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91화 (291/294)

< 참전으로 가는 길 (2) >

“황 소위.”

“예, 퍼싱 사령관님. 부르셨습니까?”

원 역사에서는 비극적으로 삶을 끝마쳤던 독립운동가 황기환.

하지만 박병준이 이강의 몸에 빙의한 후에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웨스트포인트에서 고급 군사교육을 받은 엘리트 미군 장교로서, 제2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판초 비야의 최근 행적 말이야.”

황기환은 현재 퍼싱 장군 밑에서 판초 비야 약탈군 소탕을 위해 복무하는 중이었다.

“예.”

“어느 정도까지 파악되었는가?”

퍼싱은 참모부에서 일하고 있는 황기환에게 최근 전황을 물었다.

그러자 황기환은 최근에 입수된 데이터를 퍼싱 장군에게 내밀며 이를 상세히 서술하기 시작했다.

“이주 전 행적까지 파악되었습니다.”

“그래?”

“예. 지난주, 판초 비야 목에 걸린 현상금이 오르자마자 관련 제보가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만 딱 부러지게 언급했지만, 판초 비야의 현상금 인상에는 사실 이강이 많이 개입되어 있었다.

21세기.

미국을 한바탕 흔들었던 오사마 빈 라덴의 최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테러범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거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이강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이강은 사적으로도 판초 비야의 목에 현상금을 걸어두어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때문일까?

판초 비야의 목에 걸린 돈이 이젠 백만 불이나 되었기에, 국경 인근에서 근근이 생활하던 멕시코인들은 물론이고.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인근에 머물고 있던 미국의 현상금 사냥꾼들도 이 소식을 듣자마자 국경지대로 향하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판초 비야의 진짜 소재지가 우리 손에 들어올 것이라 예상합니다.”

퍼싱은 판초 비야가 숨어 있었다는 예전 소재지들을 차례대로 훑어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강력한 적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해 가며 그동안 미군을 괴롭혔지만, 그 끝이 드디어 보이는 것 같았기에.

퍼싱은 미소를 머금으며 흡족한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돈이 최고야. 놈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100배 올리자마자 이리 정보들이 물밀 듯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

내전을 서둘러서 마무리해야 했다.

퍼싱 그리고 이번 멕시코 내전에 참가한 미군 병사들 역시도 앞으로 할 일이 많으니까.

‘대서양을 건너기 전에, 끝낼 수 있겠군.’

정치력이 없는 군인들은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지만.

퍼싱은 주변머리가 다른 군인들보다도 있는 사령관이었다.

세계대전에 곧 미국 역시 참전할 것이라 예상했기에, 퍼싱은 하루빨리 이 내전은 끝내고 싶어 했다.

늘어진다면, 자칫 유럽 총사령관 자리를 다른 놈에게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조금 무리하더라도 올해 안에 반군을 어떻게든 때려잡을 생각이었는데.

하늘이 그를 돕는지 워싱턴도 그렇고 퍼싱의 귀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강 역시도 그를 도와서 판초 비야 사냥에 한발 거드는 것 같았다.

“아, 자네. 대한제국, 아니지 대한합중국 출신이라고 했었나?”

“예.”

이강의 얼굴을 떠올리던 퍼싱.

그의 시선이 이내 한쪽으로 고정되었다.

지금 그의 앞에서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양인 부하에게로 쏠린 거다.

“비슷한 상황을 이전에도 경험했겠군.”

“······예.”

“그때는 어땠나?”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

“예. 일본 놈들이 작금의 우리처럼 의용군 장교들 목에 거액의 현상금을 걸고 밀정들을 파견했기 때문입니다.”

퍼싱은 탐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령관이었다.

그는 적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는 행동을 자주 하였는데.

이번에는 그의 앞에 있는 황기환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를 한번 가정할 생각이었다.

“경험자로서, 이러한 전술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맞불 전술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맞불 전술?”

“예. 밀정들의 목에 같은 금액의 현상금을 걸고, 그들을 끝까지 추격해 보복하는 형식이 유일한 대응 방법이라고 합니다.”

황기환은 교민사회에서 들었던 연해주, 간도 밀정 사건을 회상하며.

퍼싱에게 이를 보고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이 방법을 도입한 이후에는 의용군의 행적을 캐고 다니는 이들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흠.

듣고 보니 그럴싸한 대응이다.

퍼싱이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 역시도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하겠군.’

보복을 위해서 적진에서 활동할 수 있는 특수요원들 또한 있어야 하고.

“그렇군. 하긴. 돈에는 돈, 현상금에는 현상금으로 맞대응하는 편이 제격이긴 하지.”

