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인내천(人乃天)
전라북도 향회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에 온 전봉준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향회 의원이 지주와 사대부 계층을 대변한다는 데 실망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열을 올렸다.
"경장 이후 신분제가 폐지되고,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이 이뤄졌습니다. 절대다수의 인구인 농민이 바로 국민입니다. 향회는 농민을 대변해야 합니다."
농민을 대변해 급진적인 목소리를 내는 전봉준은, 개화 성향의 향회 의원들에게도 따돌림을 받았다. 하지만 전봉준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향회 의원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없었고, 오히려 상류층의 사교 모임에 가까웠다. 지역을 대표해 한양으로 간 중추원 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차에, 이선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내가 전국을 시찰하는 건 개화의 성과를 확인하기도 위함이지만, 지방의 목소리, 아래로부터의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도성에서 온 왕족인 내게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군요. 나는 진정한 농민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선생이 기탄없이 의견을 말해주었으면 합니다."
전봉준은 놀랐다. 보통 '높으신 분'일수록 고언(苦言)을 듣기 싫어했다.
전봉준이 농촌의 현실을 말하고 비판을 해도, 경청해야할 전라북도 관찰사와 관료들은 듣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대감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그럼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전봉준은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중앙 관료를 만났다는 게 기뻤다. 더욱이 그는 최고 권력자인 왕자였다.
"전라도는 비옥한 곡창지대입니다. 탐관오리의 학정만 없으면 농민들이 넉넉한 삶을 살고도 남지요. 농민들에게 늘 최대의 걱정은 탐관오리였습니다. 임오년에 국태공께서 재집정을 하시고, 전국적으로 탐관들이 쓸려나갔지요.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각종 잡세가 폐지되고, 세금도 결세와 호구세로 통일된 덕에 농민의 부담도 크게 줄었습니다. 조정에서 지주들에게 소작료를 제한한 조치 덕에, 소작농의 처지도 개선됐지요. 교육을 실시한 덕에 농민의 자식들도 글을 깨치고 출세에 대한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는 분명 개화의 성과입니다."
전봉준은 개화의 빛에 찬사를 보낸 뒤,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농민의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토지세는 매년 증가하고, 농민이 갖는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지주들은 머리를 잘 굴려서, 상업 지주로 성공하는 자들이 많지요. 농사만 짓는 농민들은 그러기가 힘듭니다. 지주가 법으로 금지된 소작료를 인상하지 않는 대신, 소작농에게 세금을 전가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소작농이 소작을 떼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요."
막대한 근대화의 비용을 농민이 부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근대화 정책에 필요한 자금은 관세와 대외무역만으로 어림도 없었다.
인구 대부분이 농민인 이상, 토지세와 인두세가 최대의 재원이었다. 정부의 재정 지출이 늘어날수록, 토지세와 인두세는 매년 증가했다.
"조세금납화가 되면서 농민들은 쌀을 팔아 세금을 납부합니다. 하지만 시세 변동이 심하고, 미곡 상인들이 장난을 치는 경우가 많지요. 농민들은 당하기 일쑤입니다. 농촌에서도 개화 바람이 불면서, 개항장에서 물건이 들어옵니다. 쌀을 팔아 영국산 면직물을 사는 구조지요. 대개 상인은 이득을 보지만 농민은 손해를 봅니다."
"으음."
"국민교육과 국민개병이, 만백성이 평등하게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려는 목적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농촌계몽운동에 종사했지만, 아직 농민들은 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달 내야하는 사글세 부담이 있으니 탐탁지 않아 합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많은 벌금을 내야 하니 억지로 보내는 거지요. 그래도 교육은 괜찮습니다. 이건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징병입니다."
전봉준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평등하게 군역을 지게 하려는 본래 취지와 달리, 가난한 농민들만이 징집되고 있습니다. 양반 지주들은 국방세를 내서 합법적으로 면제를 받든지, 이를 내지 못하는 자들은 대인(代人)을 씁니다. 양반 자제가 징병 대상자로 뽑히면, 빈농 자제에게 돈을 주고 대신 보내는 식이지요. 농민 인구가 많은 전라도는 특히 그런 경향이 심합니다. 물론, 빈농들 중에선 군역을 가는 걸 좋게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국가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멋들어진 군복도 입혀준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농민들 입장에서는 중요한 일손을 2년간 상실하는 셈입니다. 이래서야 국민개병이 아니라 빈민개병이지 않습니까?"
