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93화 (93/812)

92

현실 정치

유럽의 중앙, 베를린에서는 치열한 현실 정치(Realpolitik)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

현실정치의 거장답게, 이선이 무슨 말을 하든 비스마르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일과 조선이 함께 이해관계를 논할 만하다고 했지요. 하지만 독일과 조선은 국제 정치에서 이해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영국과 러시아, 혹은 프랑스라면 모를까. 독일은 동아시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자 이선은 멀리 조선에서 온 편지를 비스마르크에게 전달했다.

"조선국 외무차관 묄렌도르프가 독일제국 재상 각하께 보내는 서한입니다."

비스마르크는 묄렌도르프의 서한을 읽어 보았다. 읽기를 마친 비스마르크가 말했다.

"묄렌도르프 이 친구, 출세했군요. 예전처럼 천진 영사 대리면 나한테 직접 편지를 보낼 수 없을 텐데. 내가 보더라도 두 단계 정도는 거쳐서 올라왔어야 할 겁니다."

"조선의 왕자를 편지 배달부로 썼으니 출세한 게 맞지요."

이선의 농담에 비스마르크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렇게 되는군요. 여러모로 왕자의 재치에 감탄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웃음을 거두고, 다시 정색했다.

"묄렌도르프, 아니 왕자께서 하고 싶은 말은 잘 알겠습니다."

묄렌도르프가 보낸 편지에는, 이선이 그에게 했던 말이 담겨 있었다.

이선은 묄렌도르프를 외무아문 협판으로 임명하면서, 비스마르크의 외교정책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심지어 비스마르크가 동아시아 주재 독일 외교관들에게 보내는 비밀 훈령도 암시했다. 묄렌도르프는 비스마르크에게, 이선이 독일 외교정책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비스마르크 외교정책의 핵심은, 독일 중심의 세력 균형이었다. 이를 위해선 프랑스와 러시아가 손을 잡지 말아야 하며, 이들의 관심사를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돌릴 필요가 있었다.

"각하께서는 반드시 러시아와의 삼제동맹을 부활시키고 싶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발칸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대립이 지속한다면, 결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하나로 묶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려야 합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너머 청국령 몽골, 만주, 투르키스탄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와의 협상을 계속 타진하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2세 역시 고립을 절감하고 있었으므로, 독일과의 협상 필요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동맹의 부활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프랑스에 다녀오니, 지금 프랑스 정부의 관심은 온통 인도차이나에 쏠려 있더군요. 베트남을 두고 청나라와의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장담하건대, 늦어도 여름에는 전쟁이 시작될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프랑스가 알자스-로렌이 아니라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집중한다면, 그건 독일이 바라던 바일 겁니다. 만약 청나라와의 전쟁이 길어진다면……."

독일이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심을 아시아로 돌리길 원한다면, 이선도 그랬다.

현재 청나라의 최대 관심사는 조선이었다. 그 관심사가 몽골, 만주, 신강, 베트남에 집중된다면, 조선은 운신의 폭이 넓어지리란 기대가 있었다.

"조선이 할 수 있겠습니까?"

비스마르크는 외교적 수사를 저버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각하께서 조선을 믿을 수 없다면, 저 이선을 믿어 주십시오. 저는 러시아 황실 및 청나라 조정과 특수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선도 비스마르크가 조선을 믿을 거로 생각하진 않았다. 이제 막 국제무대에 등장한, 동양의 약소국이 독일의 세계정책에 관여하겠다는 건 가소로운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선이라면 달랐다. 그가 알렉산드르 2세나 이홍장과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럼 조선은 무엇을 원합니까?"

"독일 자본의 투자, 독일인 고문관의 채용, 독일 군사교관의 파견, 조선 학생의 독일 유학, 독일식 제도의 수용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건 어려운 게 아닙니다만, 이미 조선은 영국군 장성을 군사고문관으로 받아들인 거로 압니다만."

이선이 고든과 체결한 계약은 아직 비공개였는데, 비스마르크는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일본도 처음에는 프랑스 교관을 받아들이다가, 나중에 독일식 군사 교리와 교관을 받아들였습니다. 조선은 청나라 및 러시아와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영국 장군을 초빙해야 했지요. 장군도 섬나라인 영국보다 독일이 더 조선에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생 조선군의 모델은 독일군입니다."

