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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228화 (227/812)

228화 왕족의 책무

"자네, 결혼 안 하나? 결혼할 때가 됐잖아?"

"그러게요, 어째서 결혼을 하지 않았나요? 조선 최고의 신랑감일 텐데."

니콜라이에 이어 알렉산드라도 관심을 표했다.

‘…… 왜 다들 내 결혼 여부가 그리도 궁금할까?’

이선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다가, 밝게 웃으면서 답했다.

"안 그래도 준비 중입니다."

"호오, 잘 됐군. 나도 즉위 직후에 알릭스와 혼례를 올렸네. 국가에 황후를 비워 둘 수는 없지 않겠나."

"옳으신 말씀."

"그럼 혼처는 정했고?"

"고려하는 단계일세."

니콜라이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의문점을 물었다.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네. 유럽에서는, 특히 군주가 될 사람은 왕가 간의 결합이 일반적이지. 로마노프 왕가의 경우도 혼처는 늘 서방에서 구해왔네."

당장 니콜라이의 아내가 독일인, 어머니는 덴마크인이었다.

"하지만 동양은 잘 모르겠네. 오스만 튀르크만 해도 하렘(후궁)을 유지하고 있지, 왕가 간의 결합을 이루는 건 아니니까. 중국도 오스만이랑 비슷한 거로 알고 있는데, 일본이나 조선은 어떤가?"

‘…… 역시 그거 물어볼 줄 알았다.’ 이선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질문이었다. 이선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다가 말했다.

"조선과 일본도 엄연히 동양일세. 왕실의 전통으로 따지면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지."

"하지만 조선과 일본은 서구화를 국가적 방침으로 채택하고 있지 않나? 중국과 좀 다를 것 같은데."

"물론 크게 바뀌고 있지만, 왕실은 사회의 모든 분야 중에서 가장 전통에 집착하는 곳이지. 러시아도 표트르 대제 이래 서구화되었지만, 대관식에 있을 황실 전례만큼은 비잔티움 양식을 유지하지 않나?"

이선의 지적에 니콜라이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그렇지. 러시아의 신성한 영혼은 전통에서 기원한 것이고, 모스크바는 제3의 로마니까."

"역으로 내가 물어보고 싶네. 비기독교인이 기독교인과 결혼하려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하지 않나?"

"그렇지."

"기독교 내에서 다른 교파랑 결혼해도 마찬가지. 원래 황후 폐하께서도……."

"프로테스탄트 루터교도였지요. 지금은 신실한 정교회 신자이지만."

기독교 내부에서도, 다른 교파 간에 결혼해도 개종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 가장 엄격했다.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조선 역시 유교적 전통을 따릅니다."

이선은 니콜라이를 향해 차분히 설명했다.

"비유하자면, 이런 걸세. 영국 국왕은 성공회의 수장이고, 독일 카이저는 루터교회의 수장이지. 오스트리아 카이저는 가톨릭의 수호자이고, 마찬가지로 러시아 차르는……."

"신앙의 수호자, 정교회의 수호자이지."

독실한 신앙인이기도 한 니콜라이는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조선 또한 같네. 조선은 유교 이념을 내세워 건국했네. 비유하자면 서양의 국교와도 같지. 국왕은 군주인 동시에 유교 이념을 구현하는 존재일세. 유교에 대한 엄격한 규율은, 조선 사회 전반에 깔려있어. 이 점에 관해선, 만주족의 청나라보다 훨씬 엄격하네. 청 황실은 불교를 믿으니까."

이선은 개인적으로 조선을 지배해오던 유교 이념을 부정했지만, 그 자신이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더욱이 개인이 아닌 군주가 될 사람은 더욱.

"물론 나 자신은 그게 지금 시대에 맞는가 하면 회의적이고, 근대화를 위해 노력 중일세. 하지만 건국 이래 500년 간 내려온 조선의 전통을 깡그리 무시할 수 없지."

"그렇군, 잘 알겠네! 과연 동양에는 유구한 전통이 있군. 그렇다면 마땅히 그 전통을 지켜야지. 그게 아름다운 일일세."

니콜라이는 깊은 감명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서적으로 표트르 대제 이후의 서구화된 러시아가 아닌 17세기 로마노프 왕조 초기의 전통에 더 호감을 느끼는 니콜라이는, 보수 반동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격변기의 러시아를 이끄는 가장 보수적인 황제였다. 변화를 부르짖는 국민의 목소리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반대로 이선은 근대 사회에 매력을 느끼는, 조선에서 가장 진보적인 왕족이었다.

