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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70화 (7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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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 돈

1882년 9월 15일.

이선은 다시금 천진으로 가는 배 위에 올랐다.

2년 반 전에는 밀항자의 신분이었으나, 지금은 당당한 사절의 신분이었다.

'청나라 군함을 타고 가는 게 옥의 티군.'

사절단은 조선에서 철수하는 청군의 군함으로 천진으로 이동했다.

'일단 저들을 조선 땅에서 내보내고, 대원군의 납치가 아닌 자발적인 사은사의 파견이 이뤄졌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정여창과 마건충, 5백 명의 회군과 북양 함대는 조선과 일본의 강화조약이 체결되자 다시 청으로 철수했다.

천진에 도착한 사절단 일행은, 영선사가 머물렀던 곳을 조선국 상관으로 교체하여 태극기를 내걸었다.

"호오, 저 태극과 사괘는 무엇이오?"

"조선의 국기외다."

조미 수호 통상 조약에서 처음 등장한 태극기는, 1882년 8월 조선의 국기로 제정되었다.

청은 조선이 속방임을 강조하여, 청의 황룡기를 본뜬 청룡기를 쓰라고 권했지만, 이를 불쾌하게 여긴 임금과 조선 관료들은 태극기를 만들게 했다.

천진 조선 상관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외국 땅에서 최초로 선을 보인 조선의 국기가 되었다.

이선이 사절단을 이끌고 북양 대신 관저에 이르자, 이홍장이 직접 맞이했다.

"황제 폐하의 황은과 중당의 현명한 판단으로, 소방은 변란을 진압하고 일본을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두 지극한 황은이요, 중당의 공입니다. 조선이 왕화의 덕을 입으니, 만백성이 칭송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왕 전하와 대원군께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조선 국왕과 대원군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외다. 중국과 조선은 오랫동안 한집안과도 같은 관계였으니, 자식의 화급을 멀리 있다 하여 어찌 부모가 가만 지켜만 보고 있겠소?"

청과 조선의 관계를 부모 자식에 치환하는 건 듣기 거슬렸지만, 이선은 이미 때를 기다리고 면종복배하기로 결심한 바였다.

"작금의 변란을 맞이하여, 조선 조정은 개혁의 필요성을 화급히 느꼈습니다. 재조(再造)에 준하는 노력을 가하지 않으면 자강이 위태로울 것입니다. 이에 대청국의 중체서용을 본으로 삼아 개혁을 추진하오니, 조선의 여섯 가지 급선무를 중당께 전해 드립니다."

이선은 조선 조정이 정한 여섯 가지 개혁 정책, 선후 육조(善後六條)를 전달했다.

"첫째, 민생의 안정. 둘째, 인재의 등용. 셋째, 군사 제도의 정비. 넷째, 국가 재정의 확대. 다섯째, 사법제도의 개혁. 여섯째, 상공업의 진흥."

하나같이 시급한 일이었다. 이선의 말에 이홍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오. 모두 중요한 국가의 급선무라 할 수 있소. 이 여섯 가지를 이루면 족히 자강을 이뤄낼 것이오."

"예, 하오나 이를 이룩하려면 역시 재정의 문제가 가장 시급합니다. 중당께서 고견을 알려 주십시오."

대원군 정권을 기왕 승인하기로 한 이홍장은, 흔쾌히 답했다.

"이미 서양 각국과 수교 통상하기로 하였으니, 관세만큼 좋은 게 없소. 부두를 짓고 세관을 설치하는 일은 속히 계획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오."

조선은 그동안 일본과 무관세 무역을 강요당했으나, 유리한 조건의 관세 협정을 맺었으니 중요한 소득원이 될 터였다.

"하오나 조선에는 통상의 경험이 없고, 세관 전문가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청국의 해관총세무사도 영국인이라 들었습니다. 서양인을 임명하는 건 어떨지요?"

청의 세관 책임자, 해관총세무사는 영국인 로버트 하트였다.

"좋은 생각이오. 국왕께서 자문으로 관원의 파견과 외국인 고빙을 요청한다면, 적절히 상의해서 파견하겠소."

"저는 이미 국왕 전하의 전권을 받았습니다. 국왕께서는 중당을 직접 만나기 전엔 돌아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만큼 조선에서는 중당을 높이 신뢰합니다."

이선은 전권대신의 직함을 보여 주었다.

"아무래도 완화군이 국왕과 대원군께 나에 대해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셨나 보구려."

