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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동 전권위원
"짐은 이선 공작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했소. 러시아 제국 정부는 공작에게 극동지역 전권위원의 지위를 부여할 것이오."
'마침내······!'
이선은 기뻤지만 표정 관리를 했다. 황제가 눈짓을 보내자, 내무대신 로리스-멜리코프가 설명을 했다.
"이선 공작은 연해주, 특히 국경지역인 남부 우수리 지역의 정책을 총괄할 것입니다. 이주민에 대한 민정(民政), 조선과의 교섭에 대해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공작은 러시아 제국의 정식 관료는 아니지만, 황제의 극동지역 특사로서 6등 문관에 준하는 지위를 대우받게 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폐하. 러시아와 조선, 황제 폐하와 동포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공작께서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하고,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맹세를 해야 합니다. 러시아 제국은 지금까지 외국 출신에게 중요한 공직을 맡긴 경우는 많았지만, 러시아 국적이 아닌 사람에게 맡긴 적은 없었습니다."
이선이 즉시 답변을 하지 않자, 황제가 나섰다.
"정교회로 개종은 안 해도 상관없소. 제국의 변경을 통치하는 현지 귀족 중에 무슬림도 있고, 불교도 있으니까. 하지만 러시아 국적은 취득해야 하오.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 러시아 제국의 중요한 문제를 맡길 수 없으니까."
황제의 말은 타당했다. 이선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라는 걸 진작 깨달았다.
'다만, 내가 러시아 국적을 얻었다는 이유로 공격할 명분을 얻는 자들이 많겠지. 러시아의 앞잡이니 뭐니 하면서······.'
이선은 쓰게 웃더니 결단을 내렸다.
'권력을 잡고 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실제 역사에서도, 아관파천 이후에는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들이 득세하지 않았나. 지금 조선에 국적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조선과 동포를 위해서 러시아 국적을 얻었다는데 누가 뭐라 할 거야?'
"폐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러시아 시민권을 취득하고,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며칠 후, 이선은 정식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며 충성 선서를 했다.
보증인은 무려 황제 알렉산드르 2세와 그 손자 니콜라이 대공이었다. 덕분에 이선의 국적 취득 절차는 초고속으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이선은 형식적이나마 러시아인이 되었다. 러시아 귀족 체계에 편입되어 '공작(князь)'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6등 문관에 준하는 지위에 임용되었다.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가 처음 관료제를 실시한 이래, 14개의 관등으로 지위를 규정했다.
이선이 받은 합의참사관(Коллежский советник)의 지위는 군대로 치면 육군 대령, 관료로서도 상당한 권위를 갖는 지위였다. 더욱이 '황제의 특사, 극동 전권위원'이라는 직함까지 갖고 있으니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더 막강할 터였다.
"외국 출신, 더군다나 소년이 6등 문관이라고? 이게 말이 되나?"
러시아 관료사회에선 이선의 지위에 대해 말이 많았다. 정상적인 관등제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왔다면, 공무원 임용 후 20년은 지나야 오를 수 있는 위치였다.
예외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인물들, 주로 고명한 학자들을 7등 문관으로 특채하긴 하는데, 이선은 그조차도 뛰어넘은 것이다.
"말이 안 될 건 뭔가? 러시아는 전제군주국이야. 공작 각하는 조선 왕자이자 황제 폐하의 구원자이신데, 더 높은 지위를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지."
13세에 불과한 외국 소년이 받기에는 터무니없긴 했으나, 조선의 왕자이자 '황제의 구원자'라는 특수성이 이를 용인시켰다.
극동 전권위원의 지위를 얻은 이선은 출발을 앞두고 바쁘게 움직였다. 필요한 정책에 따라 내무부, 외무부, 재무부, 육·해군부 등을 오고 가야 했다.
'젠장, 극동부든 변경부든 좋으니까 별도의 컨트롤타워 부서가 있으면 안 되나?'
이선은 부처마다 입장이 다른 관료제의 맹점으로 인해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내무부에서는 이주민 정책에 대한 논의를, 외무부에서는 조선과의 외교 문제에 대한 논의를, 재무부에서는 현지 재정에 대한 논의를, 육군부에서는 고려인 징병과 무장에 대한 논의를, 해군부에서는 극동으로 가는 해운에 대해 논의해야 했다.
"1880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고려인 대부분은 국경지대인 남부 우수리 3개 관구에 거주합니다. 전체 숫자는 남녀 6,776명으로, 이중 남성이 3,688명, 여성이 3,088명입니다. 정교회의 세례를 받은 자는 2,002명입니다. 공작이 말하는 2만은 지나치게 과장된 숫자입니다."
