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삼국 회담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관해 각국 외교관은 이를 반대하는 의견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런데 청국 상무위원 원세개만이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조선은 중국의 제후국이니, 오직 대청의 승인을 받아야만 조차를 허용할 수 있는 일입니다."
"······ 그럼 청국도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이선은 원세개의 허세를 무시하고, 청국의 의사를 탐지했다.
영국 정부는 사전에 주영 청국공사 증기택에게 거문도 점령 계획을 통보했다. 증기택은 거문도 점령은 용인할 수 없으나, 영국이 청의 조선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가로 조차를 주선해 줄 수도 있다는 애매한 답을 주었다.
영국은 청의 동의를 얻었다고 생각하여 거문도 점령을 강행했다. 하지만 청 조정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런던에 있는 증기택, 북경의 조정과 총리아문, 천진의 이홍장, 한성의 원세개 모두 각자의 의견을 내며 손발이 맞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당면한 프랑스와의 전쟁을 어떻게 끝내느냐를 놓고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3월 24일, 베트남 북부. 청-월 국경의 진남관(鎭南關)에서 프랑스군과 청군이 격돌했다. 프랑스군은 베트남에서 청군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해 최후의 공세를 단행했다.
"여기서 우리가 패하면 중화의 위신이 무너진다! 절대 물러서지 마라!"
청군을 지휘하는 광서 관외군무방판(關外軍務幇辦) 풍자재(馮子才)는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노인이었으나, 청군에서 드물게 명장의 자질을 지닌 이였다.
프랑스군의 공세가 거세자, 풍자재는 노구에도 직접 칼을 빼 들며 독전했다.
"적군을 관문 안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들어선다면, 무슨 명목으로 광동과 광서의 부모님을 만나 보겠는가!"
청군은 용기백배하여 처절한 백병전을 벌어가며 프랑스군의 공세를 무찔렀다.
프랑스군의 공세가 약화하자, 청군이 수적 우위를 이용해 역공을 가했다.
3월 28일, 청군은 세 방향에서 총공격을 감행해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랑선을 탈환했다.
아편전쟁 이래 청군이 서양 군대를 상대로 전략적인 승리를 거둔 건 최초였다.
승리에도 병력의 손실은 청군이 훨씬 많았지만, 충격의 강도는 프랑스 쪽이 압도적이었다.
통킹 원정군 사령관 드 네그리에(de Négrier) 장군이 중상을 입고, 수백의 사상자를 내고 통킹을 향해 퇴각했다.
이 소식은 전보를 타고 파리로 전해졌다.
"통킹 원정대, 랑선에서 충격적인 참패!"
"추가 파병이 이뤄지지 않으면 통킹을 내줄 수도 있다!"
"위대한 프랑스가 어쩌다 동양의 군대에까지 패배하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비참한 프랑스!"
패전의 충격은, 파리 주식시장의 급락과 쥘 페리 내각에 대한 공세로 이어졌다.
동양 군대에게 패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라, 파리의 민심이 격분할 정도였다.
"페리를 세느 강에 던져라!"
페리가 추가 파병안을 상정하자, 열성적인 야당 의원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가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을 상정시켰다.
"프랑스를 더 이상 수치스럽게 만들지 말고, 즉시 그 자리에서 내려오시오!"
불신임안은 그날 중으로 가결되었다. 파리는 정치적 혼돈 속으로 빠졌다. 후임 내각은 전쟁의 지속 여부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파리와 대조적으로, 북경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 얼마 만에 거둔 승리인가!"
"이번 기회에 서양 오랑캐에게 대청의 위엄을 보여줍시다!"
"광서, 광동, 운남 병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병력을 보내 안남에서 법국을 몰아냅시다!"
천진의 이홍장은 승전 소식에도 냉정했다.
"우리가 승기를 잡았을 때 유리한 조건으로 평화 조약을 체결해야 하오. 법국에 내각이 교체된 지금이 기회요. 작정하고 일전을 벌였다간, 법국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 않을 거요. 그럼 전쟁은 끝없는 수렁으로 이어지겠지."
이홍장은 청류파의 비난에도 프랑스와의 평화 협상을 주장했다. 서태후는 양쪽의 의견을 모두 받아들여, 강온양면책으로 추가 파병과 평화 협상 논의를 모두 진행하도록 했다.
정치·군사적 줄다리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이 거문도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홍장은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체 왜 이 상황에 영국은 사달을 일으킨단 말인가? 정녕 아라사와 일전이라도 벌이겠다는 말인가?"
