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조선의 왕자
북방 시찰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도, 이선은 공직을 맡지 않고 휴식을 취했다.
여전히 여러 영역에 있어서 이선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이선은 정부에 국내 정치를 위임했다.
‘다들 전문성 있는 유능한 관료인데, 내가 모든 영역에서 만기친람 할 필요가 없지.’
이선은 1896년 3월에 떠날 사절단장의 임무에 충실히 하고자 했다.
그는 여러모로 서양으로 향하는 사절단장으로 최적의 인사였다. 조선에 체류하거나 방문하는 서양인들은 이선을 하나같이 극찬했다.
여기에는 국적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최근 조선을 방문하는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그 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근래 조선을 수차례 방문한 영국 국적의 여성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이선과 여러 차례 인터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각하의 배려 덕에 지방 여행도 편안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사의 여정에 도움이 됐다니 기쁩니다."
이사벨라 비숍은 50대의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행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세계를 돌아다녔다.
19세기 후반에 교통이 발전하면서 세계 여행이 본격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불편한 점이 많았다. 더욱이 여자가 세계 여행을 다니는 건 서양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특히 서양인에게 문호를 늦게 연 조선은 오랫동안 미지의 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비숍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고, 그녀는 20년 넘게 세계를 여행하며 여행기를 남겼다. 비숍은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왕립지리학협회(Royal Geographic Society)의 회원이기도 했다.
"정말 조선은 매력이 넘치는 나라예요. 고유의 전통 사회가 어떻게 현대로 변모하는지, 일전에 방문했던 일본 못지않게 흥미로운 사례예요. 특히 제가 방문했던 시기는 조선과 동양의 역사가 크게 바뀌는 대변혁의 시기였죠. 이때 조선에 올 수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숍은 1894년 초 조선에 처음 도착했다. 이미 청국과 일본에 체류했던 그녀이지만, 두 나라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조선에 푹 빠졌다.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길게 2년째 체류 중이었다.
다른 서양인들처럼 인천이나 한양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당시만 해도 서양인에게 미지나 다름없는 조선 전역을 여행했다. 심지어 머무는 도중에 전쟁이 터졌음에도 비숍은 조선을 떠나지 않고 전선 일대도 방문했다.
여기에는 이선의 배려가 있었다. 이선은 그녀에게 전국을 여행할 수 있는 통행증을 발급해 주었고, 영어가 유창한 통역과 믿음직스러운 수행원을 시켜 호위하게 했다.
아직 서양과의 교류가 길지 않은 조선에서 특히 시골은 서양인을 신기하게 여겼다. 그나마 방문자들은 대부분 상인이나 선교사였는데, 여성 여행가의 방문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비숍이 어디에 도착했다 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들었다.
"서양 여자다!"
"와, 서양 여자는 저렇게 생겼구만. 진짜 허여멀건하네."
"어느 나라 사람이야?"
"영국이라던데."
"영국이 어디야? 아무튼, 참 멀리까지도 왔네."
"어휴, 저렇게 불편해 보이는 옷을 입고 어떻게 돌아다니는 거지?"
오히려 자신이 구경거리가 되는 상황을 비숍은 익숙해져 있었다. 중국이나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면, 통역과 수행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분은 조선 왕실의 귀빈이시다! 완화군 대감께서 초청하신 분이니,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라."
왕실의 귀빈, 완화군의 초청을 받은 손님이라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반겼다. 덕택에 비숍은 어디를 돌아다니건 극진한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조선이란 나라에 잘 알지 못했어요. 그저 동쪽 끝에 있는,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있는 약소국 정도로만 생각했죠. 그동안 서양, 특히 영국에서는 조선에 관해서 악평이 훨씬 많았고요. 처음 올 때만 해도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비숍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조선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죠. 조선인들은 새로운 사회를 위해 열심히 건설해 나가고 있습니다. 중국과 대비될 정도로 말이지요. 유능하고 정직한 정부가 이끌게 되면, 국민과 국가가 바뀔 수 있다는 걸 조선이 증명했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기쁜 칭찬이로군요."
실제 역사에서도 비숍은 3년 간 동아시아에 체류하며, 조선에 4차례 방문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개인적 능력에 대해서는 호평했지만, 조선 전반에 대해서는 악평에 가까웠다. 그녀는 특히 양반과 관리들을 ‘합법적인 흡혈귀’라고 격렬히 비판했다.
조선인의 무능과 게으름을 질타하던 비숍은, 연해주를 방문하고 생각이 바뀌게 된다.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극동의 어느 민족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재산을 축적하고 진보를 받아들였다. 조선인의 무능과 게으름이란, 양반의 수탈과 조정의 학정 때문이었다.
