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9화 (19/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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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무역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북양대신께서 보내신 사람을 몰라보고······."

관리가 당황해하며 고개를 조아리자, 상인과 건달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쳐다보았다.

"저들이 밀무역을 운운하는데, 보다시피 우리는 북양대신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고려홍삼을 들여오고 있소. 저들이 홍삼무역을 한다면, 이야말로 금령을 위반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이선의 말이 통역을 통해 전해지자, 상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대인, 대인!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부디 관대하게 처분해주십시오!"

상인이 이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자, 관리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도대에 보고하여 이 자들의 불법 여부를 확인해보겠습니다."

잡아간다 한들, 상인과 유착 관계가 있는 도대에서 제대로 된 조사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오, 내 어찌 도대를 번거롭게 하겠소? 내 선에서 처리하리다."

"이건 천진 도대의 관할이니······."

"보다시피, 나는 북양대신과 직접 통하는 사람이오. 개항장인 천진에서 불법이 있었다면, 대신께서 관할해야할 일. 내가 먼저 조사해보고, 별일 없으면 잘 마무리하도록 하겠소."

엄밀히 말하면 이선에게 감찰권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지만, 이홍장 이름 석자에 관리는 지레 겁을 먹고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일단 조사를 해야······."

"내가 대신께 말씀 잘 드리겠소. 천진 도대의 관리들은 직무정신이 아주 투철하더라고."

이선이 다시 특허장에 적힌 이름을 톡톡 건드리자, 관리가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노고가 많으십니다. 그럼 소인들은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관리는 병사들을 거느리고 철수했다.

이선은 상인과 건달들을 점포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점포의 문을 닫고, 장무영과 무장한 송상 일꾼들을 세워놓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래, 너희 혼자 홍삼을 들여온 게 아닐 터. 너희가 통하는 조선 상인은 누구더냐?"

"그, 그것이······."

제법 위세를 떨치던 상인은 언제 그랬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더듬었다.

"이야기를 하는 게 피차 힘을 덜 쓰지 않을까?"

철컥!

이선의 말에 장무영이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히, 히익! 그게······."

그 순간 송 객주가 달려와 이선에게 고했다.

"군 대감, 대감을 뵙기를 희망하는 자가 있습니다."

"누구라던가요?"

"이 청국 상인과 동업자라는군요."

"아, 진짜 대장이 왔나보군. 들어오라 하세요."

잠시 후, 변발에 호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점포 안으로 들어왔다. 사내는 허리를 굽히며 사죄를 청했다.

"대인을 몰라 뵙고 무례를 저지른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전형적인 청국 상인의 모습이었지만, 그의 입에선 뜻밖에도 유창한 조선어가 흘러나왔다.

"허, 조선 사람이오?"

"그렇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과 마찬가지로."

"조선 사람이 어찌하여 청국에서 변발 호복까지 하며 상인 노릇을 하는 거요? 아니, 상인이라기보다는 거간꾼인가?"

"이 역시 여기 계신 분들과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똑같이 중국에 장사하러 온 거 아니냐는 지적에, 안영흠이 꾸짖었다.

"우리는 북양대신의 허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무역할 권리를 얻었다! 어찌 너희와 같은 무리와 같겠느냐?"

"저희 또한 천진 도대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모시는 뒷배가 더 강하다고 해서, 저희만 나쁜 놈이 되는 게 아닙니다."

물러서지 않고 나름대로 논리를 전개하는 상인의 태도에, 이선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보아하니 그동안 도대의 후원을 받아 제법 장사를 잘 했나보군. 그런데 이를 어찌한다? 이제 이 지역의 홍삼무역은 북양대신이 직접 관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사내는 순순히 열세를 인정했다.

"대신께서는 직례총독이시고, 천진 도대보다 한참 위에 계신 분이니 어쩔 수가 없지요. 하지만 직례성 밖의 일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요? 밀무역을 천진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하고 있단 말인가?"

이선은 뜻밖이다 싶어 사내를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제가 이 정보를 알려주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대인을 몰라본 저희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그건 관대히 잊어주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둘째, 저희와 힘을 합치시지요."

이선은 냉소 흘렸다.

"내가 그래야 할 이유라도 있소?"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지금까지 설득하는 입장이었던 이선은, 설득 받는 입장이 되자 흥미로웠다.

"좋소. 말해보시오."

"저희는 조선에서 홍삼을 싣고 와, 천진뿐만 아니라 내륙에서도 장사를 합니다. 혹시 청국에서 가장 홍삼 수요가 많은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이선도 거기까지는 잘 몰랐다. 그를 대신해 송 객주가 답했다.