고든도 신생 조선군의 모델로 독일식 군제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좋습니다. 이미 독일 자본 투자와 독일인 고문관 채용 건은 묄렌도르프를 통해 이야기가 나온 상황이니, 협의해 보도록 하지요. 유학생 파견도 환영입니다."

1883년에 독일군 교관이 일본에 파견되고, 일본도 독일에 유학생을 대거 파견한 바 있으므로, 독일에는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선을 장기적으로 친독 국가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였다.

"각하께서는 이해하셨겠지만, 지금 조선은 영국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선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조영수호통상조약 건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맺은 조약을 비준 못 하겠다고 억지를 부린 건 영국이지, 조선이 아닙니다. 다행히 미국, 러시아, 독일이 비준을 강행해서 영국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원안을 관철했다는 이유로 영국은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흐음."

"그리고 제가 러시아 황실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게, 조선이 친러 국가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국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영국은 러시아의 진출을 극도로 경계하니, 오해할 여지가 있긴 하지요."

이선은 마침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가 아시아로 진출하면, 독일 입장에는 좋은 일일지 몰라도, 영국은 극도로 경계할 겁니다. 영국은 이미 조선의 부속 도서 점령을 고려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건 조선이 친러 국가라서가 아니라, 영국이 러시아 봉쇄의 선봉으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이선은 영국의 거문도 점령을 암시했다. 고든의 군사고문관 채용으로 영국의 정책이 바뀌길 원했지만, 만약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여러 겹으로 둘 필요가 있었다.

"타국의 영토를 침범하는 건 쉽게 선택할 일이 아니지요."

"영국은 러시아에 대해 과민반응하고 있습니다. 특히 총선 시기가 다가오면 더 그렇죠."

"자유당 정부는 군사적 모험을 원치 않을 터인데요."

"자유당은 보수당에게 유약하다고 비난받기에 오히려 더 강경하게 나올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영국은 제2의 크림전쟁도 각오할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영국도 잃는 게 많습니다. 그렇게까지 되진 않을 겁니다."

비스마르크는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을 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까지 가는 걸 원치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영국은 일본의 러시아 공포 의식을 자극하여, 일본이 추구하는 대륙 침략을 정당화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지금의 세력 균형을 깰 나라는 러시아가 아니라, 단언컨대 일본입니다."

이선이 가장 우려하는 건 영국보다 일본의 공격성이었다.

"각하께서는 이미 베를린 회의에서 발칸의 정직한 중재자를 자처하셨고,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문제를 놓고 대립하는 열강들을 중재하기 위해 새로운 회의를 준비 중이신 거로 압니다."

줄곧 식민지 확장에 반대했던 비스마르크였지만, 점증하는 독일 산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1884년에야 처음 식민지 확보에 나선다.

1884년, 비스마르크는 베를린에 유럽 열강들을 초청하여 회담한다. 베를린 회담에서 아프리카 분할 안이 결정되었다. 최대 수혜자는 단연 영국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영국에 대한 프랑스의 적개심을 증가시키고, 반면에 독일에 대해서는 줄어들도록 하였다.

"동아시아 문제에서도 독일이 정직한 중개자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만약 불상사가 발생할 경우, 영국과 러시아를 중재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 독일뿐입니다."

"으음……."

"또한, 독일에 대한 일본의 숭배는 강합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의 말은 듣지 않아도, 독일의 말은 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면부지의 독일인을 외무차관으로 기용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호오, 그런가요?"

"독일은 동아시아에 이해관계가 없기에, 각국은 더욱 공정하리라 믿을 겁니다. 또한, 재상 각하의 외교적 신뢰도가 그만큼 높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이선의 찬사에도, 비스마르크는 무덤덤했다.

"이거, 왕자께서 독일과 본인에 대해 이렇게까지 신뢰할 줄 몰랐습니다. 과분하다 싶을 정도군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독일과 조선이 함께 이해관계를 논할 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마침내 비스마르크는 씩 웃으면서 표정을 풀었다.

"독일과 조선이 이해관계를 같이 할지는 아직 모르겠는데, 나와 왕자가 이해관계를 같이할 만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 말씀은 곧……."

