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00화 (100/812)

99

조선으로 가는 길

1884년 3월 14일, 이선과 사절단은 러시아 황실의 환송을 받으며 페테르부르크를 떠났다.

사절단은 미국 군함이 정박 중인 마르세유로 다시 돌아갔다.

'이제 조선으로 가는 머나먼 여정이 시작이군.'

마르세유를 출발한 USS 트렌턴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제국 이래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분열을 마치고 통일이 된 지 10년밖에 안 된 이탈리아였다. 동아시아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1880년에 조선에 수교 사절을 보낸 바 있고, 조선과의 수교 의사도 적극적이었다.

조선과 이탈리아 간에는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었으므로, 협상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건 이탈리아 왕국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프랑스 공화국이었기에, 이탈리아는 종교 문제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주 청국 주재 이탈리아 공사가 곧 조선으로 곧 파견될 예정입니다. 양국 간 조속한 수교가 이뤄지길 바랍니다."

"조선 역시 기쁘게 맞이하겠습니다."

이선도 이탈리아와의 수교를 적극 지지했다.

'조선이 중립을 선언하면,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가 지지해 주겠지.'

이탈리아 방문을 끝으로 보빙사의 공식 일정은 끝났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6개국을 돌아다니며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둔 이선이었다.

로마에서 며칠 간 체류하며,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적을 관람하던 이선은, 카이사르의 동상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상념에 잠겼다.

'카이사르는 역사를 바꿨지만, 본인은 암살당했지. 내가 이대로 조선에 돌아가면, 아마 다시는 조선을 떠나지 못하겠지? 승리하든, 패배하든.'

이제 조선으로 돌아가면, 치열한 권력투쟁의 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선의 나이 이제 17세였다. 그동안은 어리다고 눈감아줄 수 있어도, 이제는 조선에서 명백히 성년으로 대접받을 시기였다. 아니, 군대와 재정을 쥐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성년이나 다름없었다.

과거에 대원군의 보호를 받고 지금도 정치적 동맹 관계에 있는 이선이었다.

'하지만 결국 내 뜻대로 개혁과 근대화를 이룩하려면 언젠가는 대원군과도 결별해야겠지.'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임금은 임오군란 이후 기나긴 침묵 중이었다. 실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지만, 어찌 됐건 군주국가인 조선의 임금이었다.

이선은 부왕을 군주로 계속 군림하게 하고, 그 권위를 조금도 건드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정치는 내각이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고종이라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군주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지.'

대원군과 국왕, 그리고 완화군.

보수파와 온건 개화파, 그리고 급진 개화파.

위정척사파와 외척이 정치 무대에서 소멸한 지금, 조정은 크게 세 파벌로 나뉘어 있었다.

이선은 귀국과 동시에, 국제 정치 못지않게 복잡한, 아니 더 그보다 위태로운 국내 정치의 치열한 장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국제정치는 실패한다고 죽지 않지만, 국내정치는 실패하는 순간 바로 나락이지.'

그렇기에 조선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멀고 험했다.

이선도 사람인데,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이선은 앞으로의 권력 투쟁, 개혁, 근대화, 자주독립에서 끝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모든 걸 성공해 최고 권력자가 되고, 국가를 반석 위에 올린다. 하지만 과연 국가의 성공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나면, 새로운 열강이 되길 원하겠지. 실제 역사의 일본처럼. 과연 나는 어디서 멈출 수 있을까? 아니, 내가 멈추게 할 수는 있을까?'

한번 돌아가게 된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 누구도 멈출 수 없었다.

'권좌에 앉아 있는 고독한 권력자.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겠지. 그런 삶을 10대, 20대부터 누려야 하는가? 죽을 때까지?'

이선은 까마득한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의 최고 권력자들이 얼마나 고독했는지, 역사를 공부한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권좌는 이선의 자리가 될 터였다.

이선은 모든 걸 그만두고, 미국이나 러시아, 혹은 다른 나라에서 한 개인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내가 지금 러시아에서 눌러앉는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지. 러시아 황실은 물론이고, 조선에서도 좋아할 사람 많을걸. 그럼 난 조선의 왕자 겸 러시아의 공작, 브라노벨의 주주로서 부와 명예를 갖춘 삶을 누릴 수 있겠지. 아, 이 얼마나 편안한 삶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조선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국왕의 장자, 왕실의 일원으로서의 책무가 무겁지. 나를 이 시대로 부른 완화군의 영혼이 용납하지 않을 거고. 그리고, 2천만 조선인의 더 나은 운명을 위해서라도. 조선은 살아남아야 한다. 나 자신도.'

