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국빈 방문
1890년 10월,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대공은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극동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표트르 대제 이래 러시아 황제들은 황위 계승자 시절 외국을 순방하는 경험을 가졌다. 대개 서유럽을 순방했으나, 이번에는 특별했다.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향한 것이다.
그 목적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을 시베리아 횡단철도 동부 기공식에 황태자가 참석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러시아의 미래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에 있다."
황태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부설위원회의 명예 위원장이었고, 그 자신도 극동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니콜라이의 동생 유리 대공, 친척인 그리스의 요르요스 왕자 등 고위 귀족들이 동반하는 초호화 여행이었다.
아직 젊은 황태자와 황족들은 정치적 목적보다는, 처음 경험하는 이국적 풍물에 즐거워했다.
트리에스테를 출발한 순양함 아조프(Azov)는 지중해를 항해해, 이집트를 여행한 후 수에즈 운하를 지나 인도양으로 접어들었다. 황태자 일행은 인도 여행을 마치고, 믈라카 해협을 지나 1891년 3월 시암(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아시아 외교가 시작되었다. 시암 국왕 라마 5세(Rama V)는 적극적인 근대화 지지자였다. 서양식 제복을 입은 시암 국왕과 귀족들은 자국을 방문한 러시아 황태자를 극진히 환대했다.
동양 각국은 황태자의 방문을 '자국의 근대화 성과를 보이는' 자리로 여겼다. 동양 각국이 이 황태자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암을 떠난 황태자 일행은 홍콩에 도착했다. 황태자는 중국 해안을 올라가 상해와 남경을 방문해 차 농장과 공장을 방문했다.
시암에 비하면 청국은 황태자의 방문에 무덤덤했다. 근래 청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썩 좋지 못한 것도 있었지만, 여전히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중국인들에게 러시아 황태자의 방문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중국 일정을 마친 황태자 일행은, 실제 역사대로라면 일본 나가사키로 가야 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그 전에 가야 할 곳이 있었다.
"조선으로 간다."
1891년 봄, 조선은 국빈 방문 준비로 떠들썩했다. 개항 이래, 아니 어쩌면 조선 건국 이래 가장 지체 높은 외빈의 방문이었다.
이선과 니콜라이의 친분은 별개로 치더라도, 조선과 러시아의 관계가 부쩍 가까워진 상황에서 황위 계승자의 방문은 반가운 일이었다.
"이는 실로 국가의 경사이다. 조선은 아라사 황태자 전하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이다."
서양인과 의전행사를 좋아하는 임금도 기대하긴 매한가지였다.
"듣자 하니 시암도 아라사 황태자를 극진히 환대했다고 한다. 조선은 예(禮)의 나라이거늘, 어찌 그들만 못하겠는가? 모든 열과 성을 다해, 귀빈을 맞이하는 데 있어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예, 전하!"
어쩌면 임금은 자신의 권위를 드높이는 자리가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러시아는 미국과 더불어 조선을 청국 및 일본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유이(唯二)한 나라였다. 주조선 공사 베베르의 겸손하고 현명한 처신은 임금과 조정에 높은 점수를 받았고, 임금은 러시아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1888년, 러시아 황제의 사촌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극동 순방을 하며 조선을 방문한 적 있었다. 이때도 임금은 친히 연회를 베풀어 극진히 환대한 바 있었다.
이번 준비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사이 조선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1888년 이후 조선 조정은 교통과 각종 인프라의 향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인 철도가 부설되고, 한강에는 철교가 놓였다. 수도와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가 대거 정비되었다. 가로등이 한성부 곳곳에 설치되어 빛을 밝혔다.
황태자의 방한에 맞춰 전차(트램)가 한성부 내에서 운행을 시작했다. 동양 최초였다. 백성들은 철도에 이은 빠르고 진기한 운송 수단에 감탄했다.
한성부에는 서양식 건물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러시아 황태자의 방한을 앞두고 더욱 빠르게 올라갔다. 국빈을 맞이할 영빈관이 신축되고, 궁궐도 새롭게 단장하였다. 관병식을 할 넓은 공간도 마련되었다.
"이야, 진짜 높으신 분이 오기는 하는 모양이군. 도성이 싹 바뀐 것 같아."
"문자 그대로 칙사 대접이구만. 아니, 중국 칙사에게도 이런 대접은 한 적 없었네."
"모르는 소리. 아라사 황태자면 칙사 이상이야.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나라의 후계자라고."
"황태자도 우리 완화군 대감과도 절친한 사이라던데."