비숍은 조선인이 가능성이 충분한 민족이라고 인식했다. 유능하고 정직한 정부의 지배만 받게 되면, 조선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변화한 역사에서 조선은 이를 증명한 셈이었다.
비숍뿐만 아니라, 이 당시 조선을 방문한 방문객들은 모두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오스트리아 귀족 출신 여행가 에른스트 폰 헤세- 바르텍(Ernst Von Hesse-Wartegg)도 1894년 조선을 방문해 이선을 만났고, 조선에 찬사를 보냈다.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진정성을 가진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 냈다.
10년 전 조선을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믿을 수가 없는 정도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조선 : 아침의 나라로 가는 여행』, 1895.
실제 헤세-바르텍도 조선 지배층에 대해 격렬하게 비난했던 사람임을 생각하면, 책의 내용이 완전히 바뀐 셈이었다.
이사벨라 비숍이 집필할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urs)』의 내용도 크게 바뀌리라.
단기간 머무는 여행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머물며 조선의 변화를 체험한 장기 체류자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특히 여성들의 찬사가 더욱 높았다.
조선 최초의 여성학교인 이화학당 학장 메리 스크랜턴(Mary Scranton), 선교사 언더우드와 결혼한 의료 선교사이자 왕실 여성 주치의 릴리아스 홀튼(Lillias Horton), 러시아 공사 베베르의 처남의 처형(妻兄)으로 왕실 의전관이 된 독일인 앙투아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 등은 하나같이 이선의 진보성을 호평했다.
"이선 왕자는 조선, 아니 서양의 그 어떤 왕족보다 진보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철저히 금지되던 보수적인 유교 국가 조선에서, 왕자는 여성 교육과 사회 진출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가장 천시되던 백정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다. 왕자는 신분과 성별에 의한 오랜 차별을 깨부수고 있다. 그는 조선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재한 외국인들의 이선에 대한 호평은 나이 지긋한 부인들만 찬사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조선에 체류하는 젊은 외국인 여성이라고 해봐야, 외교관과 상인의 자녀뿐이었다. 이들은 대개 ‘극동의 낙후한’ 조선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가, 조선에 와서 생각이 점차 바뀌게 되었다.
특히 신분이 높으면서도 영어가 유창하고, 서양식 예법에 익숙하며, 박학다식하고, 러시아 황실과 특별한 관계가 있으며, 여성을 대하는 매너가 세련된 ‘조선 왕자’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외국 공관이 밀집되어 있는 정동의 호텔에는 서양인들이 모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선도 바쁘지 않을 때는 곧잘 방문하곤 했다.
그날은 1895년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는 날이었다.
"조선 왕자님 말이야, 왜 결혼하지 않는 걸까?"
"그러게. 서양과 달리 조선은 결혼을 엄청 일찍 하던데."
미혼의 서양인 영애들이 이선을 보며 속닥거렸다.
"혹시 잊지 못할 연인이라도 있는 걸까?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넌 연애소설을 너무 많이 봤구나. 왕족, 특히 동양에서 결혼은 가문에서 정해 준 정략결혼밖에 없어."
"그러면 대체 결혼 안 하는 이유가 뭐냐구. 조선도 바뀌었으니 결혼관도 바뀐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겠네."
"혹시 서양 여자에는 관심 없을까? 결혼만 할 수 있다면 바로 왕족 부인이잖아."
"이교도에다 황인종인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뭐 어때서? 저 왕자님은 동양인이라지만 키도 크고 인물도 좋은데."
"조선에서 퍽이나 허락하겠다! 우리 부모님은 찬성하겠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딨어? 미국 공사 영애도 한참 위인 독일 공사랑 결혼했잖아."
1891년, 조독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 주청 독일 공사 막스 폰 브란트(Max von Brandt)는 주조선 미국 공사 어거스틴 허드(Augstin Heard)의 딸 헬레나와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브란트는 56세, 헬레나는 23세라는 점이었다. 허드 공사는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결국 결혼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긴 그렇네. 프랑스 공사도 조선 여인과 결혼했잖아. 그것도 조선 왕자님이 주선해 줘서."
"그래, 안될 것도 없다니까. 동서양을 뛰어넘은 사랑! 얼마나 낭만적이야?"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랭시는, 한눈에 반한 왕실 무희와 혼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선의 주선으로 왕실의 특별한 허락을 받은 덕이었다.
‘다 들린다, 다 들려.’