"우리의 이해관계를 보건대,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감사합니다, 각하.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이선은 진심으로 기뻤다.

'세계사의 거인, 비스마르크를 설득하다니.'

오히려 비스마르크는 지극히 합리적인 인물이기에, 외교사를 꿰뚫어보고 있는 이선이 논리로 설득 가능한 인물이었다.

"다만 중요한 전제 조건은, 러시아의 정책변화입니다."

"The secret of politics? Make a good treaty with Russia(정치의 비밀이란 무엇인가? 바로 러시아와 좋은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이선은 비스마르크가 1887년에 러시아와 재보장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 말을 선제적으로 인용했다.

비스마르크는 그게 후대의 역사에 기록된 자신의 말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껄껄 웃었다.

"하하, 그거 좋은 말이군요. 내 생각도 그와 같습니다."

"제 생각에, 1884년은 외교사의 분수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재상 각하께서 각본을 짜고 무대를 마련해주십시오. 주연배우도 모두 정해져 있지요. 저는 각하를 보조하는 조연출로 만족합니다."

비스마르크가 연극무대의 배후에서 황제와 왕들을 조종하는 만평은 유명했다.

"이런, 겸손은 훌륭한 미덕이지만 정치가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왕자야말로 앞으로 훌륭한 각본가 겸 배우가 될 소질이 있습니다."

비스마르크는 이선이 장차 정치적 거물이 되리라고 확신했다.

"얼마 전에 일본의 이토 공을 만났는데, 동양 최고의 정치가가 되리라고 덕담을 건넨 적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웃 나라의 젊은 라이벌이 등장했군요."

'이토 히로부미라. 분명 앞으로 조선과 나의 숙적은 이토가 되겠지.'

"실례지만, 왕자께서 올해 나이가 어찌 됩니까?"

"(만) 16살이 됩니다."

비스마르크는 처음으로 놀란 듯했다. 동양인의 나이는 쉽게 짐작할 수 없어, 이선을 20세 이상의 성년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그 나이에 막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치른 것 같은데, 놀랍군요. 동양 왕실에서는 일찌감치 후계자 교육을 받나 봅니다."

"그런 셈이지요. 제 할아버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조기교육을 시키셨습니다."

이선은 늘 그렇듯이 대원군의 이름을 팔았다.

"아, 조선의 섭정공 말이군요. 손자 사랑이 지극한가 봅니다."

69세의 비스마르크에게도 이선은 손자뻘이었다.

"어디 가나 비슷하지요. 독일의 황태손께서도 일찌감치 후계자 교육을 받은 거로 압니다."

훗날의 카이저 빌헬름 2세가 되는 황태손 빌헬름은 한창 군사교육을 받고 있었다.

황태자 프리드리히, 훗날의 프리드리히 3세와 영국 공주 출신 태자비 빅토리아는 자유주의와 친영적 성향으로 인해 비스마르크와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비스마르크는 은밀히 황태손에게 영향력을 발휘했고, 빌헬름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철저한 프로이센 군국주의자로 성장했다. 비스마르크가 원하던 바였다.

'부자 관계에도, 조손 관계에도, 정치적 후견인과 보호자 간에도 언제든지 권력의 향방을 놓고 갈등할 수 있다.'

이선의 은유를 이해했는지 않았는지, 비스마르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왕자와 같은 현명한 왕족이 있으니, 조선의 장래가 밝습니다."

이선은 덕담에 덕담으로 응수했다.

"조선을 독일과 같이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면, 죽어서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일본 사절단이 왔을 때, 비슷한 말을 들었지요. 오쿠보 공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1872년, 독일을 방문한 일본 사절단의 오쿠보 도시미치는 비스마르크를 만나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오쿠보는 깊은 감명을 받은 듯, 독일을 모델로 한 근대화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쿠보 공은 반대파에게 암살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국가 지도자에게 암살만큼 무서운 것도 없지요. 왕자가 갈 길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오쿠보는 1878년, 근대화 정책에 반대하던 무사의 잔당에게 대낮에 암살당했다.

"염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비원을 이루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선은 맹세했다. 절대 죽지 않는다고, 반드시 살아남는다고. 이선도, 이 나라 조선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