"흥! 서양 왕자에게 잘 보이려고 돈지랄을 하다니, 나라 꼴하고는."
"그 덕택에 전차도 타고 좋지 뭘 그래. 그만 툴툴거려."
여론은 분분했지만, 황태자의 방문이 도성의 일신(一新)에 상당한 기여를 한 건 사실이었다. 그동안 예산 부족으로 미뤄졌던 사업이 일거에 추진되어 완성되었던 것이다.
1891년, 개국 500년 4월 15일. 황태자 일행을 태운 순양함 아조프 호와, 이를 호위할 태평양 함대 소속 군함 5척이 인천항에 입항했다.
황태자 일행이 항구에 상륙하자, 서양식 제복 차림인 이선과 조선 대표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 조선 국왕 폐하의 명을 받들어, 조선의 관민은 러시아 제국 황태자 전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니콜라이 대공도 정중히 화답했다.
"러시아 제국 황제 폐하를 대리하여, 조선 국왕 폐하께 안부의 말씀을 전합니다.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열해 있던 근위대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조선 최초의 서양식 군악대였다. 웅장한 러시아 국가가 연주되었다. 러시아인들은 뜻밖의 환영에 감명을 받은 듯 기립 자세로 국가를 제창했다.
경인선 왕실 전용 특별열차가 대기 중이었다. 황태자 일행은 태극기와 로마노프 황가의 깃발이 전면에 교차로 걸려있는 특별열차를 보고 즐거워했다.
"벗이여, 그동안 잘 지냈나? 결국, 조선 땅에 오고 말았군."
"하하, 황태자 전하께서 오시길 기다린 지 오래일세."
경인선 특별열차 안에서, 이선과 니콜라이는 모처럼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환대받기로는 시암 이상이로군. 고맙네."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러시아에서 신세 진 것의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으면 좋겠네."
"별말씀을 다 하는군. 우리 황실도 자네 덕을 크게 봤는데."
특별열차는 1시간 30분 만에 인천과 한양을 주파했다. 한강철교를 지나 숭례문 한성역에 도착하자, 인파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라사 제국 만세!"
"황태자 전하 만세!"
역에는 태극기와 러시아 삼색기가 크게 걸려 있었고, 사람들도 두 나라의 작은 국기를 들고 환호성을 쏟아 냈다. 이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 저 사람들, 동원된 건가?"
니콜라이의 속삭임에 이선이 웃으면서 답했다.
"조선 국민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충심과 우의라고 생각해 주시게."
니콜라이는 만족스러워하며, 손을 흔들고 환영단과 악수를 하며 환대에 화답했다.
'······ 사실 동원한 거 맞지만.'
만에 하나 있을 불상사에 대비해, 보안과 경비를 철저히 했다. 근위대에서도 최고 정예이자 왕실 담당인 호위대(護衛隊)에서 특별히 뽑은 경호 인력들이 황태자와 완화군을 경호했다. 황태자의 지근거리에는 사전에 선발한 사람만 접근할 수 있었다.
꼭 동원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은 전반적으로 진귀한 구경거리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드문, 아니 처음 있는 국빈 방문에 사람들이 흥분해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 사회에서, 임금부터 조정, 백성에 이르기까지 거국적으로 국빈을 환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덕이었다.
서대문역에서 경운궁(慶運宮)까지는 전차가 다녔다. 각국 공사관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운궁이 외빈을 맞이하는 궁궐로 지정되었다. 황태자 일행은 왕실 전용 특별객차를 타고 순식간에 경운궁에 도착했다.
오후 4시, 황태자 일행은 영빈관으로 지정된 대관정(大觀亭)에 여장을 풀었다. 2시간 후, 황태자 일행은 가마를 타고 경운궁으로 들어섰다. 임금의 친견과 환영 만찬이 준비 중이었다.
경운궁 곳곳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 알현과 국서교환, 만찬 등 각종 의례에 걸맞게 준비되었다.
.이들은 조선의 전통 양식과 서양 양식이 혼재되어 있는 경운궁에 신비함을 느끼는 듯 했다.
"조선의 궁궐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이선의 말에 니콜라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낯설군. 동양의 궁궐에 온 건 처음이 아닌가. 시암에는 가 봤네만, 거기와는 완전히 달라."
"조선의 궁궐이 러시아와 비교하면 작기는 하지만,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지. 조선에 있는 동안 최대한 느끼고 갔으면 좋겠네."
"아아, 나도 우리 외교관과 군인들로부터 조선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네. 시간만 넉넉하면 조선의 산야를 구경해보고 싶지만, 아쉽게 됐군."