"강남, 그 중에서도 강서성(江西省)으로 알고 있소."

"맞습니다. 저도 조사해보니 송상에서 오셨다지요. 역시 홍삼은 송상이 최고지요."

"그렇게 말하는 그대는 누구요?"

사내는 고개를 조아렸다.

"소인은 장씨 성을 쓰고 있습니다. 장가(張家)라고 부르십시오."

"청국인으로 위장해서?"

"홍삼 밀수든 내륙 무역이든 조선인에게 금지된 일이기에, 청국인의 신분으로 한 것이지요."

"아무튼 계속해보시오. 강서성이 가장 수요가 많은 이유가 뭐요?"

"강서성 임강부(臨江府) 장수진(樟樹鎭)은 중국 전역에서 약재가 모여드는 곳입니다. 장수진 약상은 약재 가공기술이 뛰어나고, 장강에 접해있어 수운 교통이 편리하여 전국에서 객상들이 모여듭니다. 거기서 장강을 따라 호북, 호남, 사천 등으로 팔려나가지요."

"들어봤습니다. 장수진은 이른바 약도(藥道)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송 객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놀랍구만. 이 시대에 조선 상인이 그렇게 중국 내륙 깊숙이까지 밀무역을 하고 있었다고?'

이선은 내심 놀라워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냉철하게 말했다.

"짐작이 가는군. 고려홍삼은 청국에서 아편중독에서 회복되는 최고의 특효약으로 여기고 있지. 아편은 특히 개항장이 많은 강남 일대에서 많이 퍼져있을 터이고, 그에 따른 수요는 강남이 더 많겠군?"

"영명하십니다. 어린 도련님께서 이토록 총명하시고, 북양대신이 뒤를 봐주고 있다하니 아무래도 귀한 분이신가 봅니다."

"말을 삼가라! 네놈이 함부로 신분을 논할 분이 아니시다."

안영흠이 장가를 꾸짖자, 이선이 손을 들었다.

"보다시피 나는 조선에서 송상과 손을 잡고 있고, 청국에서는 북양대신의 후원을 받고 있지. 그러니 그대들도 내 도움을받으면서 내륙으로 무역을 하고 싶으시다, 이건가?"

"역시 현명하십니다. 언제나 홍삼 물량 대는 게 큰 문제인데, 송상에서 협조해주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또한 중국 내륙으로 진입하는 건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지만, 북양대신의 특허장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중당은 직례총독 북양대신으로 직례성을 관할하고, 상해 이북의 개항장을 관리할 권한이 있네. 내륙 무역은 권한 밖의 문제야."

"그런 건 중요치가 않습니다. 북양대신이 이 나라 최고의 실력자라는 건 촌의 관리들조차 다 압니다. 북양대신이 뒷배를 봐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일은 수월해질 겁니다."

내륙 무역을 하려면, 청국 관리가 날인하여 발급하는 호조가 없으면 상거래 행위를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장가는 천진 도대와 관리들을 매수해 호조를 발급 받은 모양이었다.

말기에 접어든 청나라가 얼마나 부패한 나라인지, 이선은 책으로 배워 알고 있었다. 장가는 그걸 경험으로 배워 아는 자였다.

"그래서, 내가 당신들을 도와주면, 뭘 얻나?"

"발생하는 이문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천진에서 7배의 이문을 얻는다면, 내륙에서는 그 곱절도 가져갈 수 있습니다."

"계산이 안 맞는데. 우리가 천진에서 합법적으로 7배를 얻는다고 치면, 그 이문은 고스란히 다 우리가 가질 수 있네. 내륙으로 들어가서 그 두 배를 얻는다 한들, 절반을 받으면 그게 그거 아닌가?"

이선은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북양대신이 뒤를 봐준다 하도 내륙 무역은 불법이야. 그 위험부담까지 감수하면서 해야 할 이유가 없는 듯한데?"

"최소 곱절이라는 겁니다. 강서가 아니라 호북이나 사천까지 들어가면 몇 곱절은 더 받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간과 비용, 위험부담이 더 커지는 일 아닌가.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난 천진에서 온전히 7배만 받아도 만족하오."

이선의 논리적인 말에, 장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장가는 이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내륙무역의 가치를 거듭 설명했다.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습니다. 내륙으로만 들어가면 고려홍삼은 정말 부르는 게 값입니다."

"그럼 그쪽에서 계속 하시든가. 앞으로 천진항은 이용하지 말고, 상해나 다른 곳 통해서."

