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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4화 (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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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雲峴宮)

다음날 아침.

이선은 의관을 정제하고 어머니 영보당에게 문후를 드리러 내당(內堂)으로 갔다.

"어머님, 밤새 평안하셨는지요?"

열병을 앓기 전, 평소와 다름없는 아들의 태도에 영보당은 깜짝 놀랐다.

"완화군, 그대야말로 평안하오? 완쾌한 것이오?"

영보당은 아들이 왕자의 신분이었기에, 사적으로도 반드시 존대를 사용하고 깍듯이 예의를 갖췄다. 하지만 아들을 걱정하기로는 여느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예, 그러하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상태가 좋지 못했지만, 이제는 가뿐히 나았습니다."

영보당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시오? 만에 하나 그대가 잘못 되기라도 한다면······. 나는 어찌 이 세상을 살 수 있겠소!"

자신의 쾌유를 기뻐하다 못해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이선도 마음이 찡했다.

"어머님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불효를 용서하소서."

"불효라니, 당치도 않소. 그대가 건강한 것만으로 내게는 효도요."

"예, 명심하겠나이다."

"그래, 효도라 하였으니······. 주상께도 쾌유를 알려야 도리에 맞겠으나······."

영보당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한때 임금의 총애를 받던 영보당과 완화군 모자(母子)였지만, 지금은 궐 밖으로 내몰려 얼굴조차 보기 힘든 처지였다.

"곧 신년 하례가 멀지 않았사오니, 부왕을 뵐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완화군은 일부러 대범하게 말했다. 아무리 무시당하고 있는 완화군이라지만, 영종정경으로서 중요한 행사나 명절 때마다 임금을 알현했다.

"그랬으면 좋겠구려. 그런데 궐내의 분위기가 썩 좋지 못하다하니 걱정이오."

"궐내의 분위기라 하오시면?"

아들의 물음에 영보당은 급히 말을 돌렸다.

"아니오, 내가 괜한 소리를. 그대가 열병을 앓다 깨었으니, 보신을 할 음식을 준비해야겠구려. 삼계탕은 어떠하오? 내 직접 모처럼 솜씨를 발휘해보고 싶구려."

"어머님께서 해주시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감읍할 따름입니다."

영보당은 열병을 앓고 난 이후, 아들이 묘하게 어른스러워졌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 준비해보도록 해야겠소. 날이 추운데 돌아다니지 말고, 방으로 돌아가 쉬시오. 병은 다 나았다 싶었을 때가 조심해야할 때요."

"어머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후, 이선으로서의 첫 대면은 나쁘지 않았군.'

완화군으로서의 기억이 생생히 남아있었다. 이선은 왕실 종친으로서의 엄격한 예법을 모두 체화(體化)해두고 있었다. 이는 왕자로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수단이었다.

이선은 내당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왕의 장자요, 임금이 한때 총애했던 아들의 저택답게 크고 넓었다. 임금이 은자 2천 냥을 하사하여 한성 중심부에 축조한 저택이었다.

이선이 방에 들어가니, 청지기가 찾아왔다.

"대감, 환후는 어떠하십니까? 제가 듣기로 쾌차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보다시피 좋소."

청지기는 30대의 사내로, 외모나 행동거지가 명민해보였다.

'안영흠, 완화궁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 현재의 내가 그나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내.'

완화군의 자산은 저택으로만 구성된 게 아니었다. 완화군방(完和君房)이라 하여, 완화궁 소속의 궁방전(宮房田)이 있었다.

궁방전은 왕자나 공주 등 왕족에게 내려지는 토지로, 수조권을 갖고 면세와 각종 혜택을 받는다.

임금이 완화군을 딱하게 여겨 상당히 많은 토지와 재산을 내렸기에, 가진 재산은 넉넉했다.

'조선 후기로 가면 궁방전의 폐해가 커지지. 갑오개혁 때 없어지고. 개혁을 하면 언젠가 모두 척결해야할 대상이지만, 일단 지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 자금으로 여겨야겠군.'

"천만다행입니다. 저도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릅니다."

"걱정해줬다니 고맙구려."

"제 걱정이야 뭐가 대수겠습니까마는, 운현궁이 크게 걱정했으니까요. 대원위 합하께서 대감에 거는 기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이 친구는 본래 운현궁의 사람이지.'