니콜라이가 암시하는 왕가 간의 결합은 이선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렇게 되면 ‘유럽 왕가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봤을 리가 있나. 하지만 아무리 변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더라도, 아직 조선에선 왕족의 국제결혼이나 혼혈아의 왕위 계승권은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조선 사회의 99%가 반대할 일을 밀어붙였다간 내 정치생명은 그날로 끝장일 텐데.’

이선은 니콜라이와 달리 여론을 고려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원한다고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선과 니콜라이는 한동안 더 환담을 나누다가, 시간이 되자 일어섰다.

"오늘 즐거웠네. 일이 많아서 더 오래 이야기를 못 해 아쉽군."

"국정이 바쁘신데, 당연히 일을 중시하셔야지."

"정말 군주가 되니 책임이 무겁네. 사실 난 자네한테 친구로서는, 할 수만 있다면 왕위에 오르지 말라고 권하고 싶네만……."

전제군주로서 엄청난 부담감을 갖고 있는 니콜라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주로서는 그렇게 말하기가 힘들군. 마땅히 신께서 왕족인 우리에게 주어진 책무가 아니겠나?"

"왕족으로서 국가와 국민이 부여한 책무를 마다할 수가 없지."

‘신’과 ‘국민’, 지향점의 차이가 단어에서부터 드러났지만, 니콜라이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어쩔 수가 없군."

"피차 힘내도록 하는 수밖에."

"아 맞아, 다음 주말에 황실 무도회가 있네. 자네도 왔으면 하는군."

"춤은 잘 못 추네만, 초대는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지."

"하하, 춤이야 배우면 느는 걸세. 그럼 다음 주말에 또 보자고."

니콜라이는 이선과 반갑게 악수를 하며 작별을 고했다.

대관식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전 세계에서 사절단이 몰려왔다.

5월 1일, 이홍장이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러시아 외무부에서는 미리 이집트까지 환영 사절을 보내 모셔올 정도로 이홍장을 예우했다. 그만큼 러시아가 동아시아 문제, 특히 만주에 관심이 많다는 의미였다.

4일에는 이홍장과 니콜라이 2세의 회견이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재무대신 비테의 적극적인 주선이 있었다.

이선은 비테와 자주 회동하며 만주 문제를 논의했다. 러시아와 청국의 양자 협상이 아니라, 조선까지 포함된 삼국협상으로 발전시킬 계획이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출발한 의화군 이강 일행이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이강을 수행하기 위해 조선에서 출발한 민영환, 서재필, 윤치호 등과 함께였다.

"완화군 형님, 아우 강이 인사 올립니다."

"오랜만일세, 의화군. 못 본 사이에 헌헌장부가 다 됐구나."

3년 만에 타지에서 재회한 형제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올해 약관(弱冠, 20세)의 나이가 된 이강은 용모 단정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미국 생활은 어땠는가?"

"형님의 배려 덕에 아주 잘 지냈습니다. 처음에는 멀리 미국까지 가는 게 불안하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왜 형님께서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지요."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한 이강은, 그 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이강은 미국 유학을 통해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기풍을 적극적으로 흡수했다.

9살 터울의 이복동생을 왕실 외교의 후계자로 양성하려는 이선으로선 바람직한 변화였다.

"이제 자네를 러시아 사교계에 소개할 때가 왔군. 이번 주말에 황실 무도회가 있는데, 함께 가겠나?"

"하하, 바라던 바이지요. 제가 미국 생활하면서 무도회는 꼭 빠지지 않았습니다."

이선과 이강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이강에게는 유흥을 즐기는 탕아 기질이 있다는 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막중한 정치적 책무를 지닌 이선과 달리, 이강은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었다.

실제 역사라면 중전 민씨의 압박을 받으며 눈칫밥을 먹고 자랐겠지만, 여기선 이선의 후원을 받아 자유로이 살 수 있었다.

미국 유학은 이강의 삶에서 자유와 풍류가 꽃피는 순간이었다. 공화국인 미국에서는 ‘동양의 왕자’라는 타이틀을 흥미롭게 여겼고, 밝고 사교적인 성격의 이강은 어딜 가나 환영받는 인사였다.

이강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도, 파티 자리를 빼놓지 않는 미국 사교계의 스타였다.

"유럽 왕실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형님은 이미 러시아 사교계의 별이시니 부럽습니다."

‘후, 나는 네가 부럽다. 나도 너처럼 살아 보고 싶은데.’ 장남이자 정치가인 이선과 삼남이자 유학생인 이강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이선은 이강의 미국 생활에 대해, 주미공사관에서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공사관에서는 조선 왕족의 체모(體貌)에 어울리지 않는 이강의 ‘방종’을 은근히 비판했지만, 이선은 개의치 말고 자유롭게 생활하라 권했다.

