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봉합
한 관리가 광화문으로 나가 조정으로 들어오라는 권유를 하자 최익현이 거절했다.
"나는 병자년에 죄를 짓고 유배되었던 죄인이오. 성상께서 사면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이외다. 나는 단지 유림의 간곡한 뜻을 성상께 아뢰러 왔을 뿐이오."
최익현과 유생들은 광화문 밖에서 계속 거적을 깔고 앉아 있었다. 곡소리에 이은 침묵시위였다. 해가 떨어진 이후에도, 이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조정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래서야 퇴궐도 못 하겠습니다. 해산시키지요."
그때 김홍집이 나섰다.
"국상 기간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제가 직접 나아가 저들을 설득하겠습니다."
"영상께서는 의정부 총재로 조정을 이끄는 몸인데 어찌 직접 나선단 말입니까? 저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건 아마도 이 사람일 터. 제가 직접 나가보지요."
이선이 나서자, 개화당 관료들이 만류했다.
"군 대감께서 직접 나서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차라리 제게 맡겨주시면······."
이선이 웃으면서 거절했다.
"나 역시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하던 차입니다."
이선이 광화문으로 나가자, 개화당 관료들이 근위대 병력을 불러 호위했다.
"독판군무부사 완화군 대감이십니다."
이선이 광화문에 이르러 유생 행렬을 보았다. 완화군은 왕의 장자이므로, 선두에 있던 최익현이 일어나 예를 표했다.
"전 공조참판 최익현이 군 대감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저 역시 영감(令監)의 높은 명성을 들은 지 오래입니다."
이선이 정중히 답례한 후 권유했다.
"밤이 되면 추워지는데, 연로한 몸으로 어찌하여 밖에 계십니까? 안으로 들어와 이야기하시지요."
"일개 백신(白身)의 몸으로 어찌 궁궐 안으로 들어가겠습니까?"
"그 무슨 말씀을. 영감은 전 참판이자 유림의 거두인데, 어찌 일개 백신이라 하겠습니까? 고견을 듣고 싶으니 안으로 오시지요."
57세의 유학자와 23세의 왕자 사이에 잠시 팽팽한 기 싸움이 이어졌다. 결국, 최익현이 한 수 접고 들어갔다.
"군 대감께서 청하시니 거절할 수가 없겠습니다."
최익현이 홀로 입궐하려 하자, 유생들이 말렸다.
"스승님! 안 됩니다!"
"저들을 보십시오. 함정이 아니겠습니까?"
유생들은 서양 군복을 입고 서양 총을 메고 있는 근위대에 적대감을 드러냈다.
"내가 조선의 왕자이자 대신이 되어, 연로한 선비를 속여 궁으로 불러들인단 말인가? 대체 그대들은 조정을 어찌 생각하는가?"
이선의 일갈에 유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대들은 감히 궁에 들어올 자격이 없으나, 내 특별히 허락하겠다. 따라오도록 하라!"
이선의 인도로, 최익현과 유생들은 경복궁 안으로 들어왔다. 어두컴컴했던 궐 밖과 달리, 궐 안은 불빛으로 환했다. 경복궁의 전기 시설은 궁궐 전체를 밝게 빛나게 하고 있었다.
"15년 만에 오니 경복궁이 많이 바뀌었군요. 과연 양이의 기물(奇物)은 신묘합니다."
최익현의 무덤덤한 어조에 이선이 빙긋 웃었다.
"아아, 이건 전기라는 것이지요."
유생들은 내색하지 않아도, 어두운 밤을 환하게 빛나게 하는 전기의 힘에 놀라워했다.
이선은 경복궁 구경을 처음 하는 유생들에게 궐내 구경을 시켜 주도록 하고, 자신은 김홍집과 함께 최익현과 자리에 앉았다.
경복궁 내에 있는 의정부 총재의 집무실은, 외부는 한옥이나 내부는 서양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밤늦게까지 일할 수 있도록 전기가 환하게 들어와 있었다.
"앉으시지요, 영감. 다과를 내오라 하겠습니다."
이윽고 차와 커피, 설탕이 나왔다. 최익현이 처음 보는 검은 액체를 보며 물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가배(咖啡)란 것입니다. 서양의 차와 같지요. 마시면 잠을 적게 자도 집중이 잘 되고 피로가 덜합니다."