안영흠(安榮欽)은 본래 잡과(雜科) 출신의 중인으로, 운현궁의 추천을 받아 완화궁에 오게 되었다.

수완이 좋은 안영흠은 완화궁의 재산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원군의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인 안영흠은 궁방전 소속의 농민들을 쥐어짜지 않으면서도, 완화궁의 재산을 불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영보당과 완화군도 안영흠을 신뢰했다.

"할아버님과 할머님께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송구할 따름이오."

"쾌차하셨으니 되었지요. 이는 운현궁의 기쁨이자, 왕실의 홍복(洪福)이며, 열성조(列聖朝)의 보살피심입니다."

안영흠의 지나친 아부에, 이선이 쓰게 웃었다.

"왕실의 홍복과 열성조의 보살핌이라니, 너무 과한 표현이 아닌가 싶소. 누가 들으면 오해하기 좋겠군."

"지금 여긴 저와 대감밖에 없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왜 이래? 날 떠보려는 건가?'

"이 나라에는 엄연히 성상(聖上)과 세자께서 계신데, 일개 종친의 쾌유를 축하하는 말로는 지나치군."

이선은 일부러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대감께서 어찌 일개 종친이십니까? 대감은 성상의 장자이시자, 세자의 하나뿐인 형님이십니다."

"그러니 더욱 말조심을 해야지. 중궁전이 완화궁을 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잊은 거요?"

이선의 단호한 대답에 안영흠은 내심 놀랐다.

"그 점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 중궁전은 완화궁을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러고 보니, 어머님께서도 궐내의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하였는데······."

안영흠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지금 궁궐은 비상상황입니다. 동궁전에 마마신이 오셨답니다."

마마(媽媽). 즉 천연두. 19세기 말,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이었다.

전염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천연두가 한번 휩쓸었다하면, 그 고을은 남아나지 못했다.

조선 자체의 치료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근대적 종두법(種痘法)이 아직 조선에 들어오지 않아, 천연두가 돌면 희생이 컸다.

궁궐에서도 천연두가 도는 경우가 있는데, 올 겨울에는 세자에게 전염된 모양이었다.

"허어, 그거 큰일이구려. 양전(兩殿, 임금과 중전)께서 심려가 크시겠군."

"그러니 더욱 운현궁이 대감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겠습니까? 왕실의 대통이 달린 일이오니······."

이선은 안영흠이 하려는 말을 눈치 챘다. 만약 세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남아있는 왕자는 완화군과 의화군(義和君) 이강 둘뿐이다. 둘 다 서자이니, 그 중에서 장자인 완화군이 대통을 이을 수 있었다.

"말을 삼가시게! 내가 사사로이는 성상의 장자이자 세자의 형이 된다고는 하지만, 신하라는 입장은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찌 내 앞에서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가!"

이선은 상을 내려치며 역정을 냈다. 안영흠은 순간 움찔했지만, 일부러 웃는 낯으로 답했다.

"대감께서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만큼 대원위께서 대감을 아끼신다는 말인데······."

"저하께서는 반드시 쾌차하실 것이오. 헛된 생각 품지 말고 그대가 할 일이나 하시오. 방금 한 말은 감히 어디서 내뱉지도 말고."

'세자 지금 안 죽는다. 김칫국 처마시지 말고 때를 기다려라.'

역사를 알고 있는 이선으로선 세자 척, 즉 순종의 수명이 한참 남아있다는 걸 인지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예, 송구하옵니다. 운현궁에서 대감을 부르신다는 분부를 전하려다가 말이 헛나왔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예. 양주 별장에 계시다가, 대감의 환후를 듣고 놀라 귀경하셨습니다. 직접 완화궁으로 오고 싶어 하셨습니다만,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다보니······."

세자도 아픈 상황에서 대원군이 완화궁을 찾으면 뒷말이 나올 게 뻔했다. 완화군이 안부 차 대원군을 찾는 게 모양새가 좋을 터였다.

"알겠소. 곧 차비하도록 해야겠군."

"당장 오라는 말씀은 아니십니다. 이번 달 스물 하루가 대원위 합하의 생신이시오니, 그때 운현궁으로 가시지요."

음력 12월 21일은 흥선대원군의 생일이었다.

