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08화 (10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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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자

대원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위로는 왕실을 반석 위에 올리고, 아래로는 민생을 바로잡는다. 부국강병을 달성해 자주독립을 이뤄 내고, 조선을 그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할 강한 나라로 만든다. 이는 나 역시 원하는 바가 아닌가.'

다만 손자가 자신보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음은 짐작이 갔다.

이선이 꿈꾸는 조선은 대원군이 꿈꾸는 조선보다 훨씬 더 높은 이상의 나라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 저 녀석은 정말로 조선을 아예 철저하게 바꾸려고 하는군. 허허, 왕실에서 저런 녀석이 나올 줄이야.'

본래 대원군은 완고한 인물이었다. 자기 뜻을 꺾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선을 대할 때는 달랐다. 손자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방향성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파들의 우려를 들으면서도, 이선을 제지하기보다 편을 들고 싶었다.

아들에 대한 실망이 컸던 만큼, 손자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컸다. 뜬금없이 외국으로 떠났던 손자는 엄청난 거물이 되어 돌아왔다.

때로는 통제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못 미더운 아들과 달리 손자하고는 권력을 두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내 나이 예순넷. 앞으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 그래도 내 대업을 이을 후계자가 성장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대원군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내가 집정했던 시기의 개혁에 관해 이야기했지. 네 말대로 단호하게 물러서지 않고 일을 추진했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성공 비결이 또 있지. 무엇인지 알겠느냐?"

"서양이라는 외부의 적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바로 답변을 하는 이선을 보고 대원군이 웃음을 흘렸다.

"바로 그거다. 서양을 적으로 삼고, 전쟁까지 했지. 내가 강력한 척사 척양 정책을 이끌고 있으니 감히 반대하는 자가 있을 수 없었다."

대원군은 냉혹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천주교도에게 특별히 악감정이 없었음에도,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령을 강화하고 박해했다. 수천 명의 천주교도가 처형되고 서양 열강과 전쟁을 하는 공포 분위기에서, 감히 대원군에게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지금은 서양과 수교를 한 상황이니 그들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지. 하지만 청국과 법국이 전쟁을 하고 있는 비상 상황이니, 적당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일단 기다려 보자꾸나."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이선은 대원군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자신을 지지해 준다고 하니 감사를 표했다.

"할아버님께서 계셔서 소손은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래. 계속 네 할 일을 하거라. 단, 너무 모든 일에 나서지는 마라. 앞서가는 자에게는 언제나 시기와 질시가 뒤따르는 법이다."

"예, 할아버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겠습니다."

이선은 대원군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지금은 우려의 단계지만, 앞으로 자신에게 정치적 공세가 집중되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기득권을 하나씩 철폐하고 개혁해 나갈 때마다, 분노와 증오가 쏟아지겠지. 지금은 대원군이 나를 돕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

지배층 내에서 이선의 지지 기반은 튼튼했다. 개화당은 이선을 주군으로 섬겼고, 온건 개화파 관료들도 이선을 지지했다. 대원군은 이견(異見)이 있을지라도 일단은 손자의 행보를 뒷받침해 줬다.

'개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민중은 나를 지지할 것이다.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지.'

하지만 불안요소는 남아 있었다.

'가장 큰 불안요소는 왕, 그 자체지.'

유교적 명분론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모든 일은 왕명으로 집행되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임금이 기무처의 개혁안에 모두 옥새를 찍어줬지만, 정치적으로 완전히 배제된 현재 상황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실제로, 임금이 3년 가까이 칩거 생활을 하고 있으니, 동정 여론이 형성되었다. 대원군과 기무처에 대한 반발이 클수록 임금에 대한 동정은 커져 갔다.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왕이라는 사실 하나로 반대파의 구심점이 될 수 있어.'

이선은 임금을 내버려 두면 더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왕이 개화 정책에 우호적이라는 것.'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는 김옥균의 말에 따르면, 임금은 서양에 대해 강한 흥미를 갖고 있었고, 개혁의 방향성에도 공감했다.

이선은 임금을 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원군과 임금의 사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이선은 달랐다.

다음 날, 이선은 김옥균을 대동하고 편전으로 향했다.

