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37화 (137/812)

136 거문도 사건

이선은 일단 조정에 보고하고 논의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에 보낼 답변을 미루었다. 그동안 각국과 대책을 논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이선이 조선의 외교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니, 영국 외무부는 '보류'를 '거절'로 받아들였다.

더욱이 영국 군부는 조선의 거절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계획대로 포트 해밀턴을 점령한다. 아시아함대에 명한다. 즉시 조선 남해를 향해 항행하라."

1885년 4월 15일(을유년 3월 1일).

전라도 고흥 반도에서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거문도는, 동도, 서도, 고도의 3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현지 주민들은 이를 '삼도(三島)'라고 불렀다. 주민들은 논밭이 조금 있는 동도와 서도에 거주했고, 고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식량 자급이 불가능한 거문도의 특성상 주민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그날도 주민들은 고기잡이를 위해 해상으로 나갈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방 저게 머시여."

나룻배를 탄 어민들은 엄청나게 큰 철갑선이 거문도를 향해 다가오자 놀랐다.

"이, 이양선 아니더라고!"

갑작스러운 이양선의 출현에 섬사람들이 죄다 바닷가로 몰려들었다.

이양선 3척은 서서히 만(灣) 안으로 들어와 정박하더니, 작은 배를 타고 서양인과 동양인이 섬으로 접근했다.

이들은 섬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필담을 시도했으나,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았다.

"싸게 선상님 부르쇼!"

거문도에 이양선이 찾아온 건 처음이 아니었다. 1845년 영국 상선 사마랑(Samarang)호가 거문도에 처음 입항하여 당시 해군차관의 이름을 따 '포트 해밀턴'이라고 명명했다. 1854년에는 러시아 군함 팔라다(Pallada)호가 방문하여 섬을 조사했다.

근래에도 1875년에 영국 군함 프롤릭(Frolic)호가, 작년에도 멜린(Melin)호가 방문해 현지 조사를 하고 갔다.

이들의 방문 공통점은, 거문도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하여 군항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함이었다.

"깃발을 보아하니 저들은 아마도 영길리인 같군."

백발이 성성한 70대 노인이 군함에 달린 깃발을 보고 이양선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군함과 소통한 바 있는 이였다.

거문도는 전라도 고흥군 흥양현에 속했지만, 관리가 상시 주재하지 않았으므로 촌장 역할을 하는 향반들이 이양선과 소통했다.

거문도는 척박한 섬 환경이라는 점에 대비해서 의외로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았다. 괜히 '거문도(巨文島)'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었다. 김류(金瀏)라는 유학자가 거문도로 들어와 후학을 양성했고, 그의 문인을 자처하는 제자들이 수십에 이르렀다.

이양선들이 방문했을 때 서양인들과 소통하였던 이도 김류였다. 김류는 그동안의 교류를 바탕으로 해상기문(海上奇聞)이란 책을 썼으나,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동안 조정은 섬 주민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양선이 출몰했다고 알렸다가 오히려 서양과 내통했냐고 날벼락을 맞는 일도 종종 있었기에 묻어두는 게 상책이었다.

올해는 상황이 좀 달랐다. 조정에서는 전라좌수사와 흥양 현감에게 거문도 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하라고 명했고, 김류의 해상기문에도 관심을 보였다.

김류는 그동안 서양과 접촉하고도 보고하지 않은 사실을 처벌받을까 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조정에서는 김류의 노고를 위로하고 명예직을 하사했다. 그리고 앞으로 이양선이 출몰하면 즉시 문정하고 흥양현에 보고하라고 했다.

이에 김류가 노구의 몸을 이끌고 직접 바닷가로 나아가 이양선을 탐문하기로 했다.

"그대들은 영길리인 같다. 이 섬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김류는 영국 군함에 따라온 중국인 통역관에게 필담을 나누며 물었다.

"우리는 대영제국 아시아함대이다. 본국의 명을 받아 이 섬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고 주둔하러 왔다. 주민들의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김류는 놀랐다. 지금까지 외국 군함이 찾아온 건 여러 번이었지만, 점령하겠다고 나선 건 처음이었다.

"여기는 조선 영토다. 외국군이 점령할 수 없다. 조선 조정의 허락을 받았는가?"

"그건 기밀 사항이므로, 일반인인 귀하에게 알릴 수 없다."

