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개전(開戰)
대(對)청 개전 방침이 정해졌다.
이선은 운현궁을 찾아 대원군에게 개전 방침을 전했다.
올해 나이 일흔다섯인 대원군의 육신은 노쇠했지만, 여전히 정신과 눈빛은 형형했다.
"이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습니다. 조선이 피하려고 해도, 청국과 일본은 전쟁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도적으로 대응하는 게 옳습니다."
이선은 정세에 관해 설명했다.
"비록 청국의 덩치가 크다고는 하나, 두려워서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돌이켜 보면, 병인년과 신묘년에 법국이나 미국과 전쟁을 한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이 결국 이겨냈지."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랑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대원군은 옛 추억에 잠긴 듯했다.
"그런데 일본을 믿을 만한가? 동맹으로서 신뢰가 되는 대상인지 모르겠구나."
"외교 관계에서 완전히 신뢰가 가는 국가란 없지요. 적의 적은 아군이란 말이 맞습니다. 지금 당장은 일본과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쓸 만한 동맹이 되어줄 겁니다."
"좋다. 일본이 전쟁에서 이긴 후 우리 영토를 한 뼘이라도 넘보지 않는다면……."
"청국이라는 더 큰 전리품이 있는데, 굳이 조선 영토를 노리진 않을 겁니다."
대원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바쁜 와중에 한가롭게 은거한 늙은이를 찾아온 건 이유가 있을 터. 말해 보거라."
여전히 정치적 감각이 살아있는 대원군이었다.
"할아버님께서는 국태공으로서 이 나라의 큰 어른이십니다. 병인년과 신묘년에 외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할아버님께서 굳건히 조정을 이끈 덕입니다. 우리 백성들에게 할아버님만큼 외적에 맞섰다는 상징성이 있는 분이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겠는가?"
"중추원 의장을 맡아 주십시오. 할아버님께서 나서 주시면, 국가 여론이 하나로 일치될 것입니다."
이선은 국가총동원을 위해 국론의 일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원군은 정부에 부정적인 보수파를 비롯하여 전 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지. 이 늙은이가 조선을 위해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다면, 마땅히 나설 것이다."
"할아버님의 노고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대원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
"임오년 이래 지난 12년간의 개혁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면, 네가 어찌 그토록 서두르려고 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가 있다. 청국을 몰아내고 조선의 힘을 떨칠 수 있다면, 참으로 통쾌한 일이겠지. 반드시 승리해야 할 것이다!"
이선도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결코 지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각 관보(官報)에는 즉각 전쟁이라고 공표하지는 않았다. 대신 대군주의 왕명과 더불어 국태공의 성명이 공표되었다.
- 청국의 거듭되는 위협에 조선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이에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 조선의 자주독립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바 …… 일본과 공수동맹을 체결하여 전쟁 위협에 대비하며…… 청국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전국에 동원령을 내린다.
언론들도 성향을 가리지 않고 정부의 방침을 지지하는 논설을 쏟아냈다.
- 조선 동포여, 언제까지 종속의 굴레에 빠져있을 것인가? 만청 침략자에 맞서 싸우자!
- 우리는 병자호란을 잊지 않는다! 삼전도의 치욕을 씻고, 북벌을 완수하자!
"만주 오랑캐가 조선을 이토록 모욕하니 어찌 참을 수가 있겠소?"
"조정이 하는 일이 못마땅한 점이 많기는 하나, 작금과도 같은 정세에선 조정을 따름이 옳소."
"그렇소. 복수 설치(復讎雪恥)와 북벌이라는 대의 앞에 의견 차이 따위는 개의치 맙시다."
보수적인 사대부들조차 정부의 단호한 방침에 반대하지 않았다.
유학과 역사를 교육받은 조선 사대부에게, 만주족에게 굴복한 병자년의 치욕은 씻을 수 없는 원한이었다.
250년간 청의 신하로 지냈다고는 하나, 내심 만주족을 깔보고 있던 조선인에게 삼전도는 잊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 치욕을 씻어낼 수 있다면……!"
조선의 대의기관인 중추원은 만장일치로 청국과의 외교단절, 일본과의 동맹, 전국 동원령을 지지했다.
"중추원은 대군주 폐하의 명을 받들어 정부의 방침을 만장일치로 지지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언제나 소수 여론을 대표하던 '농민당' 전봉준도 이번만큼은 적극적으로 다수 의견을 지지했다.
"조선의 농민들이여! 우리는 모두 충성스러운 대군주의 신하이자, 조선의 국민입니다. 우리에게는 조국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동원령에 응하여 우리의 조국, 고향, 가족을 수호합시다!"