근대화를 밀어붙인 당사자인 이선은, 처음으로 농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전봉준이 한 비판은 상당부분 이선도 짐작하던 바였다. 하지만 시급한 근대화의 필요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은 무시하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개화파 관료들은 훨씬 무자비했다. 개화당이 기존 지배층에 비하면 평등사상을 공유했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관존민비(官尊民卑)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위에서 근대화를 추진하면, 아래에서는 군말 없이 따라와야 했다. 따르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반동이거나 반역적인 '비국민'이었다.
이선이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키자, 전봉준이 고개를 숙였다.
"제가 조정 시책에 너무 비난만 하여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동안 이런 문제점을 중앙에 전달할 기회가 없다보니, 대감께 직소(直訴)하게 되었습니다."
"으음. 뼈아픈 지적이군요."
"제가 나쁜 점만 말했다지만, 경장 이후 농촌의 삶이 훨씬 좋아진 건 틀림없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좋습니다. 탐관오리의 학대를 받지 않고, 지주의 횡포도 줄어들었으니까요. 백성들 입장에선 임금님과 조정이 처음으로 그들의 편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대한 백성의 충성심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그러니 조정에서 부담하는 조세와 징병 부담도 감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봉준은 거듭 고개를 숙였다.
"다만 조정에서도, 농민의 어려운 처지를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진정 만백성이 평등한 나라를 만들어주십시오. 진정한 대동(大同)의 세상이 오게 해주십시오."
이선은 순간 머리에서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전 공, 혹시 동학을 믿습니까?"
순간 전봉준의 눈매가 흔들렸다.
"아니, 믿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조정이 종교의 자유를 승인한지 오래 됐으니까."
"저는 입교하지 않았습니다만, 전라도 농민들 중에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사의 변화로 인해, 전봉준은 동학에 입교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전봉준은 동학의 교리 그 자체보다, 사회변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동학 조직에 들어간 것이었다.
다른 방식으로 변화가 가능하리라 체감하게 된 전봉준은 굳이 동학에 입교하지는 않았으나, 삼남 농민 상당수가 동학을 믿고 있으니 '농민의 대변자'인 전봉준도 자연히 동학에 익숙하게 되었다. 전봉준은 동학을 대변하는 역할도 했다.
"교조신원을 허락한 덕에, 동학 교단은 조정에 충성을 바치겠다는 입장을 보냈습니다. 동학을 믿는 농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종교의 자유를 얻은 후, 동학 교단은 처형된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회복에 심혈을 기울였다. 여전히 최제우를 사교(邪敎) 우두머리로 인식하고 있는 조정은 사면에 부정적이었다. 특히 지방 사대부들은 기독교보다 동학을 더 싫어할 정도였다.
동학교도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청원을 보냈다.
"동학의 도는 결코 삿된 가르침이 아니며, 오히려 임금께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라 가르칩니다. 교조의 신원을 회복해주시면, 우리는 더욱 충군애국할 것입니다."
종교문제에 극히 유연한 이선은 동학을 이용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개국 500주년을 기념하여 대규모 사면이 있을 때, 최제우도 사면과 신원회복을 받을 수 있었다.
동학 교단은 크게 기뻐했고, 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은 조정에 감사와 충성의 뜻을 보냈다.
'동학 교단과 북접은 걱정할게 없다. 이들은 종교의 자유와 교조신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문제는 동학을 사회변혁의 수단으로 여겼던 사람들이지. 농민전쟁을 이끈 남접의 전봉준이나 김개남, 손화중 같은.'
이선은 바로 그 전봉준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동학을 믿는 농민들은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이 한마디에 이끌려 들어온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후천개벽(後天開闢), 어두운 선천세계가 끝나고 후천의 밝은 문명세계가 돌아온다는 걸 믿지요."
