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혁명의 시대-242화 (241/812)

242화 대한제국(大韓帝國)

"대조선국 만세!"

"완화군, 아니 대군주 폐하 만세!"

이선은 문무백관과 백성의 만세를 받으며 경복궁으로 입궐하였다.

먼저 강녕전으로 가서, 아직 공식적으로는 대군주의 지위에 있는 부왕을 알현해 선위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황송하옵게도, 폐하의 성단으로 나라의 새로운 천년 대계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엎드려 절받기로구나. 그래, 소원을 이뤘으니, 이제 허수아비로라도 쓸모없어진 아비와 아우는 어찌할 생각인가?"

"조서에서도 이르길, 태조 대왕과 정종 대왕의 고사를 인용하지 않았습니까. 이를 따르고자 합니다. 태상왕으로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심려 놓으소서."

부왕의 냉소에 이선은 진심을 표했다. 아무리 근대화가 진행 중이라 할지라도, 유교적 명분론이 중시되는 나라에서 효성과 우애를 저버릴 순 없었다.

‘이 나이에 태상왕이라.’

태조 이성계가 태상왕이 되었을 때는 64세였다. 대군주 이형의 나이는 아직도 46세에 불과했다. 통치자로서는 한창나이였다.

아니, 이미 30대부터 자신은 허수아비 신세를 면치 못했었다. 이제 그 허수아비의 자리조차 버티지 못했다.

한동안 침묵하던 대군주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기왕지사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새로운 제국의 기틀을 잡는 훌륭한 군주가 되길 바란다. 나는 뒤에서 국가의 흥성을 기원하겠다."

"황공하옵니다. 폐하의 성은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왕의 본심이 무엇이건, 응원하겠다는 말에 이선은 정중히 감사를 표했다.

이선은 다음으로 왕태자 이척을 찾았다. 왕태자는 간만에 표정이 밝았다. 대리청정에서 물러난 것만으로 만족한 듯했다. 이선은 먼저 사죄를 표했다.

"태자 전하께서는 건저(建儲) 이래 오랫동안 동궁의 지위에 계셨거늘, 이제 물러나게 되셨으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 아우가 그럴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건 무엇보다 저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문무백관과 만민의 지지를 따르는 형님이 이 나라를 잘 이끌어 주십시오."

왕태자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기분이었다. 9살 때 임오군란이 일어나 어머니가 사라지고, 무서운 할아버지와 힘을 잃은 아버지, 실권자인 형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산 세월이 15년이었다. 그에게 태자의 지위에서 물러나는 건 오히려 행운이었다.

이선은 태자의 손을 잡았다. 부왕에게는 애증이 교차한다면, 아우에게는 그저 동정심이 들 뿐이었다.

"앞으로는 왕실 종친으로서 존귀한 명예를 누리며, 이전에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를 만끽하시지요. 제가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형님이나 의화군처럼 해외에 나가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를 유람하고 있는 강이 어찌나 부럽던지요."

아우의 바람에 이선은 잠시 생각을 했다. 얼마 뒤인 1897년 6월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6월에 영국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행사가 있습니다. 조선에도 초청장이 왔지요. 왕실을 대표해 의화군을 보낼까 했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전하께서 다녀오심이 어떻겠습니까?"

영국이라면 마침 태자의 처남인 민영익이 공사로 재직 중인 나라였다.

"허락해 주신다면 가보고 싶습니다."

"그럼 그리하시지요. 첫 해외 순방이니, 외교관들로 하여금 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은 정말로 좋은 분이십니다."

태자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후계자의 자리에서 물러난 왕족들의 최후는 대개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선은 자신에게 결코 위해를 가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마치 양녕대군을 끝까지 아끼고 예우한 세종처럼.

이선은 군주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계승했지만, 공식적으로는 대군주로 즉위하지 않고 임시로 대리청정을 맡았다.

4월로 예정된 황제 즉위식이 있기에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여러 요청을 받아들여, 남별궁 자리에 환구단을 건설하도록 하라."

칭제를 수락했으니, 환구단(?丘壇)을 쌓도록 명했다. 환구단은 유교의 천자가 하늘인 상제(上帝)와 오제(五帝)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오직 황제만이 거행할 수 있는 의식이었다.

환구단은 고려 성종 시대에 처음으로 설치되었으나, 조선은 제후국을 자처했기에 스스로 폐지하였다. 무려 500년 만의 부활이었다.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영은문과 모화관을 부수고 독립문을 건설한 것처럼, 청 사신이 머무르던 남별궁을 부수고 환구단을 건설하게 했다.

다음은 국호를 논의할 차례였다. 이선은 원로대신들을 불러 의견을 경청했다.

"새로운 나라에는 새로운 국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바, 환구단을 건설해 첫 제사를 지내는 지금부터 마땅히 국호를 정하여 써야 합니다. 대신들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전 영의정, 중추원 의장 심순택이 답했다.