"아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구려. 그때 찾아뵙도록 해야겠군. 일깨워줘서 고맙소."

"예, 그럼 소인은 물러나겠습니다."

안영흠은 완화군의 방에서 물러나면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치와는 일절 무관한 입장을 보이던 완화군이었다. 어찌 보면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데 열병을 앓고 나더니 달라졌다. 완화궁과 중궁전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지적하고, 임금과 세자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어 처신을 분명히 하지 않는가.

완화군이 정말 정색하기로 작정을 했다면, 안영흠의 말을 역모라고 몰아붙여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끊어버린 것이다.

'드디어 왕의 장자라는 위치에 대한 자각을 갖게 된 건가? 그렇다면 운현궁에서 기뻐할 일이로군. 어쩌면 내 자신에게도.'

안영흠은 씩 웃었다.

12월 21일.

대원군의 60번째 생일, 이순(耳順)을 맞이하여 종친들이 운현궁으로 모여 들었다.

하지만 정권에서 물러난 지 6년이 지난 대원군의 실세(失勢)를 반영하듯, 운현궁을 찾아온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올해는 그럴만한 명분도 있었다.

궁중에 우환이 있으니, 생일이나 기념할 때인가.

대원군도 그런 여론을 의식하여, 주연을 아주 간소하게 차리고 가까운 종친들만 불렀다.

대원군의 맏손자인 완화군도 초대를 받은 이 중의 하나였다.

이선은 예물을 준비해서, 안영흠과 함께 운현궁을 찾았다.

"오, 완화군 오셨소! 아프다고 해서 걱정했었소. 쾌유해서 다행이오."

임금의 형인 지종정경(知宗正卿) 이재면(李載冕)이 이선을 맞이했다.

이재면과 이선은 백부와 조카 사이지만, 품계만 놓고 보면 왕자인 이선은 무품인 영종정경이고 종친인 이재면은 종1품 지종정경으로 오히려 이선이 더 높았다. 그렇기에 이재면은 이선에게 늘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대했다.

"감사합니다. 백부님께서 걱정해주신 덕에 깨끗이 나았습니다."

완화군의 관례를 주관했던 것도 이재면이었고, 대원군이 완화군을 총애하는 걸 잘 알기에 두 사람의 사이는 좋은 편이었다.

"할아버님께서는 두루 평안하신지요?"

"평안하시오. 완화군을 많이 보고 싶어하셨소. 함께 뵈러 갑시다."

이재면은 이선을 데리고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으로 향했다.

"아버님, 재면이옵니다. 완화군이 운현궁에 이르러 문후를 여쭙나이다."

"오, 그래! 어서 안으로 들라."

사랑채 안에서 카랑카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선은 이재면의 안내를 받아 사랑채 안으로 들어가, 대원군을 보았다.

자리에 앉아있는 대원군은 체격은 작지만, 특유의 형형한 눈빛과 꼿꼿한 자세로 엄청난 위압감을 주었다. 흰 수염과 주름진 얼굴은 예순 살이 된 늙음을 속절없이 보여줬지만, 형형한 눈빛만큼은 젊은이 이상의 야망을 느끼게 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

설명이 필요 없는, 조선말 최고의 풍운아였다.

'그리고 내게는,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아버님, 선이옵니다. 기체후일향만강(氣體候一向萬康)하오신지요?"

"허허, 뭐 그리 예의를 차리누. 예전처럼 편히 대하자꾸나. 어서 가까이 오너라, 우리 손자."

"예, 할아버님."

대원군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따뜻한 애정이 넘치는 말로 이선을 대했다.

장남 재면은 물론이오, 후일 임금이 될 차남 재황도 엄격히 키운 흥선군이었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차남과의 관계는 최악이었고, 장남에게도 아버지로서의 존경은 받을지언정 사랑은 받지 못했다.

그만큼 그 자신이 자식에게 냉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자에게만은 달랐다.

완화군의 나이 두세 살 때부터 운현궁으로 데려와 양육을 맡았던 대원군으로서는, 손자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차남과 며느리에 대한 실망과 미움이 강할수록, 손자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더욱 커져갔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손자에 대한 할아버지의 무한한 사랑만은 아니었다.

이순의 나이에도 권력과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한 대원군에게, 맏손자 완화군은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 옛날, 차남 이재황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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