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차르 즉위식
1888년. 대조선 개국기원 497년, 무자년.
갑신경장 이후 4년 차에 접어든 조선의 개혁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세수(稅收)는 증대하고, 군비는 튼튼해졌으며, 근대화 사업도 착실히 진행 중이었다.
기득권을 잃은 자들의 반발이 없잖아 있었으나, 정권에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의외로 근대화 과정에서 반발이 잠잠하네. 역시 작은 나라의 우위인가?'
이선이 주도하는 개혁은 정통성과 민심, 명분과 실리의 측면에서 모두 갖춰졌으니 실제 역사의 갑신정변이나 갑오개혁 같은 반발이 이어지지 않았다.
향촌 사대부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의회 개설을 대비하기 위해 만든 중추원(中樞院)과 향회는 충분한 효과를 냈다.
1887년에 개원한 중추원은 입법부는 아니었으나, 조정의 법안을 심의하고 토론하는 역할은 수행했다. 중추원에서 새로운 공론의 장이 열린 것이다.
중추원 의관(議官) 100명은 전국 향회에서 간선으로 뽑힌 민선 50명, 관선 50명으로 채워졌다.
가장 보수적인 사대부들은 중추원 자체를 '서양을 흉내 낸 해괴한 짓거리'라 하여 부정했고, 개혁을 비교적 수용하는 개신 성향의 사대부들이 중추원에 들어왔다. 특히 오랫동안 실세(失勢)했던 실학 계통의 남인·소론들이 대거 의관이 되었다. 이들로선 의관이 되어 정책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기회로 여겼다.
여기에 중추원 의장과 부의장으로 추대된 대원군과 이재면 이하 관선 의원들은 대개 왕족과 조정 관료들로 채워졌으니, 중추원이 정부의 견제기구라기보다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중추원과 향회는 천하의 공의(公議)를 대표한다. 너희 신민은 마음껏 자신의 의견을 펼치도록 하라. 과거 역사에 없었던, 군민공치(君民共治)의 아름다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명목상 조정, 사대부, 만백성의 공론을 모두 반영한다고 주장하는 중추원의 존재는 불만 여론을 무마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기존의 그 어떤 조정과 비교해도, 신정부는 '여론에 충실'했다.
일반 백성들 대다수는 개혁의 수혜를 누리고 있었고, 개혁으로 인해 기득권을 침해받는 자들은 불만은 품고 있으나 감히 행동으로 나설 정도는 아니었다.
국내 정세는 안정적이었고, 대외 정세도 별다른 풍파 없이 유지되었다.
'유일한 변수는 러시아 황제의 교체인가?'
새로 즉위한 알렉산드르 3세는 선제의 국내 정책은 상당 부분 뒤엎었지만, 대외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독일과의 갈등이 새로운 변수가 되는 정도였다.
1888년 5월, 새 황제의 대관식이 모스크바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각국에 대관식 초청장이 발송되고, 당연히 조선에도 도착했다.
"아라사 황제의 즉위식에는 최상의 예우를 갖춰야 할 것입니다. 격에 맞는 인사를 사절로 보내야 합니다."
"아라사라고 하면, 공적으로 보나 사적으로 보나 완화군 대감이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즉위 축하 사절단장으로 이선이 거론되었다. 왕족이자 외무독판, 러시아와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본에서도 영국 유학 경험이 있는 황족 아리스가와노미야 다케히토 친왕(有栖川宮威仁親王)을 대표로 하는 사절단을 보내기로 했다.
'음, 지금 조선을 비워도 괜찮은가?'
이선 역시 현 단계에는 내정이 외교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교적 안정을 얻은 지금은 충실히 내실을 다질 때였다.
'그런데도 외교는 내가 할 일이다.'
조정에 이선이 부재하더라도 내정개혁을 맡을 유능한 신료들이 많았다. 김홍집과 어윤중으로 대표되는 시무 관료들은 역사와 달리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마음껏 능력을 보이며 개혁을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국제정세를 정확히 읽고 판단하여 각국의 권력자들과 담판을 지을 수 있는 이선 밖에 없었다.
국내 정세는 안정적이었으니, 이선이 잠시 부재하더라도 문제가 될 요소는 없어 보였다.
'새로운 권력자들과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이선 역시 새 황제의 즉위 후 러시아 당국과 직접 의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알렉산드르 3세 즉위식에 참석할 열강의 권력자들과도 안면을 틔울 필요가 있었다.
