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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혁명의 시대-237화 (236/812)

237화 세기말 빈

1896년 7월, 이선과 조선 사절단은 러시아 체류를 마치고 떠나게 되었다.

이선은 러시아를 떠나기 전 정재계 인사들과 회동을 이어 나갔다.

재무대신 비테와 노벨 가문이 가장 잦은 접촉자였다.

비테는 ‘평화로운 방식의 극동 침투’에 열을 올렸고, 이홍장과 이선을 파트너로 선택했다.

이선은 여기에 노벨 가문을 끌어들였다.

러시아 국내 자본은 서유럽과 비교하면 미약했지만,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과 석유 산업을 양분한 브라노벨이 있었다.

이선은 브라노벨의 주주이자 사외 이사였고, 브라노벨의 성공으로 인해 막대한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선은 배당금을 다시 투자에 활용했다.

"만주는 캅카스 못지않게 발전 가능성이 있는 기회의 땅입니다. 만주에서 함께 기회를 찾아보지요."

"알겠습니다. 우리 전문가들을 만주로 보내서 가능성을 탐지해 보지요."

이선과 노벨은 앞으로 만주에 지질 전문가들을 파견해서 지하자원을 탐색하기로 합의했다.

이선은 그 누구보다 만주의 잠재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장차 만주의 개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러시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각 학교에 진학 예정인 10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절단은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로 했다.

조선 사절단은 둘로 나뉘었다. 대부분은 예정대로 독일 베를린으로 향해 탐방을 이어 나가고, 이선과 일부는 니콜라이 2세의 유럽 순방 행렬에 동참하게 되었다.

사절단은 서유럽을 거쳐 미국까지 방문한 후에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이선은 독일까지만 방문하고 귀국하기로 했다.

러시아 육군의 푸차타 대령이 조선 주재 무관으로 발령을 받아 사절단에 동행했고, 장차 조선에서 활동할 고문관 여럿도 합류했다.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도 조선 사절단의 ‘여성 주치의’ 자격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 후 첫 해외 순방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유서 깊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통치하는 다민족 제국이었다.

전쟁으로 인한 확장도 있지만, 왕가 간의 결합을 통해 확장된 제국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만큼 대대로 정략결혼의 혜택을 많이 받은 가문도 없었다.

오죽하면 ‘다른 이들은 전쟁을 하게 두어라. 너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라는 경구까지 생겼겠는가.

그러나 12개 민족이 공존하는 제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은 작위를 공유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없었다.

즉, 근대 민족주의의 발흥에 가장 취약한 제국이었다. 1848년 전 유럽을 뒤흔든 혁명기에는 제국 전체가 무너질 뻔했다.

1867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독일에서 밀려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제국에서 독일계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가장 강력하게 독립을 부르짖었던 헝가리에 자치권을 주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으로 전환했다. 헝가리가 독자적인 정부를 가지되, 황제 프란츠 요제프(Franz Joseph)를 헝가리 국왕으로 섬기는 형태였다.

헝가리에 자치의 특혜를 부여하여 제국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나, 여전히 다른 민족들은 불만을 품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 도착한 이선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초대를 받아 니콜라이 2세와 함께 호프부르크(Hofburg) 왕궁으로 향했다.

66세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흰 수염과 구렛나루를 풍성하게 기른 노인이었다. 재위 48년 차,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황제였다.

"오스트리아의 황제이자 헝가리의 사도 국왕이신 프란츠 요제프 1세 폐하,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 폐하, 대관식을 축하드립니다. 짐의 초대를 받아 이렇게 먼 길을 와 주어 감사합니다."

오스트리아 카이저와 러시아 차르는 정중히 예를 표한 후, 반갑게 악수를 했다.

두 나라는 발칸 반도의 패권을 두고 경쟁 관계이지만, 본래 합스부르크 왕가와 로마노프 왕가는 좋은 관계였다. 1878년까지는 동맹 관계였다가, 베를린 회의 이후 발칸 문제를 놓고 관계가 틀어져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여겼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서로 친밀감을 표했다. 두 황제는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니콜라이가 동행자들을 차례대로 소개했다.

니콜라이는 자신을 수행한 여러 대신을 소개한 다음, 이선도 소개했다.

"폐하, 조선에서 온 이선 공입니다. 얼마 전 청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한 동양의 젊은 영웅입니다."

"오, 짐도 명성은 들었소. 반갑소. 오스트리아에 오신 걸 환영하오."

