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61화 (161/812)

160화 오쓰 사건

전날 밤. 이선은 고민에 빠졌다.

'역사가 바뀌었는데, 실제대로 암살 기도가 이루어질까?'

니콜라이의 방일 당시, 경비를 맡은 일본 순사 쓰다 산조(津田三藏)가 황태자를 향해 칼을 휘두르는 암살 기도가 발생한다. 이른바 '오쓰 사건(大津事件)'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미 상당히 바뀌었고, 니콜라이의 방일은 그대로이지만 일정이 변경되었다. 암살 기도가 그대로 진행되리라는 법이 없었다.

'······ 그래도 시도가 있지 않을까.'

알렉산드르 2세의 암살을 막아 운명을 바꾼 이선은, 이번에도 같은 기회가 오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그럴 목적으로 일본행에 합류한 것이었다.

니콜라이는 이미 이선을 형제처럼 신뢰했지만, 일본에 대한 관점은 달랐다. 하지만 일본인의 암살 기도를 이선이 저지하고, 이를 일본의 침략성과 연결 짓는다면 역사는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

'이미 필요한 논리와 근거도 확보해 두었지.'

이선은 품속에 넣은 리볼버를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그동안 이선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를 익혀 두었다. 호위대 장무영에게서 검술과 격투술을 배웠으나, 실전에서 쓰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대신 사격술은 충분히 익혀둔 터였다. 군사고문관들도 왕자의 사격 실력이 썩 괜찮다고 평가했다.

'진짜로 올 것인가?'

오쓰를 지나가는 순간, 이선의 신경은 극도로 곤두서 있었다.

쉬익!

암살자의 칼날이 황태자를 덮쳤다. 니콜라이가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인 덕에, 칼은 모자를 베고 오른쪽 귀 위의 뒷머리를 베었다.

"으윽!"

피가 솟구쳤지만, 치명타는 아니었다. 니콜라이는 신속히 인력거에서 뛰어내려 골목으로 뛰었다. 암살자는 2차 공격을 준비했다.

타앙!

그때, 총성과 함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악!"

인력거에서 뛰어내린 이선이 권총을 쏴 암살자의 오른팔을 명중시켰다. 암살자는 칼을 떨어트리고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이선이 아무리 집중을 했다지만 인력거에 앉아있어, 불시간에 이루어진 암살 기도 자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누구보다 빨리 암살자에게 반격을 가한 것이다.

"어딜 감히!"

황태자의 바로 뒤 인력거에 타고 있는 요르요스 왕자도 재빨리 반응했다. 그는 경호용으로 산 지팡이 칼을 빼 들어 암살자의 등을 베었다.

"이놈!"

니콜라이와 요르요스가 타던 인력거의 마부들도 암살자를 덮쳐 꼼짝 못 하게 제압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암살 기도는 실패로 끝이 났다.

황태자는 머리에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니콜라이는 침착하게 손수건으로 흐르는 피를 닦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평안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괜찮소."

아무리 황태자가 괜찮다고 하지만,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이 괜찮을 리 없었다.

"황태자 전하!"

"어서 전하를 모셔라!"

러시아 황태자 암살 미수 사건. 교토 인근의 작은 마을, 오쓰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관리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일제히 황태자에게 절하며 용서를 빌었다.

황태자의 수행을 맡은 다케히토 친왕도 경악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책임범위를 넘어섰다는 걸 깨달았다. 다케히토는 즉시 도쿄로 전문을 보냈다.

"러시아 황태자 전하 암살 미수!"

전문을 받은 도쿄는 발칵 뒤집혔다. 즉각 어전회의가 소집되었다. 메이지 천황의 명의로, 통석의 뜻을 표하는 칙어를 반포했다.

정부는 황족인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北白川宮能久親王)을 급히 위문단으로 보냈는데, 메이지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직접 교토로 가서 황태자를 위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 총리 이토 히로부미, 내무대신 사이고 쓰구미치, 외무대신 아오키 슈조 등 정부의 고관들도 총동원되었다.

황태자는 즉시 황실 주치의의 치료를 받았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아, 나는 정말로 괜찮소."

니콜라이는 대범하게 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건재함을 뽐냈다. 하지만 생명에 지장이 없다뿐이지 상처가 작진 않았다.

의사는 즉각 봉합 수술에 들어갔다.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니콜라이의 부상은 다음과 같았다.