"이들이 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인내천과 후천개벽과는 좀 다르지만, 조정은 사회개혁을 위해 노력합니다. 모든 국민은 평등하며, 문명개화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려 하지요."
"그게 농민들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못하는 말입니다. 동학을 믿는 농민들이, 개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서양과 서학에 대해서도 적대적이고요. 하오나······."
전봉준은 이선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정이 백성에게 평등과 변혁을 약속하는데, 어찌 그 약속을 믿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은 순진합니다. 나라를 믿습니다. 비록 불만은 있다 하여도, 조정의 시정방침에 저항하진 않을 겁니다."
이선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농민반란을 조직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집단은 현재의 조선에서 동학밖에 없다. 그들이 조정에 협력한다면, 적어도 적이 될 일은 없겠구나.'
그는 문명개화를 꿈꿨던 개화파와, 후천개벽을 꿈꿨던 동학이 연합하지 못하고 피로써 적대해야 했던 실제 역사가 안타까웠다. 비록 길은 크게 달랐지만, 조선을 변혁하고자 했던 방향성 자체는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변혁의 에너지가 외세에게 이용당해 서로 싸워야했던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선은 정권을 잡은 후에, 위로부터의 근대화와 아래로부터의 반봉건이 적대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변혁의 에너지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격렬히 충돌한다면, 내전이라는 형태로 나타날까 우려했다.
하지만 그런 비극이 재현되지 않는다면, 이선으로서는 감사할 일이었다.
"나는 진정한 일군만민, 만민평등의 세상을 지향합니다. 지금은 과도기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문명개화가 완성된다면, 진정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한 국민국가가 이뤄지리라 생각합니다."
전봉준이 도성에서 온 왕족에게 감히 비판을 거침없이 한 것처럼, 이선 역시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밝혔다.
이선이 놀란 만큼이나, 전봉준도 놀랐다.
'왕의 장자이자 국태공의 장손, 조정의 고관이자 개화 정책을 이끄는 실세가 이토록 백성을 아끼다니.'
신분제가 폐기되었는데도, 중앙에서 온 관리나 지방 양반들조차 거들먹거리며 백성들을 천대했다. 전봉준의 고언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가장 고귀한 왕족인 완화군은 백성의 삶을 고심하고 평등을 위해 노력했다. 전봉준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군 대감께서 반드시 해내시리라 믿습니다."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요. 말이 나온 김에, 나와 함께 한양에서 일해 볼 생각은 없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뜻밖의 제안에 전봉준은 반문했다.
"전국의 양안이 끝나는 대로, 조정과 중추원에서 토지개혁 여부를 논의하려고 합니다."
이선은 토지개혁을 암시했다. 양전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기도 했거니와, 조정은 토지개혁의 파급을 고려하여 그 시기를 늦추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토지개혁을 지주 중심으로 해야 할지, 자영농 중심으로 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했다.
"근데 조정과 중추원에서는 농민 대표가 없으니까, 모든 게 지주의 뜻대로 될까봐 우려가 됩니다. 마침 내년에 중추원 선거가 있습니다. 전 공이 농민대표로 들어와 토지개혁을 심의해줬으면 하는데."
전봉준은 조정에서 토지개혁을 구상하는데 놀랐고, 더욱이 농민에게 유리한 개혁을 위해 농민대표를 선출하려는 데 더욱 놀랐다.
"저는 본래 전라도 고부 사람이고, 농민 출신입니다. 지금껏 제 고향 농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왔습니다."
전봉준은 결심했다.
"하지만 조선 전국의 농민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민심은 곧 천심입니다. 나는 아래로부터의 목소리, 농민의 목소리도 듣고 싶습니다. 전 공이 도성에서 그 역할을 맡아주십시오."
전봉준이 감격하여 고개를 조아렸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동지입니다. 함께 같은 길을 걸읍시다."
이선은 전봉준의 손을 맞잡으며 악수했다. 문명개화와 후천개벽이, 위로부터의 근대화와 아래로부터의 반봉건이 합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