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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更張)
기무처의 발족과 함께 임금은 자신을 꾸짖는 윤음(綸音)을 전국에 반포했다.
"임금 자리를 이어받은 이래로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켰고 백성들의 재물을 빈번히 거두어들여 가난한 사람이나 잘사는 사람이나 다 곤궁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나의 죄이다. 화폐를 자주 고치고 죄 없는 사람을 많이 죽인 것도 나의 죄이며, 뇌물이 공공연히 성행하고 탐오하는 자들이 징계되지 않아 곤궁한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정상이 위에 전해지지 않은 것도 나의 죄이다."
임금은 조선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자기 자신을 통렬히 비판했다.
"저축이 오랫동안 거덜 나서 군사와 아전들을 먹여 주지 못하고 변란이 일어나게 한 것도 나의 죄이다. 여러 나라와 우호관계를 가지는 것이 시의인데,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여 백성들의 의혹만 자아내게 하였으니, 이것도 나의 죄이다."
임금은 반성만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제대로 정치를 할 뜻을 밝혔다.
"아아, 나의 죄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무슨 면목으로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을 다시 대하겠는가. 슬프고 부끄럽고 두려워 실로 임금 노릇하는 낙이 없다. 너희 대소 인민들은 내가 종전의 과오를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을 허락하려는가. 백성들에게 불편했던 종전의 정령들은 다 없애 버리고 훌륭한 관리들을 골라 백성들을 다스리게 할 것이며 실제적인 방법을 강구하여 온 나라 사람들과 함께 고쳐 새롭게 하려 한다."
"성상의 지극하신 윤음을 받들어, 신등은 일대 경장을 일으켜 나라의 오랜 폐단을 바로잡고, 성상의 치세를 밝게 하겠사옵니다."
"무릇 경장(更張)이란 거문고의 느슨해진 줄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 음을 조율한다는 의미이니, 해이해진 나라의 법을 다시 고치는 것입니다."
기무처 총재 대원군과 당상들이 윤음을 받들어 머리를 조아리자, 임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세요. 군국의 기무를 경들에게 맡기니, 종묘사직의 명운이 경들에게 달렸습니다."
말은 그래도 통렬한 반성은 결코 임금의 본심이 아니었다. 기무처가 대신 써준 글이었고, 임금이 아닌 기무처의 통치를 정당화해 주는 윤음이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임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편을 들어야 할 관료들조차 기무처의 역할을 지지했으니, 임금은 자신이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를 절감했다. 사실상 기무처에게 통치권을 이양하고, 왕은 문서에 도장이나 찍어 주는 신세로 전락했다.
기무처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가 문벌을 숭상하는 것은 진실로 공평한 하늘의 이치가 아니다. 나라에서 사람을 등용하는 데에 어찌 귀천으로 제한을 둔단 말인가. 이제 경장하는 때를 맞이하여 마땅히 사람을 등용하는 길을 넓혀야 하겠다. 무릇 서북인, 송도인, 서얼, 의원, 역관, 서리, 군오, 상민들도 일체 주요 관직에 등용하되 오직 재주에 따라 쓸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첫 조치는 인재 등용이었다. 오랫동안 조선 왕조에서 차별받았던 서북(평안도·함경도)과 개성 사람들, 서얼, 중인, 평민에 이르기까지 재능에 따른 광범위한 등용을 약속했다.
"이제 능력만 있으면 관직에 오를 수 있다는군."
"이미 완화군 대감을 따라서 온 이들 중엔, 서북 출신 상놈들이 대부분이라는군. 그들 모두 임금님의 호위병이 되었다는데."
"완화군 대감이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정말인가 보이."
"그럼 정말로 상놈도 관직에 오를 수 있단 말인가?"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만."
이는 야망 있는 평민들, 특히 신분의 한계로 관직에 오르지 못하던 이들에게 엄청난 기대를 주게 하였다.
이선을 따르는 이들 중에는 서북과 개성 출신, 서얼과 중인, 평민이 다수 있었으니 최대 수혜자는 이선 자신이 될 터였다.
"탐관오리는 나라와 백성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다. 이제부터 탐오하여 벼슬에서 쫓겨난 자가 있으면 일체 보고하여 사실을 조사해 실정을 캐낸 다음 등급을 나누어 죄를 주고, 탐오한 수량대로 추징하도록 하겠으며, 설사 대사령으로 용서를 받더라도 죽을 때까지 서용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백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조치인, 탐관오리에 대한 징벌이었다.
기무처는 즉시 전국에 명을 내려 탐관오리들을 조사하여 징벌하게 했다. 이들이 도적질한 모조리 토해내서 국고로 환수하도록 했다.
백성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에라이, 저 썩어빠진 놈! 그렇게 해 처먹더니만 꼴 좋다!"
