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율리시스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대자본가라면, J.P. 모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미국을 넘어 세계급 자본가 존 피어폰트 모건(John Pierpont Morgan).
모건은 투자의 귀재답게, 당시 전기의 매력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에디슨의 회사에 거액을 투자하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모건이 귀사에 투자했다지요? 조선에도 투자해 주길 바랍니다. 조선의 근대화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해야 전기든 철도든 들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디슨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에디슨 회사의 투자자인 모건에게서 돈을 빌려, 에디슨의 전기를 도입하겠다는 신선한 논리였다.
"모건 씨는 그렇게 쉽게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요. 나는 조선을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이선은 미국의 호의와 투자를 구하는 처지였지만,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생각은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모건 씨에게 제가 소개를 하겠습니다. 근데 성사 여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서요. 저도 근시일 내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에디슨은 모건에게 이선을 소개해서 조선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 판단했다.
"감사합니다. 소개만 해줘도 충분합니다. 그 뒤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하지요."
모건과의 회동을 기다리는 사이, 미국 재무부로부터 차관 제공은 어렵겠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왔다.
1882년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미국 경제는 위축 상태였고, 정부의 재정도 좋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과 같은 미지의 나라에 차관을 빌려줄 여유는 없었다.
'미국 시찰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하는 것까지가 미국 정부가 베풀 수 있다는 호의라는 건가. 어쩔 수 없군.'
모건과의 회동도 지연되었다. 모건은 때마침 출장 중이었다.
이선은 가만히 앉아서 모건이라는 불확실한 동아줄만 기다릴 수 없었다.
조선 진출에 적극적인 뉴욕 실업계의 거물 프레이저를 통해 이런저런 인맥을 쌓아 나갔고, 특별한 인물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저명한 소설가, 새뮤얼 클레멘스(Samuel Clemens) 씨가 왕자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게 누구야?'
나름 문학사에도 조예가 있다고 생각한 이선이었지만, 새뮤얼 클레멘스는 기억에 없었다.
"필명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라고 하지요."
마크 트웨인이라면 이선도 잘 알고 있었다. 이선은 반갑게 마크 트웨인과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선생의 작품은 저도 읽었습니다. 『톰 소여의 모험』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지요."
"오, 조선에도 제 작품이 알려져 있단 말입니까?"
트웨인은 놀란 눈치였다.
'물론 후대에 알려질 예정이지만.'
"그건 아닙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읽은 거죠. 미국으로 오는 배 안에서 읽었습니다, 하하."
어찌 되었건 화제의 '조선 왕자'가 자신의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에 트웨인은 무척 기뻐했다.
"제 독자가 동양에도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군요."
트웨인은 당대의 미국인으로는 매우 드물게 제국주의와 인종차별에 격렬한 비판자였고, 백인이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시켜야 한다는 소위 '백인의 짐'을 극도로 혐오한 사람이었다.
"미국이 전하와 조선 사절단을 우호적이긴 하지만, 일부 정치가와 언론은 서양 문명을 배우러 온 어린아이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교육을 해 줘야 한다는 태도지요."
많은 미국인들에게 조선은 이선 그 자체로 인식되었고, 이선과 조선은 '똑똑하고 호의적이지만, 서양 문명을 배우러 온 소년'으로 인식되었다.
이선은 실제로 16세에 불과했으므로, '어린아이'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긴 했다. 하지만 서양에서 동양을 '어린아이'로 묘사한다면, 미성숙한 국가라고 풍자하는 셈이었다.
어린 소년인 톰 소여의 모험에 빗대 '이선의 모험'을 만화로 그린 신문도 있었다.
좀 더 고풍스러운 표현을 좋아하는 자들은, 오디세우스 혹은 율리시스(Ulysses)의 모험에 빗댔다.
당연히, 반(反) 제국주의자 트웨인은 이런 태도가 불쾌했다.
"배우러 온 건 맞습니다. 조선의 개혁과 생존을 위해서 서양화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의 시각으로 배우고 흡수하길 원하지요. 그건 조선이 해야 할 일이지, 미국이나 어떤 서양국가도 시켜줄 수 없는 것입니다."