"전하, 독판 외무부사 이선과 협판 외무부사 김옥균 입시옵니다."

"들라 이르라."

편전의 문이 열리자, 이선과 김옥균은 절을 하고 예를 표했다.

"경들이 어인 일인가? 기무처에서 새로이 논의한 사항이 있었나?"

"아니옵니다. 보빙 사절단 행록의 초안을 마쳐서, 성상께 바치려 하옵니다."

"오호, 그거 반가운 이야기구나."

보빙사의 기록은 『보빙 사절단 서양 회람 실기』라는 이름의 책으로 편찬될 예정이었다. 많은 이에게 서양 문명을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하게 할 목적이었다. 최대한 많은 이가 볼 수 있도록 언문으로 출판하고,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사진과 그림도 대거 포함시켰다. 그만큼 인쇄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이선은 외무아문의 사업으로 추진시켰다.

"이 그림 속의 장소가 어디더냐?"

"미국의 가장 큰 도시, 뉴욕이란 곳이옵니다."

"과연, 민영익의 말대로 뉴욕이 으뜸간다는 걸 알겠다. 참으로 번영하는 도시로구나."

임금은 사진과 그림을 넘겨보며 감탄을 표했다. 김옥균은 보빙사로 가진 않았지만, 특유의 빼어난 화술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선도 말솜씨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으니, 임금은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아주 즐거워했다.

임금은 사절단이 찍은 사진을 쳐다보다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과인도 사진을 찍어둔 바 있네. 완화군도 보았나? 미국인 로웰이 찍어준 것인데."

"아직 보지 못했사옵니다."

임금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창덕궁 연경당에서 찍은 사진으로, 이선도 역사책에서 봐서 아는 사진이었다.

"참으로 어진(御眞)이 잘 나왔습니다."

"사진은 처음 찍었는데, 오래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 좋았네. 그래도 그림과 비교할 수 없지. 어진을 그리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 사진이란 건 찍으면 금방 나오지 않나."

박정양과 함께 조선으로 온 퍼시벌 로웰은 보빙사를 도운 공로로 환대받았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던 로웰은 임금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보수적인 궁인들은 발칵 뒤집혔다. 임금은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을뿐더러,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는 근거 없는 속설이 횡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임금은 흔쾌히 사진을 찍겠다고 했고, 로웰이 찍은 사진은 조선의 왕을 처음 찍은 사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서양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사진이란 것만 봐도 알겠네. 참으로 서양의 기술은 신묘하단 말이지."

"그러하옵니다."

임금은 사진을 넘겨보다가, 저도 모르게 한탄을 했다.

"이렇게 사진으로만 볼 게 아니라, 과인도 언젠가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그리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선이 좋은 말로 답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일이었다. 임금은 씁쓸하게 웃었다.

"과인이 궁궐 밖을 나갈 수 없는 군주의 신분이란 건 경들도 잘 알 터인데."

"하오나……."

"뭐, 그냥 해본 소리였으니 개의치 말게. 과인 대신 경들이 많이 보고 오면 되네.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으니 기쁘군."

"황공하옵니다."

임금은 행록을 살피다가 이선에게 물었다.

"보빙사가 유람만 하지는 않았을 터. 민감한 내용은 행록에 적을 수 없었겠으나, 각국 외무대신과 논의한 사항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보고한 사항 외에도,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가?"

이선은 외교 결과에 관해 복명할 때 보고했지만, 각국과 맺은 밀약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원군과 김옥균 등 극소수의 인원만 아는 일이었다.

이선은 이 자리에서 임금에게도 알리기로 했다.

'모든 외교가 군주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이상, 왕을 배제하는 건 오해의 여지가 있다.'

"삼가 아뢰옵니다. 신이 미국, 영국, 법국, 덕국, 아라사 등을 돌며……."

보고를 마친 이선은 머리를 조아렸다.

"본래는 본국에 허가를 받아야 할 일이나, 사세가 매우 급하여 신이 감히 외국에서 어심(御心)을 대리했나이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전권을 부여했는데, 사과할 것 없다. 미국이나 태서에서 언제 조선까지 일일이 허가를 받겠는가?"

