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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나라
USS 트렌턴이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지중해의 항구 마르세유에 도착한 건 1883년 12월 4일이었다.
미국은 건국 이래 프랑스와 늘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미국 군함의 유럽 정박지로 프랑스는 제1의 항구인 마르세유를 제공했다.
배는 연료 보급과 수리 등의 목적으로 마르세유에 정박할 예정이었고, 그동안 사절단은 조선의 현재 수교국인 영국, 독일, 러시아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수교를 앞두고 최후의 난관에 봉착 중인 프랑스와의 협상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내 생각에 유럽 일정은 3개월은 필요합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겠습니까?"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4개국에서의 외교활동도 예정되어 있으므로, 이선은 적어도 3개월의 시간은 필요하다고 보았다.
"3개월이라. 생각보다 길군요. 알겠습니다. 3월에 출항하는 거로 예정하지요."
USS 트렌턴은 사절단을 조선까지 실어줄 예정이었다.
이선은 사절단의 동선을 세심히 짰다.
"배가 귀국 길에 이탈리아도 들를 예정이라 하니 유럽에서 총 5개국을 방문합니다. 제일 먼저 영국부터 갑시다. 그다음에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러시아.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어딜 먼저 방문하느냐에 따라 말이 나올 수도 있어서, 이선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다른 나라는 걱정 안 하는데, 영국이 걱정이다. 영국에서 미국과 같은 환대를 기대할 순 없겠지.'
영국의 패권 경쟁국인 러시아 황제와의 특수한 관계, 조영조약 비준 문제로 인한 갈등, 미국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이선은 영국에게 찍혀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선은 제일 먼저 영국으로 가서 외교 활동을 할 생각이었다.
열차를 타고 리옹을 거쳐 유럽 문화의 수도 파리에 도착한 사절단은 하루만 머무른 뒤, 곧바로 채널 해협을 거쳐 세계제국 영국의 수도 런던에 도착했다.
미국과 달리 국서를 지참하고 온 공식적인 사절단의 방문은 아니었기에, 영국 정부의 환영과 같은 것은 없었다.
조선은 영국과 얼마 전에야 조약을 비준했고, 아직 영국 외교관이 조선에 상주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조선에서 영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영국 외무부의 중견 관료가 런던 워털루 역으로 나와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영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예의상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환대 같은 건 없었다.
"그럼 여러분이 아무쪼록 영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사절단의 방문을 단순 여행처럼 여기자, 이선은 목적을 밝혔다.
"우리는 관광 목적으로 온 게 아닙니다. 최근에 체결된 조영 수호 통상 조약의 비준을 확인하고, 양국 간에 필요한 외교적 사안을 논의하러 왔습니다."
"사전에 영국 정부와 합의된 사항이 있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영국 외무부로 전문을 보냈습니다. 아마 도착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담당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인 훈령은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관료적 답변이었다. 이선은 실망스러웠으나, 미소를 유지했다.
"그럼 정식으로 요청하지요. 조선을 대표해서, 영국 정부를 이끄는 글래드스턴 총리나 외무장관 그랜빌(Earl Granville) 백작께 회견을 요청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전해 드리지요."
사절단은 런던의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처럼 조선 사절단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며 쫓아다니던 호사가나 기자들도 없었다.
미국에서의 호의적인 반응과 달리, 냉랭하기 짝이 없는 영국의 태도에 사절단도 당황한 듯했다.
영국 정부는 더 냉랭했다. 이선의 회견 요청에 대한 답변조차 지연되었다.
"지금 영국 정부 일원은 모두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쁩니다. 때가 되면 회견 시기를 통보해드리겠으니, 먼저 런던 관광을 하심이 어떠시겠습니까? 런던에는 시찰할만한 곳이 많습니다. 예전에 런던을 방문했던 일본과 청국 사절단의 경로를 참고하시지요."
"…… 그리하지요."
영국 정부가 아예 거절한 건 아니라서, 이선은 불쾌해도 기다리기로 했다.
'바빠서 못 만날 리가 있나. 진짜 바빠도 의지가 있다면 만나서 외교적 언사라도 늘어놓지.'
이선은 영국 언론을 읽으면서 분위기를 감지했다.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보도하던 미국 언론과 달리, 영국 언론은 조선 사절단의 방문을 단신으로 간단히 처리했다.
