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175화 (175/812)

175화 역린

대군주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자, 대신들도 한발 물러섰다.

"성상께서 저토록 강하게 거부하시는 건 전례가 없었소."

"헌법 반포와 의회 개설까지 6년이란 시간을 보냈음에도, 이렇게 반대하실 줄은······."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를 반대하시는 게지요."

내각의 대신들 중에서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은 '군민공치'의 이상 자체에 동의하면서도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은 시기상조라고 여겼다.

급진파인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유길준은 서구식 정치체제를 최선으로 여겼고, 조속히 입헌 정치가 시행되기를 원했다.

"군주께서 반대하는데, 계속 강행하는 건 신하 된 자의 도리가 아닐 것이오. 이 문제는 보류하도록 합시다."

급진파의 의견이 다수를 점했으므로, 총리 김홍집이 다수의 의견을 수렴해 헌정(憲政)을 건의했다. 하지만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그로선 군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할 생각이 없었다.

결국, 헌법 제정과 의회 개설 계획은 보류되었다. 하지만 여파는 끝나지 않았다.

임금은 이선을 편전으로 불러들였다.

"군무대신 입시옵니다."

"신 군무대신 이선, 성상의 부름을 받잡아······."

이선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임금이 주위 사람을 물렸다.

"완화군을 제외하고 모두 편전 밖으로 나가라."

임금이 독대를 원하는 것을 보고, 이선은 한바탕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했다.

"경도 알고 있겠지만, 오늘 내각의 대신들이 헌법 반포와 의회 개설을 건의했다."

"예, 폐하.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이선은 군부의 급한 일을 살피느라 헌정을 건의하는 대신의 행렬에 끼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찬성했던 사안이었다.

"군주의 권리는 신성한 것이거늘, 어찌 군민공치라는 미명 아래 일개 백성과 권력을 나누려 한단 말인가!"

"세계의 대세가 민권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권리를 얻은 국민은 더욱 국가에 충성할 것입니다. 또한, 군주국의 헌법은 군주가 내리는 흠정헌법(欽定憲法)이니, 군주의 권위는 더욱 드높아지는······."

임금이 이선의 말을 끊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반대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는 나의 장자이며, 왕족이 아닌가! 신하가 군주의 권한을 빼앗으려 하는데, 왕자가 이를 지켜만 볼 생각인가?"

이선은 정중한 어조로 답했다.

"신은 분명 폐하의 장자이며 왕족의 일원입니다. 신이 폐하께 충성하려 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 내가 너의 충심을 의심치 않았기에, 지난 10년간 너의 뜻을 존중하였다. 신하가 군주의 권위를 능멸하는 상황에 직면해서도 나는 참았다. 임오년의 군란을 불러일으킨 내 책임이 무겁기도 했거니와 개화의 일이 시급하다는 너의 충언을 믿었기 때문이다. 시급한 일이 마무리되고, 때가 되면 군주로서의 전권을 행사하리라 믿었다."

군주가 신하를 대하는 말이 아니라, 부친이 자식에게 호소하는 어조였다.

"그런데 오히려 군주의 권한을 빼앗아, 소위 입헌군주정을 하려 한단 말인가? 나의 치세가 어느덧 30년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중에서 친정을 한 시기가 몇 년인 줄 아느냐? 1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나더러 대체 언제까지 허수아비 노릇만 하라는 것인가!"

참고 참았던 임금의 불만은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이선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폐하! 신은 오직 국가, 국왕, 국민에 충성을 다하고자 합니다. 국가에 이득이 된다면 어떠한 일도 할 것이요, 해가 된다면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선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신의 나이가 어느덧 스물일곱입니다. 이미 10년 전에는 혼례를 올렸어야 할 나이지요. 성상께서, 중전께서, 숙원께서, 국태공께서, 돌아가신 신정왕후께옵서 모두 혼례를 권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껏 혼례를 치르지 않았겠습니까?"

이선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임금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네가 무슨 생각인지 궁금하다."

"신도 사람인데, 어찌 가정을 두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런데도 혼례를 하지 않고 후계를 두지 않으려 하는 건, 신이 왕족이자 대신으로서 막중한 권한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명문가의 여식과 결혼하여 후계를 둔다면, 혹여 성상과 동궁의 지위를 노린다는 세간의 우려를 확산시킬까 걱정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신은 혼례도 하지 않고, 외척도 두지 않는 것입니다."

이선이 든든한 처가와 후계를 두게 되면, 군주와 태자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으니 스스로 포기했다는 말은 임금이 듣기에 갸륵했다.

"너의 충심이 갸륵하다. 네 깊은 뜻을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했구나."

