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개선식(凱旋式)
1895년 6월 9일. 청조일 강화조약의 비준이 산동 지부(芝罘)에서 교환되었다.
시모노세키에서 체결한 조약문에서 요동 반도가 다시 청나라로 반환되고, 대신 일본에 지불할 배상금이 3000만 냥 늘어났다.
그 외에는 변동 사항이 없었다. 향후 3개월에 걸쳐 조선군과 일본군의 철수, 영토 획정과 할양이 진행되기로 했다. 6개월 이내로 첫 배상금이 지급되고 7년간 8차례에 걸쳐 분할 납부될 예정이었다.
이선과 조선 대표단은 지부에서 거행된 비준서 교환식에도 참석했다.
"비준서를 삼국이 교환함에 따라 전쟁은 완전히 종결되었습니다. 동양의 항구적 평화를 기원합니다."
전쟁 기간은 총 7개월 15일, 실질적으로 전투가 진행된 건 약 6개월이었다.
청군은 전쟁 동안 약 65만 명을 동원하여 약 5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일방적인 패배의 연속이었던 탓에 제대로 된 사상자 통계도 내지 못했다.
그에 반하여 일본군은 약 25만 명을 동원했고, 사상자 약 5000명이었다. 오히려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훨씬 많았다. 만주의 혹한으로 인한 집단 폐렴, 각기병, 대만의 열대에서 발생한 콜레라와 말라리아 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만 1만이 넘었다.
조선군은 약 10만 명을 동원하여 전사자 약 2000명, 부상자 약 3000명,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 2000여 명이었다. 전쟁 초반에 전장이 된 평안도 지방의 손실이 컸다고 하지만, 삼국 중 희생은 가장 적고, 실질적으로 얻은 건 가장 많았다.
전쟁의 결과로 청조, 아니 고대 이래 동아시아에 중화 질서를 강요하던 중국이 몰락했다.
서양 열강인 영국이나 프랑스에 패배한 것과 비교가 안 되는 충격이었다. 섬나라라고 무시당했던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속국 취급하던 조선에 패배했으니 그 굴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로 국가의 치욕이다! 일본과 조선이 분주히 혁신하는 동안, 중국은 미몽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 결과가 이 참담한 패전이다. 이제 중국도 변화해야 한다."
오랫동안 잠들어있던 중국인들도 비로소 눈을 뜨고야 말았다. 적국인 일본과 조선을 증오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보와 승리를 면밀히 분석하고 본받아 국치를 극복하자는 일단의 개혁적 지식인 계층이 등장했다.
"어쩌다가 대청이 이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어쩌다가 도이(島夷, 섬나라 오랑캐)와 제후국인 조선에까지 이런 치욕을 당했단 말인가? 경장을 이룩하지 못하면 사직이 위태롭다."
개혁의 필요성을 가장 절실히 깨달은 건 자금성에서 무력하게 패전 소식만 전해 듣던 황제 광서제였다. 이대로 가면 중국의 분할을 넘어 청조 자체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황제의 사고를 지배했다.
육전과 해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일본은 축배를 들어올려야 했으나, 막판의 외교적 실패로 인해 분함을 느꼈다.
"일본이 피 흘려 얻은 요동을, 서양 열강은 말 몇 마디로 도로 토해 내게 했다."
"분명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지원하여 일본인의 피와 돈을 들였건만, 일본이 얻은 것은 적고 조선이 얻은 것은 훨씬 많다. 조선이 러시아와 결탁한 덕분이 아닌가?"
"삼국의 횡포를 잊지 않겠다. 와신상담하여 열강보다 더 강해지자."
일본의 전쟁 프로파간다만 믿고 있던 일본인들은 요동 반환에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다. 일본인들은 이 전쟁의 목적이 '조선 독립과 동양 평화'라고 믿고 있었다지만, 장차 일본이 동양의 맹주가 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요동을 반환하자 조선이 일본보다 더 많은 걸 얻은 것처럼 보였고, 그 실망감은 외교전에 실패한 일본 정부, 더 나아가 조선과 간섭을 주도한 러시아로 향했다.
"본래 전쟁의 목표는 모두 달성했다. 청국의 동양 패권을 무너트리고 조선의 독립을 달성했으며 대만과 팽호를 얻어 남양으로 진출할 발판을 얻었다."
"그렇다. 어일신(御一新, 메이지유신) 이래 일본이 추진한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이 전쟁의 승전으로 세계에 널리 떨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애써 승리의 결과를 자찬했다. 군사적 성과를 보면 분명 눈부신 위업이었다. 일본은 동양 최강의 군대로 평가받았으며, 특히 해군은 서양 열강조차 놀라워할 정도로 성장했다.
더욱이 청나라로부터 받아낸 막대한 배상금은 일본의 산업혁명을 가속하기 위해 쓰일 터였다.