"저놈이 빼앗아 간 걸 다 토해내니 속이 다 시원하구나!"
"언제 귀신이 잡아가나 했는데, 결국 국태공께서 잡아가는구나!"
"탐관오리에겐 국태공이 귀신인 거지. 으하하!"
"국태공 천세!"
"탐오의 근원은 조정이 깨끗하지 못한 데 있다. 뇌물을 받아먹고 청탁을 받아들여 그들에게 구실을 주고 있으니, 마땅히 조정의 위에서부터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리들을 통솔하도록 하겠다."
결국 지방관들이 부패한 건, 중앙의 고관과 척족들이 벼슬을 팔아넘기고, 뇌물을 받아 그 뒤를 봐주기 때문이었다.
기무처는 바로 이런 부패의 고리를 끊고자 했다.
"이 모든 적폐의 근원을 통렬히 청산해야 한다. 앞으로 뇌물을 받고 관직을 매매하는 자는 나라를 팔아먹은 자로 간주하여 처벌하리라!"
대원군의 추상같은 엄명에, 부패한 관리들은 모조리 쓸려나갔다.
그야말로 산천초목도 뒤흔드는, 호랑이와 같은 기세였다.
대원군 입장에서도 탐관오리 대부분이 민씨 척족과 관계있으니 숙청으로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복식을 개혁한다. 모든 관리는 흑단령을 착용하고, 사민(士民)의 옷을 실용적으로 바꾸라."
이미 1860년대 대원군 집정 시기에 한 번 복제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한발 더 나아갔다.
관리의 조복을 흑단령으로 통일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소매 넓은 옷과 챙 넓은 갓을 입고 쓰지 못하게 하여 실용적인 옷차림을 갖추도록 명했다.
"특히 병정들의 복식을 바꾸는 일이 시급하다. 적은 날랜데 우리 군사는 둔하니 어찌 전투에서 승리하길 바라겠는가? 이번에 친군으로 편입된 부대의 사례를 참조하여, 서울과 지방의 군대가 착용하는 융복(戎服)과 철릭(天翼)을 군복으로 대응하라."
이선은 복식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싶었지만, 사대부의 반발을 고려해서 군사에만 한정해서 서양식 군복을 착용하게 했다. 고려대대의 군복, 즉 러시아군 군복이 참고사례가 되었다.
상투는 그대로 틀고 있으니 군모는 옛 관습을 유지하되, 군복만 바뀌게 되어 기묘한 조합이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반발이 터져 나왔다. 사대부들은 의복이 집착했고,
원로대신들부터 유생에 이르기까지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우리 왕조의 관복과 사복은 모두 명나라의 제도를 따른 것으로서, 법제로 된 만큼 오늘날 변통시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정들의 복제를 다른 제도로 고쳐 착용한 것도 놀랍고 의혹스러운 일입니다. 이번에는 관리와 사민(士民)의 복제까지 아울러 하루아침에 고쳤으니, 이것이 어찌 후세에 법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경들의 말은 옳지 않다. 흑단령은 바로 선조 대왕 때에 전교하여 규례로 정해서 행한 것이니, 어찌 옛 제도가 아니겠는가?"
이선은 임금의 입을 빌려 단호하게 답했다.
"지금 나라의 형세가 문약하고 군사 제도가 해이하여 모두 구차하게 편안히 지낼 생각을 품고 일을 하기 싫어한 결과, 위의 명령이 아래에서 시행되지 않고 아래의 사정이 위에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에 어찌 옛 습관에 젖어 나태하게 지내면서 진흥시킬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 논하지 말라."
사대부들이 좋아하는 전례와 시의를 들어 반박하니, 논리적으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기무처는 강력한 의지와 단호한 태도로 복제 개혁을 단행했다.
더 나아가 서양의 기술을 도입할 기기국(機器局)을 설치하고, 고려대대를 중심으로 한 친군영(親軍營)을 신설하여 군사력의 혁신을 꾀했다.
역시나 이에 대한 반발도 쏟아져 나왔다.
"어찌 서양 오랑캐의 기이한 물건을 끌어들여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곤란하게 하시나이까?"
"신등은 성학의 도가 무너지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나이다. 명을 거두어 주소서!"
"근래 들어 세계의 대세는 이전과는 현격하게 달라졌다. 영국, 법국, 미국, 아라사 같은 구미 제국은 정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사업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들은 육로와 해로로 지구상을 두루 다니며 세계만방과 조약을 체결한다. 병력으로 서로 견제하며 공법을 상호간에 지켜 가고 있으니, 이는 흡사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이선은 이번에도 임금의 명의로 전교를 반포했다.