"곧 조선과 청국 사이에 전신 설치가 완료될 예정이니,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 그렇구나. 전신이란 건 더욱 신묘하군."

"과연 전기라는 게 서양 문명을 상징합니다. 곧 미국에서 사람이 와서 궁궐에도 곧 전기가 설치될 예정입니다. 밤에도 대낮같이 환하지요."

"밤에도 대낮같이 환하고, 수만 리가 넘는 거리를 실시간으로 주고받는다니. 대체 저 서양인들은 마법이라도 부리는가? 대체 저들은 얼마나 앞서고 있는 것인가?"

서양의 발전된 기술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냉정하게 필요에 따라 받아들이는 대원군과 달리, 임금은 진심으로 감탄한 듯했다.

'개화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게 헛말이 아니군.'

"하지만 서양인의 진의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완화군이 저들과 담판을 벌인 건 좋네만, 저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임금은 자신이 읽고 있던 신문을 보여주었다. 바로 《한성순보(漢城旬報)》였다.

오늘날 유럽의 형세는 마치 전국시대와 같고 이른바 만국공법이란 거의 전국시대 종약과 같아서, 유리하면 따르고 그러지 않으면 배신하며 겉으로는 비록 따르는 체하지만, 속으로는 실상 위배한다.

각국의 외무대신은 진정 공법을 믿고서 안전을 꾀할 수 없고 또는 공법에 따라 대중의 입을 막지 않을 수도 없으니, 진실로 마음으로 융화하고 묵묵히 아는 자가 아니면 반드시 단점(壇坫)의 사이에서 신명(神明)을 변화시켜 어모(禦侮)를 담판질 수 없다.

- 《한성순보(漢城旬報)》 제 10호. 양무수재득인론(洋務首在得人論)

"아, 전하께옵서도 《한성순보》를 읽으시는군요."

《한성순보》는 현재 조선 유일의 신문으로, 세계의 사정을 전하는 창구 기능을 했다. 이선도 필진으로 참여한 바 있었다. 지금까지는 10일에 한번 씩 발행되는 '순보'이지만, 일보로 전환할 생각이었다.

"고균을 통해 전해 받네. 서양에선 세계를 이해하려면 신문을 읽는다지. 과인만 시대에 뒤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선도 기사를 훑어보았다. 결론은 양무에 능한 인재들을 등용해야 한다는 기사였다.

"좋은 내용이로군요. 이 기사는 누가 작성했는지요?"

"소생이 썼습니다."

김옥균이 민망한 듯 웃었다.

"어쩐지, 정세에 능하다 싶더니만 고균이 쓴 글이었군요."

"과인 역시 고균을 통해 배우는 바가 많네. 고균은 과인의 개화 스승이야."

김옥균은 황송해하며 재빨리 임금의 덕으로 돌렸다.

"황공하옵니다. 신이 어찌 전하를 가르치겠나이까? 전하께서 영명하신 덕이지요."

'부왕과 김옥균은 정말로 절친한가 보군. 그나마 다행이다.'

"물론 서양인을 완전히 믿을 순 없습니다. 만국 공법을 유리하면 따르고 그러지 않으면 배신한다는 말도 맞지요. 하지만, 저들이 유리하다고 받아들이는 이상 조약은 준수될 것입니다. 백이의(白耳義, 벨기에)란 나라는 열강의 보장을 받아 독립을 인정받고 중립국이 됐지요. 열강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덕입니다. 소신이 각국과 논의한 중립 정책도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를 고려한 바입니다."

"흠, 중립이라. 그렇게 함으로써 외세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이선의 설명에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들이 이렇게 총명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니 참으로 기쁠 따름일세."

임금의 칭찬에 김옥균이 웃으며 화답했다.

"실로 나라의 홍복이자, 성상의 기쁨입니다."

"황공하옵니다. 신은 그저 전하의 명을 받들어 성덕을 널리 기리고자 하옵니다."

임금은 잠시 생각하더니, 김옥균에게 말했다.

"완화군과 단둘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네. 고균은 잠시 자리를 비켜줬으면 하네만."

"삼가 명을 받들겠나이다."

임금의 갑작스러운 독대 제안에, 이선은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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