9센티미터 길이의 후두부 상처. 피부를 넘어 뼈까지 관통하고 오른쪽 정수리에 닿았다. 만약 칼이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갔다면 의사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흉터는 평생 남겠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의사는 신속히 봉합 수술을 했다.

"정말 고맙네! 선, 게오르기(요르요스). 자네들이 내 목숨을 구했어.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머리에 붕대를 둘둘 만 니콜라이는 이선과 요르요스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조선 왕자와 그리스 왕자가 러시아 황태자를 구한 것이었다.

"나보다는 이선 공에게 감사하게. 공작이 리볼버를 쏘지 않았으면 암살자를 제압할 수도 없었을 거야."

요르요스는 공을 이선에게 돌렸다. 그 말대로 이선이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더라면, 암살자는 두 번째 공격을 가해 황태자를 암살하는 데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나 한 사람의 공이 아니라 하늘이 로마노프 황가와 황태자 전하를 보우하신 덕이지요."

이선의 겸손한 말에 니콜라이가 감격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신께서 로마노프 황가를 돕기 위해 보낸 사람이 틀림없네! 10년 전에는 할아버님을 암살로부터 구했는데, 이번에는 나를 구해 주었군."

꼭 10년의 시차를 두고, 이선은 알렉산드르 2세에 이어 훗날의 니콜라이 2세를 구하게 된 것이다. 원래 신비주의적 경향이 있었던 니콜라이는, 신의 섭리와도 같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황공한 말씀입니다."

이선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니콜라이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맹세하건대, 내 생명이 존재하는 한, 러시아 제국이 건재하는 한, 이선 공의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오. 전 러시아가 그대의 공적을 잊지 않을 것이오."

이선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겸손하게 답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기쁩니다. 저로 인하여 조선과 러시아 간에 우호가 영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물론, 공작을 보낸 조선의 은혜도 절대 잊지 않겠소."

전제군주국인 러시아의 황위 계승자가 하는 말은 무게감이 달랐다.

황태자의 대범한 태도와 달리, 일본인들은 전전긍긍했다. 황태자에 대한 암살 기도는 러시아가 격분할 사유였다. 러시아가 일본에 어떤 대가를 요구할 것인지, 심지어 전쟁을 선포하는 건 아닌지 공황 속에 빠졌다.

사건 다음 날 저녁, 메이지 천황을 태운 특별열차가 교토에 도착했다. 천황은 직접 황태자를 위문하길 청했으나, 러시아 공사는 밤이 늦었다며 정중히 사양했다.

"그럼 황실 의료진이라도 보내 드리고 싶소."

"폐하의 호의는 감사하오나 이 역시 사양하겠습니다. 붕대를 다시 풀기도 번거롭고, 황태자 전하께서는 낯선 의사의 진찰을 원치 않습니다."

천황은 하릴없이 다음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사이 황태자의 호텔에서는 암살 사건에 관해 논쟁이 있었다.

"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서는 황태자 전하의 무사함을 신께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두 분께 걱정을 끼쳐드려서 송구할 따름이군."

"암살자는 경찰이라고 합니다. 일본 경찰이 감히 황태자 전하를 암살하려 하다니, 용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면밀히 조사하여 배후를 밝혀야 합니다."

청년 장교들의 분노에, 오히려 황태자가 담담했다.

"글쎄, 배후라고? 그저 미친놈일 뿐인 것 아닌가? 나는 오히려 사건 이후 최선을 다해 사과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감명을 받았네만······."

이선은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다.

"전하께서는 참으로 관대하지만,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암살자는 명백히 일본의 공무원, 그것도 경찰입니다. 배후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최소한 일본 정부의 과격한 대외 팽창론에 영향을 받은 건 틀림없을 겁니다. 작년의 러시아 공사관 습격과 연결되는 일련의 반러시아 책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하게 조사를 해야 합니다."

이선은 범인 쓰다 산조가 미치광이 단독범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과 배후를 암시했다. 러시아 공사 셰비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공사관을 습격한 자들은 관대한 처분을 받았지요. 일본 일각에 러시아에 적대적인 여론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저는 황태자 전하의 안전에 온 힘을 다해 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하였습니다. 만에 하나 위해가 발생할 시 책임져야 한다고 분명히 경고했지요."

니콜라이는 이선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알겠소. 일단 조사를 할 필요는 있겠군. 그래도 내일 일본 천황이 친히 방문한다고 하니, 정중히 맞이하도록 합시다."