이선은 당시 조선에서는 드문 커피를 수입해 입에 달고 살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그에게 유일한 기호품이었다.
"조선에 없는 것이니, 사치품이겠군요."
"사치품 관세가 3할이나 되니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관세는 조정의 주요한 수입원이지요."
이선은 최익현이 통상 반대를 주장하며 외쳤던 말을 상기시켰다.
"통상 조약을 맺으면 생산에 한계가 있는 우리의 농산물과 무한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저들의 공산품을 교역하게 되니 우리 경제가 지탱할 수 없다.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우리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요."
"조정의 노고를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15년 전에 말한 대로 되어가고 있지요."
"농업 외에도 상공업과 무역이 발전하면서 조선의 부는 증대했습니다. 영감도 한양에 오면서 변화를 감지하였을 터입니다."
개화 정책이 집중되는 한양은, 치도(治道) 정책으로 도로가 깔끔하게 정비되고, 각종 근대적 시설이 들어왔다.
"과연 그렇습니다. 10년 사이에 가히 강산이 변했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최익현은 개화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본질을 부정했다.
"서양의 기물은 과연 신묘하지요. 하오나 이에 취해서 조선의 정신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선은 미소를 풀고 정색했다.
"대체 그 조선의 정신이란 무엇입니까?"
"성학(聖學)을 익힌 이라면 모를 수가 없지요."
"내가 감히 말하자면, 시대를 초월하는 유교의 정신이란 바로 왕도정치를 구현하는 것입니다. 나 역시 왕도정치를 따릅니다. 그리고 왕도정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최익현은 이선의 왕도를 부정했다.
"왕도정치라 하셨습니까? 오랑캐의 패도를 그대로 따라 하는데, 어찌 그게 왕도일 수가 있겠습니까?"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른 방식을 취할 뿐이지요. 금세기의 왕도란 위로는 자주독립의 기치를 굳건히 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에게 법 앞의 평등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조정의 시책이 부국강병이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만백성을 군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패도 그 자체지요. 부국강병이 어찌 작금의 시대에만 있었겠습니까? 전국시대에도 부국강병은 있었습니다. 작금은 바야흐로 전국시대의 재현입니다."
최익현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진시황이 부국강병으로 6국을 멸하고 천하를 통일하였으나, 패도만 따르며 사대부와 백성을 억압하다 15년 만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어찌 진시황의 길을 따르려 하십니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김홍집이 얼굴을 붉혔다.
"최 공, 말씀이 지나치지 않습니까? 어찌 진시황에 비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유교적 관점에서 진시황은 백성을 괴롭히고 분서갱유를 단행한 전대미문의 폭군이었다.
하지만 이선은 개의치 않았다.
"과연 작금은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와 같지요. 그럼 사대부들은 조선이 진(秦)에게 멸망한 6국의 처지가 되길 원합니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6국이 멸망한 것은 진의 군사력만이 아닙니다. 6국 자체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6국이 진처럼 내부적으로 처절하게 개혁하고, 적의 침략에 맞서 단결하여 나라를 지키려 하였다면, 어찌 진이 6국을 멸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선은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은 7국 중에서도 가장 허약한 한(韓)과 같습니다. 만약 조선이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다면, 한처럼 강한 이웃 나라에 제일 먼저 멸망할 것입니다. 조선이 진은 되지 못하더라도, 한의 처지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한비(韓非)가 진으로 가서 유세하였던 것처럼, 대감께서도 청국과 아라사에 갔던 것입니까."
"외교는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소진(蘇秦), 장의(張儀)의 흉내든 못 내겠습니까."
이선은 법치의 원칙을 세우려 했던 한비자든, 세 치 혀로 천하를 종횡했다는 소진과 장의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따라 할 용의가 있었다.
"작금의 시대는 강한 나라가 거리낌 없이 약한 나라를 병탄하고 그 백성을 짓밟습니다. 안남을 보십시오. 중국의 도움에도 결국 법국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보호국의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종묘사직조차 지키기가 어려운 시대란 말입니다. "
이선은 냉정한 어조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지요. 서양은 조선보다 50년에서 100년은 앞서 있습니다. 우리가 10년 안에 그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조선은 파멸할 것입니다. 그러니 서양의 방법을 익혀 국권을 지켜내야 합니다."
