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왕자가 미국갔다 안 돌아옴-292화 (292/294)

< 참전으로 가는 길 (3) >

“오늘은 좀 너무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지난주까지는 잘 타일러 보내시지 않으셨습니까? 저리 쌀쌀맞게 응대하여도 괜찮습니까?”

영국 대사 제임스 그리고 프랑스 대사 다프네.

이 둘을 다시금 우리 집에서 내쫓자, 최현우와 우현식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지를 남기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그간 대사들의 체면을 생각해서 좋게좋게 돌려보냈지만 저리들 말귀를 못 알아채니, 강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나는 목소리 톤을 조금 높이며 두 측근에게 선언했다.

“지난 선거를 통해 나는 휴즈에게 꽤 많은 쌓은 호의를 쌓았네.”

“그렇지요.”

“그 때문에 휴즈 대통령 또한 전하께 각별한 마음을 자주 전하지 않습니까? 아주 대놓고 말입니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호의는 다 생각이 있어서 쌓아 둔 것이네.”

다시 한번 목소리까지 높이며 다음 말을 강조했다.

“대한합중국이 필요할 때, 휴즈를 움직이기 위해서지.”

“전에도 한 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

나는 세계 전도를 바라보았다.

새롭게 대한합중국 영역이 추가된 신식 지도였는데, 그중 연해 지역 쪽을 가리키며 사할린 인근에 주둔 중인 일본군을 떠올렸다.

“나는 대한합중국에 미군 파병을 추진할 생각이네. 미군이 대한합중국에 잠시나마 주둔한다면, 일본 놈들이 함부로 우리를 침범하지는 못할 테니까.”

어떤 이는 이참에 일본군과 한판 뜨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권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전선이 두 개가 된다.’

더욱이, 미군이 오기 전에 훅 밀릴 수도 있다.

최악에는 그리 믿었던 미군이 파병을 안 올 수도 있고.

‘싸움은 타이밍이 중요하지.’

지금은 우리가 불리하다.

국제 사회의 관심도 못 받고, 국내 상황도 아직 안정되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최대한 억제력을 높여 놓을 생각이었다.

‘미군이 없으면 몰라도, 미군이 있는 상태에서 일본군이 도발을 거는 행위는 그야말로 자살 행동과도 같으니까.’

동맹을 외면할 수는 있어도.

자국군이 공격당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그게 바로 작금의 미국 군부의 입장일 테다.

“더욱이 일본의 기존 권력 또한 바뀔 가능성이 있으니, 변수는 최대한 줄여 놓는 것이 좋겠지.”

코딱지만 한 원정군을 유럽에 파병했다고, 일본 전역은 현재 들끓고 있었다.

여태껏 미국과 영국에 무한한 갑질을 당해 왔는지라, 일본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그로 인해 또다시 내각이 바뀔지도 몰랐기에 준비해야만 했다.

민주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지만, 반대로 군부가 권력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아, 그리고······ 지난번에 일러두었던 일 말일세.”

내 집무실을 막 떠나려는 두 측근을 바라보며, 내가 한 가지를 당부했다.

“예. 전하.”

“말씀하십시오.”

“건네준 보안 매뉴얼 말이야. 다들 잘 지키고 있는가?”

비싼 비용을 들여서 내 집무실에도 전화기 한 대를 추가로 설치했다.

이를 톡톡 가리키며 내가 씩 웃자, 최현우가 우현식은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이를 잘 행하고 있다 보고했다.

“전보는 물론이고,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중요내용은 암호화하여 내용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매달 암호문을 바꾸는 것 역시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보안은 생명이니 잘 지켜야 할 것이네.”

익문사 요원들 역시도 일부 인사들을 상대로 도·감청을 벌이고 있다.

다른 나라 정보기관들 역시도 이러한 짓을 진즉부터 시도하고 있을 터.

‘미국은 아직이지만, 영국은 예전부터 활동하고 있으니까. 조심할 필요가 있어.’

역으로 허위 정보를 풀어서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지만, 원론적으로는 방첩 활동에 신경 쓰는 것이 맞았기에 두 측근에게 이를 조심하라고 일렀다.

더불어 암호 체계를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고, 나아가 상대국들의 체계를 해독하는 요원들도 양성하라고도 권유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귀국을 하게 되면, 해외 전화를 엄청나게 자주 사용하게 될 테니까.’

하루 만에 양국을 오갈 수 있는 상업용 비행기도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은 오로지 국제전화뿐.

‘물론 국제전화 역시 아직 무리지만.’

비행기도, 태평양을 잇는 국제전화도, 믿을 만한 대리인도.

아직 하나도 구하지 못했기에.