이선은 카이사르의 동상 앞에서 물러났다. 어떤 운명이 기다리든, 그는 결코 멈출 수가 없었다.

사절단을 태운 배는 다시 지중해를 남하하여, 3월 31일 수에즈 운하에 도달했다.

이선은 이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봤지만, 처음으로 온 조선인들은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을 이어 아시아로 향하는 관문인 수에즈 운하에 놀라워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면 시일이 걸리므로, 사절단은 잠시 배에서 내려 카이로에 체류했다.

이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카이로 체류 중에 방문한 피라미드였다.

무려 4천 년 전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다는 점에 경이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자, 그럼 내부를 보시지요.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정수를 볼 수 있습니다."

"좋지요. 기대됩니다."

한데 이선을 제외한 조선인들은 피라미드에 직접 올라가 내부를 들여다보자는 포크 소위의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니, 왜 거절하는 겁니까? 이런 기회가 다시 오는 게 아닐 텐데요. 설마 파라오의 미라가 겁나기라도 하나? 소심하군요."

포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선에게 물었으나, 그도 모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이선만이라도 내부 구경을 하려 하는데 민영익과 홍영식이 만류했다.

"군 대감, 유학을 배웠다는 사대부란 이가 어찌 남의 무덤에 올라 그 안을 구경할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이 무덤은 옛 애급(埃及,이집트) 국왕의 무덤이라 하지 않습니까? 패역무도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영국은 애급을 점령한 것도 모자라, 옛 왕의 무덤을 외국인에게 공개하다니요.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잔혹한 자들입니다. 영국과는 상종을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인들의 반발은 포크가 생각하는 것처럼 소심함이 아니라, 사대부로서 절대 용인할 수 없는 행위였던 것이다.

이들은 영국이 이집트를 침략한 후에, 전리품처럼 왕의 무덤을 공개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군.'

이선은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라, 포크에게 설명해서 양해를 구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 내부 관람은 그만두지요."

"할 수 없군요."

포크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지만, 수행원으로서의 자기 임무를 충실히 했기에 사절단을 데리고 다시 카이로로 돌아갔다.

수에즈 운하를 지나 홍해를 항해한 배는 4월 12일 홍해 입구의 아덴에 도착했다. 15일 아덴을 떠난 배는 인도양을 횡단하여 8일 후 인도의 봄베이에 도착했다.

다시 10일을 체류한 후 실론의 콜롬보에 도착했는데, 거의 동양 문화권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조선인들은 눈에 띄게 활동적으로 변했다.

특히 민영익은 지금껏 보였던 것 중 가장 큰 관심을 실론에 나타냈다.

원래 불교 교리에 밝은 김옥균과 교류하면서 불교에 관심이 있었던 개화당 일원은, 북방 불교와 다른 남방 불교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콜롬보의 고위 성직자들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누었다.

"북방과 남방의 불교는 어찌 다릅니까?"

대화의 주제는 성직자의 의상, 평신도와 성직자 사이의 경의의 방식, 절의 크기와 같은 것에서 교리의 차이 등 다양한 것이었다. 종교에 큰 관심이 없는 이선이었지만, 그 또한 불교 교리에 대해 흥미가 생길 정도로 열띤 논의였다.

사절단 모두가 만족했던 콜롬보를 떠나자 이제 여정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말라카 해협을 지나 싱가포르를 경유한 후, 영국의 조차지인 홍콩에 도착했다.

조선으로 바로 가는 항로는 아직 개척되지 않았기에 상하이를 경유했다. 이제 조선은 지척이었다.

6월 21일, USS 트렌턴은 작년부터 시작된 대항해를 마치고 제물포에 입항했다.

"드디어 조선이군요!"

제물포는 1년 전 처음 출발한 곳이었다. 즉 조선인 최초의 세계 일주를 한 것이었다.

"동쪽으로 한 바퀴를 돌아 마침내 제 자리에 도착했군요. 우리는 조선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겁니다."

이선은 그 자체로 감개무량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조선에 도착했다는 기쁨, 실로 오랜만에 조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하는 듯했다.

