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27화 (127/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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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경장(甲申更張)

1885년 1월 16일(갑신년 섣달 초하루).

친위대 병사들이 창덕궁을 호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옥균 이하 개화파 관료들이 일제히 경장을 주청했다.

경장(更張)이란 거문고의 줄을 팽팽하게 고치는 것을 말하는데, 정치적·사회적으로 낡은 제도를 개혁하여 새롭게 함을 의미한다.

"전하! 경장을 단행하소서!"

"선조대왕 8년, 문성공(文成公) 율곡 이이(李珥)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민의 곤궁은 날로 더 심해지고 조정의 정령(政令)은 모두 문구뿐이니, 반드시 경장(更張)한 뒤에야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형세입니다. 그런데도 도리어 경장을 말하면 일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하니, 이런 상태로 계속된다면 조정에 좋은 계획과 정직한 의논이 양양하게 귀에 가득하다 할지라도 끝내 백성의 곤궁과 재물의 탕진에는 아무런 도움이 없어 마침내는 난망(亂亡)하고 말 것입니다. 전하께서 마땅히 척념(惕念) 하실 바입니다.

- 선조실록(宣祖實錄), 8년 6월 24일 : 이이가 백성을 위해 개혁 정치를 할 것을 청하다

"하오나 선조대왕과 문성공의 뜻과 달리 경장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으니, 그 결과 임진년의 재앙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작금 조선이 처한 정세는 300년 전과도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위태롭습니다. 뼈를 깎는 각오로 경장을 하지 아니한다면, 끝내 국권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개화파는 왕과 사대부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노론이 종주로 추앙하는 율곡 이이의 사례를 들어 경장을 주장했다.

외침에 대한 두려움은 선조 때보다 훨씬 큰 것도 사실이라 경장의 필요성을 정당화했다.

무엇보다 군권을 확보한 이선과 개화파 관료들은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졌고, 임금도 경장을 수락했다.

"경들은 경장의 절목(節目)을 작성하여 올리도록 하라."

개화파 관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구상해왔던 개혁 구상들을 20개 정강으로 정리하여 임금에게 바쳤다.

1. 대조선의 국권을 확장하여 외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어, 자주독립의 터전을 튼튼히 세운다.

2. 문벌(門閥), 양반과 상민, 노비의 등급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권을 제정한다.

3. 인민은 상하 귀천의 구별 없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자신의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 농상공을 촉진해 민생에 이익이 돌아가게 하고, 종국에는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

4. 7월에 반포한 재정 개혁을 확고히 해, 지조법을 개혁하여 새로운 조세제도를 확립한다. 전국적으로 양전(量田)을 하여 국가재정을 튼튼히 한다.

5. 왕실의 규범을 제정하여 왕권을 존숭하고, 왕위 계승 및 종친과 외척의 본분과 의리를 밝힌다.

6. 임금은 정전에 나와서 시사(視事)를 보되 정무(政務)는 직접 대신들과 의논하여 재결(裁決)한다.

7. 내시부를 혁파하고, 왕실에 관한 사무와 나라 정사에 관한 사무는 반드시 분리시키고 서로 뒤섞지 않는다.

8. 의정부(議政府)와 각 아문(衙門)의 직무와 권한을 명백히 제정한다. 의정부와 각 아문 외에 불필요한 관청을 혁파하고, 대신과 참찬으로 하여금 이것을 심의 처리하도록 한다.

9. 대신과 참찬은 매일 의정부에서 회의하고 정령(政令)을 의정(議定), 시행한다.

10. 일체의 국가재정은 탁지부에서 관할하고 그 밖의 재무관청은 금지, 혁파한다.

11. 세금의 부과는 모두 법령으로 정하고 명목을 더 하여 거두지 못한다.

12. 왕실 비용과 각 관청 비용은 1년 예산을 미리 정하여 재정 기초를 튼튼히 세운다.

13. 경찰 제도를 시급히 실시한다. 경무청을 설치하고 도적을 방지한다.

14. 도성의 중앙 군영은 친위대(親衛隊)로, 각 지방의 군영은 진위대(鎭衛隊)로 전환한다. 친위대의 장정을 선발하여 근위대(近衛隊)를 설치한다. 근위대장은 왕자 중 한 명이 맡는다.

15. 장교를 교육하고 향후 징병법(徵兵法)을 적용하여 군사제도의 기초를 확정한다.

16. 교육제도를 확립해 전국적으로 학교를 설치하고, 시급히 자질이 있는 젊은이를 외국에 파견하여 학술과 기예를 익히도록 한다.

17. 민법 및 형법을 엄정히 정하여 함부로 가두거나 벌하지 말며,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18. 탐관오리들을 근절하고 가련한 백성들을 구제한다. 전후에 관리 중 탐학의 죄가 심한 자는 엄중히 치죄하며, 유배 또는 금고된 죄인을 다시 조사하여 죄의 경중을 묻고, 무고한 죄인은 석방시킨다.