"좋습니다. 제가 사절단장을 맡도록 하지요. 즉위식에 참석하여 각국과 우호를 다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선은 즉위식 사절단장을 수락했다. 단, 서양 각국을 순방했던 보빙사절단과 달리, 황제 즉위식에만 참석하고 속히 돌아올 예정이었다.
1888년 4월, 이선을 전권대신으로 하는 즉위식 축하 사절단이 인천을 떠났다. 사절단은 예전에 이선이 러시아에 갔던 루트 그대로 갔다. 인도양과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를 지나 흑해 오데사로 들어갔다. 오데사에서 기차를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향했다.
사절단이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 러시아 공사 박영효가 맞이했다. 프랑스 공사로 재임 중이던 김옥균도 러시아에 왔다.
"군 대감,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덕분에 아주 좋습니다. 경들은 타지 생활이 어떻습니까?"
"하하, 아주 잘 적응하고 있지요."
박영효나 김옥균이나 융숭히 대우를 받으며 유럽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러시아 새 황제의 정책입니다. 내가 보기에 국내 정책은 많이 바뀌었지만, 국외 정책은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공사관에 도착하자마자, 이선은 외교관들과 회의를 열었다.
"현 황제께서도 선제의 조선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잊지 않으시고, 그 정책을 계승한다 하셨습니다."
박영효에 이어 김옥균도 보고했다.
"근래 프랑스가 러시아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자본의 러시아 진출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그에 비하면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일로지요."
1888년 3월,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 빌헬름 1세가 서거했다. 향년 90세로 긴 재위 끝이었다.
오랜 황태자 시절을 지나 새로 즉위한 프리드리히 3세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했고, 특히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인 황후의 영향을 받아 친영적이었다. 영국과 독일의 관계가 가까워진 대신, 독일과 러시아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대혁명의 후예인 프랑스 공화국과 전제군주국 러시아 제국 간에는 정치적 공통성이 없었으나, 비스마르크 체제하에서 외교적 고립을 견뎌야 했던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러시아에 접근했다.
'결국, 역사대로 비스마르크 체제는 곧 끝날 것이고, 프랑스-러시아 동맹은 체결될 것이다. 앞으로 이용할 여지가 있겠군.'
이선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응책을 준비했다.
이선은 첫 일정으로, 황태자 니콜라이 대공을 방문했다.
"황태자 전하, 다시 한번 선제의 붕어에 마음 깊이 조의를 표하고, 새 황제 폐하의 대관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어느새 만 스물이 된 동갑내기 니콜라이 대공은 의젓한 자세로 이선을 맞이했다.
"귀국의 우정어린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조선 사절단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정중히 인사를 주고받은 후, 니콜라이는 빙긋 웃으며 이선의 손을 맞잡았다.
"어서 오시게, 나의 친구여. 자네의 방문이 진심으로 반갑네."
"음, 자네 심려가 컸겠군. 선제께서 그렇게 돌아가실 줄은······."
니콜라이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배은망덕한 놈들! 할아버님께서 그토록 선정을 베푸시려고 노력했거늘······. 개혁의 대가로 폭탄이 날라올 줄이야. 아버님과 나는 절대로 반역자들을 용납하지 않기로 했네. 감히 신성한 러시아 제국과 로마노프 황가에 칼을 들이미는 자들은 모조리 뿌리뽑을 것이네."
니콜라이는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이선은 그의 분노가 이해가 됐으나, 그래도 충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협 없는 반동은 결국 혁명을 부를 터였다.
"그래도 선제의 개혁정책을 폐기하면 안 되네. 선제의 개혁을 따르는 게 그분의 유지를 잇는 거야."
"그건 아버님이 판단하실 일이지, 내가 나설 일이 아닐세. 하물며 자네가 나설 일은 더욱 아니지."
니콜라이가 냉랭한 어조로 말하자, 이선은 쓴웃음을 지으며 사과했다.
"미안하네. 주제넘은 말을 해서."
이선이 사과하니, 니콜라이도 곧 미안해했다.
"자네의 진의를 어찌 모르겠나. 특히 할아버님과 자네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었고. 7년 전, 자네의 공로 덕에 할아버님의 치세가 더 계속될 수 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버님의 치세일세."
"물론이네. 내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지. 그저 나는 조선과 러시아의 우호적인 관계가 지속하길 바랄 뿐이네."
'솔직히 조선에 대해서 계속 후원자 역할을 해준다면 국내 정책을 어찌하든 내 알 바 아니지.'