"천명이 새로워지고 온갖 제도도 다 새로워졌으니, 국호도 역시 새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부터 억만년 무궁할 터전이 실로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전 우의정, 중추원 부의장 조병세도 이어 말했다.

"우리나라는 옛날 기자(箕子)가 봉(封)해진 조선이란 이름을 그대로 칭호로 삼았는데, 애당초 합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라는 오래되었으나 천명이 새로워졌으니 국호를 정하되, 응당 전칙(典則)에 부합해야 합니다."

대신들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명목상 명태조 홍무제가 그 이름을 택하였으니, 중국에서 정해 준 이름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유학적 사고에 익숙한 이들답게, 제국에 어울리는 국호는 명이나 청처럼 외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선은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옛 삼한(三韓)의 땅인데, 고려가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고, 조선이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아 이를 계승하였소. 이에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하고자 하오. 한이란 이름은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말로 예전부터 쓰여 왔으니, 외국도 대한이라는 칭호에 익숙할 것이오."

대신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삼대(三代) 이후부터 국호는 예전 것을 답습한 경우가 아직 없었습니다. 조선은 중국에서 정해 준 이름이니, 당당한 황제의 나라로서 그 칭호를 그대로 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또한, 대한이라는 칭호는 황제의 계통을 이은 나라들을 상고해 보건대 옛것을 답습한 것이 아닙니다."

"각국의 사람들이 조선을 한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상서로운 조짐이 옛날부터 싹터서 바로 천명이 새로워진 오늘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또한 ‘한(韓)’ 자의 변이 ‘조(朝)’자의 변과 기이하게도 들어맞으니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만년토록 태평 시대를 열게 될 조짐입니다. 신은 흠앙하여 칭송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만장일치로 찬성 의견이 나옴에 따라, 국호가 결정되었다.

"국호는 대한으로 정해졌다. 환구단에 행할 고유제(告由祭)의 제문을 시작으로, 앞으로 모든 공문서에 국호를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그리고 각국에 통보하도록 하라."

1897년, 광무 원년 3월 1일. 새로운 나라,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 봄. 제국의 새 수도에 걸맞게 ‘황성(皇城)’이라는 명칭을 얻은 한양에서는 황제 즉위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선은 가급적 적은 비용으로 검소하게 대관식을 치르고 싶었지만, 이선이 초대한 외빈들이 속속들이 황성으로 향하면서 그 규모의 성대함이 예측되었다.

대한제국을 승인한 나라는 수교국 전부이지만, 친교에 따라 승인 순서가 갈렸다.

가장 먼저 승인한 나라는 단연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통보를 받은 즉시 대한제국을 승인하고, 주한 공사 시페이에르(Alexey Shpeyer)가 경복궁을 찾아 니콜라이 2세의 축하문을 전달하고 특사 파견을 예고했다.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가 그다음으로 승인하여 주한 공사 플랑시가 공화국 정부의 축하를 전했다.

옛 동맹인 일본 역시 신속히 승인하고, 주한 공사 하라 다카시(原敬)가 일본 정부의 축하를 전했다.

미국·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헝가리 등도 이윽고 승인 의사를 전했다. 주요 열강 중에서 영국이 가장 오래 걸렸지만, 결국 승인했다.

유일하게 거부 반응을 보인 건 청나라였다. 청 황실은 조선의 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를 ‘망자존대(妄自尊大)’, 즉 망령되게 자신을 높인다고 비난했다.

이홍장과 대신들은 변화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지만, 황실에서는 옛 제후국이었던 조선이 제국이 된다는 사실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청 황실은 전쟁의 패배보다 제국 선포를 더욱 모욕적인 일로 여겼다.

청 황실은 끝내 승인을 거부했고, 대한제국도 굳이 청나라의 승인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좋을 대로 하라고 하라. 대한이 아직도 중국의 허락을 바라는 제후국인줄 아는가? 저들이 아직도 옛 시대의 망령에 사로잡혀 대한의 우의를 거부하려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청나라는 배제되고, 대관식에 참석할 국가의 특사들이 대한제국에 모습을 드러냈다.

러시아 제국. 니콜라이 2세의 매제이자 해군 제독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

독일 제국. 빌헬름 2세의 동생이자 해군 제독인 하인리히 대공.

이탈리아 왕국. 움베르토 1세의 사촌 동생이자 전 스페인 국왕 아마데오 1세의 아들로 해군 장교인 아브루치 공작 루이지 아마데오.

일본 제국. 천황가의 일족으로 아리스가와노미야(有栖川宮)의 당주이자 해군 장교인 다케히토 친왕.

공화국인 미국과 프랑스는 정부의 고위 각료가 국가를 대표해 특사로 파견되었다. 미국은 3월에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이 막 교체된 상황이라 대규모 특사는 보내지 못했지만, 충분한 성의를 보였다. 대한제국의 새로운 투자국으로 급부상한 프랑스는 아시아 전문가들을 대거 파견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영국에서는 고위 외교관을 특사로 파견했다.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방문 의사는 황제의 반대로 좌절되었고, 영국은 대한제국을 친러 국가로 여겼으므로 특별한 예우를 하길 꺼려했다.