19. 귀천(貴賤)과 관계없이 인재를 선발하여 등용한다. 품행이 단정하고 재주와 기술이 있고 겸하여 시무(時務)에 능한 인재들을 추천으로 선발한다.

20. 지방마다 향회(鄕會)를 설치하도록 하고, 각 면의 백성들에게 공정하고 노련한 사람을 선발하도록 하여 향회원으로 삼은 다음 본 고을의 공당(公堂)에 모여서 명령을 내리거나 폐단을 바로잡는 등 본 고을에서 조처를 해야 할 것을 협의하여 공동으로 결정한 뒤에 시행하도록 한다. 향회가 확립되면, 중앙에는 의회를 설립하여 천하의 공의(公議)를 실천한다.

"정강에 대해 삼가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정강 작성을 총괄한 김옥균이 설명을 시작했다.

1조는 총강으로서 자주독립 국가로의 기초를 다지는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것이었다. 청국의 종주권을 명시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각국과 대등한 관계를 맺어 근대 외교 체제에 편입되어 있는 자주독립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2조와 3조는 문벌을 폐지하여 그동안 정치를 농단하던 세도 가문들의 전횡을 끝내고, 전근대적인 사농공상의 신분제도를 폐지하여 만민이 평등한 국민국가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4, 10, 11, 12조는 모두 국가 경제와 관계된 것이었다. 농업 국가인 조선에서 토지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이선은 근본적인 토지개혁을 구상했으나 이를 실천으로 옮기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고 보았다.

7월에 반포했던 재정 개혁안을 그대로 실천하여, 일단 지조법을 개정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구제하고, 토지를 조사하는 양전 사업이면 국가 재정을 튼튼히 하는데 충분하다고 본 것이었다.

개화파가 중시하는 건 무엇보다 국가 개혁에 필요한 재정의 확보였다. 그렇기 위해서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근대적인 경제 제도의 확립이었다.

5, 6, 7, 8, 9조는 정치제도의 개혁이었다. 헌법이 제정되지 않은 바에야, 전제군주제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왕의 통치도 법으로 규정된 범위 내에서 이뤄지고, 왕실과 정부를 분리했다.

의정부와 중앙 부처 외에 난립하며 역할이 중복되는 각종 아문을 폐지하고 통치 체제를 일원했다. 이것은 단순히 의정부 체제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근대적 입헌 정체로 나가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서 정국을 운영하기 위함이었다.

13, 14, 15조는 근대적인 군사와 경찰 제도를 확립하기 위함이었다. 치안을 확립하기 위한 경찰력을 확보하고, 군제를 일원화하여 효율적인 군대를 편성하되 장기적으로 징병제도를 확립하여 국가 방위의 초석을 닦을 예정이었다.

16조는 교육에 대한 것으로, 당장 필요한 근대 학문을 흡수할 젊은이들을 해외에 유학 보내고, 전국적으로 학교를 설치해 장기적으로 국민교육제도를 완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17조와 18조는 사법제도를 개혁하여 근대적인 형법과 민법을 확립하고자 했다. 근래의 사건을 재조사하여 죄 있는 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죄 없이 처벌된 이들은 구제하고자 했다.

19조는 신분과 관계없이 재능 있는 이들에게 국가의 일을 맡길 것을 천명했다. 과거제를 당장 혁파하면 사대부의 불만이 엄청날 터이니, 근대적 관리 선발 제도가 확립될 때까지 추천으로 인재를 선발하기로 했다.

20조는 지방에 향회를 설치하여 대표자를 뽑아 수령을 견제하고, 지방의 여론을 대표하고자 했다. 향회를 기초로 삼아 의회를 확립하여, 그동안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던 이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주고자 했다.

20개 조 정강은 전근대적 왕조 국가를 근대 국민국가로 전환하기 위한 그야말로 총체적인 개혁이었다.

정강을 모두 읽어본 임금은 치하를 표했다.

"이는 참으로 나라를 경장할 근본적인 대계이다. 경들의 노고를 치하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황공하옵니다."

임금은 대강의 의미를 파악하자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떨떠름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치하했지만, 너무나 근본적인 개혁이었던 것이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을 양반들의 반발이 눈에 뻔히 보였다.

이에 대해선 임금 또한 경장이 필요하다고 동의하는 바였으나, 가만히 살펴보니 허울 좋게 왕실의 권위는 올렸으나 권력은 제한되는 바가 많았다.

이들이 지향하는 바가, 이른바 일본의 유신처럼 천황을 봉대한다는 명분으로 높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대신들이 지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는구나."

