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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22화 (2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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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종복배(面從腹背)

이선은 이홍장, 고든과 함께 천진을 거쳐 북경에 도착했다.

'제국의 수도, 북경이라.'

북경(北京)은 연경(燕京)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였다.

한동안 변방의 도시로 잊혀졌던 북경이 제국의 수도로 떠오르게 된 건, 역설적으로 북방 유목민족들이 수도로 정한 이후였다. 몽골(원)의 쿠빌라이 칸이 북경을 수도로 삼았고, 이후 원을 북쪽으로 몰아냈으나 그 영역을 계승하기 원했던 명의 영락제가 다시 수도로 삼았다.

명을 멸망시키고 중원을 지배하게 된 청나라의 지배하에 북경은 최전성기에 이르렀으니, 청나라의 '만한일체(滿漢一體)'라는 구호 아래 가히 유목제국과 중화문명이 한자리에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건륭제(乾隆帝) 시절에 외치던 만한일체는, 이 시대에 이르면 형해화되고 있었다.

만주 귀족들은 한족 관료들을 의심했고, 한족 관료들은 만주 귀족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이홍장은 만주 귀족이 경계하는 한족 관료의 표본이었다. 군사, 외교, 재정의 중대한 권한을 이홍장이 쥐고 있었으니 경계를 받는 건 당연했다. 여전히 청조에 충성하는 이홍장은 처신을 조심히 했지만, 만주 귀족들이 그를 공격하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이선은 상해에 있을 때와 달리, 북경의 이홍장 저택에서 얌전히 머물렀다. 제국의 수도인 북경을 구경하면서 각국 공사관과 접촉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럴 때가 아니었다.

'북경은 조선 사절의 정기 사행(使行)이 있고, 보는 눈도 너무 많아. 이홍장이 나를 북경에 데려온 데는 이유가 있을 터.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

"어리석은 놈들! 열강과의 전쟁이 그렇게 쉬운 줄 아나! 북경이 함락된 게 겨우 20년 전 일이거늘, 다시 그 치욕을 겪고 싶은 건가?"

이홍장이 고든과 함께 저택으로 들어오면서 영어로 거리낌 없이 주전파를 비난했다. 군기처(軍機處) 회의에서 이홍장은 '비겁하게 나라를 팔아먹는' 주화파라고 비난을 받았고, 참았던 분노가 집에 도착하자 폭발한 모양이었다.

"청 조정의 현실 인식이 생각보다 더 떨어지는군요. 만약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천진을 공격하고, 북경으로 진격하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현실 파악을 못하고 전쟁만 외치고 있으니!"

조정에서 가급적 말을 아끼는 이홍장에 비해, 거리낄 것이 없는 고든은 더 직접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주전파를 비판했다.

'한바탕 하고 온 모양이군.'

"다녀오셨습니까."

이선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이홍장이 멋쩍은 듯이 말했다.

"이거 손님에게 흉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군."

"아닙니다. 화날 만한 상황에서는 화를 내는 게 당연하지요."

이선의 말에 고든이 동의했다.

"맞는 말입니다. 바보들을 상대로 화를 참을 이유가 없지요."

이홍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대부가 되어 감정을 조절해야지. 아무튼, 내가 군을 북경으로 함께 온 이유를 짐작하겠소?"

'황제라도 알현시킬 생각인가?'

"잘 모르겠습니다."

"군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오. 그래서 군을 북경으로 모셔온 것이오."

"저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분이 어느 분이신지요?"

"내일이면 알게 될 거요."

이홍장은 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이선은 궁금했지만, 어차피 그 말대로 내일이면 알 터이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 날, 군기처 회의에서 돌아온 이홍장과 고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이, 말은 안 해도 또 한바탕 붙은 모양이었다.

이홍장은 고든과 이선을 대동하고 총리각국사무아문으로 향했다.

'총리아문이라. 그럼 나를 보고 싶다는 게······.'

실질적인 외무부 역할을 하는 총리아문의 수장은 바로 공친왕(恭親王) 혁흔(奕訢)이었다.

총리아문의 관리가 북양대신이 이르렀다고 고하자, 안에서 들어오란 말이 들려왔다.

"삼가 공친왕 전하를 뵙사옵니다."

이홍장이 정중하게 예를 표하자, 공친왕도 답례했다.

"어서 오시오, 이중당. 여러모로 노고가 많소이다."

"전하께서도 잘 알고 계신, 영국군의 고든 제독입니다."

"고든이 전하께 문후를 올립니다."

고든은 중국식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예를 표했다.

"반갑소이다, 제독. 대청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와서 도와주는구려. 과연 그대는 진정한 중국의 벗이오."

공친왕은 고든과 서양식으로 악수하며 반가워했다.

