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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국 낙성식
그 무렵 이선은 묄렌도르프, 러시아 공사 베베르, 독일 부영사 부들러와의 회동을 부쩍 늘렸다. 일반적인 외교로 보였지만, 비밀리에 준비 중인 일이 있었다.
"부영사께서 준비하는 중립 안은 독일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부들러의 명의로 준비 중인 중립 안의 실질적인 제안자는 이선과 묄렌도르프였다.
"재상께서 동의하셨습니다. 단, 지금은 베를린에서 열강들과 아프리카 문제를 협의 중이니 좀 더 때를 기다려야 할 듯합니다."
1884년 11월 15일, 베를린에서 비스마르크의 주최로 국제회의가 개최되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등 서양 국가들을 총망라한 회의였다.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 식민지 분할을 확정한 악명 높은 회의로 기록될 터였다. 약육강식, 식민지 분할과 제국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천명된 것이었다.
"아프리카 문제가 일단락되면, 비공식적으로 조선 문제도 논의될 수 있을 겁니다."
'외교의 귀재, 비스마르크가 중재를 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지. 베를린 회의 종료가 1885년 2월이었던가? 청불전쟁도 그 무렵에 더욱 격화되고. 중립을 선언하기에 적절한 시기로군.'
"러시아 정부의 뜻은 어떠합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조선의 중립을 지지하고, 그 어떤 열강으로부터도 독립과 영토 보전을 약속하실 겁니다."
"역시 황제 폐하이십니다. 그리 된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조선 중립의 실질적인 보호자는 러시아 제국과 알렉산드르 2세가 될 터였다. 비스마르크가 전혀 관심이 없는 조선 문제를 중재하려는 것도, 러시아의 환심을 사고 그들의 관심을 동아시아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1884년 3월, 이선이 러시아를 다녀온 직후에, 독일과 러시아 간에 삼제동맹을 보완하는 '재보장 조약'이 체결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는 1878년 베를린 회의의 결과를 여전히 배신으로 여겼지만,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을 피하고 싶어 했다. 차르 입장에서 친숙한 파트너는 역시 공화국인 프랑스보다는 독일 제국이었다.
다만 차르는 발칸의 경쟁자인 오스트리아-헝가리와는 협력관계를 맺기를 거부했고, 독일과 러시아 양국 간에 조약이 체결되었다.
독일 제국이 프랑스를 공격하는 경우 또는 러시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공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3국과의 전쟁에서는 상호 중립을 지킬 것을 명시한 조약이었다.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가 회복됨에 따라, 비스마르크는 차르의 동방 정책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독일과 러시아가 나서면, 독일의 동맹인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는 동의한다. 외교적 고립을 피해 러시아를 새로운 동맹으로 갈구하는 프랑스도 동의하겠지. 미국은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문제는 청국, 일본, 영국인가.'
청국과 일본은 열강의 힘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홍장과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 중립 안을 받아들일 계산이 서겠지.'
그나마 청과 일본의 외교를 이끄는 이홍장과 이토가 '현실적'이기에 조선 중립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걸림돌은 영국인가? 실제 역사와 달리 고든이 죽지 않고 조선에 고문관으로 왔으니, 영국의 자유당 정부도 거문도 강점이라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이제 외교적 진척은 거의 완성됐군.'
이선은 미국 공사 푸트와 공사관 무관 포크 중위를 만나 넌지시 뜻을 보였다.
"조선이 일본과 같은 서구화 개혁을 추진한다면, 미국은 어찌 받아들이겠습니까?"
푸트와 포크는 조선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특히 보빙사 일정을 함께 한 포크는 이선과 개화파에 대해서도 인간적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선은 자주 국가이니, 조선의 내정을 결정하는 건 자주에 달렸지요."
"시대의 추세는 서구화에 달렸습니다. 저는 각하와 조선 관리들이 사절단으로 세계를 둘러보며 시야가 크게 트인 걸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조선을 변화시킬 것이라 확신합니다."
"나는 미국의 부강함과 민주주의를 부럽게 생각합니다. 특히 미국이 아시아에서 공정한 정책을 추진하는 걸 진심으로 높이 평가합니다. 이미 나는 미국의 자본을 투자받고, 미국인 전문가들을 고용했지요. 대개혁을 시작하면 미국을 모범으로 삼아 정책을 추진할 터이니, 귀국 정부에 말씀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본국에 그리 전하겠습니다."
