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45화 (145/812)

144 밀약(密約)

시간을 잠시 앞으로 돌려, 1886년 여름.

이때 사소해 보이지만, 향후 동아시아 정세를 바꿀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북양함대의 무력시위였다.

이에 앞서서 1885년 11월, 이홍장은 그토록 고대하던 독일제 전함 정원(定遠)과 진원(鎭遠)을 북양수사로 인도받았다. 이 전함을 얻기 위해 은 수백만 냥이라는 거액을 들였다.

청불전쟁으로 일어나면서 인도 시기가 늦어졌다. 만약 청이 전함을 빨리 인도받았다면 전황(戰況)을 뒤바꿨을 법하다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전함이었다.

정원과 진원은 7000톤급의 배수량과 30센티미터가 넘는 두께의 측면장갑, 무장으로 12인치 구경 2연장 포탑 2기, 6인치 구경 포탑 2기를 장비한 거함(巨艦)이었다. 동양에서 두 전함에 맞설 거함은 없었고, 심지어 서양에서도 이만한 전함은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동시에 발주했던 순양함과 어뢰정도 인수하면서 전근대적 북양'수사(水師)'는 근대적 의미의 북양'함대'로 거듭나게 되었다.

"대청의 위용을 오랑캐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어라."

1886년 7월, 북양대신 이홍장은 함대를 이끄는 통령수사 정여창에게 명해, 동아시아 해역을 항행하여 위용을 뽐내라 하였다.

천진을 출발한 전함 정원과 진원, 순양함 제원(濟源), 위원(威遠), 양위(揚威), 초용(超勇) 등 군함 6척은 나가사키, 부산,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항행했다.

명목상으로는 친선 방문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청의 가상적국 1, 2호인 일본과 러시아를 겨냥한 행보였다.

이 무렵 청이 러시아에 두만강 하류 일대의 해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면서 양국 간에 긴장이 발생했고, 북양함대의 블라디보스토크 항해는 일종의 무력시위라 할 수 있었다. 일본과 러시아는 북양함대의 등장에 상당한 긴장감을 느꼈다.

북양함대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행을 완료했다. 문제는 귀로 과정에서 발생했다.

북양함대는 귀로에 전함의 수리와 보급을 위해 나가사키에 기항했다. 일본 해군이 보유한 군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전함의 등장에 나가사키의 일본인들은 전율을 느꼈다.

"지나(支那)가 이렇게 막강한 전함을 보유하다니."

"저놈들, 일본에 위협하러 온 거 아닌가?"

일본인들이 느끼는 공포는 곧 적개심으로 변했다. 전함의 위세를 등에 업고, 청국 수병들이 무례하게 굴기 시작한 것이다.

8월 15일, 청국 수병 500여 명은 일본 당국의 허가도 받지 않고 멋대로 상륙했다. 이들의 군기는 느슨했고, 기루에서 만취하여 난동을 부렸다. 심지어 상점에서 물건을 빼앗거나, 부녀자를 희롱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가사키 경찰이 진압을 위해 출동하자, 난동을 부린 수병이 체포되었다. 그러자 이를 구출하겠다고 수병들이 파출소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말싸움 시작을 계기로, 수병들은 결국 제지하던 순사에게 뭇매를 놓아 죽음까지 이르게 했다.

일본 경찰들도 결국 칼을 뽑아 들었고, 양측 간에 칼부림이 벌어졌다.

"殺!"

"殺せ!"

청국 수병과 일본 경찰, 나가사키 시민까지 합세하면서 충돌은 난투극으로 확대되었다. 뒤늦게 정여창이 복귀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양측 합쳐 사망자만 10여 명, 중경상자가 수십 명에 달했다.

청일 양국은 폭동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고, 양측은 제3국의 중재 하에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일본이 이 사건으로 느낀 충격과 공포는 상당했다. 신임 해군경이자 사쓰마 파벌을 대표하는 사이고 쓰구미치는 내각 회의에서 역설했다.

"현재 청국은 해군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입니다. 그러니 저토록 무례할 수 있는 겁니다. 섬나라인 일본이 해군력에서 밀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즉각 건함 정책에 돌입해야 합니다."

청에 대한 일본의 경계심이 강해지면서, 신규 건함 정책이 각의에서 통과되었다. 8년에 걸쳐 1700만 엔의 예산을 들어 총 54척, 6만 6300톤에 달하는 건함을 완료할 예정이었다.

일본이 향후 육군보다 해군에 더 집중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건함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1886년 가을, 정원과 진원은 인천항으로 입항하여 그 위용을 뽐냈다. 거대한 전함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세상에, 전함이 마치 태산과도 같군."