내무부 통계국장의 말에 이선이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건 러시아 행정당국에 러시아 국적으로 합법적으로 등록된 인구가 그렇다는 것이고, 장담하는데 실제 인구는 그보다 세배는 될 겁니다. 조선에서 러시아로 빠져나간 인구는 대략 2만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모두 행정체계로 편입시키도록 하겠습니다."
페테르부르크의 중앙 관료들은 멀리 떨어진 극동이나 조선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 없었고, 조선의 왕자인 이선의 말은 엄청난 권위를 갖게 되었다.
"이주민 인구가 2만이라고 가정할 때, 초기 이주의 특성상 남성 청년층이 훨씬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징병 대상자가 적어도 5천은 될 겁니다. 이중 향후 1년 이내로 1천 명을 징집하여, 국경 방위에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새로 편성될 가칭 '고려인 대대'는 러시아군의 지휘를 받으며 국경 방위에 종사하나, 실질적으로는 이선의 사병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재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극동으로 배정되는 예산은 지극히 한정적입니다."
"변경의 황무지를 불하하는 조건으로 과세와 병역의무를 부과해야지요. 말하자면 카자크 둔전병과 같은 조건으로 국경 방위를 맡기자는 겁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시베리아까지, 러시아의 변경 개척을 이끌어 낸 카자크(казáки, Cossacks)는 특수한 군사자치집단이었다. 러시아 당국으로부터 변경의 토지를 불하받아 자치를 누리며 농사를 짓는 조건으로 기병을 제공했다. 전시가 되면 이들은 황제의 기병으로 총동원되었다.
"이미 그 지역에는 아무르 카자크(Amur Cossacks)가 따로 있는데. 역할이 중복되는 거 아닙니까?"
"아뇨. 그건 아무르고, 우수리 지역은 군사력의 부재 상황입니다. 중국 마적 따위가 러시아 제국을 우습게 여기고 변방을 침탈하며 러시아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근절시키겠다는 겁니다."
이 또한 이선의 의견이 관철되었다.
"그럼 고려인 대대는 연해주 군관구에 소속된다고 치고. 근데 1천 명이나 되는 병력의 운용과 무장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입니까? 러시아 제국의 변경 방위 우선순위는 폴란드, 발칸, 카프카스, 투르키스탄, 극동 순입니다."
러시아의 관심사는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이어져서, 극동지역의 무장 상태는 최하였다.
"이 문제는 제가 해결해드리지요. 제 사비로 무기를 조달하겠습니다. 육군부에서는 현지에서 부대를 훈련할 장교진과 부사관만 내주면 됩니다."
이선은 이미 노벨 형제와 최신 소총, 탄약, 개틀링 기관총, 야포, 다이너마이트 계약을 체결한 상황이었다.
이선이 사비를 들여서 무기를 조달해주겠다니, 러시아 육군에서도 환영하는 바였다. 황제도 보고를 받고 감탄하여 이를 승인했다.
이를 극동까지 운송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다. 시베리아 철도가 부설되기 전이라 전적으로 해상운송에 의존해야 했다.
러시아 당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78년 '의용함대(Dobroflot)'를 창설했다.
1880년부터 3척의 증기선으로 오데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정기항로가 형성되었고, 이는 유럽과 극동을 잇는 중요한 창구가 되었다.
의용함대의 창설자이자 명예위원장이 바로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이라, 이선의 제안은 손쉽게 받아들여졌다.
"좋소. 기선 1척을 할당하도록 하지. 앞으로 공작이 유럽에서 극동으로 운송하는 물품은 모두 의용함대를 활용하도록 하시오."
"감사합니다. 답례로, 저도 의용함대에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용함대는 정부나 해군 소속은 아니지만, 정부의 보조금과 기업이나 개인이 투자한 자금으로 운용되었다.
이선은 3만 루블을 의용함대 위원회에 투자했다. 이로써 이선은 의용함대의 사외이사 자격이 주어졌다. 이선은 의용함대 위원회에게 다짐했다.
"유럽과 극동만을 잇는 게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원산-부산-인천-상하이를 잇는 동아시아 항로를 개척하겠습니다."
이선의 포부에 위원회는 박수를 보냈다.
황제는 이선을 극동 전권위원으로 임명한 이후, 활동자금으로 30만 루블을 추가로 하사했다. 이미 이선에게 50만 루블을 주었음에도, 추가로 매년 러시아 대공에 준하는 연금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또, 노벨 형제는 매년 주식 배당금을 보내줄 예정이었다.