국민의 실망과 달리 일본 정부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아무리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있더라도, 서양 열강에 맞선다는 것은 아직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조선은 열광적인 축제 분위기였다.
"조선의 자주독립, 승전으로 세계만방에 인정받다!"
"삼전도의 치욕을 돌려주고, 만청 오랑캐에게 250년의 원한을 갚다!"
"요동 할양! 간도 할양! 조상의 고토를 수복했다!"
"바야흐로 북방으로 웅비할 시기가 왔다!"
"청나라가 배상금으로 지불할 7000만 냥은 조선의 10년 예산이 넘는다. 이 막대한 금액은 조선의 발전을 위해 귀중하게 쓰일 것이다……."
전쟁의 승리에 이어 외교적 승리까지 거둔 이선과 조선 정부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우리의 승리는, 갑신경장 이래 10년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개혁과 진보를 이끈 정부의 공이다."
"바로 그 개혁과 진보를 이끈 이가 완화군이시다! 전쟁에서도 군사와 외교에 걸쳐 완벽한 승리를 거둘 수 있도록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하셨다."
"조선 동포여! 승리의 지도자, 완화군께 찬사를!"
이선에 대한 찬사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이선 본인이 부담감을 느낄 정도로 개인숭배에 가까운 찬양이 이어졌다.
이선과 조선 대표단이 귀국하여 한성역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민중이 열렬히 환호를 보냈다.
"대표단이 돌아왔다!"
"완화군께서 오셨다!"
"승리의 지도자, 완화군 만세!"
"대조선국 만세!"
"대군주 폐하 만세!"
'완화군 만세'가 '대군주 폐하 만세'와 함께 외쳐졌다.
이는 상징적이었다. 아무리 왕족이더라도 이선은 엄연히 신하의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이선은 민중에게 군주와 동격으로 호명되고 더 많은 환호를 받고 있었다.
이선과 조선 대표단은 경복궁에서 대군주를 알현하고, 조약의 체결과 비준을 복명(復命)했다.
"…… 이상 강화 조약 체결과 비준을 삼가 대군주 폐하께 아룁니다."
"실로 우리 조선의 위대한 승리다! 열성조께서도 하늘에서 조선의 승리를 기뻐하시리라. 위로는 왕실에서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상하가 일치하여 적에 맞서 싸운 결과가 아니겠는가?"
대군주는 크게 기뻐했다. 이선이 보기에 부왕이 이토록 기뻐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완화군, 경의 노고가 참으로 크다. 경의 공은 이미 사직에 길이 남을 것이니, 짐이 어찌 보답할 길이 없구나."
부왕의 치하도 전례가 없는 정도였다. 이선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 모두 대군주 폐하의 지극한 은덕이니, 신이 어찌 폐하께 보답을 바라나이까?"
"경은 그리 말하지 말라. 짐은 경에게 마땅한 보답을 하고 싶다."
'밀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김옥균과 조선 대표단도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내심 냉소를 흘렸다.
"완화군, 경에게 금척대수장을 수여한다. 경은 조선의 금척대수장을 수장(受章)한 첫 훈공자가 될 것이다."
1892년 조선 개국 500주년을 기념하여 훈포장 제도가 성립되었고, 전쟁 발발 이후 공훈에 따른 본격적인 훈포장 수여가 시행되었다.
그중에서도 대훈위 금척대수장(大勳位金尺大綬章)은 최고의 영예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꿈에서 얻은 금척(金尺)에서 유래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는 의미였다.
원칙적으로 황족과 외국 원수(元首)만이 대상자였고, 최고의 공훈을 세운 문무관만이 대군주가 친히 하사할 수 있었다.
"완화군 이선, 경에게 대훈위 금척대수장을 수여하여 공로를 치하하는 바이다."
대군주는 친히 금척대수장을 이선의 대례복에 달아 주었다. 훈장에는 조선을 상징하는 태극과 왕실을 상징하는 오얏꽃 무늬가 배열되어 있었다. 훈장은 이선의 대례복 가슴팍에 달려 빛났다.
금척대수장의 첫 수훈자가 된 이선은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대군주는 이어 김옥균에게 2등 훈장인 이화대수장(李花大綬章)을 수여하고, 대표단 전원에게 태극장(太極章)을 수여했다.
"오늘은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끈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으나, 표훈국(表勳局)에서 승전을 이끈 모든 이를 선별하여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논공행상을 할 것이다! 짐은 경들의 노고를 반드시 보답하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훈장수여식은 훈훈한 분위기에서 마쳤다. 이어진 축연에서도 대군주는 승전을 거듭 축하하며 기뻐했다.
이선과 조선 대표단은 아직 밀서의 내용을 비밀에 부쳐 두었다. 나라 전체가 승전 분위기인 상황에서, 섣불리 공개하기보다는 때를 가늠하고 있었다.