"나는 비록 명예직이나마 이 섬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조정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건 양국 정부 간에 논의할 사항이다. 귀하는 이 지역의 존경받는 원로이니, 영국군의 주둔에 현지 주민들이 협조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그럴 수는 없다. 조정의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

"이미 귀국 정부의 협조를 얻은 사항이다. 그러니 협조를 희망한다. 그게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김류의 반대에도, 이들은 불문곡직 섬의 점령 작업을 시작했다.

아시아함대 소속 전함 아가멤논(Agamemnon), 페가수스(Pegasus), 파이어브랜드(Firebrand)호와 수송선 2척은 주민들이 거주하지 않는 고도에 정박하였다.

얼마 후, 배에서 내린 수병들은 고도의 뒷산에 천막을 치고 임시 병영을 짓기 시작했다. 병영과 주둔지를 건축하느라 땅을 파고 산을 허무는 공사가 크게 벌어졌다. 공사는 신속히 진행되었다.

군함을 타고 온 서양인들은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고, 거래할 게 있으면 반드시 대가를 지급했다. 아픈 이에게는 무료로 치료도 해 주었다.

춘궁기에 놓여있던 백성들 입장에서는 이들의 출현이 썩 나빠 보이지가 않았다.

"양놈들이 우덜 생각보다 순한디?"

"잉, 솔찬허시."

"암 그라제. 관것들과 비교하면 허벌나게 잘해주는 구마잉."

"관것들은 그저 뺏아가고 부려 먹는디, 양놈들은 꼬박꼬박 값 치르고 잘해 주잖어."

백성들이 좋아하거나 말거나, 김류는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다. 벽돌집을 짓는 걸 보고, 영국군이 영구 주둔할 의사를 보인 것으로 보였다.

김류는 즉시 제자를 흥양현으로 보내 조정에 보고하도록 했다.

4월 18일, 외무부.

섬 점령 사흘 만에, 영국 총영사 애스턴은 외무부를 찾아 거문도 점령을 통보했다. 거문도는 전신선이 통과하지 않았으므로 조선 조정에 아직 점령이 보고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영제국 정부는 부득이한 상황으로 인하여, 포트 해밀턴을 점령하게 되었음을 통보합니다."

이선은 분노했다.

"조선 정부의 답변이 아직 나오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점령하고, 사후 통보를 하는 겁니까?"

"본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본국의 훈령을 받아 전달할 뿐입니다."

"총영사가 조선 땅에서 영국 정부를 대표하는데, 영사가 모르면 누가 안단 말입니까?"

"송구할 따름입니다."

애스턴도 해군이 점령을 강행할 줄 몰랐던 상황이라, 그저 당혹감을 표명할 뿐이었다.

"귀국에 대한 조선 정부의 호의가 이렇게 짓밟힐 줄 몰랐습니다. 이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조선의 주권을 짓밟은 행태입니다. 조선 정부는 결코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선은 애스턴에게 강력히 항의한 후, 즉시 감리인천항통상사무(監理仁川港通商事務) 엄세영, 외무협판 묄렌도르프와 참의 윤치호를 불렀다.

"경들은 즉시 거문도로 가서, 영국군에게 철수를 요구하고, 현재 주둔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십시오. 나는 한양에서 각국 공사와 논의하여 철수 방도를 논의하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묄렌도르프 일행은 즉시 조정 소유 기선을 타고 거문도로 향했다.

예전 같았으면 한참을 걸려야 도착할 거문도이지만, 기선을 타고 온 덕에 이틀 만에 도착했다.

거문도에 도착하자 영국군은 주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묄렌도르프 일행은 즉각 영국 군함의 함장 매클레어 대령을 만났다.

"주권 국가의 승낙도 없이 그 영토를 멋대로 점령하는 경우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영국 정부는 국제법도 모릅니까?"

대령은 송구스러워 했지만, 책임을 전가했다.

"본관은 그저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시아함대 사령관 도웰 중장과 논의해주시길 바랍니다."

"도웰 중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 기함과 함께 나가사키에 있습니다."

엄세영이 벌컥 화를 냈다.

"그럼 나가사키까지 가란 말입니까?"

"제게 문의해 봐야 소용없단 의미입니다."

대령을 탓해봐야 소용없음을 깨달은 묄렌도르프 일행은, 다시 한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에 올랐다.

떠나기 전, 엄세영은 김류와 섬 주민들에게 말했다.

"영국 군함은 곧 철수할 것이오. 그러니 저들에게 저항은 하지 말되, 협력도 하지 마시오."

"그리하겠습니다."

"알겠구만이라."