"조선에서 온 완화군 이선입니다. 조선 국왕의 장자이며, 대원군의 맏손자입니다."

이선은 이홍장이 말하는 중국어를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고유명사는 알아들었다.

"외신(外臣) 이선이 삼가 공친왕 전하를 뵙사옵니다."

이선이 왕족을 알현하는 예법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공친왕도 기쁘게 맞이했다.

"나 역시 조선의 왕자를 만나게 되어 기쁘오."

공친왕 혁흔.

도광제(道光帝)의 여섯째 아들이자 함풍제(咸豊帝)의 이복동생, 동치제(同治帝)의 숙부였다. 현 황제인 광서제(光緖帝)에게는 백부가 되었다.

도광제의 황자들 중에 가장 총명했으나, 함풍제에게 밀려 후계자로 낙점되진 못했다. 1860년, 영불 연합군에 의해 북경이 함락되고 함풍제가 열하로 파천하던 위험한 순간, 공친왕은 북경에 남아 각국과 외교협상을 마무리 지었다.

공친왕은 동치제의 생모인 서태후와 손잡고 보수파를 제압했고, 의정섭정왕(議政攝政王)이 되어 양무운동을 이끌었다.

양무운동의 주창자인 공친왕은 이홍장 등 양무파 관료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서양의 장점을 모조리 다 배우는' 정책을 추진했고, 1860년대의 정국을 주도했다.

하지만 공친왕은 지나치게 친서양적이라고 보수파의 공격을 받았고, 한때의 동지였던 서태후의 견제를 받았다. 동치제가 서거하자, 서태후는 불과 네 살의 조카, 광서제를 즉위시켰다. 서태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자 공친왕은 점차 권력에서 밀려났고, 그의 권한은 서양과의 외교 업무로 국한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친왕은 황실의 어른으로 존중받았고, 최근 일본과의 분쟁 중인 류큐 문제나 러시아와 분쟁 중인 신강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제독의 표정을 보건대, 군기처에서 논쟁이 격했나 보오."

공친왕의 중국어를 이홍장이 직접 영어로 통역해주었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덕에 이선도 대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재 아라사 함대 23척이 현재 황해에 집결 중이고, 20년 전에 그랬듯이 천진을 통해 공격하면 북경이 위태롭습니다."

"나도 그래서 걱정이오."

"하지만 순친왕 전하께서 조정의 강경론을 대표하고 있어 까다롭습니다."

주전파의 우두머리 순친왕(醇親王) 혁현(奕譞)은 평화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고든의 충고를 거듭 무시했다.

마침내 화가 난 고든은 영한사전(英漢辭典)을 펼쳐 'idiocy'에 해당되는 단어, '白痴(백치)'를 순친왕과 주전파 대신들을 향해 보여주었다. 회의가 뒤집어진건 당연한 결과였다.

"으하하, 그거 재미있군! 혁현이 제대로 한 방 먹었겠어."

공친왕은 껄껄 웃으면서 고든의 '무례'를 좋아했다. 청나라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공친왕은,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설치는 이복동생 순친왕과 주전파들이 못마땅해 군기처 회의에도 불참하고 있었다.

"황공하옵니다. 그래도 제독이 와준 덕에 조정 내 강경파들도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라사가 북경을 공격하면 현재 대청의 상황으로는 막을 방법이 많지 않습니다."

"전쟁을 하고 싶다면,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요. 조정을 서안으로 천도하고 내륙에서 장기항전 한다면 그 어떤 열강도 포기할 겁니다. 실제로 1860년의 전쟁에서 영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게 그 방법이었지요."

고든의 말에, 공친왕과 이홍장 모두 냉소를 터뜨렸다.

"북경 생활에 익숙한 황족과 귀족들이 서안 파천을 받아들일 리가 있나. 말로만 전쟁하자는 거요."

공친왕과 이홍장은 청나라의 국력을 과신하지 않는 현실주의자이니만큼, 평화적인 해결책을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주 아라사 공사로 새로 파견된 증기택(曾紀澤)이 협상을 잘 해내길 바라는 수밖에."

이선은 잠자코 공친왕과 이홍장, 고든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공친왕이 이런 자리에 나를 부른 이유가 있을 터.'

이선이 차분히 기다렸다. 공친왕은 고든과 악수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든이 물러나고 이홍장과 셋이 남자, 공친왕은 웃으면서 말했다.

"군이 기다리기가 많이 지루했겠군."

"아닙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대국을 논하는 일에 소생과 같은 어린아이를 불러주셔서 감읍할 따름입니다."

"완화군은 열세 살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총명하고 세상을 읽는 눈이 밝습니다. 마치 전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홍장은 이선의 총명함에 찬사를 보내면서, 동시에 공친왕에게도 아첨했다. 과연 노련한 관료다웠다.

