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단교(斷交)
이선이 눈짓을 보내자 호위대 부령 장무영이 우렁차게 외쳤다.
"전원, 칼을 뽑아라! 군 대감과 대신들을 호위하여 군함 밖으로 모신다!"
청국 수병들이 순간 기세에 눌려있는 사이 호위병과 해군 장교단이 일제히 군도를 뽑아 들었다.
만약의 때에 대비해 배 안에서 전투가 벌어질 것도 각오하고 호위 대원들을 준비시켰다.
뒤늦게 청국 수병들이 총을 겨누자 이홍장이 화급히 말렸다.
"쏘지 마라! 죽이면 안 된다!"
"완화군과 대신들은 결코 죽이면 안 된다! 제압해서 생포해라!"
"돌진!"
호위대를 필두로, 칼을 빼든 조선군 병사들이 일제히 이홍장과 북양함대 지휘부를 향해 달려들었다.
수병들은 어찌할 줄 몰랐다. 생포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홍장이나 정여창이 다칠 걸 두려워하여 좁은 실내에서 조선군과 격투를 벌이는 대신 북양함대 지휘부를 보호하려 했다.
그 사이에, 조선인들은 황급히 장교식당을 빠져나갔다.
"대체 뭣들을 하는 거냐! 도망치게 내버려 두지 마라!"
조선인들은 청국 병사들을 뚫고 서둘러 선수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으아악!"
장무영과 호위대원들은 거침없이 군도를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청국 수병들을 베어 넘겼다.
수병들은 근접전에 익숙하지 않은 듯 조선군에게 허물어지며 쓰러졌다.
일부 호위병과 해군 장교들의 희생을 딛고 선수(船首)에 도착했으나 청국 수병들이 바로 뒤쫓아 왔다.
"항복하지 않으면, 부득이하게 발포하겠다!"
근접전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던 수병들은 일제히 총을 겨누었다. 호위 대원들이 일제히 이선의 주위를 에워쌌다.
눈앞에 조선 군함과 어뢰정이 떠있지만,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인식 못한 듯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 순간, 홍영식이 말했다.
"우리는 잡혀가도 상관없으나, 완화군 대감은 안 되오!"
김옥균도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맞소! 장 부령, 여긴 우리가 막을 터이니, 군 대감을 모시고 바다로 뛰어들게! 말은 저래도 저들이 총을 쏘진 못할 거야!"
장무영은 속히 이선의 몸을 붙잡았다.
"대감,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헤엄칠 수 있으시지요?"
이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뛰어내립니다! 바로 앞에 보이는 우리 군함까지만 가면 됩니다!"
장무영과 이선은 군함에서 뛰어내렸다. 수면에 닿는 순간 이선은 얼얼한 느낌이었다. 다행히도 헤엄을 칠 줄 아는 덕에 장무영의 인도를 받아 바로 근처의 조선 해군 포함을 향해 헤엄쳐 나갔다.
정여창은 당혹스러워했지만, 발포 명령은 내리지 못했다.
"저들이 조선 군함으로 간다! 포함에 정선과 항복을 요구하도록!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함포를 쏜다고 전해!"
이선과 장무영은 제복에 물이 흠뻑 젖은 채로 조선군 포함 양무(揚武)호에 올라섰다. 서양인 함장은 갑작스러운 사태 전개에 당황한 듯 보였다.
함장은 영국 해군 대위 커티스(Curtis)였다. 해군 장교와 수병도 극히 부족해서, 함선의 실질적인 운용은 당분간 영국 고문단에게 위탁을 맡긴 상태였다.
"어찌 된 일입니까?"
이선은 황급히 외쳤다.
"저들이 조선 관료들을 납치했소.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 당장 군함에 유니언잭부터 게양하시오!"
커티스는 이선의 말을 알아들었다.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던 자리에 유니언잭도 함께 내걸렸다.
영국제 군함에 영국 해군 장교와 부사관이 타고 있음을 명백히 밝힌 것이었다.
양무호에 유니언잭이 오르자, 정여창은 혀를 찼다. 3000톤급 포함인 양무는 정원에 감히 맞설 수는 없었으나,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들고나온 셈이었다.
양무호가 조선 해군 소속이긴 하지만, 군함을 운용하는 이들이 영국인임을 밝히고 유니언잭을 내건 이상, 북양함대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애로호라는 선박의 밀무역을 단속하다가 유니언잭을 찢어 버렸다고 영국이 전쟁 명분으로 삼은 제2차 아편전쟁의 기억이 생생했다. 그 결과 영국군에게 북경까지 함락당하는 치욕을 당하고야 말았다.
30년이 넘었지만, 이홍장과 정여창은 그때의 불길한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발포한다면, 대영제국과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다름없을 겁니다!"
억류된 해군고문관 콜웰 소령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오! 세계가 청국의 무도한 행위를 규탄할 겁니다!"
외교고문관 르장드르도 격분하여 외쳤다.
양무에서 정원으로 조선인들을 석방하라는 요구가 전달됐다. 이홍장은 혀를 끌끌 찼다.
