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8화 (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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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에서 과학으로

경진년(庚辰年) 새해가 밝았다.

이미 양력으로는 1880년 2월 10일이지만, 음력을 쓰는 조선은 이제 새해가 된 것이다.

한양 사람들 모두가 새해의 시작을 반갑게 맞이했지만, 완화궁은 그렇지 못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선 혼자만 그랬다.

'경진년에 죽을 운명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이선은 겉으로는 태연히 운현궁에 문안 인사를 올리러 갔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경진년은 할아버님께옵서 태어난 해로, 이제 한 갑자가 돌아와 회갑이 되셨으니 크게 경축할 일입니다. 이에 소손이 축하를 드리옵나이다."

1820년생인 대원군은 올해로 환갑이었다.

"고맙구나, 완화군. 역시 내 손자 밖에 없구나."

대원군은 기특한 듯이 완화군을 치하하고, 마치 선물을 주겠다는 듯 안채인 노락당(老樂堂)으로 불러들였다.

"네가 부탁한 일을 해주었다."

"감사하옵니다, 할아버님."

대원군의 손짓에, 심복 천의연(千喜然)이 청년 한 사람을 데려왔다.

"앞으로 네 신변을 경호할 자다."

"장무영이라 하옵니다."

스물 대여섯쯤 되었을까, 기골이 장대하고 민첩해 보이는 것이 딱 무골(武骨)이었다.

"운현궁 식객으로 몇 년 지켜보았는데, 제법 무예가 뛰어나고 예의가 바르니 너를 경호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독자적으로 무인을 구할 수 없는 이선은 운현궁의 힘을 빌리기로 했고, 대원군이 적당한 인물을 물색했다. 운현궁에는 여전히 대원군을 따르고자 오는 이들이 많았는데, 장무영(張武影) 또한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림자 무인이라. 대놓고 가명 같은데······. 뭐, 아무려면 상관없지.'

장무영의 이름이 독특해서 본명이 아니라는 건 짐작이 갔지만, 이선은 과거사를 묻지 않기로 했다.

"무영은 비록 무과에 응하진 않았으나, 그 재주는 무관이 되고도 남음에 있다. 무영, 네가 완화군을 잘 모시면 무과에 급제한 것 이상으로 나라에 기여하는 것이리라."

"예! 소인은 대원위 합하의 명을 받들어, 완화군 대감을 충심으로 모실 것입니다."

"무영, 너는 이제 완화궁의 사람이다. 오직 완화군을 주군으로 섬기고, 그 명을 따라라. 네 목숨을 바쳐 완화군을 지켜야할 것이다."

대원군의 말에 장무영이 무릎을 꿇고 완화군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소인 장무영, 완화군 대감께 이 생명을 다해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옵니다."

'대원군과 어떤 관계이기에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뭐, 좋다. 충직한 친구 같아 보이니. 앞으로 운현궁에 대한 충성심을 내게 돌리게 하면 된다.'

"고맙소, 장 공. 앞으로 잘 부탁하오."

완화군의 높임말에, 장무영이 급히 손을 내저으며 머리를 숙였다.

"공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하인처럼 편히 대해주십시오."

"그대는 목숨을 맡긴이인데, 내 어찌 함부로 하인으로 대하겠소? 나는 그대를 동지의 예로 대할 것이오."

지체 높은 왕자가 일개 백성인 자신에게 동지의 예를 갖춘다 말하니, 장무영은 그 한마디에 감격하고야 말았다.

"황공할 따름입니다. 기필코 대감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말 한마디로 장무영의 마음을 사로잡는 완화군의 용인술에, 대원군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왕재의 자질이 있다. 병약하여 제 어미의 치마폭도 벗어나지 못하는 세자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대원군의 과대평가와 달리, 이선이 일부러 용인술을 보인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감각이 남아있어서 신분과 무관하게 사람들을 정중히 대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선이 의식하지 못하다 뿐이지, 그 자체로 훌륭한 자산이었다. 까마득하게 지체 높으신 왕자가 아랫사람에게 말 한마디라도 정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만으로도, 신분제에 익숙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크나큰 감동이었던 것이다.

"부탁대로 해주었다마는, 네가 호위무사가 필요하다는 건 혹여 신변에 위협이 갈 우려라도 있다는 것이냐?"

"그건 아니옵니다. 다만 소손이 앞으로 출타가 잦아질 듯싶어, 가까이에 믿을만한 호위무사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대원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화군이 부탁하지 않더라도, 아끼는 손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얼마든지 도울 용의가 있었다.