어찌 보면 이선은 이강의 자유로운 삶에서 대리만족을 얻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5월 9일 토요일. 겨울 궁전에서 황실이 주최하는 무도회가 있었다.

참석자는 로마노프 왕조의 일원과 고위 귀족들, 유럽 각국에서 대관식에 파견한 왕족들이었다.

비유럽권에서는 오스만 왕가, 페르시아 왕가, 시암 왕가, 일본 왕가, 조선 왕가에서 보낸 왕족이 대관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들도 무도회에 초대받았으나, 서양식 무도회는 익숙하지 않은 자리였다.

그중 한 사람은 예외적인 존재였다.

"이야, 역시 본고장의 무도회! 미국하고 비교할 수가 없군요."

의화군 이강은 가장 흥이 난 동양 왕족이었다.

차르와의 특별한 관계로 인해 이선은 러시아 황족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자연히 그 곁에 있는 이강도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선 못지않게 체격이 크고 인물이 좋은 이강은, 서양식 연미복이 잘 어울렸다. 체구가 작은 일본이나 시암 왕족과 비교하니 더욱 눈에 띄었다.

"조선 왕자님. 저랑 같이 춤추시겠어요?"

아리따운 러시아 귀족 여성이 다가와 춤을 권하자, 이강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순서를 지켰다.

"형님, 먼저 나가시죠."

"호의는 감사하지만 저는 춤을 잘 못 춰서요. 제 동생이 에스코트 해 줄 겁니다, 아가씨."

이선의 권유에 이강은 마다하지 않았다. 이강은 귀족 여성의 손을 붙잡고 왈츠를 추러 나갔다.

미국에서 무도회에 자주 참석하며 왈츠를 익힌 이강은 자연스럽게 추었다.

"음, 이 와인 참 좋군. 1874년산이라. 기억해둬야겠어."

이선은 여인들과 춤추는 것보다 좌석에서 황실 전용 최상급 와인을 맛보는 걸 선택했다.

서양식 예법을 익혔다지만, 춤은 영 아니었다. 왈츠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이미 조선에서 도전해 봤지만, 파트너의 발을 여러 차례 밟으면서 결국 포기해 버렸다.

‘춤 못 춰도 내겐 혓바닥이 있으니까 괜찮아. 서툰 춤으로 망신당하느니 이게 낫지. 강이 나 대신에 해 주니까 좋네. 역시 미국으로 유학 보내길 잘했어.’

"안녕하세요, 이선 왕자님."

이선은 자신을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묘령의 서양 여인은 황갈색 머리칼과 눈빛을 지닌 아름다운 용모였다. 딱 봐도 귀티 나는 여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조선의 왕자 이선입니다. 귀인의 이름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이선은 정중히 목례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여인은 드레스의 양손을 잡으며 허리를 굽혀 답례하더니, 쿡쿡 웃었다.

"아마 왕자님께서는 기억 못 하시나 본데, 저희 처음 만나는 거 아니에요."

이선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지? 내가 모르는 로마노프 황족인가?’

"죄송합니다, 아가씨.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누구신지 알려 주시면 앞으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이번만 용서해 드릴게요. 이 사진은 기억하시나요?"

여인은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차르 알렉산드르 2세와 아직 어린 이선이 찍은 사진이었다.

이선은 기억이 났다. 1881년 3월의 암살 기도를 막은 직후, 차르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 돌아가신 선제 폐하와 함께 찍은 사진이로군요. 기억하다마다요."

"여기 저도 있어요."

알렉산드르 2세의 품에는 3, 4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안겨 있었다. 이선은 사진 속의 아이와 눈앞의 여인을 비교했다.

"아, 그러면 아가씨께서……."

"예, 알렉산드르 2세의 막내딸, 예카테리나 알렉산드로브나입니다."

여인의 소개에 이선은 비로소 그녀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알렉산드르 2세가 나이 60에 얻은 막내딸, 예카테리나 알렉산드로브나 유리예프스카야(Yekaterina Alexandrovna Yurievskaya).

로마노프 성을 쓸 수 없는 걸 알 수 있듯이 정실 소생은 아니지만, 분명히 차르의 딸인 ‘공주(knyagina)’였다.

차르가 늦둥이 막내딸을 얼마나 귀여워했는지, 이선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선과 만날 때도 일부러 데려와서 재롱떠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아버지를 암살로부터 구해 주신 왕자님을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사실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 못 하거든요. 드디어 그 소원을 이뤘군요."

예카테리나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 229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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