"과찬이십니다. 저를 어찌 감히 공친왕 전하와 비교할 수 있겠나이까?"

이선의 겸손한 처신에, 공친왕이 빙긋 웃었다.

"총리아문에 보내는 이중당의 서신을 통해, 조선의 정세와 완화군에 대해 알게 되었소. 유능한 왕자가 있다는 건 그 나라의 복이라 할 수 있지."

순간 미소를 짓던 공친왕의 표정이 냉소로 변했다.

"하지만 왕자 본인에게 복이라 할 수 있을진 모르겠군. 유능한 왕자가 왕좌에 앉지 못하면, 두고두고 견제의 대상이 되니까 말이야······."

공친왕의 말은 이선에게 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공친왕이 이복형인 함풍제보다 훨씬 유능한 지도자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도광제는 함풍제의 효성이 지극하다하여 후계자로 지명했다. 말기의 청나라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효성이 지극한 황제는 필요 없었다. 유능한 황제가 필요했다. 공친왕은 태후와 보수파의 견제를 받고 권력에서 멀어지면서, 더더욱 이를 절감했다.

"군이 후일 조선의 정치를 맡게 될 날이 온다면,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고, 부강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이선은 공친왕의 말의 저의(底意)를 확신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외신은 서자입니다. 위로는 주상이 계시고, 또 세자가 계십니다. 또한 조선에서는 왕족의 정치를 금하고 있사옵니다."

"조선에서는 서자인 게 그리 큰 문제인가? 대청 황실에서는 적서를 따지지 않는데."

청나라의 황위 계승법은, 적장자 계승 원칙이 아니었다. 태자밀건법(太子密建法)이라 하여 황제가 서거할 때, 가장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황자를 지목하여 후계자로 삼는 식이었다.

"황공하오나 두 나라의 법도가 다르오니······."

"왕족의 정치를 금한다면서, 어찌 왕의 친부인 대원군이 10년 섭정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조선의 법도가 달라진 것이 아닌가?"

대원군 집정 이후에 왕족의 정치 참여가 이뤄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는 비상시국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비상시국이라 할 수 있겠지. 대청이 그러한 것처럼."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설마 나를 꽃가마에 태워 조선으로 보낸 후에 꼭두각시로 앉히겠다, 이런 건 아니겠지?'

이는 이선이 가장 경계하는 일이었다.

"외신은 오직 조선과 주상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려할 뿐입니다."

이선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황공하오나, 대청과 세분의 황제 폐하를 위하여 헌신을 다하신 친왕 전하처럼 말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선의 말은 복합적이었다. 때가 되면 공친왕처럼 조선의 정국을 맡아, 개혁정책을 이끌고 싶다. 하지만 이는 왕위를 찬탈한 목적은 아니다. 공친왕이 무능한 형과 어린 조카에게 충성한 것처럼, 나 역시 그렇다.

'그러니 나를 내세워 조선을 움직일 생각은 하지 마라.'

"하하, 나처럼 말인가! 이거 고맙고도 부끄럽군."

공친왕과 이홍장은 이선이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이선의 처신에 대해 더욱 높은 점수를 주었다.

공친왕과 이홍장이 조선에게 원하는 건, 계속 청나라의 번국으로 남는 것이었다. 이대로 외세가 조선을 침탈하면 청나라에도 순망치한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청나라는 열강의 눈치를 보느라 조선에 직접 개입하기를 꺼려했고, 가장 좋은 건 조선 스스로가 서구와 교류하면서 청나라 방식으로 자강(自强)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친청파이면서도 양무운동을 지지할 조선의 개혁적인 지도자가 필요했다. 공친왕과 이홍장은 이선과, 그 뒤에 있다고 믿는 대원군에 주목하게 된 것이었다.

"군은 대청과 조선이 한집안과도 같으니, 대청이 조선에게 서양과의 수교와 자강을 권유하는 바를 이해하겠소?"

"이르다 뿐이겠습니까? 외신은 대청의 방침을 지지합니다. 이 난국에 처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오직 양무와 자강이 필요하니, 실로 친왕 전하와 중당의 방법만이 나라를 구할 방도입니다."

이선의 대답에 공친왕과 이홍장은 만족했다.

중전에 의해 쫓겨났으면서도 변함없는 조선 국왕에 대한 충성, 겸손한 처신, 정확한 정세 파악 능력, 더욱이 청나라와 양무운동에 대한 지지까지.

공친왕과 이홍장은 이선을 '어리지만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인물로 여겼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맙지.'

하지만 이선은, 청이든 황제든, 공친왕이든 이홍장이든, 단지 면종복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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