이선은 쓴웃음을 지으며 외교관들과 술잔을 부딪쳤다.
그는 슬슬 결혼을 염두에 둘 나이이긴 했다. 아니, 28세라는 나이는 당시 조선 기준에서 볼 때 굉장한 노총각이었다.
이선도 사람인데, 기본적 욕구인 성욕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이 방면에는 정통한 풍류남아 김옥균과 함께 유흥을 즐기며 가끔 여성과 관계를 맺고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왕족 체면’에 이조차도 자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수적인 환경에서 조선 여인들이 이선에게 먼저 좋다고 표현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고, 그나마 이선에게 호감을 보이는 서양 여인들은 조용히 넘어가야 했다. 보수적인 ‘왕족 체면’에 자유로운 연애 같은 건 있을 수가 없었다.
왕실, 특히 대원군은 이선을 10년 전부터 결혼시키려 했지만, 번번이 이선의 반대에 실패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이선이 왕좌에 오르기로 결심한 이상, 국모의 자리를 비운다는 건 용납 못할 일이었다.
1896년 정월, 이선은 운현궁의 호출을 받았다.
"이제 네 나이가 벌써 스물아홉이다. 대체 혼례를 언제 할 생각이냐?"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손자가 예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자 대원군은 흡족해했다.
"좋다. 네가 왕족이니 삼간택의 형식을 따라야겠지만, 이 할아비가 생각해둔 바가 있느니라."
대원군은 사진을 꺼내 이선에게 보여 주었다.
"미인이시네요."
이선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한복을 입은 묘령의 여인은 갸름한 얼굴에 기품을 지닌 미인상이었다. 조선의 미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구적이고 현대적인 미인상에 가까웠다.
"그래, 네가 좋아할 줄 알았다. 가만 보니 너는 서양물을 먹어서 그런지, 서양풍의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그러니 서양 여자들이 다니는 정동에 자주 들락거리는 거 아니냐?"
"…… 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뭐, 그럴 수야 있지. 나도 젊었을 때는 무척 풍류를 즐겼었다. 하지만 너는 장차 지존의 자리에 오를 사람이니 안 된다."
이선은 한숨을 쉬었다가 물었다.
"그래서 이 여인이 누구입니까?"
"중전의 먼 친척뻘인, 광산 김문의 여식이다. 중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 집안이 부녀(婦女) 교육을 아주 잘 하는 것 같아. 이 여인도 교육을 잘 받았다더라. 네가 좋아하는 서양식 교육도 받는 모양이다. 무인년 생이니 너랑은 딱 열 살 차이구나. 이만하면 괜찮지 않으냐?"
대원군은 명문가이면서도 정치적으로 무해한 집안에서 혼처를 얻길 원했다. 중전의 처신을 통해 광산 김문에게 만족감을 느낀 대원군은, 그 가문에서 이선의 취향에 맞을 미혼 여성을 물색해서 뽑아낸 것이었다.
한 가문과 연속으로 국혼을 이룬다는 건 피해야 할 것 같았지만, 대원군은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 자신이 3대 연속으로 여흥 민문과 혼사를 맺은 터였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지만, 학문으로 이름 높은 명문가이지만 정치적 세력은 없는 광산 김문은 딱 적당한 혼처 상대였다.
‘…… 나나 이 여인의 의사 같은 건, 물을 생각도 없으시겠군. 아니, 애초에 가문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당사자가 혼사를 결정한다는 개념조차 없지.’
사진 속의 여성은 아름다웠다. 중전과 같은 가문의 사람이라면, 분명 교육도 잘 받았으리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진보적이란 추측은, 조선의 미혼 여성이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아직 사진에 익숙하지 않았고, 특히 여성들은 사진기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꺼렸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신감 있는 자세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를, 아니 시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래도 21세기의 기억을 갖고 있는 내가, 19세기 조선의 여인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서로 대화나 제대로 통할지 의문인데.’
이 여인이 중전과 비슷한 성격이라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현명히 남편이자 군주를 잘 내조하리라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과연 평생을 함께 살 부부간에 세계관의 근본적인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어차피 정략결혼이니 상관없으려나? 그저 정략결혼일 뿐이라면, 더 큰 정치적 이익을 고려해야 하지 않나?’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일단 아라사에 사절단을 다녀오는 게 급선무입니다."
"기다리도록 하마. 어차피 삼간택 과정을 거치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네가 귀국하는 대로 혼례를 치르도록 하자."
대원군은 이선의 의사와 관계없이 혼례를 강행할 뜻을 보였다. 대원군의 단호한 의사 표현에, 이선은 말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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