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39화 (139/812)

138 천진 조약

삼국 회담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조선 사절단보다 먼저 도착한 일본 사절단은 이홍장과 인사를 나눈 후, 국서를 제정(提呈)하기 위해 북경으로 갔다.

조선은 명목상 청의 제후이니만큼, 사절단도 북경으로 가서 국서를 바치는 절차를 따르기로 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이홍장이 회담의 전권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토는 조정이나 총리아문이 아닌 이홍장과 실질적인 담판을 지을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북경에 도착한 조선 사절단은 먼저 총리아문을 방문했다. 황제가 감기에 걸렸다고 해서 국서를 바치는 절차는 서면으로 하기로 했다.

총리아문에서 이홍장에게 전권을 부여하기로 함에 따라, 북경에서는 짧게 체류하고 천진으로 돌아가게 됐다.

"과연 대국의 수도라 그런지, 그 규모가 남다르구나."

북경에 처음 온 대원군은 솔직하게 감탄을 표했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하지만 큰 나라를 다스리려면 그만큼 신경 써야 하는 것이 많지. 통치자 입장에서는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게 더 편할 수 있다."

매사를 권력과 연결짓는 대원군으로서는 대국을 다스리는 게 극도로 어려운 일임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어린 황제, 수렴청정 중인 태후, 보수적인 조정대신들, 근대화를 추진 중인 양무파 관료들. 그리고 지방마다 확연히 갈라지는 이해관계.

대원군은 결코 이들이 화합하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청국의 균열 속에 조선이 살길이 있음을 이해했다.

"공친왕이 걸물이라고 해서 만나보고 싶었는데, 실각했다니 아쉽구나. 태후에게 밀렸다지? 아무리 유능하고 포부가 있더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게 이렇게 어렵다."

애초에 대원군은 태후가 정국을 주도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홍장과 이토를 만나는 거로 아쉬움을 대신하시지요."

"흠, 그래. 회담은 주로 너와 대신들에게 맡길 터이니, 담판을 지어보자꾸나."

천진에 도착한 후, 이선은 일본 사절단을 방문했다.

"조선국 외무대신 이선이 인사드립니다."

"일본국 태정관 참의 겸 궁내경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이선과 이토는 서양식으로 악수를 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이렇게 보게 되는군. 일본에서는 찬사를 보내고, 한국에서는 영원히 저주를 퍼부을 작자.'

근대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조선 침략의 상징이 되는 바로 그 이토 히로부미였다.

'뭐, 나의 역사에서는 조선을 침략할 기회 자체를 주지 않도록 하지. 그게 일본에도 이로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다.'

러일전쟁 이전만 해도, 이토는 일본 정부 내의 온건파를 대표했다. 특히 1880년대에는 오쿠보 도시미치의 내정우선주의를 계승해 공격적인 대외정책에 반대했다. 이 시기의 이토는 '합리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었다.

"왕자에 대해선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조선의 개혁을 이끄는 희망이라고."

"하하, 저도 이토 공에 대해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입지적인 출세를 이룬 분이시라지요. 일본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분과 만나니 기쁘군요."

조선보다 신분제도가 훨씬 엄격했던 일본에서 이토는 예외적으로 평민이나 다름없는 하급 무사 출신에서 출세 가도를 달린 인물이었다.

"왕자께서는 정말 영어가 유창하시군요. 조선은 오랫동안 서양과 교류가 없었는데, 어떻게 영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까?"

이토는 일본에서 영어 실력이 유창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할아버님께서 조기교육을 잘 시키셨지요."

"과연 국태공께서는 조선의 걸물이십니다."

"헌법 작성과 내각제도 수립은 예정대로 잘 되어가시는지요?"

이선은 1885년에 일본이 내각제로 전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초대 총리대신은 물론 이토였다.

"예,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

"옛 자유당 일부가 과격화되어있다지요. 무장봉기도 일으키는 모양이던데."

이선은 은근히 일본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걸 암시했다.

"허허, 일본 사정에 관해 잘 알고 계시는군요."

이선이 정색하면서 말했다.

"일본 정치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년에 자유당 일부가 프랑스 공사관과 접촉해서 조선 개혁에 대해 논의했던 일도 압니다. 그 직후 다케조에 공사가 조선 관리들과 만나서 영향력 확대를 도모했다는 것도. 될 수 있는 대로 이런 내정간섭은 앞으로 없었으면 합니다. 일본 내부정치에 조선을 이용하지 마십시오."

냉철하던 이토도 순간 흠칫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어디서 정보가 샜단 말인가? 설마 다케조에가 조심성 없이 흘렸나?'