"감사합니다. 위대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 폐하를 뵙게 되어 깊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선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 서양식 예법으로 최상의 예우를 표했다. 예법에 까다로운 노(老)황제는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예의범절이 아주 바르시군. 귀국과 수교를 한 이후로 조선 사람은 처음 만나는 것 같소."

"아쉽게도 지금까지 조선과 유럽이 거리가 있었으나, 앞으로는 한층 가까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조선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1888년에 수교를 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특별한 관계가 없었다.

한양에 오스트리아 외교관이 상주하거나 빈에 조선 외교관이 상주하지도 않았다. 주일본 오스트리아 공사가 조선을 겸했고, 주독일 조선 공사가 오스트리아를 겸했다.

이렇게 고위급 사절이 방문한 것도 처음이었다.

"폐하, 조선에서 내년 봄에 대관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특사를 파견하시면 조선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이선의 말에 니콜라이도 동의를 표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에서도 황족을 특사로 파견하기로 하였습니다."

"오, 그래요? 그런데 조선에는 이미 군주가 있지 않으신가?"

"청국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축하하고 국가의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기 위해, 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위에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순간 프란츠 요제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무찌르고, 독일 제국을 선포한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카이저(Kaiser)’는 오직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뿐이었는데, 아래라 생각했던 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가문도 카이저를 자칭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이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독일과 동맹이었다.

더욱이 머나먼 동아시아에서 조선이 황제를 칭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프란츠 요제프는, 니콜라이 2세가 이선을 특별하게 여긴다는데 굳이 그걸 반대할 이유도 없었다. 황제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축하할 일이군요. 오스트리아에서도 귀국에 특사를 파견해 기쁨을 함께하겠소."

"감사합니다, 폐하. 장차 양국의 우호는 더욱 두터워질 것입니다."

이선은 가능한 모든 수교국에서 즉위식에 특사를 파견하여 만국의 공인을 받길 원했다.

이미 러시아와 프랑스, 일본은 특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니콜라이 2세의 주선과 별 관계가 없는 오스트리아-헝가리도 특사 파견에 동의했다.

유럽에서도 가장 명망 높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특사는 환영할 일이었다.

이선은 오스트리아에서 짧은 체류를 하며, ‘세기말 빈’이라는 당대 유럽을 대표하는 문화 도시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1848년 혁명 이후 근대적 도시 계획에 따라 변모한 빈은, 도시를 순환하는 링슈트라세(Ringstrasse)를 중심으로, 신고전주의와 세기말의 새로운 사조인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명소가 늘어서 있었다.

‘하, 역시 나는 이 시대 양식이 취향에 맞나봐. 서울도 빈처럼 탈바꿈하면 좋겠는데.’

한양은 미국에서 외교관으로 체류한 경험이 있는 한성판윤 이채연(李采淵)이 워싱턴을 모델로 1차 도시 계획에 나섰다. 이채연은 짧은 기간에 한양을 탈바꿈해 도시 계획자로서 유능하다는 걸 입증했고, 이선은 이번 사절단에 그를 동행시켰다.

이선은 오랜 역사성과 근대성을 모두 갖춘 빈을 모델로 도시 계획을 구상했다.

"참고는 하겠습니다만, 빈은 1848년 혁명 이후 대형 화재도 있었고, 도시를 재구성하기에 유리한 환경이었습니다. 한성도 이미 경복궁을 기준으로 방사선 도로를 만들었으니 부족하나마 빈의 순환 도로에 비견할 만합니다. 하지만 우려가 되는 점은, 기존의 한성으로는 도시 계획이 한계가 있습니다. 워낙 좁은 땅에 인구가 많다 보니."

"당연히 사대문 안을 기준으로 할 게 아니라, 한양을 확장해야지요. 한성부 관할을 넘어 고양군과 양주군 일대로 확장을 할 생각이오."

"음, 한성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황성 계획을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쉽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수도에 격이 맞길 원하는데, 한양은 수도로 500년을 내려온 데다 워낙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어 확신할 수가 없소. 만약 대규모 개발이 용이치 않다면, 대안으로 생각하는 후보가 있긴 한데."

"어디입니까?"

이선은 조선 지도를 가리켰다.

"평양. 평양은 조선 제2의 도시로 교통이 편리하고, 평야가 많아서 개발이 용이하오. 지금이 시의적절한 측면도 있소. 지난 전쟁으로 파괴되어 재건이 필요하고, 북방 영토로 접근하려면 평양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겠지."

"음, 확실히 한양보다는 개발이 훨씬 용이하겠군요."

