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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과 함께 격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으아악!"
"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쏟아지고, 폭탄을 정면으로 맞은 카자크 기병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 땅에 쓰러졌다. 마부와 근처에 있던 소년 한 명도 신음을 흘리며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마차는 무사했다. 나폴레옹 3세가 특별히 선물한 프랑스제 방탄 마차의 힘이었다.
"폐하! 무사하십니까!"
호위를 맡은 야코프스키(Jackowski) 대령이 다급히 마차로 다가가 황제의 안위를 물었다.
"······ 짐은 괜찮다. 니콜라이 대공도 무사하다."
황제는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라긴 했지만 멀쩡했다. 마차가 갑자기 멈추는 바람에 손에 찰과상을 입은 정도였다.
"바깥 상황은 어떤가? 호위병들은 무사한가?"
대령은 한 눈에 상황을 파악했다.
"기병 한 명과 마부, 구경꾼 소년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마차 뒷면이 부서졌지만 운행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범인은 잡았나?"
경찰청장 보르지츠키(Dvorzhitsky)가 황제에게 화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를 잡았습니다!"
테러범은 폭탄 투척에는 성공했으나 적중하진 못했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근처에 있던 경찰들이 테러범을 쓰러트리고 제압했다.
"죽어라, 압제자 차르! 혁명 만세!"
완전히 제압당한 테러범은 큰 목소리로 황제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를 제압하던 경찰들의 구타는 심해졌다.
"짐이 직접 현장을 보고 싶은데."
"안 됩니다, 폐하! 잔당이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위험합니다!"
"뒷수습은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어서 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근위대장과 경찰청장이 거듭 말리는데도, 황제는 요지부동이었다.
"짐의 건재함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부상자도 위문해야지. 그리고 이런 일을 꾸민 대담한 테러범의 낯짝도 보고 싶고 말이야."
폭탄 공격으로 얼이 빠져 있었던 니콜라이 대공은, 그때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폐하, 어서 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짐은 현장을 보고 싶다."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제발 궁으로 돌아가십시오!"
황제는 손자의 거듭된 외침에도 자신의 고집을 꺾진 않았다.
"짐이 여기서 도망치면 백성들이 뭐라 생각하겠느냐? 짐이 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되어 테러를 두려워해서야 되겠느냐? 이미 테러범이 잡혔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이냐?"
황태손, 근위대장, 경찰정장이 한 목소리로 황제의 하차를 말리는데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황제는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폭탄이 터진 직후, 마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선 또한 잠시 충격으로 감각을 잃었다.
"으으, 젠장······."
시각과 청각을 잠깐이나마 상실했던 이선은 잠시 후에야 감각을 회복할 수 있었다.
"군 대감, 괜찮으십니까!"
장무영이 급히 달려와 이선을 부축했다. 다행히 외상은 전혀 없었다.
"멀쩡하네! 지금은 나를 부축할 때가 아니라, 수상한 자를 쫓게!"
"이미 범인은 잡힌 것 같습니다."
장무영은 경찰에게 제압당해 다리 난간에 붙들려있는 테러범을 가리켰다.
"안심할 때가 아냐! 분명히 동조자가 더 있을 걸세!"
이선은 다음에 일어날 일을 짐작하고 있었다. 황제가 마차에서 내리고, 숨어있던 제2의 범인이 폭탄을 던진다.
'제발, 그냥 가라······! 니콜라이, 황제가 못 내리게 막아!'
이선의 필사적인 기도에도, 황제는 실랑이 끝에 마차에서 내리려 했다. 이선은 경악했다.
"저, 저 망할 영감탱이! 죽으려고 환장했구만!"
이선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무영! 황제가 위험하다! 수상하다 싶은 놈은 무조건 잡아!"
장무영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시력과 동체신경이 좋은 장무영은 주위 사람들을 마치 스캔하듯이 빠르게 훑었다.
황제가 마차에서 내렸다. 주위의 거듭된 만류에 황제는 손을 들었다.
"염려는 고맙지만, 하느님께서 보호하시니 짐은 괜찮네."
그때였다.
난간에 기대고 있던 사내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찰나의 순간, 경찰과 군인들조차 그의 행동을 파악하지 못했다.
"차르, 신에게 감사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사내는 두 팔을 높이 들어 두껍게 포장되어 있는 소포를 투척하려 했다.
"무영!"
퍼억!
어디선가 날라 온 동전에 얼굴을 맞은 사내의 몸이 휘청거렸다. 사내는 소포를 가까스로 지키면서, 난간을 붙잡고 몸을 지탱했다.