예외적으로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삼국은 가장 높은 고위 왕족을 파견했다. 동양 군주의 즉위식으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서양에서 이렇게 멀리까지 황제 즉위를 축하해 주러 온다니, 참으로 대한의 위상이 대단하오."

"폐하께서 일전에 각국을 순방하며 초대하셨다고 하더군."

"그만큼 우리 폐하께서 서양에서 명성이 높은 덕이지요."

대신들은 기뻐하며 신생 대한제국의 높은 위상을 기뻐했다.

알렉산드르 대공은 얼마 전에 러시아에서 만났던 조선의 왕자, 이제는 대한제국의 새 황제인 이선에게 니콜라이 2세의 친서를 전달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대한제국에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특사를 파견해 대관식의 기쁨을 함께하신다 하였습니다."

"황제 폐하의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전해 주십시오."

이선도 고위 왕족들의 방문을 환영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이들을 파견한 열강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르 대공, 하인리히 대공, 루이지 아마데오 공작, 다케히토 친왕 모두 각국에서 해군을 대표하는 왕족들이다. 그리고 이 나라 모두 중국에서 이권을 노리고 있지. 이게 우연이겠나?’

독일 제국 해군을 대표하는 하인리히 대공. 독일 제국은 산동반도 교주만의 조차를 노리고 있었다.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대표하는 알렉산드르 대공. 러시아는 요동반도 대련만의 조차를 노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아시아 함대를 대표하는 루이지 아마데오 공작. 이탈리아 왕국도 절강 주산(舟山) 열도의 조차를 노리고 있었다.

일본 제국 해군을 대표하는 다케히토 친왕. 일본은 복건 하문(아모이)을 노리고 있었다. 중국을 향한 일본의 야심은 말하나 마나였다.

이들은 대한 제국 황제의 즉위를 축하하러 왔다지만, 결국 중국의 분할을 위한 사전 작업을 위해 모인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대한 제국의 출범과 동시에, 동아시아에 제국의 시대가 개막하고 있었다.

1897년, 광무 원년 4월 11일. 정유년 3월 10일.

황제 즉위식으로 환구단에서 제사를 올리는 의식이 있었다.

이는 전통적인 유교적 의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 이선은 서양식 대례복이 아닌 면복(冕服)을 입었다. 대원군과 왕실 인사들, 문무백관들도 모두 조복(朝服)을 차려 입었다.

외국에서 파견한 특사와 외교관은 대례복을 입고 환구단 근처에 특별히 준비된 관람석에서 기립하여 지켜보았다.

황제 이선은 먼저 천지에 제사를 올리고, 제문을 낭독했다.

"봉천승운황제(奉天承運皇帝)는 천지에 고하노라. 짐은 천명을 계승하여……."

제문 낭독이 끝나자 총리대신 김홍집이 문무백관을 대표하여 외쳤다.

"고유제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이선은 단에 올라 금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았다. 대원군이 왕실을 대표해 이선에게 황제를 상징하는 열두 줄의 면류관을 씌우고, 12개의 장문(章紋)이 있는 장복을 입혔다.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12 곤면(袞冕)이었다.

대원군이 순간 감격이 북받쳐 오른 듯,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대원군은 황급히 눈물을 감추면서 청했다.

"황제의 옥새를 받으시옵소서, 폐하."

"내가 감히 그럴 자격이 되겠습니까?"

이선은 이번에도 관례상 세 번의 사양을 표했다. 세 번 거듭 청원을 받은 이선은 옥새를 받아들였다.

"오오!"

순간, 단 아래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총리대신 김홍집이 문무백관을 대표하여 외쳤다.

"국궁(鞠躬)!"

문무백관이 일제히 몸을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삼고두(三叩頭)!"

문무백관이 일제히 절을 하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며 충성을 다짐했다.

"산호만세(山呼萬世)!"

문무백관이 일제히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대한국 만세!"

"산호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재산호 만세(再山呼萬世)!"

"대한국 만세! 대황제 폐하 만세!"

단 위의 이선은 순간 환희의 감정이 고양되었다.

‘마침내, 이 순간이……. 새로운 제국의 역사가 시작되었구나.’

이선이 느끼는 기쁨은 단 아래의 모든 사람과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동시에 이선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이 나라의 국운이 내게 달렸다. 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인가! 나는 이제 이 나라와 끝까지 운명을 함께할 것이다.’

대한제국, 대한국, 대한, 한국 등으로 불릴 새로운 나라.

13년 만에 참담한 망국으로 끝난 실제 역사와 달리, 이선의 대한제국은 지금 막 힘차게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용과 같았다.

- 243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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