"이르다뿐입니까? 중당의 신묘한 책략은 장발적을 멸하고, 서양과 외교를 하며, 나라를 구원하셨으니 실로 대청의 홍복입니다."

이홍장은 기분이 좋은 듯, 껄껄 웃었다.

"하하, 좋소. 아무래도 내게 부탁할 일이 있나 보군."

"역시 중당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지금 급한 일이 많사온데, 나라에 한 달 치의 재정도 없으니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일을 중당께서 신경을 써주셔야 하니,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이선은 일부러 처지를 비약해서 말했다.

1881년 조선 정부의 총세입은 100만 석 내외였고, 상평통보로 환산하면 약 500만 냥이었다.

가뜩이나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재정이었는데, 갑작스럽게 터진 군란을 수습하고 개혁 정책을 추진하느라 재정이 고갈된 상황이었다.

"완화군의 뜻은 국채를 원하는 것 같은데, 차금의 액수 및 이자, 그리고 어떻게 기한을 나눠서 상환할지 상의해 봅시다. 마건충이 재정에 관한 전문가이고, 마침 조선 정세에 대해 잘 알게 되었으니 일단 그와 논의해 보시오."

"그럼 상의한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마건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초상국과 광무국(鑛務局)에서 각각 30만 냥까지 출자합니다. 연이자는 8%, 상환 만기는 12년으로 하되 첫 5년간은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지불. 이후 7년간 원금을 나눠서 상환합니다."

"이에 대한 담보는요?"

"조선의 관세, 홍삼세, 광산세입니다."

이선은 어이가 없었다. 이는 조선의 핵심 세원이었다.

"사실상 조선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세원을 모두 저당 잡으라는 말씀이신데?"

"조선 재정이 빈약한 건 누구나 아는데, 그럼 뭘 믿고 차관을 빌려줍니까?"

"중국과 조선의 관계가 부자 관계와도 같다는 중당의 말씀을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요. 아버지가 아들한테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중국에선 부자 관계에도 공짜란 없습니다."

"……."

단호한 마건충의 태도에 이선은 이홍장에게 직소하기로 했다.

"마 대인이 너무 까다롭습니다. 이자나 담보에 대한 조건이, 마치 서양에서 차관을 제공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흠, 하지만 마건충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않소?"

결국 조선이 내걸 수 있는 재정적 카드는 한정적이었다. 대신 이선은 외교적 카드를 내밀었다.

"중당께 차마 이 말씀만은 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뭐든 말해 보시오."

"얼마 전, 일본이 차관을 제안했습니다. 광산 개발을 담보로 300만 엔을 말입니다. 하지만 광산은 나라의 재산이니 함부로 개발권을 줄 수 없고, 더욱이 일본은 신뢰할 수가 없어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의 재정은 빈사 상황이니, 결국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릅니다."

"뭣이?"

이선의 말은 절반의 진실이었고, 절반의 거짓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임오군란 직후에 임금이 일본에게 차관을 청하고, 일본이 광산 개발을 담보로 제안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역사대로 전개가 된 이후에 벌어질 일이었다. 조선이 광산 개발권을 넘기는 걸 거부함에 따라 결국 무산되었다.

그만큼 이선의 말은 현실성이 있는 말이었기에, 일본의 대륙 진출을 막고자 하는 이홍장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이는 이익의 일로 볼 때가 아닙니다. 대국은 사소한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중화의 은덕을 만방에 베풀었습니다. 그렇기에 제후국은 언제나 중화에 사대의 예의를 다해 왔던 것입니다."

이선은 중국이 늘 가져왔던 황제국으로서의 체면을 동시에 자극했다.

"중국이 조선을 대함을 마치 서양처럼 한다면, 제후국의 신민이 어찌 대국을 따르겠습니까? 중국이 일본보다 조선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면, 조야의 여론이 어찌 되겠습니까? 부디 중당께서는 조선의 처지를 이해해 주십시오."

대국으로서의 체면이든,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실리적 요인이든 이홍장으로선 묵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중차대한 일이니,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먼저 총리아문과 논의해 보겠소."

이홍장은 조선에 대한 결정권이 사실상 자기에게 있음에도, 만약의 경우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해 총리아문에 결정을 떠넘긴 것이었다.

북양 대신 이홍장이 조선이 보내온 선후육조와 외교 문서를 삼가 바칩니다.