"어쩔 수 없지. 비록 완화군은 놓쳤지만, 개화당의 우두머리 김옥균과 홍영식을 잡았으니 이들을 압송한다. 대청 황제 폐하와 조선 국왕에게 반역하고, 상국을 침범하려 했던 계획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다."
이홍장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은 엄청 쓰렸다. 이선을 납치해서 조선을 혼란에 빠트린 뒤 국왕이 직접 정권을 잡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다.
'역적' 이선과 김옥균이 배제된다면, 국왕이 정치력을 발휘해 친정을 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그럼 조선 국내의 문제로 끝이 나고, 외세가 개입할 여지는 사라진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선 피랍이 실패한 이상 이제 조선과의 관계는 끝장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잔꾀나 부리다가 내 발목을 잡은 셈이 됐군. 이제 서양과 일본이 어찌 나설 터인가? 제기랄, 어리석은 청류파와 왕공귀족 놈들이 황제와 태후 앞에서 헛소리만 안 했어도, 굳이 이런 무리수를 두진 않았을 터인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북양함대는 피랍자들을 싣고 천진으로 향했다.
조선 대신 피랍 사건.
이선은 당일 즉시 인천에서 성명을 발표했다.
"청국은 외교 관례상 이뤄지는 행위인 군함에서의 환송연을 악용해 조선의 대신과 고문관들을 납치하려 하였다. 이러한 극악무도한 행위를 규탄하며 전 세계에 정의를 호소하는 바이다.
청국은 즉각 부총리 겸 내무대신 홍영식, 외무대신 김옥균, 외교고문관 르장드르, 해군고문관 콜웰과 억류자들을 석방하라.
청국은 납치사건에서 희생된 조선군 희생자들의 유해를 돌려주고, 피해를 보상하라.
청국은 납치를 계획한 책임자를 처벌하라.
청국은 책임 있는 자를 조선으로 보내 만행을 사과하라."
한양으로 돌아온 이선은 즉시 각의를 소집했다.
"청국의 행태를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책임을 물게 하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야 없지요. 각국과 연대하여 청국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겠습니다."
"호외요! 호외! 조선 대신 피랍 사건!"
"호외! 청국 군함, 완화군 대감을 초대해 납치하려 했으나 실패! 내무대신 홍영식, 외무대신 김옥균 대감은 청국에 피랍!"
청국의 무도한 행태에 조선의 조야(朝野)는 격노했다.
"죽일 놈들! 초대라고 속여 놓고 납치하려고 들어?"
"왜 하필 완화군 대감을 노렸을까?"
"그거야 완화군이 조선 조정을 대표하는 분이니까 그렇지! 되놈들이 조선을 완전히 속국으로 삼으려고 잡으려고 한 게 아니겠나!"
"이런 미친 되놈들 같으니! 조선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청나라의 무도한 행위를 참을 수 없다는 여론이 폭발했다. 조선의 여론은 일제히 반청(反淸)으로 기울어졌다.
임금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했다. 청국으로 가는 사신에 불만을 호소한 적은 있지만, 그래도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은 몰랐었다. 내심 청나라가 납치에 성공했으면 정권을 되찾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격노하는 여론을 보고 재빨리 태도를 정했다.
"청국의 행위가 실로 무례하기 짝이 없다. 이는 조선의 국권을 능욕한 일이다. 짐의 장자인 완화군을 납치하려 한 건, 짐을 납치하려 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무대신 이선은 외무대신을 겸임하여, 청국의 무도한 책동을 분쇄하도록 하라!"
김옥균의 피랍으로 부재하게 된 외무대신 직을 이선이 일시적으로 겸임하도록 하였다.
이선은 즉각 각국 외교사절을 소집하여, 성명서를 전하며 청국의 행태를 강력히 규탄했다.
"청국의 행태는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짓밟고, 중립도 무시한 행위입니다. 각국 정부도 나서서 규탄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는 심각한 국제법 위반입니다. 본국에 보고하고 훈령을 기다리겠습니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일본 공사 오토리를 필두로, 청국에 강경책을 주문했다.
천진에 도착하자마자 유폐된 김옥균이나 홍영식과 달리, 르장드르와 콜웰은 미국과 영국의 항의로 석방되었다. 천진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들어간 르장드르는 즉각 청국과 이홍장을 규탄했다.
"본인은 미합중국 시민이자 조선국의 외교고문관으로서, 청국이 어떻게 조선의 영해에서 주권을 침해했는지, 병력을 동원해 조선 대신들을 납치하려 했는지 똑똑히 보았다. 청국은 이를 종주국과 제후국의 문제라고 덮으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야만국의 폭거다. 본인은 결코 이를 용인할 수 없다. 청국이 무법 한 행위를 중단하고, 피랍자들을 석방하며, 조선에 사과와 배상을 하도록 여러 문명국의 도의에 호소하는 바이다."
청나라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이제 명분 싸움이었다. 이홍장은 이선과 개화당을 청국과 조선의 반역자로 몰 생각이었다.
"죽으면 죽었지, 내 나라에게 해가 되는 말은 할 수 없다!"
