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막전막후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의 결과가 청나라 조정에 닿았다. 일선 지휘관들이 아무리 거짓 보고서를 올리려고 해도 이제는 전투 결과가 전 세계에 타진된 이상 속일 수가 없었다.
"평양에서 조선군에 참패했다고? 지금까지 연전연승하며 평양까지 진격한다고 하지 않았나?"
"조선군에게 대패라니, 허 참! 대청이 복속시킨 속국 따위에? 이런 부끄러운 일이 다 있나!"
"동양 최강의 함대라고 자칭하던 북양함대도 일본에 대패했다고 하니, 대체 그동안 뭣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 함대에 투자했단 말이오?"
"말하나 마나. 일이 이렇게 된 건 다 이홍장의 책임이오!"
조정에서는 육·해군의 연이은 패배와 졸전에 경악하고 분노했지만, 단합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분열하는 양상을 보였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전통적으로 청 왕조의 지배자였던 만주 왕공귀족들은, 태평천국 전쟁 이후 핵심 군권과 정치의 실권이 이홍장과 한족 관료들에게 넘어간 게 불만이었다.
"한족 대신들이 청조를 지배하는 현상을 타파하려면, 그 우두머리인 이홍장이 실각되어야 한다."
"이홍장의 기반인 회군과 북양함대가 계속 두들겨 맞을수록 더 좋다."
한족 관료들이라고 모두 이홍장의 편은 아니었다. 광서제 주위의 '제당'은 군권과 외교권을 한 손에 쥔 이홍장의 실각을 원하고 있었고, 이들 역시 이홍장을 물어뜯기 바빴다.
"회군과 북양함대는 황상의 군대가 아니라 이홍장의 사병이나 다름없다. 지금껏 이홍장의 월권에도 실각시키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들 때문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이홍장을 실각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제당의 우두머리, 호부상서 옹동화는 한림원을 움직여 이홍장을 탄핵하게 했다. 한림원 시독학사 문정식(文政式)을 필두로, 35명이 연명으로 이홍장을 탄핵하는 상소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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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의 천병이 속국이었던 조선과 작은 섬나라 왜국에 육지와 바다에서 참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난국의 책임자가 대체 누구입니까? 북양대신 이홍장입니다. 이홍장은 준비를 게을리하고, 지휘관을 자신의 파벌로 채우고, 거짓 보고서를 올려 조정을 속였습니다. 실로 이홍장은 나라를 망국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이홍장을 파직시키고 그 책임을 물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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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과 여론도 냉소적이었다. 전장에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전쟁에 관심이 없고, 패전 소식에 흥분하기는커녕 냉소적이었다.
"달로(韃虜)와 왜인, 동이가 서로 물어뜯고 있다."
달로는 북방 유목 민족을 의미하는 '달단(韃靼)'에 '노예'라는 뜻이 들어간 멸칭으로, 한족이 만주족을 모멸적으로 비하하는 의미였다.
막상 전쟁을 이끄는 건 만주족이나 팔기군이 아닌 한족 관료들이 지휘하는 군대였지만, 청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잃은 한족 지식인들에게 이홍장과 같은 청조의 핵심 관료는 똑같은 '달로'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전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평양 전투와 황해 해전의 결과가 닿은 다음 날, 이홍장은 장문의 상주문(上奏文)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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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의 한 귀퉁이에 불과한 북양의 힘만을 가지고는 적에 미치지 못합니다. 왜국과 조선은 전국의 힘을 모아 군대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 적은 중국으로 쇄도할 것입니다. 바다로는 발해(渤海)를 엄히 방비하고, 육지로는 봉천과 요동을 힘껏 지키고서, 각지의 병력을 모집해 반격을 꾀해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믿을 만한 신하를 뽑아 동삼성(東三省)의 군대를 지휘하게 하소서.
……
패전의 가장 큰 책임은 무엇보다 신에게 있습니다. 신은 군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으니, 처벌받아야 마땅합니다. 신을 면직시켜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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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장은 애초에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고, 만주 왕공귀족들과 제당의 대책 없는 강경 논의에 끌려 들어가 조선을 압박하고, 전쟁을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홍장은 전쟁을 벌이기 전부터, 이런 상황을 예측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전쟁의 책임 소재를 자신이 아니라 북경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었다.
