고마워할 만도 하지만, 우현식은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오히려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대며 김종림의 충고를 거절한다.

“됐네.”

“지, 진짜로, 효과가 좋습니다.”

“그거 다 돈이지 않은가?”

“······.”

그렇다.

우현식은 엄청난 수전노였다.

“돈이란 것은, 자고로 최대한 아껴 써야 하네.”

우현식이 수전노가 된 것은, 그의 상관인 이강의 공이 컸다.

유학 초.

박병준이 이강의 몸에 빙의하기 전에 이강은 경제 관념이 전무한, 머리에 꽃을 단 20세기 조선 최상류층이었다.

그렇기에 고종이 준 일 년 치 용돈 1만 달러를 일주일 내에 써 버리는 기적을 행했었다.

“······.”

“······.”

그때의 안 좋은 추억 때문인지, 우현식은 이강이 부자가 되었는데도 자린고비 생활을 강조하고 있었다.

물론 이강 역시도 대외적으로 청렴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싶어서 이런 우현식의 충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긴 했지만.

문제는 우현식이 만나는 한인 교민마다 이를 강요하고 있기에.

우현식의 이러한 행태를 잘 아는 한인들은 우현식이 나타나면 일단 피하고 본다.

김종림도 소문은 들었지만, 이리 수전노인지는 몰랐기에 속으로 F 워드를 외치며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나저나 불이 필요한 모양이군.”

“예예.”

“여기 성냥일세.”

“다, 담배도 안 태우시는데. 성냥을 가지고 다니시는군요.”

쓱.

성냥갑을 열어 보니 성냥이 하나 남아 있다.

우현식은 어깨를 으쓱하며 김종림에게 성냥을 입수한 경위를 설명했다.

“머저리 같은 양놈 하나가 그제 밤에 바에서 성냥갑을 놓고 가더군. 내 이를 건네주려고 이를 들고 선실로 찾아갔는데, 쓱 나를 보더니 그냥 가지라고 하더군. 그래서 내 챙겨 두었네.”

“······아, 예.”

그럼 그렇지.

김종림은 우현식을 더욱더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담배만 다 태우면, 빨리 자신이 머무는 선실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자네도 내달 초에 열리는 훈춘 회의에 참석한다는 말이 있던데.”

“예.”

“잘 부탁하네. 한동안 적적할 것 같은데 잘되었군. 앞으로 같이 다니세나.”

김종림의 머릿속에 커다란 종이 울린다.

이 짠돌이랑 여행메이트를 하며, 얼마나 고생할까 그 앞날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 * *

“어째 표정들이 다들 좋아 보이는군요.”

김종림도 그렇고 우현식도 그렇고.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와 본다.

“미국의 소도시들보다는 못하지만, 이전보다는 많이 발전했군.”

꽤 높은 건물들도 많아졌고.

다 쓰러져 가는 판자촌들은 신식 건물들로 싹 바뀌었다.

“응?”

저 멀리.

한인들이 조직한 민병대가 보인다.

“일부 물품은 멕시코에서 훈련받고 있는 티후아나 군사학교 학도들보다도 낫군.”

“그러게 말입니다. 최근에 건국 준비 때문에, 최신 군수품이 대거 연해주로 넘어갔다고 들었습니다.”

김종림이 민병대의 무장상태를 열심히 설명한다.

우현식 그런 김종림을 스쳐가듯 쳐다본 후, 다시금 민병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종림이 상세히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미 다 아는 정보였기 때문이다.

‘이 독리가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나 보군.’

지난날.

익문사의 수장인 이위종이 이강에게서 천만 달러나 받아서 연해주로 떠나지 않았던가?

연해주로 떠나기 전.

이위종이 마지막으로 만난 상대가 누구던가?

바로 우현식이었다.

“그전까지는 많이 열악했던 것으로 아는데 말입니다.”