이선은 그저 빙긋 웃고 있었다.

'네가 무슨 생각 할지 안다. 그리고 너희가 정파에 따라서 대외정책을 어떻게 추구할지도 알고 있고.'

"금시초문입니다. 아무래도 뜬소문이 귀국에 들어간 모양이군요."

이토가 딱 잡아떼는데도, 이선은 미소를 버리지 않았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확실한 정보인데, 일본의 일인자인 이토 공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아니겠지요. 양국의 우호가 뜬소문으로 헤칠 수는 없지요."

"그렇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할 의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선과 일본 간에 우의가 상할 일이 있겠습니까? 그 말씀, 앞으로 계속되기를 믿겠습니다."

"믿어주시니 고맙습니다. 양국 간의 우의가 상할 일은 없을 겁니다."

아무 구속력이 없는 구두 발언이었지만, 이토로부터 다짐받은 이선은 제법 기분이 유쾌했다.

삼국 회담은 1885년 5월 14일(을유년 4월 1일)에 시작되었다.

이홍장은 회담의 시작에 앞서 이선에게 말했다.

"조선은 본래 제후국이니 청국과 대등한 회담 당사자가 될 수 없지만, 내 특별히 귀국의 우의를 생각해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외다."

"중당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선은 이홍장의 본심을 알고 있었다.

'조선이 일본보다는 청국 편을 들 테니까, 2:1이 되리라는 기대를 하고 끼여준 거겠지. 근데 과연 조선이 청의 거수기가 되어주려나?'

회의는 천진의 직례총독아문에서 개최되었다.

청국 전권대표에 이홍장, 부대표에 오대징(吴大澂), 오정방, 통역으로 라풍록(羅豊綠)이 배석했다.

일본 전권대표에 이토 히로부미, 부대표에 에노모토 다케아키, 하라 다카시, 통역으로 데이 에이네이(鄭永寧)가 배석했다.

조선 전권대표에 이하응, 부대표에 이선, 김윤식, 어윤중이 배석했다.

"우리는 당면한 위기에 맞서, 문제 해결을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앞으로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회담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최자인 이홍장이 덕담으로 회담 시작을 선언했다. 이홍장과 이토, 이선은 모두 영어가 유창했지만, 다른 배석자들을 위해 각자의 언어를 사용한 후에 통역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우리가 해결할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과거에 관한 것이고, 하나는 장래에 관한 것입니다. 과거의 소소한 갈등은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만으로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장래의 문제입니다."

이토는 운을 뗀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속히 결정해야할 장래의 문제는, 조선의 중립과 영토 보전,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입니다."

이선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이토가 대신해 주니 만족했다.

"조선의 중립 선언은 조선과 동양은 물론이오, 더 나아가 서양 열강의 세력 균형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선이 대원군의 말을 통역하는 형식으로, 실질적으로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다.

"청국과 일본 간에 전쟁의 풍설이 퍼지고, 영국과 아라사 간의 갈등이 눈으로 드러난 이 시점이야말로 중립을 확인할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중요한 두 이웃 나라, 청국과 일본이 솔선수범하여 중립과 영토 보전을 승인하고, 조선에 주둔하던 병력을 영구히 철수한다면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3국도 조선의 영토 침범을 하지 않을 겁니다."

여전히 조선에는 청군 1개 영 500명의 병력과 일본군 공사관 호위병 1개 소대가 존재했다. 이는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이토와 일본 대표단은 동조의 뜻을 보였지만, 이홍장이 이의를 제기했다.

"총론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조선은 본래 중국의 조공국으로, 아직 그 힘이 미약한 이상 중국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중립도 좋지만, 적대적인 제3국이 작정하고 조선을 침략한다면 대체 무엇으로 막으려 합니까?"

"조선은 조공국이나, 내정과 통상에 있어서는 자주지국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조선이 가장 힘을 쓰는 게 강병입니다."

"조선에 주둔하는 청군은 다른 목적으로 있는 게 아닙니다. 유사시에 조선을 침략할 수도 있는 제3국에게 청의 보호를 받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당장 군대를 철수시킨다면 보호장치도 사라지는 것이니, 최소한 영국군의 점령이 끝나고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유예기간을 두는 게 좋겠습니다."

이때 이토가 나섰다.

"철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일본국은 공사관 호위병을 즉시 철수할 의사가 있습니다. 청국도 속히 뒤따르길 바랍니다. 그래야 조선에서 충돌의 가능성이 사라집니다."

이선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이제 확실해졌군. 일본은 조선 불개입을 정책으로 정했다.'