전봉준은 '조국 방위 전쟁'이야말로, 농민의 저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여겼다. 징병제 아래에서 군대를 구성하는 이들은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이었고, 농민의 적극적인 협력이야말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길이라 판단했다.
전봉준은 농민들에게 싸우라고 외치기만 하지 않았다. 중추원 의관의 신분을 개의치 않고, 징병소로 나아가 입대 신청을 한 것이다.
"그, 전 의관의 뜻은 잘 알겠으나, 전쟁터에서 싸우기에는 나이가……."
중추원 의관이 직접 입대 신청을 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군의(軍醫)를 총괄하는 군의부장 서재필이 직접 만류했다.
일본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서재필은, 귀국 후 군사 의료 체계를 확립했다. 전사(戰死)보다 부상이나 질병에 의한 사망이 더 높은 시대라 군사 의료 체계의 확립은 중요한 일이었다.
"내 나이 아직 마흔에 불과합니다. 육체도 한창인데, 어찌 총칼을 들지 못하겠습니까? 정부의 동원령에 따르면, 40세 이하의 장정은 동원 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법안을 심의한 당사자가 본인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결국, 서재필은 반대할 명분을 더는 찾지 못했다. 서재필의 보고를 받은 이선은 빙긋 웃었다.
"역시 녹두는 대단한 사람이군. 뜻대로 하라고 하시오."
농민들의 신망을 받는 전봉준이 솔선수범을 보인다면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징병검사 결과 을종(乙種)합격을 받은 전봉준은, 전선은 아니나 후방에 배치될 의용군으로 합류하였다.
농민들을 대표하는 중추원 의관이 신분이나 나이를 따지는 게 무색하도록 자진 입대하자 뒤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나라를 지키는 데 있어 지위의 높낮이, 늙음과 젊음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의용군이란 곧 의병인데, 언제나 국난의 위기에 처하면 우리 백성들이 의병에 나섰소. 작금이 바로 국난의 위기 아니겠소?"
"거대한 청국이 조선의 독립을 위협하니, 우리 백성들도 단결하여 싸웁시다!"
그동안 징병제에 부정적이었던 여론과 달리, 각 지역의 징병소에 입대 희망자가 몰려들었다.
백성들에게서 신망이 높은 대원군과 전봉준이 나선 덕인지, 3만의 의용군을 모집하겠다는 당초 계획은 정부의 기대보다 더 빠르고 많이 이뤄졌다.
9월 한 달 동안, 10만의 군대를 편성하겠다는 군부의 목표는 착착 진행되었다.
1894년 9월 15일.
조선 정부와 일본 정부는 공동으로 청나라에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조선은 이미 청국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으므로, 일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가 주일 청국 공사에게 통첩문을 전달했다.
1. 청국은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승인할 것.
2. 청국은 납치한 조선 대신들을 석방하고, 책임 있는 자가 사과할 것.
3. 청국은 조선이 입은 피해를 배상할 것.
4. 청국은 일본과 맺은 천진 조약을 무시했으므로, 일본에도 사과할 것.
기한은 9월 18일까지 답변할 것. 청국이 답변을 거부할 시, 양국은 추가적 조치를 할 예정임.
당연한 말이겠으나, 청나라는 최후통첩에 격노했다.
"대청이 이따위 협박에 굴복하리라 생각하는가?"
"조선도 괘씸하지만, 왜국은 더 괘씸하다. 대체 왜 중국과 조선의 일에 개입해 분란을 일으키는가?"
"조선의 배후에 왜국이 있다는 게 명백해졌다. 마땅히 조선과 왜국을 정벌해야 한다!"
청나라는 통첩문에 답변조차 하지 않고, 전쟁 준비에 서둘렀다.
이는 예상된 바였다. 조선과 일본 입장에서도 최후통첩은 명분 쌓기에 불과했다. 아직 선전포고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동양 삼국은 전시 상태에 들어갔다.
이홍장은 여전히 교전을 회피하고 싶어 했지만,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북경 조정은 이홍장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 실질적인 군 지휘를 할 수 있는 건 이홍장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홍장은 자신이 맡고 있는 직례와 북양함대 외에도, 봉천, 길림, 흑룡강 등 만주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전쟁을 가장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북양함대를 동원하여 인천과 강화의 해안 방위를 무력하고, 한성으로 바로 진격하여 함락시키는 것입니다."
이홍장은 고개를 저었다.
