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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부터
"푸트 공사로부터 여러분이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절단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미국까지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일 미국 공사 존 빙험(John A. Bingham)은 김옥균의 말처럼 조선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이었으나, 말만 앞선 위인처럼 보였다.
이선이 국채에 대해 넌지시 언급하자, 빙험은 호언장담을 했다.
"하하, 국채 문제는 제게 맡겨주십시오. 제겐 미국 은행가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도와줄 겁니다."
'별로 신뢰가 안 가는데…….'
하지만 호의를 거절할 이유는 없으므로, 이선은 빙험이 쓴 소개장을 받았다.
빙험은 미국까지 보빙사를 안내할 사람을 추천했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 퍼시벌 로웰입니다. 지금 일본에 체류 중인데, 아주 개방적이고 똑똑한 젊은이지요. 왕자께서 괜찮으시다면 사절단의 미국 일정을 돕게 하고 싶습니다만."
"미국인 안내자가 있으면 좋지요."
"퍼시벌 로웰입니다. 조선국 사절단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내자 역할을 자처한 20대의 젊은이가 이선에게 정중히 인사를 청했다.
'오, 명왕성의 발견자 로웰!'
이선은 후일 명왕성을 발견하게 될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에 관해 알고 있었다. 부유한 가문 출신의 로웰은, 이때만 해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개인적으로 동아시아 여행을 온 상황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미국까지 여정을 잘 부탁합니다."
이선은 로웰과 반갑게 악수를 했다.
조선어나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로웰은 도쿄제국대학 법대생인 미야오카 츠네지로(宮岡恒次郞)라는 일본 청년을 비서 겸 영어 통역으로 두고 있었고, 로웰이 자신과 미야오카의 여행비용을 자비로 부담하겠다고 함에 따라 사절단에 포함되었다.
"제게 조선어를 가르쳐 주십시오."
로웰은 사절단 중 유일한 영어 구사자인 이선에게서 간단한 조선어 회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로웰은 비록 동양의 언어는 할 줄 몰랐지만, 동양의 문화에 대해 존중심을 갖고 있고, 그 자신이 유쾌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조선 사절단과도 금세 친분을 맺을 수 있었다.
이로써 미국으로 떠날 사절단은 이선 이하 총 18인으로 늘어났다.
많지 않은 수였지만 조선, 청국, 미국, 일본이라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태평양을 건너게 되었다.
7월 18일, 샌프란시스코행 기선 아라빅(Arabic)호가 요코하마 항을 출발했다.
이미 러시아로 가기 위해 인도양을 두 차례 항해한 이선이지만, 태평양 횡단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살다가 배로 태평양을 횡단하는 날이 올 줄이야…….'
이선은 감회가 새로웠다.
21세기에 이선우로서 살아갈 때 미국을 방문해본 적 있지만, 비행기로 반나절 만에 태평양을 넘어섰으니 딱히 특별한 감흥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기선이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그래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에는 2주란 시간이 필요했다.
태평양(太平洋)은 그 이름처럼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어, 다행히도 큰 폭풍 없이 항해해 나갈 수 있었다. 사실 본래 그 이름과 달리 한번 폭풍을 맞이하면 배가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강풍을 동반하니 사절단의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조선 사절단은 동경 180도, 즉 날짜변경선에 이르자 날짜가 하루 줄어드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이처럼 선박과 철도는 세계 곳곳에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19세기 말은 지구가 하나의 단일한 세계로 좁혀드는 세계화의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2주간의 항해 일정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항해할 때는 중간에 쉬는 기항지가 많았지만, 태평양은 넓디넓은 바다밖에 없었다.
대해(大海)를 처음 넘어서는 보빙사 일행은 끝없는 바다라는 풍경에 신기해하면서도, 보이는 건 오직 끝없는 망망대해뿐, 수평선 너머에 육지라고는 보일 기색이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공포심을 느꼈다.
'세계 일주를 처음 하는 조선인이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지도 모르지.'
이선은 이들의 마음도 다잡을 겸, 한자리에 모았다.
"자, 공부합시다, 공부!"
"군 대감의 말씀이 옳습니다. 무릇 선비란 어떤 상황에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 법이지요."
부사 박정양이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이선에게는 고매한 유학적 동기는 없었고, 이들에게 미국과 서양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다.
"일단 미국에 대한 지식과 기초적인 영어 회화부터 습득합시다."