조선이 나아갈 길을 전망하는 이선의 답변에, 트웨인은 감탄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이렇게 현명한 왕자가 있으니, 조선의 장래가 밝군요."
이선과 트웨인은 쉽게 의기투합을 했다.
트웨인은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사상가, 발명가, 투자가이기도 했다. 문화계뿐만 아니라 곳곳에 인맥도 넓어서, 이선에게도 매우 유용한 만남이 되었다.
"선생과 그랜트 전 대통령이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는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사령관이자, 18대 대통령으로 1869년에서 1877년까지 재임했다.
"대통령께서 회고록을 준비 중이신데, 제가 그 작업을 돕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를 대통령께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랜드는 전임 대통령이지만, 미국의 국민적 영웅이었기에 여전히 대중적 인기가 굉장했다. 불출마를 선언했음에도 188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할 정도였다.
3선 도전에 부담감을 느낀 그랜트가 포기함에 따라 백악관 재입성은 없었지만, 그랜트의 파벌은 공화당 내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오, 대통령께서도 동양에 흥미가 있으십니다. 몇 년 전에 중국과 일본을 방문한 적 있었지요."
1877년, 대통령에서 퇴임한 그랜트는 2년간 세계 일주를 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미국 전 대통령으로서 외교활동의 일환이었다.
빅토리아 여왕, 교황 레오 10세, 비스마르크, 이홍장, 메이지 등 각국의 수반을 만나 정세를 논의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도 뵙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씀을 드려보지요."
그랜트와의 회동은, 오히려 모건보다 더 쉽게 성사되었다. 그랜트는 흔쾌히 이선을 자택에 초대했고, 이선은 사절단의 외교관들을 동반하고 그랜트를 방문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하."
"미국과 새로 수교한, 멀리서 온 귀빈들을 내 집으로 초대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랜트는 호의를 보이며 이선과 악수를 했다.
"내 재임기에 불행히도 조선과 전쟁을 했습니다만, 양국의 수교와 우호 진전에 지장을 주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신미양요(1871년)는 그랜트의 재임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랜트가 먼저 유감의 뜻을 표하자, 이선도 외교적으로 답했다.
"지난 일은 잊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양국의 우호가 깊어지고, 미국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자주독립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전쟁에서 전사한 원혼들도 안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자신도 군인 출신으로, 남북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부하들을 잃은 그랜트였다. 이선의 말은 그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듯했다.
"나라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던 조선 군인들의 용맹한 분투에 대해서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나 역시 군인이었던 사람으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이상, 조선의 독립은 지켜질 것입니다."
[적군은 참패의 와중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결사 항전 중이다. 패배가 당연히 보이는 상황에서 단 한 명의 탈영병도 없다.
아군의 압도적인 전력으로 몰아붙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은 장군의 깃발 아래, 일어서고 또 일어선다. 칼과 창이 부러진 자는 돌을 던지거나 흙을 뿌려 저항한다. 이토록 처참하고, 무섭도록 구슬픈 전투는 처음이다]
- 1871, 「미 해군제독 로저스의 보고」.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도, 최후의 순간까지 광성보를 사수하려했던 조선 병사들의 분투는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때 강화도에서 노획한 조선의 유물이 미국에 있는 걸로 압니다. 수자기(帥字旗)라고, 전투에서 전사한 지휘관의 깃발이지요. 귀국이 이를 반환해 준다면, 조선 사람들도 옛일을 잊고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이선이 말한 건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였다.
'실제로는 2007년에 반환되지.'
"성조기가 외국에 빼앗겨서 전시된다면 미국의 기분도 좋지 못하겠지요. 조선에 돌려주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부에 건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각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이것으로 과거의 일은 정리하고, 이선과 그랜트는 미래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각하께서 1879년에 중국과 일본을 방문한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 미국과 조선이 수교 중이었다면, 조선을 방문하셨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건 나도 아쉽군요. 하지만 이렇게 조선의 왕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 아쉬움이 조금 풀립니다."
"저는 청국 북양대신 이홍장 공과 친분이 깊은데, 공께서 대통령에 대한 칭찬을 거듭하셨습니다."