황태자 일행은 일본을 방문한 뒤에 블라디보스토크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공식에 참여해야 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조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네. 기대하라고."
"하하, 기대하지."
먼저 경운궁 정관헌(靜觀軒)에서 알현이 있었다. 정관헌은 외교사절단을 맞아 연회를 여는 등의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된 전각이었다. 동서양의 양식을 모두 갖춘 정관헌은 화려하고 이색적이었다.
40세의 장년기에 접어든 임금은 곤룡포와 익선관을 쓰고 점잖이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서양 대례복을 입은 고위 문무관이 도열해 있었다. 황태자의 방문 직전, 대대적인 복제 개정이 있었다. 외교 의전 때는 서양식 대례복(大禮服)을 입는 게 필수가 되었다. 반발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아라사 황태자 전하 입시옵니다!"
니콜라이 황태자가 정관헌에 들어서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임금은 뜻밖의 행동을 보였다.
옥좌에서 일어나 황태자에게 먼저 악수를 청한 것이다.
의전으로 예정되지 않은 행동이었다. 조정 신료들은 모두 놀랐다. 왕이 직접 악수를 청하다니, 지금까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짐의 좋은 형제이신 아라사 황태자 전하, 조선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이오."
이선이 빠르게 통역하자, 니콜라이가 정중히 목례를 하며 손을 맞잡았다.
"국왕 폐하께옵서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임금은 크게 웃으면서 힘차게 악수를 했다.
임금의 적극적인 태도에 놀라긴 이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군주가 외국 왕족과 대등하게 서서 악수를 한 건 처음이었다.
"내가 듣기로 서양의 군주들은 외국 사절을 맞이할 때 이렇게 한다더군. 맞소?"
임금의 물음에 이선이 답했다.
"실로 정확하십니다."
"서양에 파견한 공사들에게서 들은 바가 있었지. 나 또한 그들의 방식으로 환대한 것이니, 경들은 괘념치 마시오."
"황공하옵니다."
"아라사 제국 황제 폐하의 만수무강과 양국의 우호가 만대에 이르길 기원하며, 건배합시다."
임금이 먼저 선창을 하니, 모두 잔을 높이 들어 건배하였다. 이 또한 서양식 의전이었다.
임금은 전통적인 동양의 군주상을 벗어나, 새로운 군주 역할이 만족스러운 듯했다.
만찬은 4시간에 걸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니콜라이 대공과 러시아 대표단은 국왕과 왕자가 친히, 스스럼없이 환대해 주는 것에 기뻐했다.
환대는 방문 기간 내내 지속하였다. 다음 날, 황태자 일행의 창덕궁 방문이 이루어졌다. 결코, 이전까지는 외국인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창덕궁 후원이 황태자 일행에게 특별히 공개되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이게 바로 동양의 미로군."
황태자 일행은 후원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러시아 황궁의 웅장함과 화려함과는 비견할 수 없지만, 조선 특유의 자연에 대한 조화가 잘 이루어진 후원은 이들에게 특별한 만족을 주었다.
"외국인에게 창덕궁 후원을 공개하다니, 이건 정말 전례가 없는 일이네."
"정말 고맙네. 근데 우리 역시 자네에게 겨울궁전의 비공개된 황실 공간을 공개한 바 있었지."
이선과 니콜라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하하, 이제 서로 정말 감출 것이 없구만."
그날 저녁에는 대관정에서 황태자가 주최하는 만찬이 열렸고, 이선과 왕족들이 참석했다. 각국 외교관과 조선 거주 서양인들도 초대받았다.
"이선 공은 나의 오랜 벗이자, 우리 로마노프 황실의 벗이기도 합니다. 벗의 나라 조선에 올 수 있어서 정말 기쁩니다."
이 자리에서 니콜라이는 자신이 이선과 특별한 관계임을 역설했다. 이는 각국 외교관에게 확연히 각인되었다.
'이선과 니콜라이, 아니 조선과 러시아의 특수한 관계를 보여주는 거지. 특히 청국과 일본에.'
이선과 조선 조정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황태자 국빈 방문을 기념하는 건, 결코 단순히 환대하거나 권위를 빛내거나 목적이 아니었다.
이는 일종의 시위였다. 주변국에 조선과 러시아의 특수한 관계를 보여주어, 도발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다.
여전히 상국임을 주장하며 조선과 갈등을 빚는 청국과, 특히 최근에 무역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에 똑똑히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자, 시작해볼까.'
이선은 본격적인 인아거일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