"그래, 알겠다. 언제든 부탁할 일이 있으면 운현궁에 연락하거라. 내가 부재하더라도 운현궁의 사람들이 힘껏 너를 도울 것이다."

"감사합니다, 할아버님. 그럼 이왕 부탁하는 김에, 운현궁의 정보력을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운현궁의 심복인 '천하장안'으로 대표되는, 대원군의 눈과 귀가 곳곳에 있었다. 이들을 통해 대원군은 전국의 정보를 수집하고, 정치공작을 획책했다. 단순히 뒷방 늙은이로 물러나 있던 게 아니었다.

"호오, 무슨 일에 필요하느냐?"

정보원이 필요하다는 말에, 대원군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람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냐?"

"지석영이란 자이옵니다. 의원인데, 한양 어딘가에 사는 것으로 압니다."

"의원?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는 것이냐?"

"그런 건 아니옵고, 예방을 좀 하려고 합니다."

"예방이라면, 어떤?"

"용한 의원이라 들어 병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사옵니다."

이선은 종두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할 생각은 없었다. 대원군도 더 이상 묻지 않고, 천희연을 불렀다.

"천서방, 한양 어딘가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지석영이란 자를 수소문해서 완화궁으로 보내게."

"명을 받듭니다!"

"천하장안이 찾으면 못 찾을 위인이 없지. 찾는데로 완화궁으로 보내도록 하겠다."

"매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할아버님."

이선은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며칠 뒤.

안영흠이 의원 한 사람을 데리고 완화궁으로 왔다.

"완화군 대감, 운현궁에서 찾으시는 이를 데려왔나이다."

"오, 어서 들어오라 하시오."

짧은 수염을 기른,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사랑채로 들어왔다.

"삼가 완화군 대감을 뵙사옵니다."

"어서 오시오. 그대가 지석영 선생이오?"

"선생이라니, 가당치도 않으십니다. 소생은 그저 일개 서생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석영은 그해 스물여섯으로, 한양의 가난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지석영의 아버지는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지만, 양반이라는 체면에 차마 의원을 개업하진 못했다. 대신 의원들과 교류를 했는데, 총명한 넷째 석영을 한의사 박영선(朴永善)의 제자로 보내서 한의학을 배우도록 했다.

"내가 듣기로, 선생의 의술 실력이 뛰어나다 들었소."

"송구하오나 잘못된 소문을 들으신 듯합니다. 소생은 정식 의원도 아닙니다."

지석영은 조심했다. 하필 강경한 배외주의자로 유명한 운현궁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지석영은 지레 놀랐던 것이다. 지석영이 일본인으로부터 서양의학인 종두법을 배웠기에, 대원군은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었다.

"겸손도 지나치면 오만이 되는 법이오. 나는 선생이 서양의 종두법에 관심이 많고, 일부러 부산까지 가서 종두법을 배웠다고 들었소."

"그걸 어떻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지석영을 보면서, 이선은 빙긋 웃었다.

"운현궁의 정보력을 우습게 보지 마시오."

물론 지석영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던 건 운현궁이 아니라, 이선 자신이었다.

'매번 어떻게 알았냐고 설명하기 귀찮으니 앞으로 어지간하면 다 운현궁의 정보력이라고 하자.'

"요, 용서해주십시오! 소생이 왜인으로부터 양인의 의술을 배운 것은 사실이나, 이건 어디까지나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한 일이니······."

지석영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부산까지 가서 일본인으로부터 나라에서 금하는 '서학(西學)'을 배웠다고 공격받을까 조마조마했던 지석영이었다.

"선생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려. 나는 선생을 탓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치하하려고 부른 것이오."

"예?"

"선생의 말대로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종두법을 배운 것이 아니오? 이는 나라에서도 못하는 일인데, 선생이 직접 나서서 백성들을 위해 배웠다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 아닙니까."

"화, 황공하옵니다."

완화군의 치하에, 지석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작년에 두창이 전국에 돌아 걱정이 컸소. 선생도 알겠지만, 세자궁께서도 마마에 걸렸다가 회복하셨고. 하지만 이는 궁중 어의들의 특별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소. 민가의 어린 아이들은 무수히 많이 죽었다고 들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이를 극복할 수 없다면, 어찌 나라라 할 수 있겠소?"

완화군의 말은, 지석영의 심금을 울렸다.

"실로 군 대감의 말씀이 지당하시옵니다. 사실 제 조카딸도 작년에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습니다."

"저런, 안타까운 일이오."