"영국이 거문도 조차를 승인해 주는 조건으로, 대청의 조선 종주권을 완전히 보장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 대신 아라사와 일본하고는 척을 지라고? 긁어 부스럼일세. 영국이 점령하는 선례를 만들면, 아라사와 일본도 똑같이 하려 들 거야. 법국과의 전쟁만으로도 정신없는데 또 일을 만들 생각 없네."
곧바로 조선의 이선에게서 청국의 승전을 축하하고, 영국이 거문도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중재해 달라는 전문이 도착했다.
이윽고 일본에서도 조선의 긴장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회담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흠, 일본과 회담을 할 필요가 있었는데 잘됐군. 일본 측에선 누가 온다든가?"
"참의 겸 궁내경 이토 히로부미가 직접 중국으로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에노모토 주청 공사가 아니라 이토가 직접 오겠다는 의사에 이홍장은 놀랐다.
"그래? 일본의 실세인 이토가? 일본도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좋아, 그럼 정식으로 초청을 하겠다고 전하게."
청국의 실세인 이홍장과 일본의 실세인 이토가 조선 문제를 놓고 회담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이선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홍장과 이토의 천진 회담이 이루어지는 건가?'
실제 역사에서, 1885년 4월 갑신정변의 뒷수습을 위해 이홍장과 이토의 회담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천진 조약이 체결되어 청일 간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약의 당사자인 조선은 철저히 무시된 회담이었다.
역사와 다르게 전개가 되었기에 회담의 성격도 달라졌지만, 이홍장-이토 회담 자체는 성사가 된 것이다.
'조선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조선이 빠져서는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청일 양국으로부터 중립과 영토보전을 보장받자.'
이선은 즉시 자신이 조선을 대표해 천진에 가겠다는 전문을 보냈다.
이선이 북양대신께 변함없는 경의를 보냅니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과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소상히 보고드리기 위해 제가 직접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특히 일본의 정략에 대해 짐작 가는 바가 있으므로, 이토 히로부미와의 회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청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 조선국 독판외무부사 이선
이홍장의 답변은 며칠 뒤에 왔다.
완화군께서 직접 중국으로 오신다면 환영할 일입니다. 다만 나는 외교적 문제 외에도, 그간 조선이 추진한 경장에 대해서도 알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그동안 기무처 총재 역할을 맡아 내정을 이끌었던 국태공께서도 함께 와 주셨으면 합니다. 국태공께서 중국의 변화를 보면 귀국의 경장에 도움이 더욱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귀국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 대청 직례총독 겸 북양통상대신 이홍장
"국태공과 함께 오라고? 뜻밖이로군."
대원군은 갑신경장 이후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국태공(國太公)으로 존숭받으며 운현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영의정 이재원과 우의정 이재면 등 대원군 계열의 신료들이 대거 조정에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히 은퇴한 건 아니라서, 막후에서 영향력은 계속 발휘하고 있었다.
"이상합니다. 왜 국태공과 군 대감을 함께 오라고 하는 것일까요? 혹여 함정이 아니겠습니까?"
"함정이라니?"
"황공한 말이오나, 작금의 왕실과 조정을 대표하는 두 분이 함께 청국에 들어갔을 때 유폐를 시도한다면······."
김옥균의 의혹 제기에 이선이 웃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홍장과 청국이 얻는 게 무엇이오?"
"청에서는 조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작금의 정세에서 두 분이 조선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 틈을 타 청이 내정간섭을 시도한다면?"
실제 역사에서 청군이 대원군을 납치한 바 있었지만, 지금의 청은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렇게 되면 청은 소탐대실하게 될 것이오. 러시아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나를 제거한다고 해서 조선의 경장을 뒤로 돌릴 수 있는 단계는 지나갔소. 조선과의 관계를 영원히 끝장내고 싶다면 그리해도 되겠지."
이선은 청나라에서 드물게 합리주의자인 이홍장이 그렇게 어리석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내가 가는 건 확실하고, 국태공께서 가실지는 그분의 뜻에 맡깁시다."
이선은 운현궁으로 찾아가 이홍장의 서한을 전달했다.
"이중당이 나를 천진으로 초대했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이중당은 할아버님을 조선의 실권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본인이 청국의 실권자요, 천진으로 올 일본의 이토도 일본의 실권자니, 균형을 맞추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대원군이 즐거워하며 껄껄 웃었다.
