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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의 체면
"그 어떤 열강도, 시대의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해결한 후에 부강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선은 힘을 주어 말했다.
"토지를 개혁해야 합니다. 조선의 부는 대부분 토지에서 근원하고, 절대다수가 농민입니다. 태조 대왕께서 이 나라를 세우실 때의 이상인 경자유전을 이뤄내지 않으면, 작금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농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만들어, 국가의 근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
그 누구보다 급진적인 이선의 구상은, 토지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어윤중조차 놀라게 했다.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참으로 위대한 이상이오나 반발이 엄청날 것입니다."
"알지요. 그러니 나도 지금 당장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 심중에 품은 뜻이 그러하니, 어 공은 알아두도록 하십시오. 언젠가 이뤄낼 때가 있을 것입니다."
토지 개혁은 조선의 모든 개혁에서도 가장 중요하면서도 심각한 뇌관이라, 사대부뿐만 아니라 모든 지주들과 척을 질 수 있는 문제였다.
"예, 저 역시 그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강직한 성격의 어윤중은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과 싸우는 데 거침이 없었고, 자신의 천직이라 여긴 조세 개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나설 용의가 있었다.
외세를 대할 때도 다르지 않았다. 청나라든 일본이든, 부당한 요구를 하는 나라에게는 강력히 맞서 싸웠다.
"좋습니다. 알다시피 청국이 차관의 대가로 조선에게 서양과의 조약에 준한 무역 장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조건보다 나쁘게 체결할 생각이 없습니다. 양과의 조약에는 최혜국 대우가 있기 때문에, 조선이 청나라와 불리한 조약을 맺는 순간 큰 타격이 올 수 있습니다."
역사대로라면 바로 이때, 이홍장은 사은사로 온 김홍집과 어윤중에게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강요한다.
청나라에 거의 일방적으로 유리한 불평등조약으로, 청의 종주권과 무역의 특권을 명문화했다.
어윤중은 조선에 그나마 유리한 조약을 맺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임오군란으로 대원군이 납치되고 청나라의 일방적인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역사가 바뀐 만큼, 그렇게 끌려다닐 이유가 없었다.
이선은 차관 협상보다 이 무역 장정을 더 중요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청과 조선의 무역 장정 주요 쟁점은, 형식적 문제는 차치하고 실질적인 문제 있었다.
청의 치외법권, 한성 개시, 청 상인의 내지 침투 허용, 해안의 어로 활동, 홍삼 세칙 등 다섯 가지 문제였다.
"치외법권은 불가합니다. 한성 개시를 허용하면 일본이나 서양이 똑같은 요구를 할 것입니다. 내지 침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과 서양은 개항장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중국 상인만 들어오면 저들이 용납하겠습니까? 중국 어민의 어로 활동을 허용하면 일본도 똑같은 걸 요구할 겁니다. 또한 홍삼은 조선의 중요한 세원인데, 관세로 3할이나 적용하는 건 너무 과합니다. 1할로 줄여 주십시오."
이선의 단호한 태도에, 청나라 대표인 마건충과 주복은 그들의 논리를 내세웠다.
"최혜국 대우를 걱정하는 모양인데, 이 장정은 대등한 국가 간에 체결된 조약이 아니고 종주국과 속국 간의 통상 규정이니 호혜와 평등의 원칙이 적용될 수 없소."
'일본이나 서양이 퍽이나 네, 알겠습니다 하겠군.'
"다른 나라는 몰라도 일본은 반드시 똑같은 걸 요구할 겁니다. 가뜩이나 일본의 경제 침투가 활발하니, 일본은 이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중국의 사례를 들어 조선을 압박하면, 대응할 여지가 너무 적습니다. 조선을 일본의 경제 종속국으로 만드시렵니까?"
"으음……."
이선은 일본에 대한 청나라의 경계심을 거듭 자극했다.
하지만 청나라 관리들도 순순히 물러서진 않았다.
양측이 신랄하게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니, 자연히 합의는 뒤로 미뤄졌다.
최종 합의가 이뤄질 동안, 이선은 기름칠도 열심히 해 두었다.
"부디 무역 장정을 관대한 조건으로 해 주십시오. 조선이 중국의 동쪽 울타리라는 걸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조선의 재정에 여유가 생겨야, 군사도 정비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회군 및 북양 수사와 함께 외적을 방비할 수 있겠지요. 왜적도 감히 조선을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
"일리는 있소만, 이 무역 장정은 속국을 특별히 우대하는 것으로……."