영국 총영사 애스턴도 개인적으로는 이선과 개화파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고든과 영국인 장교단을 군사고문관으로 채용한 데에 크게 만족했다. 본국 정부는 몰라도, 애스턴은 방해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이선은 조선 주재 외국 외교관들에게 모두 언질을 주었지만, 다케조에와 진수당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다케조에와 진수당은 상대할 필요가 없다. 그 윗선을 직접 상대해야지. 서양은 본국과 거리가 멀어서 만나서 논의할 수 없지만, 이홍장과 이토는 내가 직접 상대할 수 있지.'
외교적 준비를 마친 이선은 개화당원들에게 말했다.
"우리가 생각하던 적절한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추진해 보도록 합시다."
"오오!"
개화당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외교적 장치는 마련해놨으니, 먼저 성상을 알현하여 교지를 받아냅시다."
조선은 군주국이니만큼, 왕의 동의는 꼭 필요했다.
"제가 군 대감을 모시겠습니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는 김옥균이 보좌의 뜻을 밝혔다.
11월 30일 저녁, 이선과 김옥균은 창덕궁으로 들어가 알현을 청했다.
"완화군 이선과 외아문 협판 김옥균 입시옵니다."
"들라 이르라."
때마침 편전에는 중전이 들어와 있었다. 중전은 이선을 보고 반갑게 웃었다.
"완화군과 고균은 늦은 저녁에 어인 일로 입궐하였는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동양의 정세가 실로 매우 급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감히 전하께 아뢰고자 하옵니다."
"과인 역시 근래 들은 바가 있어 심려하는 바가 많다. 고하도록 하라."
일본 공사 다케조에는 곧 청과 일전을 불사할 것처럼 보였고, 청국 영사 진수당을 대신하여 행보를 강화한 원세개 역시 강경한 태도로 이에 맞섰다.
이선의 눈짓에 김옥균이 고했다. 김옥균은 청불전쟁의 상황과, 청과 일본이 새롭게 교전할 가능성에 대해서, 러시아의 동방 정략이 새로운 전환점에 이른 일, 지난 10년 이래 서양 제국들의 동양을 향한 정략이 급변하여 옛 규범에 얽매여 안온하게 스스로 지킬 수 없는 형세임을 고했다.
임금과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전은 '청과 일본이 교전할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조선이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 크게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근래 청병과 일병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지. 그런데 정말 청일 간에 전쟁으로 격화될 가능성이 있는가?"
"일본 정부를 이끄는 이들이 모험적인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이선은 일본이 강경책을 쓰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부러 과장하여 말했다. 임금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주고,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대개혁을 추진할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렇다면 청국과 법국의 전쟁은 어찌 될 것 같은가?"
"감히 예측하자면, 청은 법국에 패배를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이선의 예측에 임금은 대범히 대답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독립을 위한 모책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임금은 근래 청에 비판적이었다. 임오년 이후 신정권을 추인한 게 청국인 것도 불만이지만, 원세개가 노골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하려는 언동을 보인 탓이었다.
원세개는 임금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불측한 발언까지 했다.
"전하께서는 대청 황제 폐하로부터 책봉을 받는 제후이자, 조선이 대청의 번국임을 잊지 마십시오."
인내심이 좋은 임금도 불쾌함으로 얼굴이 붉게 변했다. 동석하고 있던 김옥균이 분개하며 외쳤다.
"원 대인, 전하께 어찌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거요!"
"김 공, 그대가 완화군과 함께 서양 외교관들을 빈번히 만나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선이 자주 지방이라지만, 본래 외교란 제후국이 하기에는 분수에 넘는 일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혹여 서양의 힘을 믿고 대국의 뜻을 거스르려는 어리석은 망동은 하지 말란 말입니다."
원세개의 노골적인 위협에 조선의 군신(君臣)은 분노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이선도 그 자리에 없었음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나라면 되로 받고 말로 돌려줬을 거요. 뭐, 원세개가 이렇게 나와 주니 오히려 고맙군. 우리의 명분이 더욱 축적되는 거니까."
"참으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일부 조선인들은 청국에 빌붙어서 개나 양의 노릇을 하오니, 비록 우리가 독립하고자 하여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이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본디 생사에 관계된 일이오나, 나라가 지금 조석 간에 위망하게 되었으므로 일신의 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렇게 함부로 아뢰는 것입니다."