바다를 누비는 철갑선은 근대의 무력을 상징했다. 지금까지 서양이 그 상징을 독점했다면, 정원과 진원은 중국도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참으로 대청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누가 감히 대청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관함식에 초대를 받은 조선 관료들이 찬사를 보내자, 정여창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나라가 조선을 위협하더라도, 대청이 조선을 보호해 줄 것이오."

이선도 관함식에 초대를 받았다. 그는 북양함대가 부산과 원산에 이어 인천에도 입항한 이유를 짐작했다.

'청나라가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거겠지.'

하지만 이선은 다른 조선 관료들처럼 두려움과 놀라움을 느끼지 않았다.

'근데 어찌한다, 군함이란 게 크기가 크고 무기가 강하다고 해서 전투의 승리를 보장해 줄 수 없을 터인데.'

청군은 지휘관의 능력, 특히 수병의 질적 문제가 심각했다. 정여창은 양무파의 일원으로 제법 유능한 관료이자 군인이지만, 육군에 대해서는 알아도 근대 해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최신 군함만 보유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가사키 폭동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장교와 수병의 군기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훈련 수준도 형편없었고, 각종 비리와 횡령은 비일비재했다.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북양함대는, 청일전쟁에서 일본 해군에게 철저하게 참패한다.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가 보인 추태를 생각하면, 결국 전쟁은 무기가 아니라 인간이 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이선이 어떤 생각을 하건, 원세개가 조선에서 오만하게 굴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양함대의 등장이 있었다. 일본조차도 우습게 여기는 강경파들에게 조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선 따위가 중립을 추구하다니. 참으로 가소로운 일이다."

강경파에 속하는 원세개는, 서양 열강조차 신경 쓰지 않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전권공사 파견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원세개는 이제 이선과 외무부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임금에게 알현을 청했다.

"황제 폐하께서 칙서를 내려 국왕 전하를 조선왕에 봉한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조선 땅에서 천자를 대리해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건, 오직 황제 폐하께서 봉한 국왕 전하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그렇소."

임금은 원세개의 무례하고 거친 언동에 불만족스럽다는 의사를 표정으로 간접적으로 드러내며 답했다.

"대원군과 완화군은 전하의 생부와 아들이라고는 하나, 일개 사인(私人)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국왕 전하를 무시하고 대원군이 섭정하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완화군과 일부 신료들이 멋대로 통치를 한단 말입니까?"

"그들은 오직 과인을 대리하여 정령(政令)을 집행할 뿐이오."

"지금까지는 과도기라 그렇다 쳐도, 이제 대내외의 정세가 안정되었으니 마땅히 국왕 전하께서 통치권을 되찾으셔야지요."

"원 대인의 말씀은 고맙소. 그러나 나라를 위해서 완화군과 대신들이 경장을 집행하고 있으니······."

임금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원세개가 말을 끊었다.

"그럴 리가요. 그들은 국왕 전하의 권위를 이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임금은 원세개의 무례한 태도가 못마땅하였지만, 이러는 이유가 궁금했다.

'대원군에 이어 완화군이 정권을 맡도록 승인한 게 이홍장 아니었던가? 인제 와서 이러는 이유가 무엇인가?'

임금은 대원군과 이선이 삼국 회담을 위해 천진으로 향할 때,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을 고려했다. 당시 조선에는 회담이 결렬되면 대원군과 완화군이 청국에 억류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임금이 그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바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천진 조약이 체결되자, 대원군과 이선은 외교적 승리를 거두고 의기양양하게 개선했다. 그러자 임금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외적으로 모든 신망이 완화군에게 몰리니 나설 여지가 없구나. 지금은 그저 인내할 때로다.'

임금은 이선과 개화당이 결정한 일에 옥새만 찍어주고 있는 현재의 정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이홍장이 보낸 원세개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하여 선동하니, 임금은 고민이 되었다.

'이홍장의 뜻인가, 원세개의 독단적 행보인가?'

"만약 국왕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외신(外臣)은 전하의 뜻을 황제 폐하께 전할 것입니다."

임금이 침묵하자, 원세개가 거듭 의견을 채근했다.

"말씀은 고맙소. 하지만 이는 중대한 일이니 즉답할 수 없는 일이오. 과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시오."

임금은 늘 그렇듯이 결단을 미루었다. 원세개가 씩 웃으면서 답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국왕 전하께는 늘 대청 황제 폐하의 황은이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원세개의 행보는 바로 이선에게 전해졌다. 개화당 관료들이 이선에게 촉구했다.