"에이, 그런 말씀 마시고. 제가 지금까지 홍삼 무역으로 거둔 이문의 일부를 북양 대신께 관세로 바쳐오지 않았습니까? 앞으로 국가의 공무역에 포함될 터이니, 관세를 3할이나 적용하면 조선의 이문도 적고 중당께 드릴 수 있는 것도 없게 됩니다. 하지만 홍삼 무역이 공무역이 되더라도, 이문의 일부는 계속 북양 수사에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흐흠."
"조선 속담에 '누이 좋고 매부 좋고'란 말이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저도 좋고, 중당도 좋은 일입니다."
이홍장은 유능한 인물이었지만, 역시나 청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동안 이선과의 협력 관계로 정치 자금도 톡톡히 마련해 둔 상황이었다.
단순히 조정 고관이 아닌 회군과 북양 수사, 즉 후일 군벌 북양군으로 성장할 파벌의 수장인 이홍장은 늘 돈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선은 '조선과 청국'이 아닌 '이선과 북양 대신'의 특수한 관계를 자극했고, 국익 못지않게 파벌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홍장에게는 제법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알겠소. 고려해 봅시다."
"자, 그럼 또 다른 대국의 체면을 기대하러 갑시다."
"또 다른 대국이라니요?"
"세상에는 중국보다 더 큰 나라가 있소. 아라사, 러시아라고."
이선은 씩 웃었다.
"서양인도 나라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영국인은 언제나 명분보다 실리를 탐하나, 러시아인은 그렇지 않지요. 유럽의 중국이랄까……. 아무튼 대국의 사고방식은 좀 다르거든."
이선은 천진 주재 영사관을 찾아가, 베베르와 오랜만에 재회했다.
"안녕하십니까, 베베르 영사. 조선 국왕 폐하와 섭정공(대원군) 각하를 대신해서 귀국 황제 폐하께 안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러시아 황제 폐하를 대신해서 귀국 국왕 폐하와 섭정공 각하께 안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선과 베베르는 반갑게 악수를 하였다.
"축하드립니다, 공작. 황제 폐하께서도 공작의 귀국을 기뻐하십니다."
"제가 황제 폐하께 부탁드렸던 사항은……?"
베베르는 러시아 제국 쌍두 독수리 문장이 박힌, 외교 문서 봉투에서 전문을 꺼내 읽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조선 섭정공의 정부를 승인합니다. 바로 이 베베르에게 조속한 양국 수교 조약의 체결과 육로 통상 조약의 추진을 명하셨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영사. 역시 황제 폐하께서는 현명하십니다."
이선은 웃으면서 보다 실질적인 문제를 논의했다.
"고려대대의 조선군 편입과 무기 조달에 대해선 승인이 있으셨습니까?"
"물론 승인합니다. 앞으로 훈련이 필요할 터이니, 이왕이면 수교 후에 러시아 교관을 파견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서양인 군사 교관의 필요성은 조선 역시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교관을 파견하면 제3국의 반발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제3국에서 교관을 초빙하면 어떨까 합니다만."
이선은 떡밥을 던졌다.
"제3국이라 하면?"
"물론 영국을 말하는 것이지요. 고려대대가 러시아 출신이니, 신생 조선군의 교관이라도 영국인을 파견하게 하면 저들이 안심할 겁니다. 영국 장교가 청의 상승군을 지휘한 적도 있지요."
이선이 생각하는 후보는 전 상승군 사령관, 찰스 고든 장군이었다.
"공작, 농담이라도 그 무슨 말씀을? 위대한 러시아 제국의 국민들을 영국인이 지휘한다뇨? 공작은 러시아와 영국의 관계를 알지 않습니까?"
"아, 저도 그러고 싶진 않습니다만. 벌써 영국이 수교 조약을 깨겠다고 위협합니다. 말은 그럴싸해도, 결국 관세 조건이 마음에 안 든다 이거죠. 영국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습니다."
1882년, 실제 역사에서 일본을 방문한 개화당 지도부는
'조선의 독립을 지지하니, 청을 배제하고 조약을 다시 맺자.'
는 주일 영국 공사 파크스의 제안을 받는다.
청나라를 배제하고 조약을 맺자는 형식에 임금과 개화당은 기뻐해서 2차 조영 조약이 체결되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영국의 목적은 그저 10%에서 최대 30%로 맺어진 관세 협정을 5%로 낮추기 위함뿐이었다.
"이런, 얼마 전에 맺은 조약을 뒤엎겠다니? 역시 영국 해적 놈들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체면을 가리지 않는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러시아 제국과 같은 이해력과 이성을 갖추고 있지 않지요. 하지만 미국은 수교 조약을 그대로 비준하고 이행할 뜻이 있다고 합니다. 영국과 다르게 말입니다."