당분간은 미국에 남아서 내가 사업을 진두지휘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익문사의 보고로는 독일과 레닌의 강화협상이 거의 끝났다곤 하는데.

영국 놈들이 조용하네.

지금쯤이면 무슨 일을 벌이고도 남을 타이밍인데 말이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창가로 이동하여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대서양 건너 런던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 * *

영국의 비밀정보국 본사 건물은 런던 시내 한복판에 있다.

다우닝가와도 꽤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본사 건물 옥상에 올라가면 가끔 총리가 출퇴근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제시.”

“예. 국장님.”

“미국 쪽 담당 요원들 말이야. 전부 출근했는가?”

“예. 전원 출근한 상태입니다.”

“모두 내 방으로 올라오라고 해.”

“예. 국장님.”

본사 건물 꼭대기 층에는 회의실과 함께 이곳의 기관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장의 집무실이 존재했다.

외근을 다녀왔다가 다시금 돌아온 맨스필드 스미스-커밍 국장은 비서에게 자신들의 부하들을 소환하라고 명령한 후 의자에 털썩 등을 대고 앉았다.

“부르셨습니까? 국장님.”

“그래. 새로이 들어온 따끈한 소식부터 보고하게.”

맨스필드는 살짝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책상에 다리를 걸쳐 놓은 채, 시선을 내리깔고 부하들을 바라보았던 거다.

“아, 아직은 없습니다.”

“뭐라?”

권위주의가 아직 만연한 시대.

맨스필드는 해당 기관의 최고 우두머리였던 국장이었기에 충분히 그리 행동해도 이 시대에는 별말이 없었다.

맨스필드는 실내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 대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호출된 부하들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없으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지.”

“······.”

“······.”

”휴즈의 약점을 알아내라고 명령한 지가 언제인데 나 참나!”

맨스필드는 심기가 불편했다.

왜냐고?

그야.

그제에 이어서 어제도, 오늘도.

다우닝가에 호출되어서다.

본래 어느 나라나 내리 갈굼이 있듯,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 역시도 시간이 나면 맨스필드 국장을 호출해서 들들 볶고 있었다.

이는 영국의 상황이 그만큼 많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모략질 밖에 남지 않았기에, 새 총리는 가장 최선두에 서 있는 비밀정보국을 채근했다.

이 때문에 MI6 요원들은 이번 달 들어서 집에도 귀가하지 못하고 혹사당하고 있었다.

“대답해 보게.”

“······.”

“······.”

“빌어먹을, 미국팀은 언제부터 밥만 축내는 돼지 새끼들만 득실하게 된 것인가? 젠장. 모두 나가게.”

맨스필드는 부하들을 물린 후, 자세를 고쳐 잡았다.

조바심이 났는지 그는 이후 다리를 덜덜 떨어 대며 혼잣말을 주절거리기 시작했다.

“양키들을 어서 움직여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

지난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이 체결되었다.

동부전선이 완전히 마무리되었다는 말.

독일은 추운 겨울이 닥쳐오는 와중에도 발칸반도를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까지 정리되면 남은 서부전선에 집중할 터.

파리까지 30km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마저도 밀려 버린다면?

그래서 프랑스가 덜컥 항복이라도 해 버린다면?

영국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현세에 강림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어찌어찌 독일과 강화협상을 잘 마무리한다고 해도.

그동안 쓴 전쟁 비용이 천문학적이기에, 국가 부도에 필적하는 상황이 곧 영국에 닥치는 것은 안 봐도 뻔했다.

‘빨갱이들이 저리도 활개를 쳐 대는데······ 진짜로 이번 전쟁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내각 존립은 물론이고 왕실 나아가 국가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이는 연방 해체로 이어질 거다.

이번 전쟁 기간에 대영제국의 식민지들은 크나큰 희생을 치렀다.

예를 들면 호주나 인도 같은 나라는 갈리폴리 같은 작전에서 이십만 명이나 사상자가 생길 정도로 피해가 극심했다.

전쟁이 끝났다면 자연스레 자치권 확대를 요구할 텐데.

본국의 힘이 약해지면 자치권 강화를 넘어서 독립까지 요구할 수도 있었기에, 영국의 고위층들은 간절했다.

이번 전쟁에서 꼭 이겨야만 했으니까.

“제시.”

“예. 국장님.”

“알렉스를 부르게.”

“예.”

미국 팀 중 맨스필드가 유일하게 신뢰하는 요원이 국장실에 다시금 발을 들였다.

“알렉스 요원.”

“예. 국장님.”

“이 왕자 저택 근처에서의 감청 활동은 어찌 되어 가고 있나?”

영국은 지금 모든 수를 동원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타국의 땅에서 동맹의 수장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 또한 도·감청을 하는 중이었다.