그동안 고락을 함께한 사절단과 포크는 꽤 친밀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특히 이선과는 거의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다.

"이 모든 여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미국 정부와 귀관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선의 감사에 포크 또한 웃으면서 답했다.

"저 역시 여러분과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여러분들은 생전 처음 보는 세계를 경험하면서 얻은 것을 체화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아아, 정말 다들 노력했지요. 세상을 보는 눈이 확 달라졌을 겁니다."

사절단 중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던 민영익조차도, 조선에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나는 방금 광명의 세계를 보고 내가 태어난 암흑세계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을 명확히 볼 수는 없지만, 곧 내가 나아가야 할 찾기를 원합니다."

"특히 저는 서광범 씨와 변수 씨를 높이 평가합니다. 왕자께서는 원래 서양 문물에 밝은 사람이니까 예외로 하고, 미스터 서와 미스터 변은 내가 보아온 조선인 중 가장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내가 번역해 준 백과사전 자료들, 특히 세계의 역사, 정치, 문화를 배우는 데 엄청난 열의를 보이더군요. 그들은 조선에서 매우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포크는 확신하고 말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사절단의 귀국은, 새로운 빛이 조선에 들어온 셈입니다. 특히 지난 1년간 세계를 돌아본 사절단 일원이 조선 정계에서 큰 힘을 갖는다면, 조선의 개혁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럴 목적으로, 젊고 유능하고 야심 찬 인재들을 세계 일주에 동참시킨 것이지.'

이제 이들의 정치의 전면으로 나설 때가 된 것이다.

6월 23일, 사절단의 복명(復命)이 있었다.

이미 반년 전에 돌아온 부사 박정양이 임금에게 보고를 한 바 있었다. 하지만 정사이자 사절단의 핵심 인물이 귀국하게 되니, 임금과 조정 신료들은 이들의 보고를 듣길 원했다.

"신 특명 전권 대신 이선과 보빙사 일원은 성상께 삼가 복명하옵니다."

"어서들 오라. 참으로 노고가 많았다."

"성상의 은혜로, 신등은 조선의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쳤나이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왔습니다."

"훌륭하다. 미국과 태서(泰西, 유럽) 각국을 돌아보니 많은 것을 보았을 터. 서양을 일본과 비교하면 그 힘은 어떤가?"

임금의 직설적인 하문에, 이선은 종사관 홍영식에게 대신 답할 것을 권했다.

"미국은 토지가 비옥하고 자연자원이 광대하여 일본은 모두 이에 미칠 바가 못 됩니다. 태서의 법과 군비는 진실로 심원하고 튼튼하니, 일본은 서양 제도를 약간 모방했다 할지라도 서양에 견주어 논할 수 없사옵니다."

이전까지 개화당의 모범이 서양을 배우고자 했던 일본이었다면, 이제는 서양문명 그 자체가 된 것이었다.

"내가 전에 박정양에게 들으니, 미국의 부강함이 천하제일이 들었다. 과연 그러한가?"

이번에는 참찬관 민영익이 답했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그 나라는 땅이 넓고 곡식이 많이 생산되며, 사람들이 모두 무실한고로 상무가 매우 왕성하여 비할 나라가 없나이다."

"그렇다면 방문국들 중에서는 어디가 제일 좋았는고?"

"서양에서는 모두 불란서 파리가 제일 좋다고 하나, 신이 보기에는 미국 뉴욕이 제일 좋았습니다. 파리가 번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로되 그 융성함이 뉴욕만 못한 것 같습니다."

조선 사절단은 유럽의 오랜 전통보다는, 팽창하는 근대 세계의 상징과도 같은 미국 뉴욕에 가장 감탄했다. 열렬한 친서양주의자가 된 이들에게, 서양 문명의 상징은 곧 미국이었다.

과거엔 중화와 이를 계승한 조선이 문명이고 양이가 야만이었다면, 이제는 서양이 문명이고 조선은 그를 본받아야 했다.

광명의 세계와 암흑세계 운운하는 것은 과장이라 할지라도, 그만큼 서양과 동양, 근대와 전근대의 현격한 격차를 느낀 것이었다.

"전하, 신 이선이 삼가 아뢰옵니다."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이선이 입을 열자, 임금 이하 모든 신료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