김옥균의 결기 어린 말에 임금이 답했다.
"경의 이 말은 나를 의심하는 듯하다. 그러니 일이 국가의 존망에 관계되는데, 내가 어찌 대계를 그르치겠는가? 경은 숨기지 말라."
이선은 그동안 자신이 추진하던 외교에 대해 간략히 보고했다. 특히 독일과 러시아가 조선의 중립과 자주를 보조하기로 결정했고, 미국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자 임금은 크게 기뻐했다.
"참으로 잘하였다. 그렇다면 청과 일본 간에 전쟁이 일어나도 조선은 서양의 도움을 받아 중립을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외교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오나 진정한 중립과 자주를 달성하려면 외교뿐만 아니라, 내치에서 부국강병을 이뤄내 스스로 지키려할 때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선은 곧 대개혁을 추진하리라는 암시를 전했다. 임금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의 말에 크게 공감하며 격려했다.
"경들이 품고 있는 마음을 내가 잘 알겠다. 무릇 국가의 대계에 관계된 일은 위급할 때에 경들의 대책에 일임할 것이니 경들은 다시 의심하지 말라."
그뿐만 아니라 임금은 이선과 김옥균이 원하는 대로 친히 서찰을 써서 옥새를 찍어 전달하니, 김옥균은 감격하며 이를 받아들여 고이 품에 넣어 놓았다.
갑신년 10월 16일(1884년 12월 4일). 이날은 앞으로 조선의 우편과 통신 업무를 담당할 우정총국(郵征總局)이 설립된 날이었다.
우정총판에 임명된 이는 병조참판을 겸직 중인 홍영식이었다. 보빙사절단 당시에도 유난히 전신과 우편에 관심을 보였던 홍영식인지라 참으로 걸맞은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보름달이 유난히 크게 뜬 이 날 저녁 우정국 설립을 축하하는 낙성식에는 내아문과 외아문의 관리들을 비롯하여 미국 공사 푸트, 러시아 공사 베베르, 영국 총영사 애스턴, 독일 총영사 젬부시, 청국 상무위원 진수당, 일본 공사 다케조에 등 조선에 주재하는 각국 대표단도 참석해 있었다.
외무협판인 김옥균도 참석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축하연에 들어서면서 주최자인 홍영식과 그 맞은편에 앉은 박영효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뜻을 함께해 온 동지였다. 그들 모두 조선의 일대 개혁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말자고 맹세한 터였다.
그리고 이들은 확고한 목표와 추진력을 지닌 지도자, 이선을 따랐다.
실제 역사대로라면, 바로 이날 정변의 중심이 될 뻔했던 우정국 낙성식은 별다른 일 없이 무사히 진행되었다.
각국 공사와 외교관들은 조선에 우편과 통신 업무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우정국이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고 축원했다.
"여러 공사님들의 축사를 감사히 받아들입니다. 저 우정총판 홍영식은, 조선 곳곳에 우편과 전신을 설치하여 모든 인민이 문명의 이기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조선이 만국우편연맹에 가입하여 세계 각국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보빙사절단을 통해 서양식 예법을 익힌 홍영식으로선 그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우정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식산흥업과 국민교육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참으로 산적합니다. 자, 여러분. 조선을 위하여 모두 함께 잔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홍영식의 축사에 이어 건배 선창이 있자, 관리들과 외국 외교관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군주 전하의 성수무강을 위하여, 그리고 대조선국의 문명개화와 조선 인민의 계명을 위하여!"
"…… 위하여!"
홍영식의 선창에 이어 모든 사람들이 축배를 들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조선의 문명개화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밝아 보였다.
외무독판 자격으로 주빈석에 앉아 있던 이선 역시 진심으로 축원을 했다.
저물어가는 1884년이 기회의 해였다면, 새로운 해가 뜨는 1885년은 결실의 해가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다른 행보와 혁신이 필요했다.
이 자리에 있는 이선,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김홍집, 민영익, 묄렌도르프 등 저마다 방법론은 달랐지만, 조선의 자주와 개혁을 향한 마음은 같았다.
그들은 모두 한 가닥 꿈을 품고 이 자리 너머에 있는 국제정세의 향배와 국내정치의 변화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