"소생은 본래 두창의 치료에 매진하였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종두법에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이 그간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내게 말해주시겠소?"

지석영이 지난 일을 회고했다.

본래 서양의학에 흥미를 갖고 있고, 천연두의 해결에 고심했던 지석영이었다. 지석영의 스승인 박영선이 1876년 수신사(修信使)를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는데, 지석영은 스승에게 간청하여 종두귀감(種痘龜鑑)이라는 종두법 의학서를 일본에서 입수했다. 지석영은 스승과 함께 종두법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1879년, 전국에 천연두가 크게 유행했다. 지석영의 조카딸까지 죽자, 그는 더욱 더 종두법의 보급을 절감했다.

10월, 지석영은 개항장인 부산에 일본인이 서양식 병원인 제생의원을 개원했다는 말을 듣고, 20일을 걸어서 찾아가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 열의에 감복한 일본인 원장은 종두법을 가르쳐주고, 지석영은 대신 부산 거류 일본인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쳤다.

두 달간 종두법을 배운 지석영은 서양 의학의 우수성에 감탄했고, 서양 의학에 도입을 서둘러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2월, 지석영은 종두법을 배워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충주 처가에 들렀다. 지석영은 미심쩍어하는 장인을 설득해 두 살 난 처남에게 종두법을 시술하여 성공했다.

성공을 확인한 지석영은 그 마을 어린이 40여 명에게 접종을 하였는데, 이 또한 성공적이었다. 조선인에게 최초로 종두법이 시술된 것이었다.

'천연두가 신의 영역을 벗어나 사람의 영역으로, 종교의 영역에서 의학의 영역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주술에서 과학으로! 이게 바로 근대화지!'

지석영의 여정은 단지 서울에서 부산을 왕복한 것이었으나, 전근대에서 근대로 발돋움하는 계기였다.

궁궐에서야 어의가 있어 전통의학의 한계 내에서도 천연두를 극복하려 하였지만, 민간에서는 어림도 없었다.

천연두는 무수히 많은 희생자를 냈다. 민간에서는 그저 '마마신'으로 불리는 천연두를 신과 종교의 영역으로 두려워했을 뿐, 감히 사람이 나서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무당이 '마마굿'을 하며 마마신이 물러나기를 빌고 또 빌 뿐이었다.

지석영이 1880년에 종두장을 만들어 종두법을 접종하자, 가장 크게 저항했던 이들이 바로 무당이었다. 무당들은 지석영에게 서양귀신이 씌었다면서 마마신에게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주했다.

무당들의 말에 동조하는 백성들도 많았다. 백성들 사이에 '양놈들이 조선 사람을 우둔한 소로 만들기 위해 우두를 접종한다'라는 소문이 퍼졌고, 종두장과 지석영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1882년 임오군란이 발발하자, 지석영은 멋대로 서양 의학을 배운 죄로 체포령이 떨어졌다. 지석영은 가까스로 체포를 면했으나, 종두장은 파괴되어 불타버렸다.

천연두뿐만 아니었다. 호열자라 불리는 콜레라도 조선을 번번이 괴롭혔는데, 이를 위해선 위생이 필수였다. 하지만 백성들은 대한제국의 위생 정책에 반발했고, 역시나 무당을 찾아 굿으로 해결하려 했다.

근대화와 위생, 계몽은 필연적으로 함께 가야 할 존재였다.

'계몽이 필요하다, 계몽이. 그러려면 나와 같은 왕족이 앞장 설 필요가 있겠지.'

"참으로 훌륭하오!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조정에서 선생의 배움을 높이 쓸 날이 올 것이오. 선생과 같은 선각자의 노력이 있어, 이 땅에서 두창이 모두 사라질 날이 올 것이오. 이는 내가 보증하오."

천연두가 완전히 사라진 현대를 살았던 기억이 있는 이선으로선, 현대 의학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대감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석영은 진심으로 감격한 듯 했다. 지금껏 아무도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왜놈으로부터 양놈의 기술을 배운다'라고 지탄받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엄한 왕족이 나서서 자신의 선택을 높이 평가하고 보증까지 한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두묘는 얼마나 남았소?"

두묘란, 천연두의 예방으로 쓰이는 소에서 뽑아낸 면역물질을 말한다.

"300명 분량이 있었는데, 이미 충주에서 40명분의 접종을 해서 앞으로 260명 정도 접종할 양이 있습니다. 이는 한양에서 하려고 합니다."

"좋소. 그럼 일단 나부터 접종합시다."

이선은 조선의 의학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기꺼이 실험체가 되어 접종을 받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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