"이미 은퇴한 늙은이를 그렇게 봐주니 고맙군. 그 외에 다른 뜻은 없을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홍장은 청의 국력과 양무운동을 할아버님으로 대표되는 조선 왕실과 조정에 과시하려고 하는 겁니다. 저는 청국에 여러 번 갔으니, 그 실태를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러니 할아버님을 모시려는 거지요."
"나도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지."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듯이, 조선의 국태공께 직접 보여주려는 것이겠지요. 동양의 강국은 대청이니, 조선 왕실과 조정은 다른 마음을 먹지 말고 그 품 안에서 따르도록 하라."
대원군이 씩 웃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꼭 가야 할 이유는 무엇이겠냐?"
이선은 표정을 가다듬었다.
"이홍장과 이토가 함께 만난다는 건, 향후 10년을 결정지을 동양의 판세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판에 조선이 빠질 수는 없지요. 저들로 하여금 조선의 중립과 영토 보전을 약속받으려 합니다."
대원군이 그걸 이해 못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뜻이라면, 내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함께 가도록 하자. 이 늙은이가 처음으로 대국 구경 한번 해보겠구나."
대원군이 직접 외교사절로 간다는 건 전례가 없던 일이라, 조선 조정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완화군 대감이야, 워낙 자주 해외로 나가신 분인 데다 외무독판이니 가실 법도 하지. 하지만 연로하신 국태공께서?"
임금도 우려를 표명했다.
"국태공께서는 연세가 적지 않으신데, 혹여 먼 길에 건강이 상하시면 어쩌시려고 그러는가?"
"전하께서는 심려 마시옵소서. 국태공의 의지가 강하고, 신이 충심으로 보좌하겠나이다."
"그래도 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나. 우상(右相)."
우의정 이재면이 답했다.
"예, 전하."
"완화군은 외교의 일로 바쁠 터이니, 형님께서 직접 아버님을 모셨으면 합니다."
듣기에 따라서 조카인 이선은 외교를 하고 백부인 이재면이 대원군의 수발이나 들라는 말이었지만, 이재면이 흔쾌히 답했다.
"마땅히 자식 된 도리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임금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마음이 놓입니다. 완화군, 국태공을 모시고 잘 다녀오라. 청국 및 일본과 잘 논의하여, 조선의 자주독립이 보장되도록 하라."
임금의 신뢰표명에 이선이 고개를 조아렸다.
"최선을 다해 반드시 뜻을 이루도록 하겠습니다."
1885년 5월 1일. 대원군 이하응, 우의정 이재면, 외무독판 이선, 법무독판 김윤식, 농상공독판 어윤중이 조선을 대표하여 천진으로 향했다.
이선은 떠나기 전에 조정을 이끌고 개혁을 지속하는 일을 좌의정 김홍집과 탁지독판 김옥균 등에게 당부하고 떠났다.
대원군 일행을 태운 기선은 인천항을 출발해 하루 만에 천진에 도착했다. 기선의 빠른 속도에 대원군은 새삼 놀라워했다.
"과연 듣던 대로 빠르구나. 청국에 하루 만에 이르다니."
조선 사절단이 천진항에 도착하자, 이홍장의 측근인 오정방(伍廷芳)이 대기하고 있었다.
"조선국 국태공이십니까? 대청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원로에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고생이라 할 게 뭐 있겠습니까. 기선이 하도 빠르니, 축지법을 써서 달려온 느낌입니다."
대원군의 호방한 답에 오장경도 껄껄 웃었다.
"과연 국태공께서는 듣던 대로 호방하시군요. 중당께서 기다리십니다. 함께 가시지요."
대원군 일행이 북양대신 관저에 이르자, 이홍장이 직접 문 앞으로 마중 나와 정중히 인사했다.
"대청국 직례총독 겸 북양통상대신 이홍장이 조선국 국태공을 뵙습니다. 국태공께서 직접 천진으로 와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대원군도 정중히 화답했다.
"이중당의 높은 이름은 조선에서도 자자하니, 이 늙은이도 뵙기를 고대했습니다. 중당께서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택에 이 늙은이가 죽기 전에 대국 구경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두 나라를 대표하는 두 노(老)정객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거구의 이홍장과 단신의 대원군은 키 차이가 상당했지만, 환갑 나이를 넘긴 눈빛은 똑같이 형형했다.
청의 이홍장, 조선의 이하응,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라는, 동양 삼국을 대표하는 정객들의 회담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