오히려 조선 사절단, 특히 이선을 콕 집어서 비판하는 기사도 있었다. 보수당 계열의 언론사였다.
- 화제의 조선 왕자, 런던에 도착하다.
…… 하지만 이 왕자는, 차르를 구한 공로로 러시아의 공작으로 예우받았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특별한 예우를 받았다. 그 매력의 근원은 무엇이며, 여왕 폐하의 정부(영국 정부)는 대체 어떤 예우를 해줘야 하는가?
…… 바로 그 매력의 근원은, 러시아와 미국을 향해 끊임없이 아첨하는 왕자의 외교적 수완이다. 조선은 극동의 약소국으로,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이었다. 중국에 아첨해온 오랜 역사가 있기에, 조선의 왕자는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국에 아첨하는 데 익숙할 것이다.
…… 여왕 폐하의 정부는, 이 어린 왕자에게 대영제국이야말로 진정한 대국임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과 러시아처럼 본토의 면적은 넓지 않아도,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세계 최강의 대국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야, 이것 봐라. 이 정도면 왜곡 보도를 넘어서 싸우자는 거지?"
미국 언론의 '왜곡 보도'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영국 언론은 이선 뿐만 아니라 조선 전체를 깔아 내렸다. 무엇이 그토록 영국을 불쾌하게 했는지, 이선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러시아와의 특수 관계는 차치하고. 조선이 영국과 맺은 조약은, 그동안 영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맺은 그 어떤 조약보다 영국에게 불리하다. 관세 최소 10%, 사치품 30% 적용한 조약은 이게 처음이니까. 청이나 일본 상대로는 5% 일괄 적용하다가 30% 적용하려니 자본가들이 얼마나 화가 나겠나. 결국, 나한테 이러는 건 조약 다시 맺자는 뜻이잖아?'
조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부지런히 애를 쓴 결과, 이선은 대영제국의 패권과 자유무역을 외치는 영국인들에게 완전히 찍혀 있었다.
미국이 제일 먼저 비준하고, 러시아가 같은 조건으로 조약을 맺는 바람에 영국은 어쩔 수 없이 비준한 것이지, 그들은 조약의 수정을 원했다.
이선에게 '친러파, 친미파, 사대주의자, 국제 질서를 모르는 어린애'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도, 결국 본질은 비교적 평등하게 체결된 조영수호통상조약을 불평등조약으로 다시 맺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불리한 조약을 체결하면, 최혜국 대우 조항에 따라 다른 나라와도 줄줄이 이권을 내줘야한다. 절대 그럴 순 없지.'
결국, 양국 간에는 이 틈을 넘지 못하면, 관계의 진전에 한계가 있었다.
이선과 사절단은 영국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며, 포크 소위의 안내를 받아 런던의 명소들을 둘러보았다.
세계의 해상권을 지배하며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산업혁명으로 이뤄낸 막강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국제무역을 지배하고 있는 '세계의 공장' 영국은 그야말로 빅토리아 시대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강력함을 드러내는 상징적 장치는 박물관에 있었다. 19세기는 박물관의 시대이기도 했다. 박물관은 단순히 예술품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런던의 상징인 대영박물관을 찾은 사절단 일행은 전시되어 있는 유물 대부분이 모국의 허락 없이 가져왔다는 것, 특히 중국관의 유물들이 1860년 영불 연합군의 북경 약탈 당시 무력으로 빼앗아 왔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건 황궁에 있는, 황족만이 쓸 수 있던 황실 물품이 아닌가. 어떻게 이게 영국까지……."
1860년의 북경 함락과 원명원 약탈은 조선에서도 익히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었지만, 막상 그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새삼 충격적이었다.
전통 사회의 조선인들에게 중화는 곧 세계 그 자체였다. 비록 내심 경멸하는 '오랑캐'인 만주족이 다스린다고 할지라도 중국이었다.
그런데 그 중국이 바다 저 멀리에 있는 대륙 서쪽 끝의 크지도 않은 섬나라, 영국에게 두 번이나 대패를 당하고 수도가 함락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중국은 이제 더 세상의 중심, '中國'이 아니었다.
개화파의 비조인 박규수가 북경 함락 직후인 1861년 직접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그것을 깨닫고 개화사상을 조선에 전파한 것이었다.
"중국만이 아니오. 여기 있는 건 모두 인도, 이집트, 터키, 그리스 등등에서 영국이 멋대로 가져온 거지. 이게 다 영국의 힘이 아니겠소?"