"그 결과 천하에 유아독존적 지위에 있던 중국도 오히려 평등하게 조약을 체결하고, 서양을 엄격하게 배척하던 일본도 끝내 우호 통상 조약을 맺고 개혁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어찌 까닭 없이 생겨났겠는가? 실로 대세가 그럴 수밖에 없어서이다."
이선은 제국주의 시대의 냉엄한 현실, 서세동점과 일본과 중국의 개혁에 대해 지적했다.
"조선이 어찌 만청(滿淸)이나 왜적과 같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조선은 중화의 도를 이어받은 나라로, 오백 년간 성학의 도리를 꽃피어왔사옵니다. 어찌 스스로 오랑캐와 같은 무리가 되려 하시옵니까?"
"양이의 기술이 비록 신묘하다 할지라도, 그 기술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필시 사교(邪敎, 기독교를 지칭)가 들어와 백성들의 어리석은 정신을 물들이고 성학의 도를 위협할 것입니다!"
"기계를 제조하는 데 조금이라도 서양의 기술을 본받는 것을 보기만 하면 대뜸 사교에 물든 것으로 지목하는데, 이것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서양의 기계는 이로워서 진실로 이용후생할 수 있으니 농기구, 의약, 병기, 배, 수레 같은 것을 제조하는데 무엇을 꺼리며 하지 않겠는가?"
기무처는 이른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관점에서, 이용후생(利用厚生)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내세웠다.
"그들의 종교는 배척하고, 기계를 본받는 것은 병행하여도 사리에 어그러지지 않는다. 더구나 강약의 형세가 이미 현저한데, 만일 저들의 기계를 본받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저들의 침략을 막고 저들이 넘보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이선은 자신의 구호, '진정한 양이(攘夷)는 양이(洋夷)보다 강해질 때 비로소 이뤄진다'를 전국에 일깨우고자 했다.
"실로 안으로 교화를 닦고 밖으로 우호 조약을 맺어, 우리나라의 예의를 지켜 가면서 부강한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너희 사민들과 함께 태평성세를 누릴 수 있다면, 이 어찌 아름답지 않겠는가? 너희 사민은 국가의 정령을 받들도록 하라!"
말로만 끝내는 게 아니라, 어명으로 전국의 척화비를 뽑아 던지게 했다. 척화의 시대가 끝났다는 상징적인 조처였다.
10년 전 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를 대원군이 이끄는 기무처가 뽑아 버리니, 사대부들은 대원군의 표리부동함을 비난했다.
"척화를 내세우며 권세를 누리던 대원군이, 이제는 개화를 내세워 권력을 잡는구나."
"표리부동한 늙은이 같으니!"
하지만 패도주의자, 대원군은 사대부의 비난 따위 전혀 개의치 않고 있었다.
대원군의 고민은 실질적인 영역에 있었다.
"내가 계유년(1873) 이전에 10년간 섭정할 때에 쌓인 곡식이 400만 석, 동전은 500만 냥이나 되었고 면포 등 물류는 창고에 넘칠 정도로 충분해 각 군영의 군병들에게 매달 급료를 나눠 주고도 남았다."
대원군은 나라의 빈 곳간을 보며 한탄했다.
"계유년 이후 10년간 국가의 형세가 조잔해지고, 병사와 백성들이 변란을 일으키게 되었으니 통곡이 절로 나오는구나!"
이선이 가진 청은 30만 냥을 급히 들여와 개혁 자금으로 쓰게 하고, 척족과 탐관오리의 재산을 몰수하여 국고로 환수했다지만 이는 언 발의 오줌 누기 격이었다.
"조선의 부는 토지에 있으니, 지조(地租)를 개정하여 조세를 개혁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게 어디 하루 이틀 만에 될 일이냐? 지금 나라에 쓸 돈이 많은데, 당장 재정이 부족하니 큰일이다."
"수호 통상 조약으로 관세 협정을 맺었으니, 향후 관세가 조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도 당장 쓸 수 있는 돈은 아니지 않으냐? 군대를 모으고 민심을 안정시키려면,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다."
대원군은 전에 없는 조급성을 보였다.
한번 정권을 놓쳤다가 민심의 지지를 얻어 재집권한 대원군은, 조금만 실수하면 자신의 정권이 무너지리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이선과 기무처의 온갖 개혁조치도 자신의 성향과 거리가 멀지만, 그래서 다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생이 재정의 급한 불을 꺼보겠나이다."
"네게 방법이 있겠느냐?"
이미 이선이 청은 30만 냥이란 거액을 들여온 걸 대원군은, 적잖이 기대되었다.
"예. 일단 일본과의 조약을 마무리 지은 후에, 청국으로 가서 논의를 해 보겠습니다."
"좋다. 네게 외교의 전권을 맡기도록 하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구해 오거라."
대원군은 사실상 이선 마음대로 하라고 백지수표를 내준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