비단 이강만이 아니라 백악관에 거주하는 휴즈, 전직 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덧붙여 야당 대선후보였던 콕스와 윌슨까지.

아주 광범위하게 도·감청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일단 맨스필드는 이 중 이강만을 콕 집어서 언급했다.

“딱히 건질만 한 정보들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끙······.”

이강, 나아가 록펠러 정도만이 휴즈를 움직일 수 있다.

특히나 이강은 지난 선거 기간 동안 휴즈에게 큰 빚을 지게 했기에, 그의 발언 한마디면 어기적거리는 휴즈를 움직일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래서 무슨 약점이라도 있나 집중 감시를 해 왔는데.

허탕이라고 한다.

“왕자비 쪽은? 그쪽도 조용하다던가?”

“예. 최근 들어 대외활동을 자제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MI6의 제이슨 요원이 에델에 관한 최신 정보를 맨스필드에게 보고했다.

“최근 이 왕자비의 친언니 쪽 회선 또한 감청 중인데, 두 자매의 통화내용으로 보았을 때 이 왕자비 측이 최근에 유산한 것 같답니다.”

“아,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 와중에 그런 일이 발생하다니.”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서 저리 슬퍼하는 게 아니다.

유산하게 되면 몸을 추슬러야 하기에, 대외활동을 더욱더 자제하게 된다.

에델에게서 뭔가 건수 하나를 찾아내고 싶었는데.

저렇게 집안에만 박혀 있으면 딱히 약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기에, 맨스필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마른세수 자세를 취했다.

“국장님! 국장님, 국장님!”

“······!”

살짝 자포자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맨스필드.

그는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 쪽으로 시선을 옮긴 후, 살짝 게슴츠레한 눈빛을 지어 댔다.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인가?”

“구, 국장님! 조금 전 확보한 전문입니다.”

짐은 미국 쪽 도·감청을 담당하고 있는 또 다른 비밀정보국 요원이었다.

그는 맨스필드에게 이제 막 작성된 따끈따끈한 보고서를 건넸다.

“응?”

수신지는 미합중국 주재 독일대사관.

발신지는······.

독일 외무부다.

“치머만?”

“예. 독일의 외무부 장관이 미국에 보낸 암호문을 중간에서 가로챘습니다.”

거물급 인사가 관련된 암호문.

맨스필드는 반짝이는 눈으로 빠르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종이 쪼가리를 읽기 시작했다.

“전문을 해독한 결과, 최종 수신자는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관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독일과 멕시코의 동맹이라······ 참으로 재미난 제안이군.”

맨스필드는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지어 댔다.

“카이저만이 정신병자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외무부 장관 역시도 머저리였군.”

그는 잠시 눈을 감고 하늘에 계신 그의 신에게 기도하기도 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답해 주셨군. 감사합니다. 주님.”

이를 최초로 입수한 짐 역시도 기쁜 표정을 지어 대며 맞장구를 쳐 댔다.

“국장님. 이를 워싱턴에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맨스필드가 비릿한 미소를 지어 대며 한쪽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이 전문을 입수하는 순간, 미국의 참전은 확정일세. 더는 궁둥이를 붙이고 모른척할 수는 없을 테야.”

맨스필드는 간잡이 같은 휴즈의 얼굴을 떠올리며 주먹을 꽉 쥐어 댔다.

“만에 하나 휴즈가 참전을 주저한다면, 사전에 매수한 기자들을 통해 미국 언론에 관련 기사를 쏟아 내게.”

“지지난해, 국경 인근에서 벌어진 멕시코 반군의 약탈 사건처럼 말입니까?”

“그래.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휴즈는 그 사건으로 제법 큰 트라우마를 앓고 있다니까. 효과가 있을 것이네.”

이 역시도 도·감청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다.

영국 정부는 아주 광범위하게 적들은 물론이고 중립국, 동맹국들까지 모조리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기에.

이런 사소한 개인적인 일까지도 죄다 알고 있었다.

“이를 언급한다면, 그때가 떠올라서라도 빠르게 칼을 뽑을 것일세. 역사에, 더는 겁쟁이로 기록되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그때와 다르게 신속하게 움직이겠지.”

맨스필드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비밀정보국 요원들은 현재 다들 그의 말을 경청하느라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뭐하나?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고.”

“예.”

부하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 주문한 후, 맨스필드는 다우닝가로 떠날 준비를 하였다.

그의 지속 상관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와 대담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오랫동안 잠을 자던 사자가 긴 잠에서 일어나 초원을 활개 치고 다니겠군.”

맨스필드는 혼잣말하며 관련 서류를 챙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본사 건물 앞에 대기 중인 자동차에 올라탄 후, 바로 다우닝가로 향했다.

< 참전으로 가는 길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