이선은 영국에 대한 러시아의 라이벌 의식을 자극했다.
"제가 러시아 제국과 황제 폐하를 생각하는 마음이 특별한데, 응당 조선도 어서 조약을 체결하고 싶습니다. 영국이 비준을 지체하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러시아 제국 역시 조속히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의 조건에 준하여 조약을 체결하면 어떨까 합니다만."
어차피 러시아는 무역 조건을 그렇게 까다롭게 따지는 나라가 아니었다.
베베르가 받은 훈령도 미국과의 조약 선례를 따르되, 청나라를 거치지 않고 이선을 통해 직접 조약을 맺으라는 것이었다.
베베르 본인도 조선과의 조속한 수교를 원했다. 초대 조선 공사로 자신이 내정되어 있었고, 그렇게 되면 6등 문관 영사에서 5등 문관 변리공사로 승진될 예정이었다.
"좋습니다. 페테르부르크에 보고할 터이니, 훈령이 오는 대로 수교 조약을 체결하지요."
"페테르부르크에 전문을 보내십시오. 최대한 빨리 오시지요. 조선에서는 최고의 대우를 '칙사 대접'이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칙사를 말합니다. 영사를 칙사에 준하는 대우로 모시지요."
"하하, 좋습니다. 그거 기대가 되는군요."
"이게 다 귀국과 황제 폐하에 대한 존경과 호의라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침내 우호가 이뤄지니, 양국의 모두에게 기쁜 일입니다."
조선의 친러 정책으로 인해 영국이 일본을 선택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이른바 '조러 밀약론'인데, 각국 외교 사료의 공개와 번역으로 인해 이미 21세기에는 논파된 지 오래였다.
'조러 밀약론'은 가해자의 공격적 침략 정책 탓이 아닌 피해자에게서 전쟁의 원인을 찾는 괴이한 이론이다.
'조선의 외교 정책은 어리석기 짝이 없으므로, 문명국가인 일본이 이를 바로잡는다.'
일본의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영국의 러시아 봉쇄를 정당화하기 위해 오랫동안 주장했던 이론이기도 했다.
흔히 1885년 거문도 점령이 조러 밀약설 탓으로 알고 있지만 관계없었다.
영국 해군부와 외무부는 이미 1875년부터 거문도 점령을 논의했고, 1885년 러시아와의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중앙아시아 국경 분쟁이 발생하자, 거문도를 강점했다.
조선도 영국이 가장 강한 나라인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1881년 이동인으로 시작해 1883년 2차 조영 조약, 1884년 갑신정변을 거쳐 대한 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영국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오히려 영국은 언제나 조선의 반대편에 힘을 실어 주었다.
'조선의 영국에 대한 짝사랑은 지나쳐서 안쓰러울 정도지.'
2차 조영 조약은 조선과 영국이 직접 조약을 체결했다는 형식적 문구 외엔, 1차 조약과 달리 온갖 독소조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조선의 기대와 호의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김옥균과 박영효 앞에서 '조선 독립을 지지'한다고 말했던 파크스는, 2차 조영 조약을 체결하러 가면서 일본 외무경 이노우에에게 냉소적으로 전했다.
"조선 백성은 어리석어서 독립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혹시 독립을 도모하는 움직임이 있더라도 중국이 반드시 제압할 것이다."
조선의 정책과 무관하게, 영국 정부의 일관된 아시아 정책은 '가장 강한 현지 세력'과 손을 잡아 러시아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세계 정책에 조선은 작은 부속물에 불과했다.
청일 전쟁 이전에는 청의 조선 속방화 정책을 지지하고, 이후에는 일본이 청을 대신해 강자로 떠오르자 일본을 지지하게 된다.
동아시아 정책에 있어서는 영국이 일관되게 공세적이고, 러시아는 수세적이었다.
딱히 영국이 더 침략적이거나, 러시아가 더 온건해서는 아니었다.
아편 전쟁의 승리 이후 중국 무역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영국과 달리,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한계를 명백히 인지하고 있었기에 수세적인 정책을 고수했다. 외교에 무지했던 니콜라이 2세 즉위 이후에야 강경책으로 돌변한다.
1880년대의 러시아는 열강을 자극할까 봐 조선과의 수교조차도 지체할 정도였다.
'조선이 청과 일본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국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 냉정하게 말해서 영국은 조선 따위에 관심이 없지. 만약 조선이 청을 제압하고 동양의 강자로 발돋움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가 바로 영국이 조선에 관심을 두게 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