'내가 사절단의 정사인데, 영어 구사자가 나밖에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이 당시, 조선의 유창한 영어 구사자는 사실상 이선 뿐이었다. 그나마 개화당 소속인 무관 윤웅렬의 아들 윤치호(尹致昊)가 일본 유학 당시 영어를 습득하여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았지만, 푸트 공사의 전담 통역을 맡게 되었으니 차출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서양 외교관이 계속 조선에 올 터이니 영어 구사자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부사 박정양과 홍영식, 민영익, 서광범은 약간의 중국어와 일본어를 할 줄 알았으니 오례당이나 미야오카와는 대화가 가능했지만, 영어는 그동안 배울 기회가 없어 까막눈이었다.
"자, 모두 열심히 합시다!"
사절단도 국가를 대표하는 특명 전권 대신이자 왕자인 이선이 소개와 통역까지 하는 게 모양새가 별로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배 안에서 맹렬히 공부를 시작했다.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상당한 성취를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이선은 러시아 시절부터 자신의 가신인 김학우에게 진작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해두라고 지시해둔 상황이었다. 이미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가 모두 유창한 김학우는 상당한 언어적 재능을 갖고 있었고, 영어 습득도 가장 빨랐다.
중국어 역관 고영철(高永喆)은 올해 서른으로, 대대로 역관으로 유명한 가문 출신이었다. 고영철은 영선사 학도로 발탁되어, 이홍장이 세운 천진의 수사학당에서 공부했다. 다른 학도들과 달리 고영철은 상당한 열의를 갖고 접근해, 영어 습득에도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
1883년 초 서양 언어 교육 및 통번역기관인 동문학을 설립했을 때, 이선은 고영철을 주사로 발탁하여 학도 교육을 맡겼다. 고영철은 아직 부족함이 많다고 고사하였지만 이선은 임명을 강행했다.
워낙 영어 구사자가 부족해 세운 인선이지만, 고영철은 당시 조선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영어 구사자였다. 영어 습득도 김학우와 더불어 가장 빠른 성취를 보였다.
"앞으로 간단한 통역은 김 군과 고 군에게 맡기면 되겠군. 이번에 서양을 시찰하고 돌아올 그대들은 향후 조선의 동량이 될 인재이니, 계속 학업에 힘쓰시오."
"예!"
"군 대감의 말씀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이선의 격려에, 다른 수행원들도 모두 분발했다. 명문가 출신인 유길준을 제외하면 향반이나 무관, 서얼이나 중인 출신인 수행원들은 이번 서양 시찰이 하늘이 준 기회라고 믿었다.
28세의 유길준(俞吉濬)은 박규수의 제자이자 개화당의 일원으로, 조선 최초의 일본 유학생에 이어 미국 유학생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유길준이 특히 관심을 가진 분야는 국제 정치와 국제법으로,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유길준은 하버드 출신인 로웰과 늘 같이 다니며 열심히 영어와 학문을 습득했다.
무관인 최경석(崔景錫)과 현흥택(玄興澤)은 서양의 발전된 군사 기술을 습득하여 조선으로 돌아가 군제개혁에 힘쓰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중인 출신으로 개화당의 일원인 23세의 변수(邊樹)는 수행원 중 가장 젊었고, 서양 문물 습득에 적극적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할 당시부터 화학과 양잠업에 관심을 보여, 미국에서 전문적으로 과학을 배울 의지가 있었다.
부사 박정양의 추천으로 신사유람단에 이어 보빙사절단에 포함된 34세의 이상재(李商在)는 특히 서양의 사상에 관심을 가졌다. 동양에서는 아직 불경하기 짝이 없는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관해 연구해 보고 싶어 했다.
동문학 생도에서 사절단에 선발된 23세의 이채연(李采淵)은 사진과 그림으로 본 서양의 도시에 깊은 감명을 받아, 도시계획과 철도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공부하겠다는 의지가 다들 충만하니, 아주 좋군.'
자신이 관심 있는 각각의 분야별로 서양을 시찰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조선을 개혁하겠다는 열망으로 충만해 있었다.
"지금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게 중요한 시기요."
공식 직함을 가진 이들도 점잔만 빼고 있지 않았다.
명문가 출신으로 젊은 나이에 출세를 거듭하고 있는 홍영식, 서광범, 민영익은 원래 개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사였으니, 이번 시찰을 변화의 기회로 삼고 싶어 했다.