멕시코 반군은 이런 두 가지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

그랬기에, 황기환이 내놓은 이번 전략을 써먹지는 못하리라.

퍼싱은 황기환의 답변이 만족스러운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관련 주제에 관해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아.”

퍼싱이 돌아가려다가 말고 고개를 돌렸다.

성격이 좀 괴팍하지만 일머리 하나만큼은 쓸 만했던 자신의 부하 얼굴을 떠올리며, 여느 동양인처럼 살짝은 소심한 황기환과 그자를 비교해 보았다.

“자네, 내 부관과 몇 번 이야기를 나눠 봤다고 했었지?”

“예.”

“어떤가? 패튼 소위는?”

퍼싱의 부관은 패튼이었다.

패튼은 황기환과 같은 웨스트포인트 출신.

같은 동기는 아니고 선배 기수였다.

“실행력 하나 만큼은 대단한······ 선배인 것 같습니다.”

“그래?”

퍼싱은 황기환의 모습을 잠시 살피다가 그에게 부족한 점 몇 가지를 발견했다.

‘이 왕자가 우리 가족을 구해 줬으니, 나 또한 이 왕자의 사람에게 선물을 줘야겠지.’

퍼싱이 과거 기억을 회상했다.

국경 인근으로 이사하며, 퍼싱의 가족 또한 터전을 옮겨야 했는데.

이때 이강은 퍼싱 가족들의 이사 선물로 휴대용 소화기를 건넸다.

때마침.

퍼싱이 부재중일 때 이사 온 새집에서 불이 나게 되었는데.

퍼싱의 가족은 이강의 선물 때문에 원 역사와는 다르게 그들은 무사히 퍼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퍼싱은 이를 회상하며, 황기환에게도 선물을 주고자 했다.

“판초 비야의 은거지를 찾아내는 대로 패튼 소위와 함께 그곳을 급습하게나.”

“선배님과 함께 말입니까?”

“그래.”

사람은 본래 환경에 따라서 성격도 변한다.

어떤 이와 친구로 지내느냐에 따라 후천적으로 성격이나 습관이 바뀌기도 하는데.

퍼싱은 군대에서 이런 변화를 꽤 많이 겪어 보았기에, 계속하여 그의 부관과 황기환을 엮어 주려고 했다.

“자네 말대로 실행력 하나는 끝내 주게 좋으니, 같이 다닌다면 배울 것이 있을 것일세.”

“······.”

“함께 이번 기회에, 판초 비야의 목을 내게 가지고 오게나. 내 기대하고 있겠네.”

* * *

12월이 막 되었을 때.

기쁜 소식이 남쪽에서 전해졌다.

『반군의 수괴 판초 비야, 드디어 사살되다.』

『소재 파악에만 무려 1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려.』

『우두머리가 제거된 멕시코 반군, 급속도로 와해.』

『잔존세력 빠르게 소탕 중. 더는 미국 국경을 넘나들지 못할 듯.』

판초 비야의 반군은 미군의 유럽 파병에 커다란 걸림돌이었다.

이것이 단번에 사라지니 영국과 프랑스는, 제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워싱턴과 뉴욕을 싸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오셨습니까? 제임스 대사.”

“아, 다프네 대사. 먼저 와 계셨군요.”

“누구와는 다르게 정해진 시각에 딱딱 맞춰서 오니까요.”

“흠흠. 그렇습니까?”

봐라.

하루가 멀게 영국과 프랑스의 대사가 우리 집에 방문하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 왕자님.”

“대한합중국 소속의 비행 훈련 교관들이 막 런던에 도착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제임스 영국대사가 고개를 까닥이며 내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에 옆에서 차를 홀짝이던 다프네 주미 프랑스 대사 역시도 질세라 입을 열기 시작했다.

“대한합중국의 저격여단 또한 프랑스에 상륙한 후 서부전선에 막 투입되었습니다. 아, 이것은 그들의 활약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다프네가 서류 하나를 내게 건넸다.

“이 왕자님께서는 진즉 이를 보고받으셨겠지만, 저희 측에서 조사한 자료 또한 정기적으로 받아보시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여 이것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간 원군 파병을 열심히 미루었지만, 이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선발대를 일부 떼어서 유럽으로 보냈다.

미군보다도 빠르게 말이다.

“이제 진정한 한 팀이 된 것 같군.”

나는 두 대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마음속에 걸리던 한 상대를 입 밖에 꺼냈다.

“아! 일본 측도 유럽에 파병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본래라면 금기시되어야 할 주제다.