"조선이나 일본이 바보도 아닌데, 대비하지 않았겠나? 지난번에 보니 인천 일대에 해안 방위가 철저하더군. 일본 해군도 무시할 수가 없네. 조선 남부에서 군대가 몰려오면 역으로 포위당할 우려가 있네. 이 작전은 너무 부담이 커."
이홍장과 북양군 사령부는 작전 계획을 논의했다.
"회군과 북양함대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적을 격퇴할 방법은……."
"만주 3성의 군대를 동원해 육로로 압록강을 넘어 평양으로 진격하고, 회군과 북양함대를 동원해 해로로 진남포에 상륙하여 평양으로 진격한다."
공격 목표는 조선 제2의 도시, 평양으로 맞춰졌다. 평양은 조선 제2의 도시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상당한 병력과 군수물자가 쌓여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평양을 함락시키고, 조선의 전의를 꺾는다. 조선에는 사대관계의 유지와 국왕의 친정을 요구하는 관대한 조건으로 협상을 맺고, 일본과의 장기전에 대비한다."
북양군은 먼저 일본보다 만만해 보이는 조선을 굴복시키기로 결정했다. 평양을 함락시키면 한성과는 철도로 연결되어 있으니, 조선이 전의를 상실하고 협상에 응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조선의 전의를 꺾고 나면, 기존 사대관계의 유지와 조선 정부의 퇴진, 국왕의 친정이라는 '관대한 조건'으로 협상을 제의하여 조선 전선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었다.
"북양함대의 주된 사명은 일본 해군의 황해 진출을 견제하고, 군대 수송을 호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단 한 척의 군함도 잃어서는 안 된다."
북양함대를 아끼려 하는 이홍장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전략을 택하고야 말았다.
육군은 공세로 나서지만, 해군은 일본 해군을 견제한다는 명목으로 방어적으로 나서는 전략을 택했다.
해군력의 우세와 제해권 확보를 통해 적극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의 전개에 따라 수동적인 역할만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적극적으로 전쟁에 뛰어들 조일 동맹군에게 기회가 되었다.
최후통첩 기간이 만료된 9월 18일, 청국에서 아무런 답도 없자 일본 내각은 개전을 결의했다. 조선과의 협의에 따라, 황해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건 일본 해군의 몫이었다.
전쟁 지도를 위하여 히로시마에 대본영(大本營)이 설치되고, 상비함대와 경비함대를 합쳐 일본 해군의 거의 모든 선박으로 구성된 연합함대(聯合艦隊)가 전쟁에 대비하여 구성되었다.
9월 22일, 연합함대는 모항 사세보를 출항했다. 본대, 유격함대, 수송선과 호위함은 24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조일 공수동맹에 따라, 일본 해군은 인천, 부산, 원산, 군산, 진남포 항을 이용할 수 있었다.
유격 함대는 바로 서해안을 북상하여 평안도 해안으로 나아갔다.
9월 25일 밤.
요동에 주둔하던 청국 병사 3000명을 태운 수송함 3척, 애인(愛仁)과 비경(飛鯨), 고승(高陞)은 대련만을 떠나 목적지인 압록강 하구 안동(安東)현으로 향했다.
북양함대 소속 순양함 제원(済遠)과 포함 광을(広乙), 조강(操江)이 호위를 위해 함께 운행 중이었다.
압록강 하구는 청나라와 조선의 해역이 겹치는 관계로, 청국 해군은 조심해야 했다. 특히 안동 항구로 접어들기 위해선 압록강 하구 용암포 앞바다를 지나야 하는데, 그곳엔 조선의 항구가 있었다.
용암포 해안포대에서 정선 명령이 올라섰으나, 청국 해군은 무시했다.
"어디 쏠 테면 쏴봐라! 그럼 바로 전쟁이니까."
아직 공식적인 전쟁 선포가 없었으므로 3척의 군함과 3척의 수송함은 정선 명령을 무시하고 용암포 앞바다를 지나가려 했다.
용암포를 지키는 조선군은 쉽게 선제공격을 하지 못했다. 압록강 하구는 조선만의 영해라고 할 수 없었고, 선전포고라는 국제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이 컸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청국 해군의 배후에서 순양함 3척이 나타났다. 일본 연합함대 제1유격함대 소속 순양함 요시노(吉野), 아키쓰시마(秋津洲), 나니와(浪速)였다.
서해를 항진하던 중에 만난 우연한 조우였지만, 제1유격함대 사령관 쓰보이 고조(坪井航三) 소장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
"전함 포격 개시!"
나니와의 함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대좌가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함포를 사격했다.
콰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