"아, 이홍장! 참으로 대단한 인물이지요.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가 셋을 꼽으라면, 영국의 글래드스턴, 독일의 비스마르크, 그리고 이홍장입니다."
그랜트는 이홍장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그와는 가끔 편지를 보내며 교류하고 지냅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조선 사절단이 곧 올 거라고 편지를 보냈었지요."
'역시 노인네가 먼저 손을 썼군.'
이선은 그랜트와 이홍장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1879년, 그랜트가 동아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청국과 일본은 한창 류큐 문제로 대립 중이었다. 일본이 류큐 합병을 단행하자, 류큐를 조공국으로 인식했던 청국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본과 당장 전쟁을 하자는 비현실적 강경론을 일축한 이홍장은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했고, 그랜트의 방문을 이용했다. 일본을 함포 외교로 문을 열게 한 미국의 힘을, 일본이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류큐 문제를 중재해 달라는 이홍장의 요청을 그랜트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다음 방문지인 일본으로 가서 이토 히로부미와 직접 협의를 했다.
그랜트의 중재안은 류큐를 세 부분으로 나눠, 중간에 류큐를 존속시키고, 북쪽과 남쪽의 제도(諸島)를 일본과 청국이 분할하자는 것이었다. 즉 세 나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조건이었다.
이토는 미국 전 대통령의 중재를 무시할 수 없었다. 대신 류큐를 두 부분으로 나눠, 3분의 1만 청나라에 할양할 수 있다는 협상안을 내놓았다.
청나라는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명목상 조공국의 멸망을 인정하고 그 영토를 나눠 가진다면, '중화 질서'를 무너트리는 셈이었다.
결국, 일본의 류큐 합병은 단행되었고, 이홍장이 일본을 가상적국으로 인식하고 해군력 강화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이홍장은 일본의 다음 목표가 조선으로 인식했고, 바로 이때 조선의 문호 개방과 대미 수교를 권한 것이다.
"나는 류큐 문제로, 일본이 신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다음 목표로 조선을 노릴까 우려가 됩니다."
이홍장의 설득으로 친중적 입장에 기울어졌던 그랜트는, 자신의 적극적인 중재에도 일본이 고의로 협상을 파탄 냈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조선 역시 실로 일본의 태도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명정대하기로 세계에 소문이 나고, 일본이 두려워하는 미국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절단의 미국 방문에 그럴 목적이 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이홍장 공이 보낸 서한에서, 왕자는 어리지만 현명하고 국제감각이 뛰어나니 정세를 논의하기에 적당한 인물이라 하였습니다."
이홍장이 편지에 좋은 말만 썼을 리는 없지만, 이선은 이홍장과의 친분을 이용하기로 했다.
"과분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홍장 공이 조언을 주셨으니, 조선은 미국의 호의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미국과 수교를 하고 사절단을 파견한 것이지요."
"좋습니다. 현재 조선이 가장 시급한 건 무엇입니까?"
"자주독립을 지키려면,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부강, 즉 재정과 군대. 군인이자 대통령이었던 각하께선 이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랜트는 여전히 정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미국과 멕시코가 무역 협정 조약을 맺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건 그랜트 자신이 투자가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군인으로서는 뛰어난 지휘관이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그랜트는 '금권주의자'와 부패한 측근들로 둘러싸인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들은 이권을 얻기 위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랜트의 아들인 율리시스 주니어는 1883년 '금융의 젊은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퍼디낸드 워드(Ferdinand Ward)와 손을 잡고 월스트리트에 증권사를 열었다.
이 증권사는 그랜트의 명성과 정부와의 관계를 내세워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즉 그랜트는 미국의 정치·재정·군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다. 군인으로 갖는 명성, 전직 대통령으로서 갖는 영향력, 투자가들 사이에서의 명망도 모두 갖고 있었다.
"그럼 내가 뭘 도와드리면 좋겠습니까?"
"미국과 조선의 이익, 각하와 저의 이익에 모두 기여하는 길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이선은 그랜트가 솔깃할 만한 제안을 내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