5월 1일 아침. 황태자가 머무는 호텔에 메이지 천황과 정부 고관들이 찾아왔다.

"황태자 전하, 짐은 일본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에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전하의 양친이신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도 짐의 통석한 마음을 전해주었으면 합니다."

통역관은 천황의 고풍스러운 황실 용어를 최대한 뜻이 와닿게 번역했다.

"감사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일본의 개항 이래, 외국인 혐오와 습격 사건은 늘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신'을 표방하는 천황이 외국인을 직접 찾아와 사과를 표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일본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다는 우려의 표현이었다.

"아, 짐의 백성 중에 그토록 흉악한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소. 이는 모두 짐의 불찰이며, 흉악범을 엄히 처벌하겠습니다."

"한 미치광이 때문에 가벼운 부상을 당하긴 했으나, 그저 불운한 일일 뿐이지요. 일본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폐하와 일본 국민의 후의를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황태자의 대범한 답에 천황이 감사를 표했다.

"전하의 아량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짐과 일본 정부, 모든 신민은 전하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합니다. 회복하면 예정대로 도쿄로 와주십시오. 짐이 직접 황거로 초대해 전하를 영접하겠습니다."

"폐하의 후의는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나, 도쿄를 방문해도 되는지는 본국에서 결정할 일입니다."

"그럼 귀국 정부의 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정양하십시오."

면회를 마친 메이지는, 한쪽에 서 있는 이선과 요르요스 왕자를 찾아갔다.

이선이 '만세일계'의 천황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빙사를 가는 길에 일본에 들렀지만, 천황을 알현하라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거절한 바 있었다.

'살아있는 신으로 떠받들어지는 사람치곤, 의외로 평범하군.'

"경들이 흉악범으로부터 황태자 전하를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을 대신해, 짐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천황은 요르요스에 이어 이선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선은 악수를 받으면서 묘한 기분이었다. 일본 천황으로부터 감사를 받으리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황공하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완화군은 조선 대군주 폐하의 장남이라지요. 국가의 중대사를 전담한다고 들었소."

"그렇습니다."

"일본과 조선은 실로 중요한 이웃 나라입니다. 짐은 만대에 걸쳐 양국의 우호가 영원하길 바랍니다."

천황의 외교적인 언사에 이선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나도 그러고 싶지만, 폐하 휘하의 신하들이 조선을 노리고 있으니 그럴 수가 없군요.'

이선도 물론 외교적인 언사로 답했다.

"폐하의 우의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대군주 폐하께 그리 전해드리겠습니다."

천황은 고개를 끄덕이고, 이선과 다시 악수를 하고 떠났다.

러시아 본국의 답변이 왔다. 황태자는 즉시 교토를 떠나 고베의 러시아 군함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일본 체류를 끝내라는 뜻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메이지는 당황했다. 즉시 이토 히로부미를 호텔로 보냈다.

"황공하오나 천황 폐하께옵서는, 황태자 전하께서 좀 더 일본에서 머무르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황태자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황후께서 너무나 걱정하고 계십니다. 황태자께서 즉시 러시아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셰비치 공사가 답한 뒤, 재차 요청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부득이하게 고베로 돌아가지만, 안전에 대한 염려가 남아있습니다. 황태자 전하의 안전을 위해 천황 폐하께서 고베까지 함께 가실 수 있겠습니까?"

이토는 즉시 받아들였다.

"천황 폐하께서는 자식을 아끼는 어버이의 마음으로 기꺼이 허락하실 겁니다. 그리고 안전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최상의 경호를······."

이때 이선이 나섰다.

"바로 그 경호를 맡은 경찰이 황태자를 습격한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만약 제가 재빨리 대응하지 않았더라면, 전하께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이토는 당혹스러워했다.

"그저 송구할 따름입니다. 저희를 대신해 황태자 전하를 구해 주신 완화군께 감사드립니다. 경호 책임자를 처벌하고, 폭거를 저지른 자는 극형에 처하겠습니다."

다름 아닌 이토 히로부미의 감사를 받았지만, 이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경찰은 정부 기관에 속합니다. 단독범이 아닐 겁니다. 배후를 똑똑히 밝혀내야 합니다."

니콜라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그자가 대체 왜 나를 노렸는지 알고 싶소. 수사 결과를 러시아에 공유해 주길 바랍니다."

"러시아 외교관을 수사에 참관시켜도 되겠습니까? 그래야 명백하지 않겠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었지만, 러시아에 대해 공포를 품고 있는 일본이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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