이선은 극히 냉소적으로 말했다. 대영제국의 부강함은, 주변부 국가들을 침략하고 수탈해서 얻은 결과였다.
인도의 방직산업을 무너트려 영국의 원료 공급지로 삼고, 아프리카를 멋대로 분할하여 수탈하고, 중국에 아편을 강매해서 얻은 이윤으로 무역흑자를 누렸다.
세계의 공장,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비결은, 주변부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신과 문명의 이름으로 그걸 정당화하지.'
영국은 'Rule Britannia'를 내세워 세계를 지배하면서, 이를 신이 준 문명화의 사명으로 정당화시켰다.
'그래도 선의를 말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지. 아편전쟁을 기독교 문명의 수치라고 비판한 현 총리 글래드스턴이라든지.'
글래드스턴은 비스마르크식 현실 정치(Realpolitik)와 대비되는 도덕 정치(Moralpolitik)를 내세워, 자유주의적 태도로 국내외 정책을 이끌었다. 대외정책도 보수당에 비하면 훨씬 유화적이었고, 이선은 글래드스턴과 대화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글래드스턴이 조선 사절단에 대해 신경을 안 쓰는건, 이선을 홀대할 목적이 아니라 진짜 발등에 떨어진 불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영국의 최대 관심사는 이집트 왕국의 영토인 수단에서 일어난 급진 모슬렘 반란, 즉 '마흐디 반란'이었다. 마흐디 반군은 수단을 넘어 영국의 보호국인 이집트까지 침입하고 있었다.
이집트를 유럽과 인도를 잇는 핵심 지역으로 여기는 영국으로선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글래드스턴은 12월에 수단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선으로선 별로 좋지 못한 시기에 영국에 온 셈이었다.
'흠, 그러고 보니 신과 도덕, 마흐디 반란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인물이 있군.'
이선이 청나라에서 친분을 맺었던 영국군 장교, 전 상승군 사령관 찰스 고든은 이 무렵 육군 소장으로 진급해서 영국에 체류 중이었다.
고든은 대중적 전쟁 영웅 이미지를 꺼려, 런던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지만, 이선이 만나기를 청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군. 진급을 축하드립니다."
"각하의 업적에 대해선 저 역시 많이 들었습니다. 영국에서 이렇게 만나니 더욱 반갑군요."
이선과 고든은 호의적으로 악수를 한 후, 바로 정세에 대해 논했다.
"영국 정부는 수단 문제로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부는 수단을 포기하기로 정한 모양인데, 이에 대한 반발이 큽니다. 특히 군부는 수단의 모슬렘 반란이 이집트까지 전파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대외 유화론자인 글래드스턴은 희생을 감내하고 수단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수단의 포기를 결정했다.
그러자 강경파의 반발이 쏟아졌다. 이집트의 반영(反英) 민족주의 봉기, 이른바 '우라비 반란'이 발발했다 진압된 게 불과 작년의 일이었다. 이들은 수단과 이집트의 무슬림이 연대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했고, 조속히 진압을 원했다.
"장군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저야 군인이니 정부의 명령을 따를 뿐이지요."
"그럼 장군의 향후 계획은 어떠신지?"
"아시다시피, 전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성격이 못 됩니다. 군부 일각에서는 제가 이집트군에서 복무하여 수단에 주둔한 경력이 있으니, 수단으로 보낼 계획이 있는 듯합니다. 제안을 고려 중입니다."
역사대로라면 고든은 1884년 1월 수단의 총독직을 받아들여 하르툼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수단의 모슬렘 반란을 진입하는 건 쉽지도 않을뿐더러, 위협적인 적에게 포위되어 사는 엄청난 고역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갈 생각입니까?"
"그게 정부의 명령이고, 신이 내린 소명이라면 따를 뿐입니다."
철저한 군인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답게, 고든은 정부와 신을 이유로 댔다.
"장군. 솔직히 묻고 싶습니다. 중국 복무와 이집트 복무 중에, 어느 쪽이 더 나았습니까?"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중국이 더 많은 영광을 준 것 같습니다."
고든은 '차이니즈 고든' 시절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했다. 이선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장군이 청나라에서 상승군을 조직하였듯이, 조선에서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습니까? 조선은 서양식 군대를 창설할 예정입니다. 장군이 신생 조선군의 고문관이 되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