이선의 말에 니콜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말게. 조선은 러시아에 있어도 중요한 나라야. 시베리아에 철도가 부설되면 그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겠지."
이선은 새로운 정보에 놀라움을 표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이 확정된 건가?"
"거의. 전 구간의 지형조사에 들어갔네. 재원도 확보했고. 내가 새 철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될 거야."
'결국, 시작되는군. 영국과 일본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이 만들 역사의 파장성을 생각하며, 이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아아, 횡단철도가 부설되면 앞으로 유럽에 올 때 이렇게 힘들게 배를 타고 올 일이 없겠지."
"그렇고말고. 철도를 통해 단 2주면 극동과 유럽을 이을 수 있을 거야. 획기적인 단축이지."
"과연, 생각만 해도 편리하네."
"부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나도 극동 방문을 하게 될 거야. 중국, 일본, 그리고 조선도 가볼 수 있겠지."
'니콜라이의 극동 방문도 역사대로 진행되겠군.'
"자네가 조선에 온다면, 언제든 대환영일세."
"그래, 벌써 기대가 되는구먼. 러시아의 새로운 영토와 태평양을 내 눈으로 보게 되는 날이야."
니콜라이는 표트르 대제가 발트해로 나가고, 예카테리나 대제가 흑해로 나갔듯이,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태평양 진출이 역사가 준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1888년 5월 15일(그레고리력 27일). 모스크바 우스펜스키(Uspensky) 성당에서 알렉산드르 3세의 즉위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옛 차르의 왕관과 의복을 갖춰 입은 알렉산드르 3세와 황후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자 니콜라이 대공은 모스크바 총대주교의 축복을 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절단 역시 멋진 제복과 함께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이선은 각국 사절단과 함께 귀빈석에 앉아 대관식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신이여, 차르를 보호하소서!"
옛 비잔티움 전례와 서구식 의식이 조화가 이루어진 즉위식은 전세계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을 정도의 화려한 의례였다.
'참 대단하군. 과연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전제군주의 즉위식다워.'
하지만 제정 러시아의 번영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몰랐다. 역사대로라면 불과 한 세대 뒤에, 황태자의 재위기인 30년 뒤에 몰락하게 된다.
물론 이미 역사가 바뀌었기 때문에 제정의 붕괴가 필연은 아니었다. 역사가 어찌 전개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즉위식 후에도, 성대한 축연이 계속 이어졌다. 백성들에게는 황제의 특별한 은전이 베풀어졌고, 백성들은 새 황제의 등극을 축하하며 만수무강을 축원했다.
각국 사절단을 환영하는 무도회가 열렸다. 다들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겼다. 수많은 왕족과 권력자들 사이에서, 이선이 특별히 공을 들이는 인물이 있었다.
"황태자 전하, 뵙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저는 조선국 왕자 이선입니다. 전하를 뵙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감격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이선이 열정적으로 아첨을 하는 대상은,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독일 제국 황태자 빌헬름이었다.
"조선 왕자에 대해서는, 나도 니키에게 들은 바가 있습니다. 과연 듣던 대로 총명해보이는 분이군요."
두 제국의 후계자인 빌헬름과 니콜라이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황공합니다. 제가 독일 제국과 호엔촐레른 왕가의 위업을 얼마나 숭앙하는지, 전하께서는 미처 모르실 겁니다."
이선은 프로이센 개혁에서 독일 제국의 통일과 발전에 이르기까지, 입에 마를 정도로 칭찬을 했다.
"하하, 동양에서 독일에 대해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을 줄 몰랐습니다."
"작금의 독일 제국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강국입니다. 어찌 관심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일본의 유신이 독일을 모델로 삼았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조선의 개혁 또한 프로이센을 본보기로 삼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찬사였으나, 허영심이 강한 빌헬름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비스마르크와 달리 '세계 제국'을 꿈꾸는 빌헬름에게, 머나먼 동양에까지 독일의 위세가 떨친다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분이시군. 왕자와 같은 유능한 집정자가 있으니, 조선의 장래가 밝겠소. 앞으로 독일에서 조선의 개혁을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우리다."
이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나, 겸손히 답했다.
"말씀만이라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니, 나는 말은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이오. 나는 곧 베를린으로 돌아가야 하니, 왕자도 한번 방문하시길 권하겠소.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군."
빌헬름은 호불호가 뚜렷하고 즉흥적인 성격의 군주였다. 이선은 그렇기에 일부러 빌헬름에게 접근한 것이었다.
"전하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