청의 강경책은 조선과 일본을 연합하게 할 것이며, 일본의 육·해군은 조정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막강하니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홍장의 예상을 깨고 조선조차 녹록지 않은 적임을 증명했으니, 전쟁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홍장을 더 분노하게 하는 건, 가장 강경하게 싸우라고 떠드는 자들이 지원조차 안 해 준다는 것이었다. 북경에서 떠도는 말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전쟁하라고 떠밀어 놓고선, 북양군만 소모하게 한다. 누구 좋으라고 말인가? 물론 북양군 패전의 책임은 내게 있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책임인가?"
이홍장은 원통했다. 자신은 제대로 된 신식 군대를 만들려고 했지만, 번번이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 놓고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지우려 하니,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 북양군은 내가 만든 군대다. 하지만 나 이외에 또 누가 군대를 만들었는가? 내가 북양군에 심혈을 기울이는 걸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도 제대로 된 군대를 만들었으면 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날 이런 치욕이나 당했겠는가!"
이홍장은 탄핵에 대한 답변으로,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을 보였다.
"입으로 전쟁을 하는 풋내기 놈들! 과연 정말로 날 몰아낼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이홍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하자, 황제도 처분을 놓고 고민했다. 마음만 같아선 사임을 수락하고 싶었지만, 이홍장을 물러나게 하면 제대로 된 전쟁 지휘나 될지 의문이었다.
"황상, 대청에 회군과 북양함대를 제외하고 제대로 된 군대가 있기는 한답니까? 조정에 이홍장만 한 능력 있는 충신도 없습니다. 그래도 책임은 있으니, 크게 꾸중이나 한번 하세요."
이홍장을 여전히 신임하고 있는 서태후도 황제에게 유임을 압박하고 있었다.
결국, 황제는 호부상서 옹동화를 보내 이홍장을 질책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게 했다.
이홍장은 직무에 임한 지 오래되었어도 공을 세운 바가 없고, 전쟁에 대비하지 않아 대청의 위신을 실추시켰다. 이에 엄중히 질책한다. 명하노니, 황마괘를 벗어 반납하도록 하라.
황마괘는 황제가 친히 내린 황금 의복으로 큰 공을 세운 신하만이 받을 수 있는 대단한 영예였다.
이를 반납하는 건 분명히 치욕적인 일이었으나 실질적으로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파면하지, 이도 저도 아니군."
이홍장은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북경은 이홍장을 자를 수 없었다. 대신 망신만 주겠다는 것이었다. 황명을 지참하고 천진으로 온 옹동화가 자신을 공격하는 정적임을 알고 있으니, 더 냉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홍장은 옹동화와 대면했다. 관직은 이홍장이 훨씬 높았으나, 옹동화는 황명을 받들어 왔으니 상석에 앉아 이홍장을 질책했다.
"황상께서 상심이 크십니다. 일이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바다와 육지에서 거듭된 참패는 변명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황상께 누를 끼쳐 드렸으니, 실로 제 책임이 큽니다."
이홍장이 고개를 조아리며 잘못을 빌자 옹동화는 내심 즐거웠다. 하지만 이홍장이 유임된 이상, 더 중요한 건 앞으로의 전략을 논의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적이 중국으로 쇄도할 거라 하였습니다. 만주 동삼성은 청 왕조의 근원이요, 봉천은 열성조의 황릉이 있는 배도(陪都)입니다. 절대 빼앗겨서는 안 될 곳입니다. 이를 어찌 방비하시겠습니까?"
만주는 이름 그대로 만주족의 근원이었다. 봉천 즉, 심양은 청나라의 첫 수도이자 태조 누르하치와 태종 홍타이지의 능이 있는 곳이었다. 청 황실은 봉천을 부수도이자 성지로 여겼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봉천의 방비는 극히 취약합니다. 만주군의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는 조선 원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럼 직례의 병력을 봉천으로 보내 방어하면 되지 않습니까?"
이홍장은 정색하며 말했다.
"앞으로 더 큰 문제는, 일본이 이제 대군을 동원하여 중국을 침범하려 할 것입니다. 적이 어디를 공격할지 불분명합니다. 아마 북양함대의 본거지가 있는 요동과 산동을 먼저 공격하리라 생각합니다. 요동과 산동이 넘어가면, 봉천이 아니라 북경이 위태롭게 됩니다."
군대 사정에 대해 모르는 옹동화는 이홍장의 말에 놀랐다.
"황태후 폐하께서는, 제3국에 의한 강화 중재는 어찌 될지 중당의 의견을 묻고자 하십니다."