"황공하옵니다. 신이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혼례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왕족이라면 마땅히 권리보다 의무를 먼저 행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이 저 자신의 행복보다 국가의 행복을 추구하는 건 오히려 왕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선은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상기시켰다.

"신의 충성 대상은 물론 군주이십니다. 동시에 국가와 국민도 신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국가와 국가의 법인 헌법은 왕실보다 상위에 있어야 합니다."

"너의 말이 괴이하다. 군주가 곧 국가가 아닌가?"

"군주, 정부, 국민이 국가를 함께 이루는 것이라 각합니다. 국가를 통치해야할 정부는 군주를 높이 받들며, 국민의 총의(總意)를 대변해야 합니다."

임금은 타협할 수 없는 평행선을 느꼈다.

"그러니 나는 영국처럼 통치는 하지 않고 군림만 하라 이건가? 국가의 정령이 왕명이 아니라 헌법에서 비롯된다면 나는 문자 그대로 허수아비군."

"국가의 통치권과 육·해군의 통수권이 군주께 있는데, 어찌 그런 황공한 말씀을 하십니까."

"오백 년 전제의 나라에서 군민공치를 한다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폐하. 세계를 둘러보건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왕실은 무너질 것이나 뼈를 깎는 자기 혁신으로 스스로 개혁하는 왕실과 사직은 만대에 이를 것입니다. 이는 국권과 사직을 보존하기 위한 고육지책입니다."

이선은 역사에서 1910년에 국가와 왕실이 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운명을 피하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통치하지 않는 군주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차라리 미국이나 법국처럼 민주 공화정을 실시하는 게 어떤가?"

임금의 비아냥거림에도, 이선은 꿋꿋이 답했다.

"헌법과 의회가 있어도, 조선의 정부와 국민은 군주께 더욱 충성할 것입니다."

임금은 마침내 역정을 냈다.

"됐다! 내 경과 더 이상 무슨 논의를 하겠는가? 원하는 대로 계속 도장이나 찍어줄 터이니 마음대로 하라!"

이선은 임금을 다시금 설득하려 했으나 임금은 그저 물러나라고 할 뿐이었다. 이선은 한숨을 쉬며, 편전에서 물러났다.

홀로 남은 임금은 노여움을 느꼈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어찌 아들이 되어 아비의 마음을 이리도 몰라준단 말인가?'

임금은 임오군란의 책임을 통감했다. 만약 이선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래서 2선으로 물러나 이선과 개화파가 뜻대로 정치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었다.

지난 12년 동안, 임금은 부단히 개화 관련 서적을 읽으며, 세계의 정세를 알아나갔다. 개화와 자주독립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된 임금은, 자신의 뜻을 펼쳐 통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선과 조정 신료들은 임금의 뜻을 끝내 살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임금은 대원군을 실각시켰던 것처럼, 이선과 개화당 정부를 실각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왕이라는 유교적 명분론을 제외하면, 어떠한 정치적 자산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난 10년을 꾹 참고만 있었다.

군부와 경찰, 관료, 재정, 지방 행정까지 개화당 정부가 완전히 쥐고 있었다. 유림과 백성들은 군주에게 여전히 충성을 보냈지만, 실질적인 힘이 없었다.

'애초에 유림이나 백성이나 믿을 것이 못 된다. 그들의 힘을 빌려봐야 무슨 도움이 되겠나? 대세를 뒤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대국뿐인데······.'

문제는 이선이 외국, 특히 서양 세력과 가깝다는 것이었다. 이선의 실각은 서양 열강이 받아들이지 않을 게 뻔했다.

'결국 방법이 없는가?'

현시점에서 개화당 정부가 마찰을 빚는 나라는 하나, 청국뿐이었다. 개화당 정부를 교체하고 싶어 할 나라도 청국뿐이었다. 임금은 고민에 빠졌다.

북경 자금성. 광서 20년 여름.

재위 20년에 접어든 광서제는 어느덧 스물다섯이오, 친정을 선포한 지도 6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명목상 광서제는 친정하고 있으나,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은 양모 서태후에게 있었다.

군사와 행정, 외교는 서태후의 신임을 받는 군기처의 예친왕, 총리아문의 경친왕, 직례총독 이홍장이 실권을 행사했다. 그중에서도 회군과 북양함대라는 군사력을 배경에 둔 이홍장의 힘이 가장 막강했다.

광서제는 이러한 현실에 좌절감과 불만을 품고 있었다.