이선은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부호가 되었지만, 그 돈을 허투루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꼭 필요한 지점에만 사용할 터였다.
고려인 부대 무장에 대한 투자, 의용함대에 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이선은, 마지막으로 외교적 조율에 나섰다. 이선이 외무부를 찾아가자,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차관 기르스 남작은 신신당부를 했다.
"공작, 공작은 조선 출신이지만 러시아 제국의 전권위원이 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스웨덴 출신이지만 평생 러시아 제국을 위해 봉사하듯이 말입니다."
기르스의 신신당부에 이선이 웃으면서 답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선과의 외교 문제에 있어, 공작은 조선에 관한한 러시아 내에서 최고 전문가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사적인 감정으로 조선을 대하면 안 됩니다. 러시아 정부의 조선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직까지는 관망 단계이며, 외교와 관련된 모든 사안은 반드시 외무부의 훈령을 받아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겠습니다."
"천진 주재 영사 베베르를 곧 조선과의 수교를 담당할 전권공사로 임명할 예정입니다. 또한 남부 우수리 국경위원 마튜닌 역시 공작을 도울 것입니다. 반드시 이 두 사람과 협의하여 조선과 접촉하길 바랍니다."
온건파인 기르스는 혹여 어린 이선이 사고를 칠까봐 좌불안석이었다. 이선은 딱 부러지게 답했다.
"저는 조선 국왕의 장자이자, 북양대신과도 돈독한 사이입니다. 절대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걱정마십시오."
이선은 당장 '사고'를 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를 방증하듯, 러시아 주재 청국 공사 증기택을 찾아가 작별인사를 했다.
"어서 오시오, 완화군. 아니, 공작이라고 해야하나? 활약이 대단하더이다."
"활약은 흠차대신께서 훨씬 대단하시지요."
2월 24일, 러시아와 청국 간의 국경회담이 종결되었다. 이른바 이리조약(伊犁條約)으로 러시아는 이리 지방의 대부분을 청에게 돌려주고, 대신 청은 러시아에 900만 루블을 배상금으로 지불했다. 또한 러시아는 신강과 몽골, 감숙에서 무역의 특권을 얻었다. 양측 모두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이룬 것이었다. 이로써 10년 간 지속된 청-러 국경 위기는 해소되었다.
허구헌날 서구 열강에게 당하기만 하던 청나라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거둔 외교적 승리였다. 이는 전적으로 국익을 지키기 위해 단호히 러시아에 맞섰던 증기택의 공이었다.
"글쎄, 활약이라 할 수 있을지. 오히려 이 때문에 북경의 조정에서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더군. '대청이 단호하게 나서기만 하면 서양 오랑캐들은 굴복한다'라고. 쯧, 아라사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거늘. 저들의 양보 뒤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소."
증기택은 북경의 조정이 환호작약하며, 러시아를 굴복시키기라도 한 것 마냥 승리를 선전하는 행태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서양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이 외교를 맡아야지요. 북양대신이나 흠차대신과 같은 분들이 대청을 이끌어야 합니다."
"과찬이군. 아무튼, 내가 듣기로 공작은 이제 연해주로 떠난다고 들었는데."
이선은 자신의 행적이 증기택의 귀에 들어갔고, 이홍장에게 보고가 올라갔으리라고 짐작했다.
"예, 맞습니다. 작별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공작도 잘 알겠지만, 본래 그 영토는 20년 전까지 대청의 영토였소. 이제 되찾기는 난망해졌지만······."
증기택은 씁쓸하게 웃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의 결과로 러시아에 할양된 영토였다.
"그만큼 연해주는 조선, 청, 러시아 3국의 이익이 모이는 지점입니다. 저는 3국 모두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가려 합니다. 북양대신께 꼭 그렇게 전해주십시오."
"뭔가 복안이 있는 모양이군. 그리 전해드리지."
이선은 알렉산드르 2세뿐만 아니라, 이홍장과의 관계를 계속 잘 유지해나가는 게 목표였다.
'그래야 내가 러시아의 앞잡이라는 의혹을 불식시키고, 조선으로 돌아간 후에 청국의 간섭을 피할 수 있다.'
이선은 목표를 다짐했다.
'1년 이내로 무장을 갖춘 증기선 1척과 병사 1천 명을 내 지휘하에 확보하는 게 목표다.'
이선은 이들과 함께, 인천항으로 입항할 날을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