김종림은 이위종이 누구인지, 연해주 민병대의 수준이 누구 때문에 올라갔는지 몰랐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익문사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각종 중화기도 이곳에 많이 건너왔다고 합니다. 말이 민병대지, 정규군과 붙어도 대등할 정도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김종림은 자신이 우현식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는 그가 이강 옆에 착 붙어 다녔던 우현식보다는 세상 물정을 더 잘 안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

우현식은 그런 김종림을 보며, 마치 어른이 아이 재롱잔치를 보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우 선생님.”

“······.”

“표정이 많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현식을 쳐다보는 김종림.

그런 김종림을 향해 우현식이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대기하고 있던 차량 위에 올라탔다.

“머리가 좀 아파져 와서 그러네.”

“머리가요? 어째서요.”

지금도 돈이 많이 드는데 병사들의 수가 더 는다고 생각해 봐라.

물론 일부는 세금으로 충당되긴 하겠으나······.

모든 게 다 돈이다.

특히나 군대를 유지하고 지원하는 일은 거금이 든다.

이강의 개인금고를 관리하는 우현식으로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아! 하긴, 저 총들이며, 군복들, 그리고 일부 군용 차량까지······ 모두 의왕 전하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자금으로 구매한 것들이겠네요.”

이에 김종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우현식의 속마음을 유추했다.

그 역시 기업가로서.

고정비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얼마나 큰 리스크를 지게 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대한의 독립에 사용되니까. 아깝지는 않네.”

“그렇죠.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전하의 호주머니에서 나옵니다. 그동안 전하께서 얼마나 고생하시며 부를 쌓으셨는지, 저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돈만 버는 팔자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돈 쓰는 팔자는 따로 있다던데.

우현식은 이를 회상하며 이강의 숙명을 안타까워했다.

“내 심정을 이해해 줘서 고맙네.”

“아닙니다.”

우현식이 고개를 돌려 김종림을 바라보았다.

“아! 우리 조금 친해진 김에, 내 잔소리 하나 더 해도 되겠나?”

“······마,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이참에 담배 좀 끊게.”

“예?”

“아깝지 않은가? 오늘만 해도 얼마를 태웠나?”

우현식의 충고에, 김종림은 입이 바싹바싹 말라 갔다.

“아, 예.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김종림은 생각했다.

오늘따라 담배가 더 당긴다고.

그리고 앞으로 담배가 더 간절해질 것 같다고 말이다.

* * *

“와. 사람들이 이리 많을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회의가 열리는 훈춘 노천극장.

그곳에는 현재 사람들로 가득했다.

“오랜만입니다. 우 선생님.”

“도산.”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안창호였다.

“그래. 이번 회의를 자네가 주도하게 되었다며?”

“예. 그리되었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선생님.”

“이 박사?”

이승만도 여기에 있다.

“영국에 있어야 할 자네가 어째서?”

“이런 자리에 제가 빠질 수 없죠. 전하께 양해를 구하고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그렇군.”

노천극장에는 유명한 이들이 가득했다.

“독립군에서 1군단 사령관을 맡은 이범윤이요.”

“김좌진입니다. 봉천에서 위안커원을 보호하는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하고 막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압록강 인근에서 2군단을 이끄는 홍범도외다.”

“최재형입니다. 연해주에서 민병대를 조직해 운용하고 있습니다.”

만주에서 활동하는.

항일 무장세력들이 즐비했으며.

“주시경이외다. 미국과 대한제국을 넘나들며 언어학, 특히나 정음의 보존에 앞장서고 있소이다.”

“신민회 회장을 맡은 양기탁이외다.”

한반도와 남만주에서 교육 활동을 맡고 있던 선비들도 간혹 보였다.

“이상설이오. 두 달 전까지 베를린에 머물며 합성협회 특별위원을 하다가 다시금 고국으로 돌아왔소. 아, 이전에는 여기 있는 이준 선생과 함께 법 쪽을 좀 정비하였지.”

“박용만입니다. 상해에서 특별위원 활동을 하다가 잠시 귀국했습니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특별위원들 역시도 다수가 참여했다.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주요 협상국과 밀약을 맺으며.