지금까지 천진의 관계자들을 매수하여 밀수를 하던 장가로서는 기존의 이득을 다 놓치란 말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주도하던 홍삼 밀무역은 완전히 다 무너질 판이었다.

"애초에 내륙무역은 저희가 주도하던 판이었으니, 인력이나 비용은 저희가 계속 부담하겠습니다. 대인께서는 이문의 6할을 가져가십시오."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가?"

"대인이 북양대신을 등에 업고 나타난 순간,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장가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상인답게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대안을 찾기로 한 것이었다.

"뭐, 같은 조선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지. 그리고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가 시장을 개척한 정신도 높이 사고."

"대인, 그럼······!"

장가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래도 난 불법은 별로 내키지 않은데. 이중당이 특허장을 내게 전해주며 문제 일으키지 말라 하였소. 사소한 이문을 더 따지다가 이중당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나한테는 그쪽이 더 손해거든."

이건 이선의 진심이었다. 지금은 돈을 더 버는 것보다, 이홍장과의 신뢰관계가 더 중요했다.

"대인, 실례되는 질문입니다만, 북양대신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이문의 얼마를 넘기기로 하셨습니까?"

"실례되는 질문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지."

"부디 알려주십시오."

장가가 고개를 조아리니, 이건 굳이 비밀일 필요가 없을 듯싶어 이선이 공개했다.

"뇌물이 아니라, 관세로 쳐서 일 할을 드리기로 했소이다만."

"제가 듣기로, 북양대신은 돈이 많이 필요로 합니다. 나랏일이 됐건 사재가 됐건 말입니다. 더 많은 이문을 남겨서 상납액, 아니 관세를 더 드릴 수 있다면 대신도 환영할 일입니다. 저희와 손을 잡으시면, 모두에게 이득이 됩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겠습니까?"

장가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자신이 이홍장을 설득하며 말했던 속담에, 이선이 빙긋 웃었다.

'이홍장이 이런 기분이었겠군. 이홍장이 돈이 많이 필요한 건 사실이고, 청렴하지 않은 것 사실이다. 후일 원세개도 조선에 파견되었다가 홍삼 밀무역으로 정치자금을 엄청 끌어 모았고, 그걸 기반으로 삼아 북양군의 실세로 떠올랐지. 이홍장은 상납액이 늘어나서 싫어할 위인은 아니다.'

"그대의 열정에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소. 좋소, 그럼 거래합시다."

"감사합니다, 대인!"

"대신 발생하는 이문의 칠할은 우리가 갖도록 하겠소. 개성에서 홍삼을 중국으로 들여오는 것, 북양대신의 도움을 받아 호조를 받는 것, 모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겠지?"

장가는 떨떠름해하다가,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일단 계약기간은 1년이오. 위험이 적은지, 이문이 확실한지 1년의 기간을 두고 판단해봐야겠소. 그 후에 계약을 갱신합시다. 송 객주 생각은 어떻소?"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결정 났군. 두 사람이 각자 상단을 대표해서 서명하도록 하시오."

이선은 자신의 이름은 빼고, 장가와 송 객주에게 계약서를 쓰도록 했다. 만약 문제가 발생할 경우의 보험을 들어두어야 했다.

"이제 한 배를 타게 됐으니, 통성명이나 합시다. 개성 사람 송금덕(宋金德)이오."

"의주 사람 장여원(張汝元)이올시다."

"의주라면, 만상(灣商)이었소?"

송상과 만상은 때에 따라 동지적 관계이자 경쟁 관계이기도 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하지만 독립해서 청국으로 넘어온 지 꽤 됐소."

송금덕과 장여원은 각자 상단을 대표해 계약서에 서명을 마쳤다.

"근데 그럼 저 중국 상인은 뭐하는 자요?"

"바지사장이 필요해서 앉혀놓은 자입니다. 저 자의 무례는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장여원이 중국어로 외치니, 중국 상인이 비굴한 태도로 이선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사과는 이제 됐소. 앞으로 일을 추진할 때는 믿을만한 자하고만 하시오. 저 자는 너무 경솔한 듯싶더군."

"제 불찰입니다."

장여원은 거듭 고개를 조아리면서, 어린 소년이 보이는 날카로운 분석과 협상력에 놀라워했다.

"자, 그럼 앞으로 잘해봅시다. 대륙에 고려홍삼 맛을 제대로 보여주지."

'정치에는 반드시 자금이 필요하다. 권력과 결탁하여 무역을 하니 썩 아름다운 방법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이선은 단순히 부를 축적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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