"전하, 이는 고금의 일로 보면 송나라 왕안석의 개혁과 같은 것이요, 또한 개국 초 문헌공 정도전이 행한 바와 문성공 이이의 중흥을 위한 경장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홍영식이 임금의 걱정을 달래자, 이선 또한 거들었다.

"일전에 신이 고한 바와 같이, 이는 보로사(프로이센)의 개혁과 아라사의 대개혁과 그 궤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조선에 부족한 것은 시간으로, 서둘러 개혁을 완수해야 합니다. 이는 부국강병을 위한 첫 관문이 될 것이옵니다."

이선은 과거 위로부터의 근대화 사례, 즉 1808년 프로이센 개혁으로 국가적 굴욕을 안겨주었던 프랑스를 무찌른 일, 1861년 러시아의 대개혁으로, 낙후한 전제국이었던 러시아가 근대적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일을 임금에게 고한 바 있었다.

양국 모두 전제 국가에서의 개혁으로 결과적으로 부국강병을 이뤄냄과 동시에 군주의 권력은 더 강력해졌다는 결론에 임금은 적지 않게 그 사례에 매료되었고, 러시아의 개혁을 이끈 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에 신뢰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경들의 말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나……."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는 모두 전하의 치세를 위함이옵니다. 국가와 종묘사직의 대계가 오직 전하에게 달렸사옵니다. 성심을 굳건히 하시옵소서."

김옥균이 쐐기를 박듯이 말하자, 임금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과인은 경들의 지모에 대계를 맡겼다. 맡은 바 일을 추인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알현을 마치고 나온 개화파 관료들은 감격을 느꼈다.

"마침내 경장을 위한 첫발을 딛게 되었군요. 감개무량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인데 전하께서 벌써 흔들리고 계시는군요."

이선은 씁쓸함이 밀려왔다.

'경장이 군주의 대권을 보장해 주리라 믿었는데, 막상 보니 아니니까 흔들리겠지.'

"이미 각오했던 바가 아닙니까? 황공한 말이나, 전하께서는 총명하시나 결단을 쉽게 못 하는 성품인 것은 익히 다 알지 않습니까."

"하기야."

김옥균의 말에 개화당 인사들이 공감을 표하자, 김홍집이 정색을 했다.

"우리가 뜻을 이루려면 위로는 성상을 봉대하며, 아래로는 백성을 어루만지는 길밖에 없소. 우리 모두 성상의 신하임을 잊지 마시오."

"그 말씀이 정론입니다. 우리는 성상과 만백성을 위해 일한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이선이 김홍집에게 공감을 표하자, 김옥균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실언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만큼 고균의 의욕이 충만한 거로 생각하지요. 더욱 힘내도록 합시다."

"황공하옵니다."

이선이 김홍집으로 대표되는 온건 개화파들을 끌어들인 덕에 갑신경장은 급진 개화파만의 잔치가 되지 않았다.

'급진개혁을 추구한다고 하여, 실무를 맡을 온건파를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

관직 배분도 대원군계 보수파와 온건·급진개화파 모두를 배려해서 임명할 생각이었다.

물론 요직은 개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인사들로 채울 생각이었다.

정강을 작성하고 알현을 마치자 이미 해가 기울어졌다.

'20개 정강이 이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실로 옮기려면 확실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야 한다.'

군주제 국가에서, 권력은 왕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권을 뒷받침하는 건 군대, 재정, 민심이었다. 이선은 세 요소를 확실히 얻고자 했다.

이선은 창덕궁을 지키는 친위대 병력을 사열했다. 신식 군대인 친위대 병력의 절대다수가 개화를 지지했고, 이선을 따랐다.

"장병들이여, 노고가 많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한성의 상황은 지극히 조용합니다."

"좋다. 계속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길 바란다. 군은 국가를 지키는 간성이요, 그중에서도 그대들은 자랑스러운 친위대다. 그대들이 있기에 주상 전하와 신료들이 안심하고 경장을 추진할 수 있다."

이선의 찬사에 친위대 장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 따로 없군.'

이선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혁명을 하고 싶었으나, 실상은 계엄을 선포하여 군대를 동원하고, 비상시국 속에서 경장에 돌입했으니 결국 실제 갑신정변과 비슷한 친위 쿠데타였다.

'하지만 다방면의 지지와 안전장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갑신정변과 크게 다르지.'

조선 내부에서 대원군의 승인, 임금의 묵계, 개화파 관료들의 적극적인 지지, 군사력의 동원, 재정 확보, 민심의 동향 등을 모두 고려했다.

외부에서도 열강들과 외교적 담판을 통해, 외세의 개입을 막을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다.

이선이 5년 전에 조선을 떠난 이래, 지금까지 해왔던 온갖 노력들은 모두 이때를 위함이었다.

역사에서 갑신경장으로 기록될, 조선을 변혁할 대개혁은 바로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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