옹동화는 패전이 거듭되는 상황에서 화의를 먼저 제안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지만, 황제와 달리 서태후는 조속한 종전을 원했다. 환갑잔치를 앞두고 전쟁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조속한 종전은 이홍장도 바라던 바였다. 그는 승전 가능성에 회의적이었고, 더 이상 군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영국은 개입할 뜻이 없는 듯하니, 아라사에 의뢰해야 합니다. 아라사는 일본이 중국, 특히 만주를 침범하는 걸 원치 않을 터입니다. 또한, 아라사 황실은 완화군과 사이가 가까우니 조선을 중재하기에도 적격입니다."
"아라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제 때 북경을 침범한 적을 중재한다는 명목으로 영토를 빼앗아간 것처럼, 또 막대한 대가를 요구할지 모릅니다."
1860년, 영불 연합군이 북경을 점령하자, 러시아가 화의를 중재해 주었다. 그 대가로 러시아는 연해주를 할양받았다.
"아라사가 중국의 영토를 노리는 건 영국이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무도한 요구도 하지 않겠지요."
이홍장은 나름대로 복안이 있었다.
"먼저 아라사를 통해 조선과 협상을 하고자 합니다. 황상께서 허락하시면, 아라사와 조선으로 밀사를 보내겠습니다."
"그리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그전까지 봉천의 방비는……."
"무엇보다 단일한 지휘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조정의 신망이 두텁고, 유능한 장수를 보내 봉천을 지키게 명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이홍장의 주청대로, 조정은 만주의 지휘권을 단일화하여 공격에 대비하는 한편, 러시아를 통해 강화를 교섭한다는 방안을 채택했다.
이윽고 황명을 받은 이홍장은 러시아에 밀사를 보낼 준비를 했다. 황제 알렉산드르 3세는 대외정책이 신중하니, 극동의 세력 균형을 깨트리지 않고 평화를 주선해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홍장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11월 1일, 러시아 제국.
알렉산드르 3세가 한창나이에 서거했다. 향년 49세. 육체 강건해서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황제로선 이른 죽음이었다.
황제를 쓰러트린 건 혁명이나 암살이 아닌 신장병이었다. 건강을 과신했던 황제는 신장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죽음까지 직면했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와의 동맹을 이끌어 국제정세의 변화를 일으켰지만, 대내적으로는 선제의 개혁 정치를 거부하고 반동 정치로 일관한 황제였다. 알렉산드르 2세를 암살한 인민주의자들은 물론, 사회주의자, 자유주의자, 소수민족의 민족주의도 가차 없이 탄압했다.
알렉산드르 3세 재위기에는 강력한 지도력으로 비교적 안정을 누렸지만, 황태자 니콜라이는 26세에 거대한 제국을 떠맡는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된 것이다.
"산드로, 어쩌죠? 나는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당장 대신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제국을 통치하죠?"
아버지이자 황제의 죽음 직후, 니콜라이는 매제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에게 하소연했다.
니콜라이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3세 자신이 49살에 죽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고, 제왕 교육은 황태자가 30살이 되면 시작할 예정이었다.
갑작스럽게 제국을 물려받은 니콜라이가 느끼는 절망감과 암담함은 굉장했다. 하지만 황제 체면에 그걸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는 없었고, 흉금을 터놓는 사이인 매제에게 하소연하는 정도였다.
"황태자 전하, 아니 황제 폐하. 표트르 대제께서는 아무런 준비 없이, 10대에 황위에 올라서도 제국의 영광을 이끌었습니다. 폐하께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표트르 대제께서는 그만한 자질을 가진 분이셨지요. 나는 제국을 통치하기에 너무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폐하의 벗인 이선 공을 떠올려 보십시오. 비록 작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국가를 잘 다스리지 않습니까. 심지어 청국에 맞서 전쟁까지 승리로 이끌고 있지요."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도 6년 전에 극동을 방문한 바 있었다.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국빈이었고, 이선의 극진한 환대를 받은 바 있었다. 그 역시 이선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는 나와 나이도 같은데, 이미 한 나라를 이끌고 있지. 더욱이 대국인 청국에 맞서 전쟁까지 치르고 있으니……."
니콜라이는 동갑내기 친구인 이선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전, 이선은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미 중병을 앓고 있던 알렉산드르 3세는 관망 정책만을 취했다.
니콜라이는 목숨의 빚을 진 이선이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치름에도, 그동안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 미안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청국에 맞서 성공적으로 전쟁을 이끌고 있으니 더욱 감탄의 대상이었다.
'내가 그에게 빚을 진만큼 나도 그에게 도움을 줘야겠다.'
러시아의 새로운 황제가 된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와 조선 모두에 도움이 될 일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