"좋습니다. 그럼 최대 1년의 기한은 어떻습니까?"

"너무 깁니다. 조약에 서명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비준하고, 다시 그로부터 2개월 이내에 철수를 완료하지요."

결국, 이홍장도 이토의 안을 받아들였다.

"조약 체결로부터 3개월 이내에 청군은 남양만으로, 일본군은 제물포를 거쳐서 철수합시다."

"그리하겠습니다."

"청일 양국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3국의 조선 주둔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확약을 정하지요."

조선 측의 제안에 청과 일본도 찬성했다.

"아시다시피, 조선군의 근대화를 위해 고든 장군을 위시한 영국 군사고문단을 채용한 상황입니다. 군사고문단은 앞으로 그 수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예외로 두었으면 합니다."

청과 일본 역시 서양으로부터 군사고문관을 채용한 이상, 반대 의견은 없었다.

"조선 문제에 제3국이 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중립과 같은 불확실한 조치보다, 제3국이 조선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 청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연합하여 조선의 영토를 보전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건 또 뭔 소리야.'

청과 일본이 제3국의 위협을 핑계로 공동으로 조선 내정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 수 있으니, 조선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선이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 이토가 알아서 반박했다.

"이 자리에서 제3국과의 대립을 전제로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3국에 해당되는 그 어떤 국가도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공연히 말하면 안 되겠지만, 여기 모인 우리가 밀약으로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는 군사동맹에 버금가는 일로, 쉽게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이토의 반대에 청일 공동 연합안은 무산되었다.

첫 회의는 그런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의외로 일본이 조선에 더 유리한 의견을 내놓고, 청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을 쓰는 구도였다.

'일본이 청보다 온건해서? 그럴 리가 있나. 그만큼 현시점에서 청이 조선에서 일본보다 가진 기득권이 많기 때문이지. 아무튼, 둘 사이에서 적당히 등거리를 유지하면 확실히 이익을 챙길 수 있겠다.'

2차, 3차 회담은 5월 16일과 18일에 개최되었다. 각국 대표는 조약의 문건을 놓고 토의했다.

결국, 쟁점은 조선의 중립을 승인하느냐, 청이 조선의 종주국임을 문건에 명확히 하느냐, 그리고 유사시 청군의 파병 여부였다.

이선은 청에 대놓고 의견을 거스르지 않고, 일본이 알아서 삭제하게 만드는 걸 지켜보았다.

"조선은 중국의 속방이니, 제3국이 조선을 침공하거나 내란이 발생한다면 중국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합니다. 300년 전, 임진년에도 중국이 조선을 보호하지 않았습니까?"

이홍장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을 언급했다.

"그게 대체 언제적 일이란 말입니까. 중립을 승인하면 열국이 공동으로 조약을 준수할 의무가 생깁니다. 국제법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열국이 공동으로 제3국의 침략을 막을 겁니다."

이토의 냉소적인 태도에 이선이 중대하듯이 말했다.

"조선의 중립은 분란의 근원 자체를 막자는 겁니다. 부디 중국에서는 이를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세부적인 사안을 놓고 벌이던 논쟁 끝에, 삼국은 합의에 도달했다.

1885년 5월 21일, 천진 조약이 조인되었다.

대청국, 일본국, 조선국은 다음과 같이 의정(議定)한다.

1. 청국과 일본국은 조선국의 중립과 영토 보전을 보장한다. 열국에도 이를 따르도록 권한다.

2. 청국은 조선에 주찰(駐紮)하는 병력을 철수하고, 일본국은 공사관 호위병들을 철수한다. 서명 조인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로 철회를 마친다.

3. 청국과 일본국은 조선국이 병사를 양성하여 국방을 스스로 충분히 보호토록 권한다. 조선국이 외국의 무관을 선발해 고용, 교련(敎鍊)의 일을 위임한다. 청일 양국은 조선의 국방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4. 청일 양국은 어떠한 명의(名義)나 약관(約款)을 불문하고 조선에 병사를 파병하거나, 병영을 짓거나, 영지를 점유하거나 항구에 주둔하지 아니한다.

5. 장래 만일 조선국에 변란이나 중대 사건이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파병이 요(要)할 때에도, 반드시 조선의 의사를 확인한다. 먼저 문서로서 통보하여 열국의 공론을 확인하며, 외국군의 파병과 주둔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청 광서 11년 4월 8일, 일본 메이지 18년, 서력기원 1885년 5월 21일.

대청국 흠차전권대신 이홍장

일본국 특명전권대사 이토 히로부미

조선국 특명전권대신 이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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