그들이 해외에 주둔해야 할 필요가 많이 적어졌으니까.

“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본인 차례가 오자 우현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현식이오. 의왕 전하의 재정관리를 담당하고 있소이다.”

아주 짧게.

자신을 소개한 후, 우현식은 제 자리에 다시금 앉았다.

“저쪽에 앉아 있는 분이, 의왕 전하의 금고지기라고?”

“그렇다네.”

“거참,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이 생겼군.”

교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나, 본국에 있는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아직 우현식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들 수군대며 이강의 최측근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런데 의왕께서는 어디 계시지?”

“그러게?”

이후 그들은 이강을 찾기 시작했다.

당연히 보여야 할 주인공이 아직 안 보여서다.

“안창호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이번 회의의 진행을 맡게 되었소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를 눈치챈 안창호가 회의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유감스러운 소식 하나를 여러분에게 고하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의왕 전하께서는 이 자리에 참석하시지 못하십니다.”

“······.”

“······.”

“다들 아시다시피 9년 전에 아주 불미스러운 일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졌기에······.”

그 사건은 미주 교민들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아주 유명했다.

일본의 낭인이 왕족을 헤치려 한 사건이니까.

더욱이 이강은 그 시절에도 국민 사이에서 암암리에 칭송받고 있었던 인물이었기에.

그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조용조용!”

박용만이 나서서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이강을 향한 암살미수 사건이 거론되자, 주위가 시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신변상의 문제로 인해 의왕 전하께서는 아쉽지만 이곳에 방문하시지는 못하셨지만······ 의왕 전하께서는 이 자리에 대리인을 보내셨습니다. 저기 저쪽에 앉아계시는 우 선생님이 바로 의왕 전하의 대리인이십니다.”

다시 한번 시선이 우현식에게 쏠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으쓱댈 만도 하지만, 우현식은 이미 이런 시선에 익숙해졌기에.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아시다시피 우 선생께서는 24시간 전하와 함께 다니며 전하께서 미국에 유학하던 시절부터 보필하셨던 최측근입니다.”

안창호는 우현식의 활동을 상세히 설명하며, 그가 이강의 대리인으로 참석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고 평했다.

“우 선생께서 전하를 대리하여, 여러분과 함께 각종 현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여기 참석하신 분들은 이를 참고해서 신중한 언행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안창호는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서 한 가지를 밝혔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많은 분이 사전에 이를 들으셨다시피 여기 만주에 우리만의 나라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본래라면 대한제국을 간악의 일제로부터 해방한 후에, 이곳 고토를 회복해야 하나······.”

안창호는 침을 한 번 삼키며 다음 말을 뱉었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 *

“뭐,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논쟁해 봐야 먼 소용이요.”

“맞소. 모로 가도 우리 대한이 독립만 할 수 있다면 되는 것이 아니오?”

박용만의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은 대체로 무장독립 세력들이었다.

다만.

“본인은 그리 생각하지 않소.”

“······맞소.정치란 복잡한 법.”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행하는 일이라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그리 이론처럼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이지요.”

일부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듯했다.

“그렇지요. 차후에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주체가 달라집니다.”

“그 주체는 아무래도 이번 신생국의 고위 관료가 될 것 같습니다만.”

대체로 책 좀 읽었다 하는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듯했다.

“다들 살 만한가 봅니다.”

이에.

김종림은 재미나게 돌아가고 있는 회의 장면을 지켜보며, 우현식에게 속삭였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을 보면······.”

“뭐 그렇지. 그게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우현식은 사전에 이강과 이번 회의를 관련한 이야기를 논의했다.

그는 팔짱을 끼며 신중을 태도를 보였다.

그런 우현식을 향해 김종림이 그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 댔다.

“우 선생님께서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일단은 지켜보세. 이들 중 어느 놈이 나대는지 곧 알게 되겠지.”

우현식은 매의 눈으로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특히나 이강이 주의해서 지켜보라고 한 몇몇을 집중감시 해 댔다.

* * *

“제헌의회를 세워서 헌법을 제정하잔 말입니까?”