"짐은 대체 언제 진정한 황제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서태후를 견제하고 광서제의 친정체제 강화를 시도하기 위해 '제당(帝黨)'이라 불리는 관료집단이 형성되었다. 광서제의 스승이자 호부상서 옹동화(翁同龢), 예부상서이자 청류파의 영수 이홍조(李鴻藻), 한림원시독학사 문정식(文廷式) 등이었다.

이들은 이른바 '후당(后黨)'이라 일컬어지는 조정의 실력자들, 특히 이홍장을 견제했다.

1894년 5월, 광서제의 명으로 회군과 북양함대를 중심으로 한 육·해군 합동훈련이 있었다. 훈련을 주재한 이홍장은 성경(盛京), 직례, 산동 3성을 돌며 각지의 군대와 방위시설을 검열했다.

동양 최강의 함대라는 북양함대의 위용은 대단했다. 회군도 청군 최고의 정예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이홍장의 지휘하에 있었다.

광서제는 이홍장에게 군비의 실태를 조사하여 보고하도록 명령했다. 검열을 마친 이홍장은 다음과 같이 복주(伏奏)했다.

- 북양함대의 철갑선으로서 해전에 견딜만한 것은 겨우 8척입니다. 2백만 냥에서 3백만 냥의 군비를 추가 지출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광서제는 분노했다.

"경은 오랫동안 해군을 감독해 왔고, 해군의 보고에서도 늘 준비는 충분하다고 했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견딜만한 것이 겨우 여덟 척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병사를 훈련했다는 말인가?"

올해는 마침 서태후의 60회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최고 권력자의 환갑을 맞이하여 막대한 비용이 준비되었고, 해군 건함비의 일부도 서태후가 머무르는 이화원(颐和园)의 증축을 위해 전용되었다.

1894년 5월, 육·해군 훈련을 마친 이홍장은 일본의 해군력 증대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뒤늦게 건함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광서제는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서태후의 신임을 받는 이홍장이 해군 예산이 전용되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홍장의 묵인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래 놓고서 인제 와서 광서제에게 군비를 추가 지출해 달라니 격분할 만도 했다.

"북양(이홍장)이 태후의 신임을 내세워 짐을 능멸하는 것이 아닌가? 짐은 북양을 처벌하고 싶다!"

하지만 실질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이홍장을 처벌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제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이홍장의 힘을 빼고 싶어 하는 제당 관료들은 해결책을 골몰했다. 그리고 이홍장의 약점을 찾아냈다.

"조선은 태종 황제 이래 이백년 넘게 대청의 충성스러운 제후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근년 들어 서양의 영향을 받더니, 그 태도가 무례하고 오만방자함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일개 제후인 국왕을 대군주 폐하 운운하고, 심지어 조선군이 감히 국경을 넘어 천병을 해치는 일에 이르렀습니다. 사은사를 보내는 것도 지극히 형식적인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짐이 어찌 그걸 모르겠는가? 짐도 조선의 무례가 개탄스럽다."

"바로 그게 이홍장의 직무유기입니다! 북양이 조선 국왕의 장자, 완화군 이선을 신임하여 그가 정권을 장악하는 걸 허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화군은 대청에 반역을 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홍장이 완화군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눈감아주지 않았더라면, 어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겠습니까?"

제당 관료들은 이홍장을 격렬히 규탄했다. 황제는 솔깃했다.

"그러나 조선 문제를 전담하는 북양이 아뢰기를, 아라사와 일본이 조선 문제에 개입할 수 있으니 잠자코 있자는 게 아닌가?"

"어찌하여 대청이 북방 오랑캐와 왜국을 두려워하여 제후국의 무례함조차 징벌하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대체 막대한 군비를 들여 회군과 북양함대를 육성한 이유가 무엇이겠사옵니까. 이 모든 것이 이홍장의 죄입니다."

이홍장이 10년 동안 육성한 회군과 북양함대를 애지중지하여 대외적으로 모험적인 정책은 극도로 회피하고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걸 이홍장의 약점으로 여기는 제당 관료들은 이홍장으로 하여금 군대를 움직이게 하고자 했다.

"이홍장에게 조선의 무례를 징벌하라 명하시옵소서. 이홍장이 황명에 응하면, 조선의 무례를 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홍장이 응하지 않는다면, 이홍장의 역심을 징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황상의 치세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묘안이었다. 광서제의 속내라면, 멀리 있는 조선보다는 가까이 있는 이홍장의 권력을, 아니 이홍장의 배후에 있는 서태후를 끌어내리고 싶었다.

"경의 의견이 옳다. 짐이 북양에게 명을 내리겠노라."

신하로부터 권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두 군주의 역린(逆鱗)이 동양 정세를 급속도로 바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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