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210화 (209/812)

210화 군주와 신하

시모노세키 강화조약 결과를 보고하고, 향후 정세를 논의할 각의가 개최되었다.

내각 대신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총리대신 김홍집

참정대신 박정양

내무대신 박영효

외무대신 김옥균

군무대신 이선

탁지대신 어윤중

법무대신 유길준

학무대신 서광범

농상공대신 김윤식

궁내부대신 이범진

내각이 실질적으로 조선을 통치하는 기관이니만큼 이 10인이 권력의 중추였다.

개전 이후 전시 거국 내각이 수립되어 이선을 필두로 하는 개화당 문명개화파 5인, 김홍집을 필두로 하는 온건파 5인으로 균형을 맞추었다.

전시내각은 효율적으로 전쟁을 이끌었고, 정파를 불문하고 승전에 크게 만족했다.

"조약문의 내용에 관해서는 여러 대신께서도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삼국 간에 논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외무대신 김옥균이 강화 조약을 보고했다.

"훌륭합니다. 이로써 우리 조선은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이 되었고, 영토를 확장했으며 넉넉한 배상금도 받게 되었군요. 대표단 모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총리대신 김홍집이 만면에 미소를 띠고 결과에 만족감을 표했다.

"이번에 할양받은 영토는 단순히 조상의 고토이거나 군사적 가치만 따져서 얻은 게 아닙니다. 요동 안산 일대에는 철광이 있고, 간도 훈춘과 화룡 일대에는 탄광이 있습니다. 안산의 강철은 동양 최고의 고품질이고, 훈춘과 화룡의 탄광은 조선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유연탄을 다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모두 향후 조선의 산업화에 귀하게 쓰일 자원이지요."

아직 안산 철광과 훈춘-화룡 탄광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대신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미처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청국은 그 가치도 모르고 순순히 내줬단 말입니까?"

"그러니 외교적 승리지요. 완화군께서 극비리에 서양 지리학자들과 할양받을 영토의 경제적 가치를 조사하였고, 이 조약에 반영되었습니다."

이선의 지식은 사전에 빈틈없이 조사한 것으로 포장되었다. 대신들은 더욱 찬탄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화군 대감의 방대한 지식과 철두철미한 준비는 언제나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감의 두뇌야말로 우리 조선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지요, 하하하."

"과찬입니다."

"고평은 7000만 냥이면, 현 1년 예산의 10배가 넘습니다. 조정의 목표인 식산흥업에 귀중하게 쓰일 돈이지요. 금은본위제 실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탁지부대신 어윤중의 눈이 빛났다. 조선 최고의 재무 관료인 어윤중은 경장 이후 10년간 분주하게 노력했다지만, 조선의 재정은 여전히 열악했다.

세입이 많이 늘어난 만큼 근대화에 필요한 막대한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토지세와 인두세, 광물 및 각종 자원의 개발과 수출, 해관세가 주된 수입원이었지만 늘어나는 재정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모자라는 재정은 외국에서 차관을 빌려 메꾸고 있었다.

화폐 조례를 반포해 은본위제를 실시했지만, 조선이 보유한 은이 모자라 태환권의 가치가 시장에서 존중받지 못했고 확실히 정착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국가의 총력을 건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재정 상황이었다. 일본이 전비의 8할을 부담하고,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가 막대한 차관을 빌려준 덕에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청국에게서 받은 배상금으로 모든 재정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계속 불어났던 차관도 갚을 수 있고, 재정 적자도 메울 수 있었다.

은본위제와 화폐경제를 확립시켜 장차 세계의 대세인 금본위제로 전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아직 조선은 농업이 절대다수이지만, 상공업의 진흥과 산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민교육과 토지개혁이라는, 국가적 개혁 과제에도 순조롭게 착수할 수 있었다.

군비도 확충하여 군수공업을 발전시키고, 군사 강국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만큼 승전으로 얻은 유·무형적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실로 열성조가 보우하시고, 우리 군민이 위로는 대군주에서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상하가 일치된 덕에 빛나는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역사에 길이 남을 일입니다."

내각의 최연장자인 농상공대신 김윤식의 감격에, 김홍집과 온건파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개화당 대신들의 표정은 미묘하기 짝이 없었다. 김옥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요청했다.

"내각 서기관과 대신 이하 관료들은 자리를 비켜주었으면 합니다. 지금부터 논의될 사항은 극비입니다. 이는 결코 외부에 새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비밀회의를 요청합니다."

각의에는 10명의 대신 외에도 기록하고 보조할 내각 서기관 등 중급 실무관료들이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밀회의 요청에 김홍집이 물었다.