휘익!
양복 차림의 동양인이 하늘을 날 듯이 달려와 암살범을 걷어찼다. 장무영이었다.
"으윽!"
장무영은 수상한 사내를 보자마자 바로 동전을 던져 움직임을 막은 후, 무작정 달려간 것이었다.
"제기랄!"
테러범은 기를 쓰고 소포로 위장한 폭탄을 던지려 했지만, 장무영은 폭탄을 자신의 손으로 낚으려 했다.
테러범의 필사적인 저항도 만만치 않았으나, 장무영은 테러범의 팔을 꺾었다.
"으으읍······."
테러범의 손에서 떨어진 폭탄은, 난간을 넘어 운하로 떨어졌다.
퍼엉!
순간, 운하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았다.
두 번째 공격시도가 있자, 근위대장과 경찰청장은 황제를 억지로 마차에 태워 그대로 말을 달리게 했다.
"폐하를 겨울궁전으로 모셔라!"
황궁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니콜라이가 외쳤다.
"조선 왕자가 오늘 폭탄 테러를 경고했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소손더러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폐하께서 내리지 못하게 막으라 하였습니다!"
"그래······?"
두 번째 시도는 예상하지 못했던 황제는, 내달리는 마차 안에서 정신적 충격에 빠져 있었다. 그는 겨울궁전에 돌아갈 때까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1881년 3월 1일(13일).
황제를 향한 다섯 번째 암살 음모가 있었다.
급진혁명단체 '인민의 의지당'은, '반혁명 수괴 차르'를 죽이면 혁명이 이뤄질 것이라 믿었다. 이들은 모두 2, 30대의 젊은 혁명가들이었다.
경찰 역시 인민의 의지를 수배하고 있었고, 이틀 전에 지도자인 젤랴보프(Zhelyabov)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이로써 테러 위협은 사라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젤랴보프의 아내 소피야 페롭스카야(Sophia Perovskaya)가 테러 실행을 이어받았다. 페롭스카야와 8명의 혁명가들은, 황제의 예상 경로였던 예카테리나 거리 지하에 갱도를 파고 지뢰를 설치했다.
하지만 황제가 경로를 바꿔 다른 길로 지나가서,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반드시 성공을 시키고자, 그들은 철저한 준비를 했다. 예상되는 지점마다 혁명가들이 폭탄을 지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리 위에서 첫 번째 폭탄을 터트린 리사코프(Rysakov)의 실패 후에도, 그리네비츠키(Hryniewiecki)의 두 번째 시도가 있었다. 만약 이들이 실패하더라도, 세 번째 공격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역사대로라면, 황제는 그리네비츠키의 폭탄을 맞고 죽을 운명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살아남는데 성공했다.
역사가 바뀐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사건 발생 직후 이선과 장무영이 체포되었다.
"이거 놔라!"
폭탄이 두 번이나 터진 극도의 혼란 속에서, 경찰들은 암살범과 난투극을 벌였던 장무영을 범인과 한 패로 오인하고 체포한 것이었다.
이선이 달려와 장무영의 무고함을 외쳤지만 경찰은 오히려 이선까지 체포해버렸다.
이선의 지휘를 받고 있던 니콜라이의 시종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외쳤지만, 경찰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장무영과 이선에게 수갑을 채웠다.
"말이 안 통하는 작자들이로군. 그대들은 어서 니콜라이 대공에게 가서 내 처지를 알리시오!"
장무영과 함께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이선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 무능한 밥버러지 자식들아! 네놈들은 눈도 없냐? 암살범과 그걸 저지하는 사람도 구분 못해?"
이선은 영어로 격렬히 항의했지만, 이선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 이 개자식들아, 동양인이라고 인종차별 하는 거냐?"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건 매한가지라, 이선은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니들은 다 뒤졌다! 황제 암살 계획을 사전에 막지도 못하고, 엄한 사람이나 붙잡고 말이야!"
쾅!
이선의 악다구니가 듣기 싫었는지, 덩치 큰 경찰 하나가 유치장 창살을 발로 퍽 걷어찼다.
"대감, 참으시지요. 대공께서 손을 써주실 겁니다."
그냥 체포된 이선과 달리, 처음 범인으로 오인된 장무영은 경찰에게 폭행을 당한 상황이었다. 경찰들은 곤봉으로 내려치며 장무영을 체포했다.
"괜찮나?"
"이 정도야 거뜬합니다."
"최고 공로자한테 상은 못 줄망정 매찜질이라니. 이렇게 무능하니 일을 이 꼴로 만들지. 황제는 제일 먼저 수도경찰부터 다 갈아치워야겠다."