조선의 척박함이 심상치 않고 변란을 겪으면서 나라에 한 달을 버틸 곡식도 없으니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신이 들은 밀보에 따르면, 일본이 전에 조선에 차관을 허락했는데, 조선의 군신은 위협과 간섭을 받을 것을 우려해서 아직까지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일본은 광산을 대신 개발해서 차관의 이자를 상환하는 방안을 타진했는데, 다행히 김홍집 등이 불가하다고 힘써 반대했다 합니다.

하오나 조선의 세관과 관원을 고용하는 것과 선후사의 여섯 조항에 필요한 경비 일체는 실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조선을 대함에 있어 인(仁)이 부족하여 일본인들의 조롱을 받을까 우려가 됩니다.

조선에 은혜를 베풀어 일본을 제압하면, 하나도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

이는 비용을 들이지 않는 은혜가 될 것이니, 고명하신 생각에 어떻습니까?

조선이 기다리고 있으니, 천진으로 비답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직례총독 겸 북양 통상 대신 이홍장

결국 총리아문의 수락이 떨어지니, 이홍장은 조선에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초상국과 광무국에서 각 50만 냥씩, 100만 냥을 차관으로 제공하겠소. 이자는 연리 5%고, 상환 기간은 총 12년이오. 초기 5년은 이자만 지불하시오."

청 조정 산하 초상국과 광무국에서 차관으로 은 각각 50만 냥까지 출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은 100만 냥은 상평통보 500만 냥에 해당하니, 조선 정부의 1년 치 예산이었다.

"담보는 설치한 세관에서 나오는 관세요. 이만하면 만족하겠소?"

"중당의 배려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는 모두 조선을 특별히 아끼는 황상의 은혜임을 잊지 마시오."

"지극한 황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이선과 사절단은 고개를 조아렸다.

이 정도면 국가 간의 차관으로는 굉장히 관대한 조건이었다. 어차피 관세를 담보로 내거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대국의 체면은 어쩔 수가 없군. 실제 역사에서 조선이 이자도 못 내게 되니까, 결국 이홍장이 탕감해 주지 않나? 청일 전쟁으로 차관 상환은 없는 일이 되어 버렸고.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지.'

이선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이선은 종사관으로 따라온 어윤중과 차관의 집행 문제를 놓고 논의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되지만, 조선으로선 일단 급한 불은 끄게 된 셈입니다. 앞으로 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재정 개혁을 이루냐는 것이지요. 어 공이 재정 개혁을 이끌어 주십시오. 나는 일전에 공이 올린 상소를 매우 인상 깊게 읽어 보았습니다."

이선은 당시 조선 최고의 재정 전문가인 어윤중을 중용 할 의사가 있었다.

"황송할 따름입니다."

"어 공이 생각하는 재정 개혁안은 무엇입니까?"

"조세의 개혁이 가장 시급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보십시오."

잠시 고민하던 어윤중은, 자신이 구상하는 계획을 말했다.

"하문하시니 답하겠습니다. 첫째, 잡세 혁파. 둘째, 지세 제도 개혁. 셋째, 궁방전과 아문 둔전 제도의 개혁. 넷째, 환곡 제도 폐지. 다섯째, 삼수포세의 폐지. 여섯째, 재결감세(災結減稅). 일곱째, 도량형의 통일. 여덟째, 지방 수령의 5년 이상의 임기 보장. 아홉째, 조운선 제도 개혁. 열 번째, 역로 제도 개혁입니다."

1877년, 전라도 암행어사를 하면서 농민의 참상을 똑똑히 지켜본 어윤중은, 탐관오리들을 징벌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조치가 아니라 판단하여 조세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 당대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임금은 진지하게 어윤중의 제안을 고려했지만, 기득권의 반발을 두려워하여 끝내 채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선은 달랐다.

"하나같이 작금의 조선에 꼭 필요한 조치입니다. 이를 위해서 제일 먼저 왕실부터 나서서 궁방전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진작 내 소유의 궁방전을 처분했습니다."

"군 대감께서 솔선수범하시니 나라의 복입니다."

"과찬입니다. 나는 여기에 몇 가지 조치를 더하고 싶습니다."

"말씀해 주시옵소서."

"조세 개혁을 이뤄내면, 서양식으로 상공업과 통상의 장려, 재정의 단일화, 금은본위제의 확립과 화폐 사용, 중앙은행의 창설 등을 고려할 수 있겠지요. 이를 위해선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 하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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