조약 비준에 따라 조선과 일본은 청군 포로를 모두 석방했다. 조선군이 확보한 포로는 특히 많아서 그 수는 2만에 달했다.
청군도 조선군과 일본군 포로를 석방했다. 청군에 붙잡힌 포로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나, 고위급 포로가 있었다.
전쟁 이전 피랍되었던 전 내무대신 홍영식과 조선 장교단이 석방되어 무사히 조선에 돌아왔다. 개화당 인사들은 홍영식의 귀환을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적지에서 오랫동안 고생 많았소, 금석."
오랜 유폐 생활로 초췌해진 홍영식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조선의 승리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 무슨 말이오? 보빙사를 다녀온 이래, 금석은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해 진두지휘했소. 이 승리에는 금석의 공도 큽니다. 부끄러울 이유가 없지요."
이선의 격려에 홍영식은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군 대감을 모시고 함께 보빙사로 세계를 일주한 게 생각나는군요. 그때만 해도 조선이 서양과 비교하면 얼마나 뒤쳐져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까마득했습니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조선을 바꾸어야겠단 생각뿐이었지요."
이선도 새삼 지난 일이 떠올랐다.
"그랬었지. 지난 10여 년간 온갖 노력을 다한 끝에 조금이라도 그 격차를 줄일 수 있게 됐소."
"금석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저만 먼저 풀려났을 때는 얼마나 미안했는지. 우리가 승리할 때마다 기쁘면서도, 혹시나 저들이 보복하면 어찌하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김옥균은 친우 홍영식의 귀환에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아, 여순 함락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정말로 죽을 뻔했습니다. 특히 서태후와 만주 황실이 분노로 날뛰어서, 당장 제 목을 치라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저런, 그런 일도 있었소? 그래서 어찌 됐소?"
"나중에 알고 보니, 이홍장과 공친왕이 힘껏 저지한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조선 포로들을 죽이면 협상 자체가 깨질 수 있다고 말렸지요."
"과연 이중당은 현실 인식이 정확하오. 청조의 무능함으로 인해 패장의 처지가 된 게 안타까울 따름이지."
김옥균이 이선을 향해 말했다.
"과연 그렇습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개화당이 완화군 대감을 지도자로 받들어 모셨던 날이 기억납니다. 13년 전, 우리는 군 대감께서 이 나라를 변혁시키시리라 믿고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막연한 꿈이었습니다만, 마침내 대감께서는 우리를 개화와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자리에 모인 개화당 인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모두 이선의 공로에 찬사를 바쳤다.
"역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왜 이러오? 지나친 찬양은 사람을 무디게 만듭니다. 고금을 살피면 유능한 지도자가 승리에 도취되어 타락하는 건 한순간이었소. 조선의 변혁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한데, 너무 승리에 도취하지 맙시다."
이선의 말에 개화당 인사들은 모두 감명을 받은 듯했다.
"군 대감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이토록 군 대감께서는 오직 국가의 미래를 염려하는 일념뿐이거늘, 어찌 성상께서는 그 충정을 의심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옥균이 분통을 터뜨리자, 유길준이 재빨리 이어받았다.
"군 대감, 이제 밀서를 공개하시지요. 성상께서 남몰래 청국에 밀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선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옥균이 이홍장으로부터 전해 받은 밀서의 내용을 공개했다.
개화당 인사들은 격분했다.
"이게 정녕 성상께서 보낸 밀서라면, 실로 표리부동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청국과의 일전에 동조하면서 뒤로는 적과 내통하다니요!"
"왕족과 강신이 누구를 지칭한단 말입니까? 바로 완화군 대감과 우리 신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장 성상께 이 문서의 진위를 따져야 합니다."
"아니, 따질 게 뭐가 있습니까? 차라리 잘 됐습니다. 이를 내세워서 완화군 대감을 옥좌에……."
그 순간, 이선이 정색하며 말을 끊었다.
"어허, 그 무슨 불경한 소리요! 신하 된 자가 어찌 함부로 옥좌를 운운한단 말이오? 하물며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문서로!"
"군 대감께서는 대군주의 장자이시니 자식 된 도리로 나서지 못한다는 걸 잘 압니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내각에 알려 여론을 확보하겠습니다."
김옥균은 이선이 나설 수 없는 이유를 정확히 지적했다. 모두 김옥균에게 동조하는 눈빛이었다.
"고균,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기껏 승전으로 전국민적 단합을 이룬 상황에서 이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키잔 말이오?"
"대감의 고뇌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진위는 반드시 따져야 합니다."
이선은 잠시 고민하는 척 하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진위를 확인할 필요는 있소. 국가를 위해서도, 성상을 위해서도. 내각에 알려 토의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