"외무대신,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시오?"

"시모노세키에서 확인한 극비 사안입니다."

흔치 않은 일이었으나 사안의 심각성을 받아들인 김홍집은 요청을 재가했다.

"지금부터 각의를 비공개로 진행합니다. 각부 대신만 참석하고, 다른 이는 모두 퇴장하시오."

10명의 대신만 남자, 김옥균은 이홍장으로부터 받은 밀서의 내용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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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왕 신(臣) 이형이 황상께 엎드려 아룁니다.

근자에 이르러 소방(小邦)이 대국에 맞서고 있는 것은 결코 신의 본의가 아닙니다.

임오년 이래 일부 왕족과 강신(强臣)들이 왕권을 침해하고, 국사를 멋대로 농단하고 있습니다.

조선이 제후국의 본분을 벗어난 건, 이들 강신의 강요였지 결코 신의 본의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이제는 일본이나 서양과 연대하여 대국과 맞서 싸우려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부디 황상께서는 밝게 봐 주시어, 전쟁의 위기에 내몰릴 조선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의 군민은 결코 대국과의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대국에 반역하는 일부 강신만 조정에서 제거된다면, 평화는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황상의 너그러운 성단을 갈구하는 바입니다.

광서 20년 조선국왕 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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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건……."

대신들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혼란스러워했다. 마침내 김홍집이 힘겹게 입을 뗐다.

"대체 이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보시다시피, 성상께서 개전을 앞두고 청국 예부에 보낸 밀서입니다. 이홍장이 개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시모노세키 회담에서 공개한 문서입니다."

"분명 청국이 대군주의 명의를 팔아 전쟁 명분을 정당화하려 했지요. 그렇다면 이것도 가짜 문서가 아니겠습니까?"

부총리 격인 참정대신 박정양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맞습니다. 이홍장과 청 조정이 전쟁명분을 얻고자 멋대로 만든 괴문서임이 틀림없습니다. 성상께서는 만청 오랑캐를 무찌르고자 선전(宣戰) 조서를 쓰셨으며, 종묘사직에 자주독립을 고하셨습니다. 어찌 다른 한편으로 청국에 이런 밀서를 보내셨겠습니까?"

대신들 중 가장 충성스러운 궁내부대신 이범진이 대군주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성상께서 청국에 밀서를 보냈다는 건 쉽게 믿기 힘듭니다. 어보가 찍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청국이 패전의 앙심을 품고 거짓 문서를 만들어 조선의 군신을 이간하려고 하는 건지 의문입니다."

김윤식과 어윤중도 조심스러워하며 믿기 어렵다는 데 동의를 표했다.

급진파와 온건파는 전쟁 기간 내내 의견이 일치했으나, 마침내 전선이 갈리게 되었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유길준 등 개화당 각료들은 이미 일찌감치 이선을 지도자로 받들고 있었다.

군주에 대한 충심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문명 개화론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충성 대상은 '군주'와 '왕조'에서 '국가'와 '민족'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김홍집, 박정양, 김윤식, 어윤중, 이범진 등 온건파 각료들은 근대화에는 동의했으나 유학자의 면모를 지닌 동도서기(東道西器) 관점을 유지했다.

유학을 익힌 이들에게 군주는 관념상 절대적인 존재였다. 위정척사파들로부터 '서양 오랑캐의 습속에 물들어 지엄한 군권을 침해하는' 자들이라고 비난받으며 개화 정책을 추진한 동도서기파 관료들도 예외가 없었다.

개화당이 군민공치(君民共治)론을 내세워 헌법의 제정과 의회제의 수립, 근대적 입헌군주제로의 진전을 원했다면, 동도서기파는 조선 전기 정도전이 구상했던 군주권의 제약과 신권 우위론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신하 된 자로서 군주를 의심하고, 적국에 보내는 밀서의 진위를 따지는 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는 공적으로는 성상의 신하요, 사적으로는 아들이 됩니다. 성학의 법도를 따르면,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하고, 자식은 어버이에게 효성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비록 불민한 몸이나, 성상을 위해 충효를 다했다는 건 여러 대신들께서도 알아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선이 하는 말에 대신들은 정파를 막론하고 동조의 빛을 보였다.

그들 모두 이선이 조선의 실질적인 지도자요, 최고 지도자로서 능력을 갖추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건국되고, 유교적 명분론이 지배하는 조선에서 '신하이자 아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었다.

비상시국에 직면하여 이선이 그 범위를 벗어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었으나, 한계선은 넘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이선의 처신은 동도서기파는 물론이고 근대화에 부정적인 보수파들도 높이 평가하는 바였다.