이선은 유치장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들이 용의자로 지목되어서 체포되긴 했지만, 진범으로 여기지 않은 건 분명했다.
진짜 암살범들은 격리되어 엄중한 조사를 받고 있었고, 이선과 장무영은 조사조차 받지 않은 채 유치장에 내버려져 있었다.
단지 현장에서 무력을 사용한, 수상한 동양인으로 취급되어 유치장에 갇힌 것이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부아가 터지던 이선이 다시 소리를 내지려던 차에, 경찰서가 분주해졌다.
"대공 전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황태손 니콜라이 대공이 친히 일선 경찰서에 도착하자, 서장 이하 경찰들이 일제히 도열했다.
"동양인들이 잡혀있다는 경찰서가 여기요?"
"예, 전하! 현장에서 수상한 자들이 있어 체포해두었습니다! 현재 유치장에 있습니다!"
마치 칭찬이라도 바라는 듯 자랑스럽게 외치는 서장의 말에, 대공은 어이가 없었다.
"그들을 당장 내 앞으로 데려놓으시오!"
"전하께서 직접 심문하십니까? 위험합니다! 진범은 아닌 듯하나, 공범일지도 모릅니다!"
대공은 마침내 분노를 표하며 서장을 향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닥치고 빨리 데려오란 말이오!"
이선과 장무영이 수갑을 찬 채로 서장실에 등장하자, 앉아있던 니콜라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선 공작!"
"대공 전하!"
니콜라이는 그대로 달려가 이선을 끌어안았다. 이선도 손을 들어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뭐하는 겁니까? 당장 풀어드리지 않고!"
황태손의 시종이 어안이 벙벙해진 서장을 향해 소리 질렀다. 시종은 이선과 장무영의 체포를 보고 바로 궁궐로 달려가 니콜라이를 찾았다. 극도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니콜라이는 이선의 체포 소식에 직접 궁전 밖으로 나섰다.
"예, 옛!"
서장은 급히 이선과 장무영의 수갑을 풀어주었다.
"공작 덕분이오! 황제 폐하께서 무사하신 건!"
니콜라이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제가 아니라 여기 무영의 덕이지요. 무영이 테러범을 잡지 못했으면 꼼짝없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무영이라고 했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니콜라이는 장무영의 손을 잡고 감사를 표했다.
"근데 왜 이리 다친 거요? 설마 반역자에게 공격당한 건가?"
이선이 냉소를 지으며 서장을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테러범은 손끝하나 건드리지 못했지요. 그런데 황제 폐하의 경호에 실패한 경찰 나리들께서 상을 주기는커녕 매찜질을 놨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오늘 일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책임을 지게 될 거요."
대충 상황이 돌아간 걸 짐작한 니콜라이는, 무서운 표정으로 서장을 노려보았다. 서장은 황태손의 시선을 피해 눈을 깔았다.
"공작, 어서 겨울궁전으로 갑시다. 폐하께서 공작을 찾으십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선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권력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선의 겨울궁전 방문은 세 번째지만, 이전에 '비공식 특사'로 방문했던 상황과 완전히 격이 다룬 대우를 받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선이 황궁에 들어서자마자 황실 시종들이 따라 붙었다. 이선은 황궁의 화려한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최고급 재질로 만들어진 소년용 제복을 입었다. 딱 이선의 체격에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꼭 들어맞았다.
이선은 장무영과 재회했다. 장무영 역시 제복 차림이었다.
"대감, 이게 무슨 옷이죠?"
"나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군복 같은데."
화려한 옷이지만 어깨에 견장이 달려있는 걸 봐서, 군복의 정복(正服)처럼 보였다.
이선과 장무영은 시종의 안내를 받으며, 길고 긴 황궁의 복도를 걸었다.
몇 개의 방을 지나, 이선과 장무영은 황금빛 문 앞에 섰다. 건장한 흑인 근위병 두 사람이 문 앞에서 칼을 차고 서 있었다. 흑인 근위병의 존재는 표트르 대제 이래의 전통이었다.
잠시 후, 안에서 신호가 나자 근위병들은 문을 열었다.
이선은 장무영보다 한 발짝 앞서서, 당당한 걸음걸이로 붉은색 융단 위를 걸어갔다.
그 순간 러시아 제국의 국가(國歌)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Боже, Царя храни!
Сильный, Державный,
Царствуй на славу на славу намъ,
Царствуй на славу на славу намъ!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강대하고 장엄한 군주여
우리의 영광 위에 군림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