“그렇소.”

법률 제정과 관련된 이야기는 크게 세 인물이 주도하는 중이다.

이상설, 이준, 그리고 이승만.

사회적인 위치도 그렇고.

전공도 법 쪽이었기에, 이 셋은 헌법 제정에 관해서는 크게 목소리를 내었다.

“앞으로 세울 나라의 주권은 신생국의 국민에게서 나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밀실에서 단합하는 것보다는 국민의 대표들이 새로이 생길 국가의 헌법을 논의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다.

국명.

건국 날짜.

국가와 정부 형태.

최고 수반의 칭호.

등등.

여러 논쟁거리가 그랬듯.

헌법 제정 역시도 잡음이 많았다.

“하지만 대략적인 큰 틀은 잡아 두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앞서 언급한 주장이 옳다지만, 일일이 그걸 다 논의하고 있으면 언제 법이 만들어진답니까?”

“맞소이다. 일본 놈들이 씨벌 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말입니다.”

무장투쟁 세력의 거두 중 하나였던 이범윤이 일본을 거론하며 안창호를 쳐다보았다.

“듣자 하니 합성협회에 소속된 법학자들이 대충은 밑그림을 그렸다던데······.”

“아, 예. 듣고 있습니다. 사령관님.”

이범윤이 팔짱을 끼며 그에게 물었다.

“일단은 이를 바탕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어떻습니까? 제헌의회에서 말입니다.”

“그 방법도 있겠군요.”

“혹시 협회에서 의논한 초안을 간략하게나마 보여 주실 수 있소이까?”

태평양을 건너 이곳까지 온 협회 관계자들이 미리 준비해 둔 초안들을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다.

모두 한글로 되어 있으며, 더불어 어려운 법률용어들도 없었기에.

공부를 별로 하지 않은 까막눈들도 이를 쉬이 해석할 수 있었다.

“헌법 제 1조 1항. 가칭 간도국은······.”

초안을 받아든 최재형이 살짝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간도국이라니······ 이거 너무 협조한 지명을 국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오?”

그럴 만도 했다.

최재형은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니까.

그는 러시아가 더 혼란스러워진다면, 언젠가 연해주 역시 그들의 손에서 분리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1916년 기준.

연해주에 거주하는 거주민 중 90% 이상이 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의 열풍을 타고 그들 역시 독립을 선언한다면 충분히 러시아의 품 안에서 따로 떨어져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에.

최재형은 가상으로 정한 국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 댔다.

“그래서 가칭이라는 말을 어두에 붙이지 않았습니까?”

이에 이준이 투덜대며 최재형을 쏘아붙였다.

이준은 1895년 대한제국 최초 법관 양성소를 졸업한 수재였기에, 이번 헌법 초안에 누구보다 많은 관여를 했다.

기존 일본의 헌법과는 다르게.

영미법을 기초로 대한제국의 사정에 맞게 변형했기에, 누구보다 초안에 자부심이 가득했는데.

최재형은 삐죽 입을 내밀며 살짝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계속해서 지어 보였다.

“가칭 간도국은, 입헌군주국이다. 간도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한테서 나온다라.”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입헌군주국이란 대목에서 다들 그런 것 같았다.

“방금 입헌군주국이라고 하였소?”

“그렇소만.”

“······.”

“······.”

다들 침묵한다.

불만을 무언의 제스처로 표현한 거다.

“왜 그런 표정을 하는 것이오? 그대들은 공화정을 지지하오?”

“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귀하께서는 현재의 대한제국처럼 전제정 정부 형태를 지지하십니까?”

“그, 그것을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그리 불만 가득한 표정을 계속하여 짓는 것이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홍범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입헌군주국이라면 왕이 존재하는 정치체계가 아닙니까?”

“그렇소만.”

“그렇다면, 내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말씀해 보십시오.”

홍범도가 한차례 침을 삼킨 후, 좌중들에 물었다.

“우리의 왕은 누구요?”

< 건국준비위원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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