"조선이 정신을 저버리고 서양과 똑같이 된다면, 그게 어찌 국권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육신은 그대로 남았을지라도, 정신은 서양의 노예가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조선이 걷는 길은 노예의 길입니다!"
이선은 최익현과 본질적인 세계관의 차이를 느꼈다. 성리학자인 최익현에게 중요한 건 형이상학적 세계였다. 존주대의(尊周大義)와 삼강오륜을 지키지 않는 조선은 이미 망한 나라였다.
이선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말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나는 임진년과 병자년의 치욕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묘(宣廟, 선조)와 인묘(仁廟, 인조)께서 어떤 수모와 치욕을 겪었는지, 후손 된 자로서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또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까? 나라가 힘이 약하면 그런 치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건 사대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익현이 침묵하자, 이선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부국강병을 이루어 외침을 막아 국권을 지켜내고, 더 나아가 임진년과 병자년의 치욕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선의 외침에 김홍집도 놀랐다. 이선이 청국이나 일본에 대해 우호적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옛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부국강병을 추진하는 건 오직 국가 방위에만 뜻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내후년이면 임진년입니다. 꼭 300년이 지났지요. 하지만 일본의 침략 본성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지요. 청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은 조선을 사이에 두고, 군비를 경쟁하며 전쟁을 벌이려 합니다. 이는 조선의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선은 감정에 호소하듯이 말했다.
"효묘(孝廟, 효종)께서 송 문정공(文正公, 송시열)에게 말씀하시길, 10만의 포군을 양성해 산해관을 넘어 북경으로 나아간다면, 천하가 격동하리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복수설치(復讎雪恥)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한스러웠겠습니까."
"이를 이룰 수 있다면, 실로 통쾌한 일이겠으나······."
최익현은 난망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효묘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문정공과 산림이 효묘의 북벌을 뒷받침하는 기반이 되었듯, 영감과 사대부들 또한 그리해 주십시오. 임진년과 병자년의 오랜 원한을 갚아, 종묘에 고할 수 있다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때까지 부국강병은 멈출 수가 없는 일입니다."
호서 노론을 계승한 최익현에게 송시열은 영원한 사표(師表)나 다름없었다. 최익현에게 송시열의 역할을 부탁한다는 말은 과분할 정도였다.
"대감의 깊은 뜻은 알겠습니다. 하오나 제가 감히 나설 일은 아닌 듯합니다."
"어찌 영감의 역할이 없겠습니까? 중추원에 들어와 주십시오. 영감은 천하의 공의를 몸소 대표하는 분, 중추원에서 국가의 진로를 함께 논했으면 합니다."
이선은 현재로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야당인 최익현과 위정척사파들을 체제 내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을 보였다.
물론 최익현은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이선이 생각하는 의회 기구로서의 중추원과, 최익현이 생각하는 사대부의 공론을 표명하는 중추원은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이 늙은이는 초야에 묻힌 지 오래입니다. 국상을 맞아 애도하고, 성상께 충언을 고하려고 하였을 뿐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중추원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천하의 공의를 실천하겠다는 본래 취지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감께서 도와주십시오."
최익현은 내심 놀랐다. 그가 생각했던 완화군은 구제 불능일 정도로 서양에 물 들은 패도의 길을 걷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가장 강경한 반대파의 의견도 경청하고 조정의 견제 기구 역할을 맡아 달라고 권하니, 비록 걷는 길은 다를지라도 큰 그릇을 가진 정치가라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감의 뜻은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오나 지금은 국상 기간이오니, 먼저 예를 다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 그리하십시오."
회동이 끝난 후, 최익현은 유생들과 함께 빈전에서 대왕대비에 대한 조문을 마쳤다.
그리고 상소문을 조정에 전달한 채, 따라온 이들을 자진 해산하여 충청도로 돌아갔다.
구심점인 최익현이 떠나니, 상경했던 유생들도 더는 한양에 머무를 명분이 없었다. 이들 또한 뿔뿔이 돌아갔다.
결국, 최익현은 중추원 의관직에 응하지 않았다. 최익현은 현재의 개화파 조정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조정이 민생의 측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도 없었다.
최익현은 정부 시책에 대해 비판적일지라도, 적어도 당분간은 침묵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드러내지 않을 것임을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위정척사파의 영수 최익현의 침묵은, 사대부 전체의 침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