"그렇다! 청국은 소위 대국이 되어, 어찌 이토록 졸렬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이름을 빌려 명분을 꾀하려 들지 말라. 차라리 우리를 죽이는 게 더 빠를 것이다!"
천진에 감금된 김옥균과 홍영식은 강하게 저항했다. '이선의 반역 죄상'이 적힌 문서에 서명만 하면 조선으로 돌아가 권좌에 복귀시켜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들이 그런 잔꾀에 넘어갈 리 없었다.
"고문해서 허위자 백을 받아낸다 한들 분명 문제가 생길 거야. 차라리 유폐를 시키고 일방적으로 성명을 발표하세."
이홍장은 김옥균과 홍영식을 모처에 감금시키고 가짜 서명을 받아냈다.
그리고 제멋대로 이선과 개화당의 죄상이 적힌 효유문(曉諭文)을 썼다. 효유문이란 형식 자체가 국가 간의 문서라기보다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타이르기 위한 형식이었다.
"조선은 중국의 속국으로서 본래부터 예의를 지켜왔다. 근래 이래로 권신(權臣)들이 실권을 잡아 나라의 정사가 사가(私家)의 문에서 나오더니 마침내 변고가 있게 되었다. 이 변고가 황제께 보고되자 황제께서는 장수들에게 명하여 군사를 파견하였다······."
효유문은 이선과 개화당의 '죄상'을 폭로했다.
황제가 봉한 조선 국왕의 정권을 빼앗아 능멸하고, 더 나아가 국왕을 폐위하고 완화군 이선을 군주로 옹립하려 하였다.
제후국의 분수를 저버리고, 대군주니 폐하니 하는 호칭을 사용하고 개국기원 연호를 썼다.
군대를 양성하여 천조의 국경을 넘어 천병을 해쳤다.
은밀히 일본과 내통하여 중국을 침략할 계획을 모의했다.
이상의 내용은 조선의 내무대신 홍영식과 외무대신 김옥균이 자백하였다.
"조선의 권신 무리들이 혹시 다시 음모를 꾸민다면, 지금 대군이 바다와 육로로 일제히 진출한 것이 벌써 20개 영(營)이나 되니 너희들은 화와 복을 깊이 생각하고 일찌감치 해산할 것이며, 그릇된 악감을 고집하여 스스로 죽음을 재촉하지 말라. 아! 대국과 너희 조선은 임금과 신하의 관계이므로 정의(情誼)가 한 집안과 같다. 본 대신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왔으니, 곧 황제의 지극히 어진 마음을 체득하는 것이 군중의 규율이다. 이것을 믿을 것이다. 특별히 절절하게 타이른다."
청국의 효유문이 발표되자 조선의 여론이 격동했다.
"이따위 효유문이라니! 청국이 어찌 이리도 뻔뻔하단 말인가! 정녕 끝장을 봐야 한단 말인가!"
"김옥균과 홍영식은 저따위 거짓 자백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저들이 허위 문서를 만들어 놓고선 공표한 것이다."
"이 가당찮은 협박은 무엇인가? 조선을 침략하겠다는 뜻인가? 좋다. 올 테면 와 봐라!"
조선도 가만히 있지만 않았다.
"대조선국은 청국의 무도한 행위를 규탄하며 청국과의 모든 외교적 관계를 단절한다. 청국 외교관들은 즉시 한성을 떠나라."
조선의 즉각적이고 단호한 단교 선언에, 청국과 제3국도 놀랐다. 상무위원 마건상과 조선 주재 청국 외교관들은 기밀문서를 소각하고 짐을 챙길 여유도 없이, 조선 순검에게 이끌려 인천을 통해 강제 추방되었다.
"꺼져라, 되놈들!"
"우리 대신들을 풀어 줘라!"
조선 백성들이 청국 외교관들에게 돌을 던지며 항의했다.
"청국이 비록 우리 대신들을 납치했으나 똑같은 행위를 하면 안 된다. 조선은 국제법을 존중하는 문명국으로서, 외교관의 안전을 보장한다."
조선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 청국 외교관들은 순검들의 감시와 같은 호위를 받으며 조선 땅에서 추방되었다.
이선도 더는 인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가급적 외교로 문제를 해결하고, 군사적 충돌은 피하고 싶어 했다.
징병제와 군제개편 10개년이 완료되는 1900년까지 전쟁은 되도록 미뤄 두려고 했다. 이선의 예상대로라면, 대략 그때는 전쟁할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청과 이홍장이 이렇게까지 치졸하게 나올 줄은 계산 밖이었다.'
1894년은 분명히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군무부는 전국에 동원령을 내렸다. 예비군이 재소집되고, 1895년도 징병 대상들이 조기 소집되었다.
'결국 1894년은 평화롭게 넘기지 못하겠군.'
하지만 이선은 조선 혼자서 청국과 맞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여전히 현실감각이 그의 균형을 맞춰 주었다.
조선이 청국에 단호히 맞설 뜻을 보이자 이선의 예상대로 접촉해 오는 나라가 있었다.
< 단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