"제국은 전통적으로 2개의 수도가 있다는 명분도 있지. 난 장차 평양을 부수도로 삼아 육성할 생각이오. 경을 이번 사절단에 동참시킨 이유는, 도시 계획자로서 경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오. 유럽의 도시들을 참고하여, 한양과 평양을 새로운 시대를 대표할 제국의 수도로 만들어 주시오."

"알겠습니다. 군 대감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빈을 떠나기 전, 이선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 대공의 초대를 받아 벨베데레(belvedere) 궁전으로 향했다.

벨베데레 궁전은 정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이선은 궁전에 들어서며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라예보 사건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라.’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은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

‘알렉산드르 2세와 니콜라이 2세의 암살을 막은 것처럼, 어쩌면 장차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 대전이 일어나지 않을까?’

제국주의 열강의 다툼은 20세기에 들어 극에 달할 것이고, 대공의 죽음은 그저 명분에 불과했다.

열강의 충돌은 결국 시간문제였다. 이선은 언제가 되었든, ‘대전쟁’에 대비해 둘 생각이었다.

"벨베데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선 공."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태자 전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1863년생으로, 이선보다 5살 위였다.

원래 황제의 조카로 계승 순위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합스부르크 왕가의 불운이 그의 행운으로 이어졌다.

프란츠 요제프의 유일한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 멕시코 황제로 추대되었던 막시밀리안 대공의 처형이라는 비극이 있었다.

얼마 전 프란츠 요제프의 셋째 동생인 카를 루트비히 대공마저 병사하면서, 그의 장자로 왕위 계승 4순위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황태자로 임명되어 벨베데레 궁전에 입주했다.

"황태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궁이 소란스러우니 양해 바랍니다. 내가 니콜라이 황제 폐하께 들으니, 왕자께서도 비슷한 입장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모셨습니다."

"예, 원래 계승권자가 아니었지만, 상황이 바뀌었지요."

"나도 그렇습니다. 그만큼 책임도 무거워졌지요. 그리고 결혼 압박받는 것도 말입니다, 하하."

"전하께서도 그러시군요. 왕실이 보수적인 건 어디나 비슷하다 보니……."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왕가라서 말입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33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 황실의 우려를 샀다. 일개 황족이던 시절에는 상관없었지만, 황태자가 된 지금은 유럽 왕가의 공주와 결혼하라는 압박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독신주의를 고수했는데, 이는 황태자의 비밀스러운 사랑과 관계가 있었다.

황태자는 황족인 테셴 대공가의 시녀인 조피 폰 초테크(Sophie Von Chotek)과 사랑에 빠졌는데, 조피가 백작가의 영애라 할지라도 합스부르크 왕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천 상혼이었다.

왕족은 왕족하고만 결혼하는 게 원칙이므로, 당연히 합스부르크 황실이 용납할 수 없는 결혼이었다. 하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조피와의 사랑을 밝히고 자신의 의사를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황태자는 이선과 한동안 환담을 나눴다. 주로 자신의 동양 여행과 취미 생활인 사냥에 관한 이야기였다.

"1893년에 인도와 중국, 일본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그때 조선에 가 보지 못한 게 아쉽군요."

"전하께서 언제든지 오신다면 환영입니다. 마침 내년에 조선에 대관식이 있으니, 황태자 전하께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대표해 참석해 주신다면 크나큰 영광일 겁니다. 러시아에서는 차르의 매제이신 알렉산드르 대공을 파견하기로 했고, 독일에서는 카이저의 매제이신 하인리히 대공의 파견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아, 나도 꼭 가 보고는 싶습니다만, 황제 폐하께서 장기간 부재를 허용하지 않으시겠지요. 워낙 엄격하신 분이라."

"머나먼 동양으로 가게 되면, 잠시라도 황태자의 무거운 책무를 벗고 평안함을 되찾을 수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에서, 전하께서 사랑하는 분을 대동하고 함께 여행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표정이 움찔거렸다. 아직 조피와의 밀애는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니요? 나는 아직 배우자가 없습니다만."

"하하,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순간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머릿속에 계산이 섰다.

‘저 조선 왕자의 말대로, 동양에서라면 그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고, 조피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조피를 계속 이대로 시녀로 놔두면서 비밀로 하는 건 그 자신도, 그녀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황태자는 이선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각하의 호의를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확답은 드릴 수 없지만, 황제 폐하께 청원하여 방문을 고려해 보지요."

"예, 감사합니다. 전하께서 와 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일 것입니다."

이선은 미소를 지으며 황태자와 악수를 했다.

- 238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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