한편, 한양에서는 영국 정부의 공식 통보문이 전달되었다. 주청공사가 주조선공사를 겸임했으므로, 주청공사 오코너의 명의로 작성된 전문이었다.

대영 서리흠차편의행사대신 판리조선교섭사무(大英署理欽差便宜行事大臣辦理朝鮮交涉事務) 두등참찬(頭等參贊) 오코너(N. R. O'Conor)가 대조선 독판외무대신 이선 공에게 보내는 공문

은밀히 조회합니다. 본 서리대신이 방금 본국으로부터 받은 자문의 내용을 살펴보니, 미처 예측하지 못한 일을 방어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이미 본국 수사관(水師官)에게 대조선국 남쪽의 작은 섬, 영어로는 해밀턴[哈米芚: Port Hamilton]이라고 하는 곳을 잠시 지키고 있도록 하였으며, 대조선국 정부에 은밀히 통보할 것을 명령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에 이상의 사유로 문구를 갖추어 통지합니다.

1885년 4월 20일. (을유년 3월 6일)

일방적인 통보문을 받자 이선과 조선 관료들은 더욱 분개했다. 이선은 영국의 불법 행위를 규탄하는 서한을 작성해 영국 영사관을 향해 발송했다.

이 섬은 우리나라의 지방에 속한 곳으로, 다른 나라가 점유할 수 없는 곳입니다. 만국공법에도 원래 이러한 이치는 없으니, 놀랍고도 의아하여 분명히 밝혀 말하기도 불편합니다.

일전에 관원을 파견하여 그 섬에 가서 허실을 조사하도록 하였으나,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방금 귀 영사가 보내온 조회를 받았는데, 이는 북경 공사관에서 보낸 내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귀국처럼 우의가 돈독하고 공법에 밝은 나라가 이처럼 뜻밖의 일을 저지를 줄이야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기대하던 바와 너무도 어긋나서 의아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습니다. 귀국이 우의를 중히 여겨서 과감히 생각을 고쳐먹고 이 섬에서 속히 물러간다면 어찌 우리나라에만 다행한 일이겠습니까? 만국이 함께 우러러 칭송할 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의리상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으니, 각 동맹국에 성명을 보내 그 공론을 들을 것입니다. 이 일은 지연시킬 수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먼저 서한을 통해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 드리오니, 청컨대 귀국 영사께서는 곧바로 회신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조선 독판외무부사 이선

외교적 수사와 예의를 담아 작성한 문건이었지만, 이선은 결코 영국이 말로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선은 즉각 미국 공사 푸트, 러시아 공사 베베르, 일본 공사 다케조에, 독일 총영사 젬부시 등을 잇달아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는 영국이 조선의 주권을 짓밟고, 중립과 영토 보전을 약속한 각국의 제안도 무시한 것입니다. 만국이 영국의 불법행위를 규탄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국 공사 푸트가 답했다.

"지금 영국이 군함을 거문도에 보내어 며칠씩 머무르게 한 것은 분명 조선에 대해서 우의를 저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영국이 섬을 점유하고 있는 의도는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다. 지금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 사달이 일어나려는 참인데, 러시아에서 만일 영국이 해밀턴섬을 점거하여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러시아도 이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귀국은 조선을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미국 정부도 이 일에 대해 우의를 다할 것입니다."

"귀국 정부의 우의에 감사드립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가장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러시아의 남하를 핑계로, 영국이 야욕을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조선의 중립과 영토를 침해할 의사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를 침해하는 게 영국이라는 게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러시아 제국 정부는 영국의 침략행위를 강력히 규탄할 것입니다."

"러시아가 조선의 중립과 영토 보전을 만천하에 표명하면, 러시아의 침략을 막는다는 영국의 명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영국이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본국에 그리 전하겠습니다."

독일 총영사는 중립을 제안한 당사국이었으므로 당연히 협조할 뜻을 보였고, 일본 공사 역시 영국과 러시아 간의 갈등에 휘말릴까 봐 걱정했다.

"일본국 역시 오래전에 러시아가 쓰시마를 점령하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영국과 각국이 도와 러시아의 쓰시마 점령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의 경우인데,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영국의 행위를 규탄하면 영국도 물러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1861년, 막부 시대에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군함을 쓰시마로 보내 해군 기지를 조차하려고 시도했다. 막부의 저항과 영국의 반대로 러시아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각국의 지지를 얻게 된 이선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돌릴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으로 조선이 열강의 대립지역이 되었으니, 더욱더 중립을 정당화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담판을 지어서 중립과 영토 보전을 확고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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