당상관인 40대의 박정양이 개중에선 가장 보수적인 인물이었으나, 그 역시 개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었다.
서양 경험이 있는 이선, 안영흠, 장무영, 오례당이나 로웰이 각자의 영역에서 필요한 것을 가르쳤고, 배우는 이들도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었으니 습득이 빨랐다.
2주간의 항해를 마칠 무렵, 이들은 서양에 대한 지식과 큰 포부를 갖고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1883년 8월 2일. 2주간의 항해를 마친 기선 아라빅은 샌프란시스코 항에 무사히 입항했다.
마침내 육지를 보게 된 사절단은 기뻐하며 외쳤다.
"드디어 미국이군요!"
"마침내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군."
순간 이선은 드보르자크 9번 교향곡, 이른바 '신세계로부터'의 음률이 떠올랐다. 드보르자크가 미국에 체류하던 1893년에 작곡된 음악이니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음악이었다.
'그래, 신세계로부터 외교적 성과를 거둬야지.'
이선과 사절단은 단순히 유람 차원에서 온 게 아니었다. 서양 문명을 시찰하고, 당면한 외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선은 더욱 의지를 굳건히 했다.
조선 사절단이 배에서 내리자, 항구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의장대가 예포(禮砲)를 쏘고 행진곡을 연주했다.
쾅!
빰빠라빰-!
사전에 서양 관습에 대해 들은 사절단은 예포 소리에 놀라지 않았다.
"미합중국 연방정부를 대리하여,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샌프란시스코 시정부가 조선 사절단을 맞이합니다. 미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남북전쟁에 참전한 장군 출신인 캘리포니아 주지사 조지 스톤맨(George Stoneman)이 사절단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니, 이선이 사절단을 대표해 정중히 답례했다.
"조선국의 국왕 폐하를 대리하여, 특명전권공사이자 왕자인 이선이 귀국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조선을 대표해 미국에 왔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께 조선의 국서를 전달하고, 발전된 서양 문명을 시찰하고자 합니다."
이선의 첫 일성(一聲)은, 사진사와 기자를 통해 신문기사로 널리 알려졌다.
미국 서부의 활발한 도시, 샌프란시스코 사회와 언론사는 문자 그대로 들썩이고 있었다.
하와이 국왕 칼라카우아(Kalakaua)가 1881년 세계 일주를 시작했을 당시, 여정을 시작한 곳이 샌프란시스코였다. 하와이 국왕이 샌프란시스코에 왔을 때도 대중의 관심은 높았지만, 이번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영접을 받아, 시내의 고급 호텔에 여장을 푼 사절단은 이튿날부터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조선 사절단의 첫 일정은, 샌프란시스코 상공회의소 방문이었다. 미국은 조선 시장에 큰 관심을 보였으므로, 첫 일정이 상공인들과의 만남이 된 것이었다.
"조선 사절단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조선 왕자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사절단이 머무는 호텔 앞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어 이동에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결국, 사절단은 호텔 뒷문으로 빠져나와 일정을 수행하기로 했다.
"미국인이 조선에 대해 저렇게 관심이 많은 줄 몰랐습니다."
부사 박정양이 감탄을 표하자, 이선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으로선 그저 흥밋거리일 뿐이지.'
조선 사절단의 독특한 외양, 즉 조선의 의복은 미국인들이 처음 보는 것이니만큼 신기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선 그 자신이었다.
조선이라는 미지의 나라에서 온 사절단도 흥밋거리인데, 단장이 왕자라는 건 더 흥미로운 일이었다. 왕자가 영어가 유창하고, 서양의 문화와 관습에 능통하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더욱이 이선이 조선의 실질적인 외교 정책을 집행하고, 러시아 황제와 특별한 관계라는 게 알려지자 세간의 관심이 폭증했다.
"이만한 특종감이 없어! 반드시 조선 왕자와 인터뷰를 따내!"
"사람이 너무 많은 데다, 주정부에서 인원을 통제하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터뷰를 못 하면 사진 한 장이라도 찍으라고!"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사진을 어떻게 찍습니까?"
"어떻게든 찍어! 절호의 특종 기회인데, 그것조차 못하면 넌 해고야!"
사절단이 움직일 때마다, 기자와 호사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조선 사절단의 미국 일정은, 대중의 무수한 관심을 받으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