대한합중국에 주적이라도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성과를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행동이니까.

“대한합중국의 비행 교관이 런던에 도착했을 때, 일본의 유럽 파병군 역시 대만 섬을 막 출발했다고 합니다.”

“기쁜 소식이긴 하지만 느림보 거북이도 아니고, 지중해까지 오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릴 것 같더군요.”

“맞습니다. 사이공(호찌민)에서 함선을 정비한다는 핑계로 한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여기 있는 제임스 대사의 말대로 내년 봄이 와야지 그들 역시 전장에 투입될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를 굳이 거론했다.

왜냐고?

그야 일본 파병군의 행동이 마치 폐급 관심병사를 보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농땡이를 어지간히 부려야지.’

영국과 프랑스.

양측의 속이 터질 만도 했다.

“더욱이 최전선이 아닌 후방에서 아군의 보급을 도와주는 선에서 활동할 듯하니······ 대한합중국과는 상반된 행보라고 평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비행 교관들은 몰라도 저격여단 병사들은 최전선에 배치되어서 독일군과 싸우게 될 테니까.

일본과는 달랐다.

“아, 추가 파병에 앞서서 한 가지를 다시 한번 약조 받고 싶네.”

대한합중국의 파병은 이제 시작이었다.

일본의 해상봉쇄를 핑계로 계속하여 유럽 파병을 늦추고는 있지만.

너무 시간을 질질 끌었다가는 일본처럼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에, 슬슬 군대를 보내야 했는데.

나는 몇 가지 조건을 사전에 언급하며, 이를 꼭 지켜 달라고 주문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대한합중국 군은 대한합중국 장교가 지휘할 것일세.”

“······.”

“······.”

그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작전지휘권이었다.

“일반 육군도 아니고 우리는 특수병을 파병하고 있으니까. 우리 부대는 우리가 알아서 지휘하겠네.”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시기.

막말로 아군의 또라이 지휘관 하나가 우리 병사들을 총알받이로 사용할 수도 있다.

비행 교관은 몰라도 저격병들은 최전선에서 활동해야 하기에, 나는 이를 강조하며 여차하면 군을 물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이 점을 어긴다면 그 즉시 서부전선에서 철수할 것일세.”

“예예.”

“알겠습니다.”

살짝은 떨떠름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레닌과 독일군 수뇌부의 밀담이 공식적으로 포착된 상황 속에서, 대한합중국 군의 합류는 정말이지 가뭄에 온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으니까.

사기가 축 처지는 시점에서, 아군이 증원되는 일은 정말이지 희소식이었다.

그러니 자존심이 좀 상해도 내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이겠지.

“왕자님께서는 미군이 언제쯤 대서양을 건너리라 예상하십니까?”

제임스 대사가 집무실 책상 한편에 퍼져 있는 신문을 곁눈질하더니, 다음 주제를 꺼냈다.

“판초 비야가 사살되었으니, 뭔가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까?”

“저 또한 그리 생각합니다.”

“그간 너무나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서 불안했는데 말입니다. 걸림돌이 하나 사라져서 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아, 이 왕자님. 그러고 보니 왕자님께서는 휴즈 대통령님과 긴밀하시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이 왕자님께서 휴즈 대통령께 참전의 당위성을 조금만 이야기해 주신다면 워싱턴 역시도 이른 시일 내에 우리 쪽으로 합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거, 이거.

각자 이십여 년씩 활동한 외교관들답게, 긴장의 끈을 좀 놓으니 슬슬 물밑에서 수작질하고 있네.

“자네들, 말하는 본새가 살짝 이상하군.”

“예?”

“마치 내게 맡겨 둔 듯이, 휴즈와의 대담을 강요하고 있군.”

나의 물음에 두 대사가 침묵했다.

“미국의 참전은 나 또한 환영할 일이네. 전황이 우리 쪽으로 확 기울 테니까 말이지.”

“······.”

“······.”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약조한 것은 대한합중국의 참전일세.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자네들의 몫이란 뜻이지.”

공짜로 부려 먹으려고 하지 말라고.

급하면 너희들이 휴즈에게 가서 딸랑거려야 하지 않겠어?

정 아니다 싶으면, 무언가를 더 주고 고용하던가 말이다.

“무언가 말이 와전된 모양입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나는 그들의 말을 끊으며 이리 말했다.

“때가 되면 알아서 파견하겠지.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닐세.”

“······.”

“······.”

“미군 파병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면, 내일이라도 워싱턴으로 가서 휴즈에게 한번 새로운 제안을 꺼내 보게나.”

< 참전으로 가는 길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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