"원세개가 왕실과 조정, 외교가를 들쑤시고 다니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합니까?"

개화당 관료들은 분개했지만, 이선은 웃을 뿐이었다.

"원세개는 곧 자멸할 겁니다. 단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그때가 언제이겠습니까?"

"머지않아서.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 원세개가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니게 내버려 두십시오."

이선과 개화당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자, 원세개는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이는 조선의 권력자인 이선과 개화당조차도 청국이 보낸 원세개를 제어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었고, 자연히 그 주위로 개혁에 불만을 품는 자들이 모여들었다.

"천하의 완화군도 중국의 눈치는 보지 않을 수가 없는 모양이군."

"완화군과 개화당 연소배들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건 역시 중국밖에 없소."

원세개 주위에 '친청파'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는 불만스러웠다.

'뭐 이런 떨거지들만 모인단 말인가.'

정치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이미 실세(失勢)한 자들만 모여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는 상황이었다.

원세개가 노리는 건, 조선 조정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개화파가 분열하여 '근왕(勤王)'의 기치 아래 뭉치는 것이었다.

완화군보다 훨씬 다루기 쉬워 보이는 임금을 내세워, 친청 성향의 온건 개화파들이 반대파를 형성하는 게 목표였다.

급진파와는 결이 다른 김홍집이나 김윤식과 같은 이들이 호응해주리라 기대했지만, 이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원 대인의 행보에 조선의 조야가 걱정이 많습니다. 부디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원 대인께서는 어찌 평지풍파를 일으키려 하십니까? 나는 결코 조정의 분란을 원치 않습니다."

원세개는 김홍집과 김윤식을 설득해보려 했지만, 이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들은 비교적 청에 우호적인 성향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조선의 관리였다. 중국을 위해서 조선의 이익을 침해할 이들이 아니었다.

원세개는 실망했지만, 공작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공을 들여 접촉하는 이는 바로 민영익이었다.

임오군란 이후 중전 민씨가 폐출되면서, 10년간 권세를 부리던 여흥 민씨는 완전히 몰락했다.

민영익은 여흥 민씨 중에 거의 유일하게 조정에서 살아남아 중책을 맡고 있었다. 본래 개화를 지지했던 데다가, 개화당을 이끄는 김옥균이나 홍영식 등과도 친분이 깊은 덕이었다.

이선과 함께 보빙사를 가게 되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조선에 돌아온 이후에도 여러 관직을 맡아 개화 정책의 한 축을 맡고 있었다.

"민 공, 공은 어찌 가문의 원수와 손을 잡을 수 있단 말입니까?"

"가문의 원수라니,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당연히 대원군과 완화군이지. 여흥 민문을 몰락시키고, 공의 부친도 저 극변으로 보내지 않았소?"

민영익의 부친이자 세자의 장인인 민태호는, 몇 년 전 유생 난동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멀리 귀양을 갔다.

민영익은 불만을 보이지 않고 직무에 충실했지만, 이 사건이 대원군의 조작이라고 믿었다.

"제 부친은 그런 일을 벌일 분이 아닙니다. 죄를 뒤집어쓴 거지요. 대원군께선 민문을 원수로 생각하고, 외척을 뿌리 뽑고 싶어 하시니까."

씁쓸해하는 민영익을 보며 원세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그런데 어찌하여 공은 대원군의 후계자인 완화군의 휘하에 있느냐는 말이오."

"완화군과 저는 모두 성상의 신하이거늘, 어찌 제가 완화군의 휘하에 있단 말입니까?"

"그거야 형식적인 이야기고. 실질적으로 조정을 이끄는 건 완화군 아니오?"

"완화군은 참으로 뛰어난 지도자이십니다. 공적인 일 앞에서 사적인 감정은 눌러야지요."

"참으로 훌륭한 태도이외다. 하지만 완화군이 국왕을 무시하여 국정을 농단하고, 심지어 중국과 황상의 뜻까지 거역하고 있소. 이는 조선에 있어 실로 우려가 되는 행보가 아니겠소?"

"······ 우려가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민영익의 태도 변화를 보고 원세개가 되었다 싶었다.

"민 공은 조정의 중책을 맡고 있소. 분명 아는 바가 있을 것이오. 혹여 완화군이 아라사와 무슨 일을 꾸미고 있지 않소?"

순간 민영익의 표정이 흔들렸다. 원세개가 거듭 설득했다.

"이는 중대한 일이오. 감춰서는 아니 될 것이오."

민영익이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그렇습니다. 얼마 전, 완화군께서 아라사와 밀약을 맺었습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