"대군주를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밀서의 진위는 밝혀져야 합니다. 여러 대신께서는 미처 모르는 사안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좌중의 시선이 이선에게 모두 집중되었다.

"나는 이홍장과 독대를 하여 문서의 진위를 밝히고자 했습니다. 이홍장의 말에 따르면, 이 밀서가 작년 개전 직전 예부에 접수된 건 사실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조선 문제는 전통적으로 예부가 관할했다고는 하지만, 개항 이후 총리아문과 북양대신이 전담했습니다. 예부에 보냈다는 것 자체가 착오로 여겨집니다."

경장 이전, 한동안 대청 외교를 전담했던 김윤식이 의문을 표했다. 다른 각료들도 의아해했다.

"이유가 있었더군요. 이홍장에 따르면 밀서는 작년 말고도, 계미년과 을유년에도 있었습니다.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뭐, 뭐라고요!"

순간 대신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시기가 의미심장했다. 계미년(1883)은 임오군란 직후, 을유년(1885)은 갑신경장 직후였다.

"밀서는 북양대신에게 접수되었으나, 그때는 이홍장이 신정권을 승인한 상태였으므로, 청 조정에 상신하지 않고 묵살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예부를 통해 북경 조정에 직접 상신한 것이지요."

"그, 그러나, 그건 증거가 없고 오직 이홍장의 증언뿐……."

말은 그렇게 해도, 온건파 대신들의 표정도 굳어졌다. 물증은 없어도, 심증은 있었다.

"이는 국태공께서도 알고 계신 일인데, 임오년 군란 직후 성상의 밀사를 자처한 자가 청군의 개입을 요청하러 가다가 인천에서 잡힌 일이 있었습니다."

"기억납니다. 하지만 이는 역적 민겸호와 민영준 등이 성상의 명의를 팔아 거짓 밀서를 만든 게 아니었습니까?"

"성상께서 부정하셨으니 국태공은 두 역적에게 죄를 물어 참수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비슷한 일이 반복되니 이상할 따름입니다."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서광범이 잇달아 목소리를 냈다.

"신하 된 자로서 결코 군주를 의심하고 싶지 않으나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어찌 조사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성상께서 개화를 지지하면서도,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게 여러 번이었습니다. 하필 임오군란과 갑신경장, 갑오전쟁과 시기가 기묘하게 얽혔을 때 밀서 파동이 일어났다는 게 의심스럽습니다."

"이 사안은 결코 묻어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을 앞두고 적국과 내통한 자가 있었다면, 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밀서를 보낸 자가 대군주가 아니라면, 대군주의 명의를 도용해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 자를 잡아내 처벌해야 합니다."

김홍집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극비리에 진행하고, 절대 밖으로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신하가 군주를 의심하는 상황이 참담해서 만이 아닙니다. 나는 성상께 충성을 맹세했기에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믿습니다마는,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김홍집은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그의 심정이 평안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대체 이 일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군주가 신하를 토벌하기 위해 외세에 지원을 요청하다니. 국가와 왕실의 위신 자체가 흔들릴 것입니다."

"어찌 국가와 왕실의 위신 문제입니까? 이 전쟁의 공로자이신 완화군께서는 왕실의 일원이 아닙니까? 만약 사실이라면, 책임져야 할 분이 책임지시면 될 일이지요."

유길준의 말은 더욱 노골적이었다. 김홍집이 목소리를 높였다.

"법무대신, 사안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오! 지금까지 조선의 통치는 대군주의 정령(政令)으로 이루어졌고, 전쟁과 평화도 모두 대군주의 조서로 시작되고 끝났소. 국가의 통치권과 군의 통수권도 누구에게 있소? 대군주께 있소. 우리 내각은 단지 대군주의 위임을 받았을 뿐이오. 그런데 대군주에게 어찌 책임을 물릴 수가 있겠소? 승전으로 고양된 국민에게는 대체 뭐라고 공표할 것이오?"

"바로 그걸 바로 잡자는 겁니다. 대군주의 정령이 아닌 헌법과 민의에 기초한 의회, 이를 대표하는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로 나아갈 기회가 되겠지요."

군주국인 조선의 특성을 고려해 군민공치론을 주장했다지만, 공화국인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한 유길준의 이상은 '민'과 '민을 대리하는 정부'의 통치였다. 개화당은 이에 동조했다.

개화당은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지금처럼 '군주의 위임을 받아 대리'하는 형태가 아니라 군권을 견제하고 정부가 국가를 통치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길 원했다.

이제 핵심 사안은 군주가 청국에 밀서를 보냈느냐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통치권의 향방,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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